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97화]가차랜드 41
* * *
"...이거 어디선가 엇갈린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큰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가차랜드와 황무지의 경계선에 도착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니카 경의 말이 옳았던 것일까?
이 넓은 가차랜드에서 손님들을 찾는 건 무리였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은 도미닉 경은 다시 몸을 돌려 발길을 옮겼다.
어떤 결정을 내리려든지 간에 일단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대중 교통용 게이트가 있었기에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가차랜드의 중심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도미닉 경은 한참을 고민했다.
이미 도미닉 경은 충분한 시간을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을 찾는 데 소모한 참이었다.
그런데도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에 대한 정보는 그들의 외형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 밖에 없는 상황.
더 찾는다고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도미닉 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했다.
일이라는 것은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끝까지 어긋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어긋나는 것을 다시 되돌리는 방법은... 바로 중간에 다른 일을 하나 하는 것이었고.
이는 도미닉 경이 가진 미신이었으나, 뜻밖에 잘 먹히는 미신이기도 했다.
"...좋아. 잠시 찾는 걸 멈추고 다른 일을 해보자고."
도미닉 경이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여기서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 해야한다는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고민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도미닉 경의 시야에 스토리 모드로 가는 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로군."
도미닉 경이 스토리 모드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최근 이벤트의 연속으로 도미닉 경도 까먹고 있었던 곳.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홀린 듯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41 언덕의 제왕 I☆☆☆]
☆ 게임을 한 번 완료
☆ 승리
☆ 생존한 채로 클리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스토리 모드의 창.
그래. 오랜만에 스테이지나 좀 돌아볼까.
도미닉 경이 무심코 시스템 창을 눌렀다.
[41 언덕의 제왕 I☆☆☆][접속 중...(55/64)]
접속 중이라는 표시가 뜨며 안에 들어가 있는 인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곧 환한 빛과 함께 스토리 모드의 로비에서 사라졌다.
...
도미닉 경이 사라지고 몇 초 뒤.
"이 방향이라고 했는데..."
"아니, 도대체 왜 중간에 엉뚱한 곳으로 빠져서 이렇게 길을 잃어버리는 거요?"
아르쿠스가 곤란한 듯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오그레손은 그런 아르쿠스를 타박했는데, 오그레손의 말을 들어 보면 아르쿠스가 중간에 어디론가 새는 바람에 길을 잃은 모양이었다.
"어허.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는데 어찌 안 가 볼 수 있겠나?"
"달콤한 유혹에 빠진 거겠지. 안 그렇소?"
오그레손이 아르쿠스의 손에 들린 와플을 노려보았다.
바삭바삭한 와플은 안에 생크림과 사과잼이 든 심플한 구성이었는데, 아르쿠스는 페럴란트에서 감히 맛 볼 수 없었던 그 달콤함에 매료된 상태였다.
다시 와플을 한 입 베어물려던 아르쿠스가 오그레손의 시선에 머쓱한 듯 와플을 숨겼다.
"흠흠. 성령께서 전사들의 전당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우리를 여기로 인도하셨지 않은가. 이 와플이라는 것도 세세하게 알아내 사람들에게 알려 줄 의무가 있는 것일세!"
아르쿠스가 멋쩍게 화를 내며 어영부영 변명했다.
"그러시겠지. 암. 당연히 그러시겠지."
'
오그레손이 존경심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아르쿠스를 바라보았다.
"흠흠. 그나저나..."
오그레손의 시선에 아르쿠스가 화제를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르쿠스는 이내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곳에는 온갖 문자들이 하늘에 떠 있었는데, 별을 뜻하는 상형문자와 숫자들, 그리고 빨려 들어갈 듯한 소용돌이들이 보였다.
"저기는 도대체 무엇인고?"
"어디 말이오? ...흠."
오그레손이 아르쿠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오그레손은 저 신비한 문자들의 별자리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저기로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오."
"나도 그러네. 성령께서 날 저기로 인도하는 기분일세."
"당신을 보면 그건 성령이 아니라 망령이겠지만, 만일 이게 성령의 인도라면... 나도 그렇소."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멍하게 문자들의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문자들의 별자리에 가까이 다가온 둘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신비하긴 하지만 도대체 뭔지 모르겠소."
오그레손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14, 43, 53, 23, 55 등 숫자들도 읽을 수 있었고, 언덕의 제왕이나 기초훈련, 탐색전 등의 글자도 읽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를 따로 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었으나, 한 덩이로 보기엔 이상한 문장이 되어 버리는 상황.
"글쎄. 아무래도 이건 신들의 글자가 아닐까?"
아르쿠스가 손을 뻗어 글자 중 하나를 매만졌다.
그러자 떠오르는 새로운 창들.
[주의 : 41은 앞의 지역들을 선행해야 합니다.]
[콜라보 이벤트를 확인. 콜라보 대상은 '맛보기'를 통해 일부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41 맛보기를 실행하시겠습니까? [Y/N]]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글자들의 향연에 아르쿠스는 당황해 팔을 마구 휘저었다.
"이, 이걸 어떻게 없애야 하지?"
아르쿠스는 어떻게든 시야를 가린 이 글자들을 치워 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르쿠스의 노력은 엉뚱한 상황으로 보답받았다.
아르쿠스의 버둥거림으로 인해 우연히 [Y]가 눌려 버린 것이다.
"어, 어어?"
"아르쿠스 주교!"
아르쿠스가 빛에 감싸져 사라졌다.
오그레손이 놀라 손을 뻗었으나, 이미 아르쿠스는 사라진 후였다.
"...이게 무슨."
오그레손이 황망한 표정으로 아르쿠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아르쿠스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오그레손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정보를 도출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그레손은 곧 그런 시도들이 헛된 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그레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쿠스 주교를 구하려면, 나도 똑같이 하면 되겠지."
뒷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오그레손이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듯 중얼거렸다.
오그레손이 아르쿠스가 행했던 대로 41이라고 적힌 부분을 눌렀다.
"그리고 이렇게 했던가?"
오그레손은 아르쿠스가 했던 그대로 팔을 버둥거렸다.
오그레손의 팔이 두꺼워 Y와 N이 동시에 눌려지긴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Y가 먼저 입력된 모양인지 오그레손도 아르쿠스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도미닉 경은오랜만에 들어온 스테이지가 꽤 낯선 기분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낯선 기분이 들거나 말거나 스테이지 내부의 시스템은 설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41 언덕의 제왕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언덕의 제왕은 데스매치 맵으로, 한 번 죽으면 스테이지 내에서는 다시 부활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남은 파티를 응원하기 위해 관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언덕의 제왕은 최대 16개의 4인 파티가 참여합니다.]
[언덕의 제왕의 승리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언덕 점령 점수를 1000점을 채울 것.]
[2. 게임 종료 시 가장 많은 점령 점수를 가지고 있을 것.]
[3. 다른 모든 파티를 전멸시킬 것.]
[위의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완료하는 즉시 그 파티는 승리합니다.]
[언덕 점령 점수의 계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 초 마다 언덕에 있는 파티원 수만큼 점수를 얻습니다.]
[이론 상 250초면 이길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정정. 이번에 특별히 콜라보 이벤트의 인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콜라보 이벤트의 인원들은 기존 파티에 추가로 영입할 수 있습니다.]
[추가 영입엔 제한이 없습니다만, 강제성도 없습니다.]
[이상 룰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도미닉 경은 시스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룰 자체는 심플하기 그지없었지만 중간에 갑자기 생긴 추가 인원 룰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뭐, 해 보면 알겠지."
도미닉 경이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당신은 현재 다른 파티원이 없습니다. 다른 파티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차랜드에선 혼자보다는 여럿이 움직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파티를 찾는 중입니다...]
[탐색 시간 0:01 / 예상 시간 0:30]
잠깐 동안의 탐색 시간 끝에,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의 반대편에서 세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아니, 어쩌면 도미닉 경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걸지도 몰랐다.
도미닉 경은 눈앞에 나타난 세 명의 사람들에게 검과 방패를 들며 인사했다.
"반갑소.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오."
"어서 오시오, 도미닉 동무."
도미닉 경이 세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파티'에 온 것을 환영하오, 콤라드."
거기엔, 각양각색의 수염을 한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곰털 모자와 모피로 된 예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