〈 200화 〉 [199화]가차랜드 41
* * *
"세상에. 하얀 까마귀시여. 제 죄를 용서하소서."
"기도하는 건 좋지만 일단 매미처럼 달라붙는 건 자제해주시오. 누가 보면 오해할 것 같소."
주교 아르쿠스는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치와와의 머리 중 가운데 머리에 뒷덜미를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그 왼편에는 오그레손이 물려 있었는데, 아르쿠스는 고소공포증이 있었기에 오그레손의 팔뚝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물론 아르쿠스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페럴란트에서는 이 거대한 치와와만큼 높은 건축물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아르쿠스는 최대한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기도를 계속했다.
"하얀 까마귀시여, 제 죄를 용서하소서. 하얀 까마귀시여, 제 죄를 용서하소서..."
오그레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쿠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과민반응을 보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아르쿠스가 이렇게 맹렬하게 고해성사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이 머리 셋 달린 거대한 치와와의 머리 위에 있는 누군가 때문이었다.
2등신의 짤막한 몸통.
몸통 만큼이나 커다란 뿔.
"?"
알 사람은 다 알아차렸겠지만, 이 치와와의 머리 위에는 마왕 뚜 르 방이 있었다.
아르쿠스는 일단 구해졌다는 감사함과 마왕에게 구해졌다는 위화감, 그리고 마족에 대한 혐오감 사이에서 혼란에 빠져 버린 것이다.
어째서 마왕 뚜 르 방과 아르쿠스 일행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가?
그건 잠시 시간을 돌려, 15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
방금 전,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이 치와와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마왕 뚜 르 방이 나타나 이 무시무시한 마수를 제압했다.
뚜 르 방에게 제압당한 이 강인한 머리가 셋 달린 똑똑한 마수는 곧바로 마왕의 권속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 거대한 귀여운 생명체가 마음에 든 마왕은 머리 셋 달린 치와와를 파티에 집어넣었다.
참모장이 도착해 잔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말이다.
"우린 살았소! 아르쿠스 주교! 우린 살았소!"
"이럴 수가..."
"!"
마왕이 갑자기 들린 환호성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는 오그레손과, 마왕의 존재를 알아차린 아르쿠스가 있었다.
아르쿠스는 마왕의 존재를 알아차리자마자 성호를 그어댔다.
알다시피 페럴란트는 마족에게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기에 마족에 대한 혐오가 굉장히 심각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혐오는 아르쿠스 주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성직자인 만큼 본능적으로 마족을 더 잘 알아차리고 더 혐오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왕 뚜 르 방은 방금 테이밍한 머리 셋 달린 거대한 치와와의 등 위에 올라탔다.
탑승감은 거지 같았지만 그래도 귀여우니 마음에 든 뚜 르 방.
"...!"
까실까실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순된 털의 감촉을 만끽하던 마왕은 문득 이곳의 룰 중 하나를 떠올렸다.
[콜라보 이벤트의 인원들은 기존 파티에 추가로 영입할 수 있습니다.]
마왕이 눈을 끔벅거리며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을 바라보았다.
마왕의 외견은 다소 어려 보이지만, 이래 봬도 가차랜드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온 베테랑 중 베테랑.
그런 마왕의 눈썰미로 보기에, 이들은 가차랜드 토박이가 아니었다.
그 말인 즉 슨, 이들은 콜라보 이벤트로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마왕은 순식간에 새로운 권속에게 명령해 두 사람을 잡아챘다.
언덕을 점령해 포인트를 벌어야 이길 수 있는 룰이었으니, 추가적인 인원의 영입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마왕은 여기서 몇 가지 오판을 저질렀다.
하나는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의 의중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고, 이거 침이오? 으, 세상에."
머리 셋 달린 치와와도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을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삐그덕거리는 이 엉망진창인 마왕 파티가 결성되었다.
그들의 행보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마왕만이 알 뿐이다.
...
그 시각, 언덕을 점령한 도미닉 경의 당... 아니, 파티.
[제국과 연방 시너지가 발동됩니다.]
[제국과 연방(3/6/9) : 라스푸티차가 발동됩니다. 좁은/중간 정도의/넓은 지역에 이동을 크게 방해하는 늪지가 생성됩니다.]
[[기수]의 영향으로 피해가 크게 감소합니다.]
도미닉 경의 파티가 세운 전략은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먼저 언덕을 점령해 버린 다음, 시너지와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의 영향으로 언덕은 하나의 요새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려는 이들은 가파른 언덕과 늪지로 인해 엄청난 체력 저하와 답답할 정도의 이동 속도 감소를 경험해야 했다.
물론 늪지와 언덕이 완벽하게 모든 피해를 막아주는 건 아니었다.
언덕은 사방에서 노출된 형세였고, 늪지도 멀리서 쏘는 공격을 막아주지는 않았으니까.
바로 이때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이 빛을 발했다.
언덕에 꽂힌 페럴란트의 깃발.
그 깃발이 도미닉 경의 파티에 11.25%의 피해감소를 적용시키는 바람에 멀리서 쏘는 피해도 그다지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한 파티가 250포인트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도미닉 경이 속한 파티의 독무대!
그러나 시스템은 이러한 독주를 예상이라도 한 듯, 도미닉 경의 파티에 페널티를 부여했다.
[현재 다른 모든 파티의 합보다 당신의 파티의 포인트가 높습니다.]
[당신의 파티에 무작위 불행이 일어납니다...]
도미닉 경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이런 룰도 있던가? 라고 고민에 빠진 도미닉 경.
"오, 이런."
"저걸 깜빡했군."
그러나 그레고리와 바체슬라브는 이 룰을 알고 있었던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전장의 룰은 심플하긴 했으나, 밸런스를 위해 자잘하고 사소한 룰들이 몇 개 숨겨져 있었다.
평상시에는 쓸 일이 없는 룰들이었으나, 도미닉 경과 그의 파티가 너무 활약한 나머지 숨겨진 룰이 튀어나와버린 것이다.
도미닉 경의 파티에서도 도미닉 경을 제외한 나머지는 저 룰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너무 신나게 언덕을 방어하던 나머지 잊고 만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받는 피해랑 증가. 2. 주는 피해량 감소 3. 무작위 장소로 전이]
[불행의 수레바퀴가 굴러갑니다...]
시스템 창에서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체슬라브는 불안한 듯 그 룰렛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주가슈빌리는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일단 지켜보자고. 받는 피해량 증가나 주는 피해량 감소가 걸리면 그대로 싸우면 되니까."
"하지만 무작위 장소로 전이가 걸리면 어쩌지?"
바체슬라브가 불안하다는 듯 화염병을 매만지며 말했다.
셋의 비중은 1/3으로 똑같았기에 충분히 무작위 장소로 전이에 걸릴 확률이 있었다.
바체슬라브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룰렛은 천천히 돌더니 이내 받는 피해량 증가에서 그 속도를 줄이더니, 아슬아슬하게 무작위 장소로 전이를 향해 나아갔다.
3픽셀. 2픽셀. 1픽셀.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둘의 경계선에 걸친 상황.
그러나 바체슬라브의 말이 씨가 된 것일까?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룰렛은 무작위 장소로 전이가 선택되고 말았다.
"주가슈빌리! 이제 우리 어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바체슬라브의 말이 멈췄다.
[주가슈빌리의 특수 능력, [숙청]이 발동되었습니다.]
[일어난 일에 대해 한 사람이 책임을 지고 숙청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도미닉 경이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 바체슬라브와 주가슈빌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주가슈빌리의 권총에서 탄연이 흘러나와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던 바체슬라브의 이마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더니, 바체슬라브의 육체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네. 콤라드."
"아, 그러게. 그래도 값진 희생이었어."
그러나 그레고리와 주가슈빌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곧바로 다시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도미닉 경이 그레고리에게 물었다.
주가슈빌리에게 묻기엔 그가 일을 벌인 당사자라는 사실이 걸렸다.
"별일 아냐."
그레고리가 요사스러운 웃음과 함께 별일 아니라는 듯 도미닉 경에게 설명했다.
"저 녀석의 특수 능력으로 페널티를 없애버린 거야. 한 사람의 희생으로 페널티를 없는 것으로 만든 거라고."
그레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멍하게 있는 도미닉 경을 지나쳐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기기 위해선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제국... 아니, 연방의 방식이지."
아쉽게도 여긴 '물량'으로 해결하진 못하니까 사실상 일회용이지만 말이야. 라고 중얼거린 그레고리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알잖나. 여긴 죽어도 죽지 않아. 저 녀석의 희생으로 우린 다시 기회를 잡았네. 그 값어치 없는 죽음 하나로 말이야. 그만큼 값어치 있는 일이 어딨겠나. 안 그래?"
그레고리가 씨익 웃었다.
도미닉 경이 잊고 있었던 광기를, 그레고리와 주가슈빌리는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