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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96화 (196/528)

〈 196화 〉 [195화]의외의 인연

* * *

"마침 잘되었다. 도미닉 경과 같은 곳에서 왔다는 이들을 봤다."

먼지를 털어내며 콩가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콩가의 기억력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기억난 김에 말하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

도미닉 경은 콩가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콩가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시간을 계산해 보면 그리 머지 않은 곳에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들은 어디에 있소?"

도미닉 경이 다급하게 콩가에게 물었다.

콩가는 그런 도미닉 경의 물음에 손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콩가가 건물들을 밀어내며 일직선으로 달려온 방향을 말이다.

"저기다."

그러나 그곳은 벌써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일직선으로 간다면 얼마 걸리지 않을 거리겠지만, 벌써 복구가 진행되고 있는 이상 조금 돌아서 가야만 할지도 몰랐다.

"고맙소."

하지만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이 저 방향에 있다는 것이었다.

콩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도미닉 경이 황급하게 콩가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복구가 덜 된 골목 두 개를 건너뛸 수 있었다.

"...비행선 타고 가면 안 되냐?"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도미닉 경의 뒷모습을 보면서 콩가가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현재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을 찾으러 가는데에만 온전히 정신을 쏟고 있어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기사답다고 할 수 있는 집중력.

그 사실을 모르는 콩가로서는 도미닉 경이 조금 우둔해 보일 뿐이었다.

...

"이런, 큰일이군."

"길이 막혀 버리다니..."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콩가가 지나간 길을 따라 움직였다.

콩가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난 상황이었으나, 그들은 콩가가 간 길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콩가는 건물들을 밀어내며 가장 빠른 경로로 이동했던 탓에 무너진 건물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방금 전에 막히고 말았다.

건물들이 스스로 복구를 시작하면서 길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과연 전사들의 전당이로다. 하나하나가 예사롭지가 않구나."

건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자기 상처를 복구한다는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아르쿠스는 이곳이 전사들의 전당이라는 믿음을 확고히 다졌다.

"그렇게 말할 때가 아니오. 지금 우리 길을 잃게 생겼소."

오그레손의 가운데로 몰린 얼굴이 더욱 몰렸다.

방금 전까지는 그래도 큰길이 있는 쪽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건물로 인해 시야가 막혀 버리자 좁은 골목은 미로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걱정 말게. 성직자들에게는 언제나 기도라는 방법이 있지 않나."

아르쿠스가 경건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양손을 마주 잡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위대한 흰 갈까마귀시여. 당신의 두 가신이 여덟 세상을 바라봄을 제가 아나이다. 당신의 그 막연하고도 막대한 지혜로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그거 맞소? 저번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쉿. 성직자라고 해서 모든 기도문을 다 외우는 사람은 없네. 외운 척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아르쿠스의 말은 주교가 할 말은 아니었으나 서로 은연중에 눈 감아주는 사실이었다.

기도가 조금 엉망인 것과는 별개로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는지, 영체로 된 두 마리의 하얀 까마귀가 나타나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한 마리는 비틀거리듯 지그재그로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한 마리는 한 장소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오그레손은 아르쿠스가 이 기도문을 쓰는 걸 자주 보아왔기 때문에 두 마리의 까마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까마귀는 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었고, 뱅글뱅글 도는 까마귀는 목적지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딜 목적지로 삼은 거요?"

오그레손이 익숙하다는 듯 대검을 어깨에 들쳐메며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페럴란트 출신의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네."

아르쿠스가 식은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주교관을 다시 매만졌다.

안 그래도 비쩍 말라 해골 같았던 아르쿠스 주교는 더욱 퀭해져 살짝만 피부를 잡아당겨도 뼈와 가죽이 분리될 것만 같았다.

물론 살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기도문을 쓰면 항상 고기와 빵이 간절해진단 말이지. 라고 아르쿠스 주교가 투덜거렸다.

"페럴란트 출신이라. 여기가 저승이라면, 페럴란트 출신이 한둘이 아닐 텐데 말이오. 차라리 도미닉 경을 정확하게 지목했으면..."

오그레손이 비틀거리는 아르쿠스 주교를 한 손으로 부축하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정확하게 물어보면 내가 버티질 못한단 말일세."

주교가 구시렁거렸다.

"이게 얼마나 심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인 줄 아는가? 그나마 신앙심이 깊은 나라서 망정이지, 어설픈 다른 주교가 했다면 당장 기절했을 걸세. 물론 빈센트 주교를 겨냥한 말은 아니지만, 빈센트 주교는 좀 겸허할 필요가­"

"그만, 그만! 일단 움직입시다. 도미닉 경을 찾든 못 찾든 일단 큰길로 나갑시다.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방법이라도 생기겠지."

오그레손은 주교의 투덜거림을 더 이상 듣기 싫어 화제를 급하게 바꿨다.

오그레손이 먼저 하얀 까마귀의 인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걸음을 뗀 아르쿠스 주교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오그레손을 따라잡았다.

하얀 까마귀가 둘을 페럴란트의 인물에게로 인도하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은 골목을 달리고 달렸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도미닉 경은 급하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래서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을 어떻게 알아내야 하지?"

도미닉 경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미닉 경은 단서를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건 함정이었다.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페럴란트에 온 이들이 확실히 가차랜드에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 상황.

도미닉 경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이 흔적이 끝나는 곳까지는 가 봐야겠지."

그래도 도미닉 경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콩가가 만들어놓은 흔적의 끝으로 가면, 그들의 흔적을 새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천적인 믿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콩가가 만든 흔적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도미닉 경은 다시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콩가가 만들었던 가장 첫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는 흔적의 끝이었지만.

"여긴..."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흔하디흔한 골목의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 과연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의 흔적이 있을까?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은 이내 골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아이고, 머리야..."

그리고 아직도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혼미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중년의 남성을 찾을 수 있었다.

"점심때 배달 음식을 시킨 건 기억나는데 왜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 있지?"

중년의 남성은 경비복을 입고 있었는데, 잠시 기절했던 탓인지 기억의 가운데 토막이 날아가 있는 상태였다.

도미닉 경은 혹시나 그가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을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하겠소. 혹시 여기서 사람들을 못 보았소?"

"으잉?"

경비는 도미닉 경의 접근에 놀라 경계했으나, 도미닉 경이 건네는 쿠키 하나에 경계를 풀었다.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먹을 것을 주는 수상한 사람 정도로 경계심이 내려간 것이다.

"사람들이라. 봤지."

경비는 이 쿠키가 큰길 가에서 파는 카페의 비싼 쿠키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경계를 완전히 풀었다.

뇌물로서는 충분한 수준의 물건이었다.

"당신이 찾는 사람들이라는 게 어떤 무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두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네."

경비가 팔을 크게 움직이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기, 저기 골목에서는 언제나처럼 골목의 강도들이 나타났고, 요기. 바로 요기에 두 사람이 있었네."

"두 사람?"

도미닉 경이 경비의 말에 몸을 조금 더 앞으로 숙였다.

꽤 중요한 정보일 것 같아서였다.

"하나는 성직자 같았고 하나는 검사같았는데, 성직자는 깡 말라서는 마치 걸어 다니는 해골처럼 보였고, 검사는 오우거처럼 생겨서는 팔랑팔랑 하고 화려한 옷을 입었는데, 어깨엔 대검을 메고 있었네."

"혹시 문양이나 그런 건 없었소? 하얀 까마귀라던가."

도미닉 경은 나름의 심증은 굳혔으나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글쎄... 그때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 무너졌던가? 기억이 안 나네. 어째서지?"

경비가 기억이 안 난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물어보기엔 경비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미안하오. 너무 많은 걸 물어본 모양이오. 실례했소."

도미닉 경이 경비의 상태를 보고 몸을 돌려 다른 증거를 찾으려고 할 때였다.

"맞아! 하얀 까마귀가 있었네. 하얀 까마귀가 있었어!"

도미닉 경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경비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오?"

"그럼! 당연하지! 성직자의 모자에도 그려져 있었고, 용병의 흉갑에도 그려져 있었네!"

경비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말을 이었다.

"저기에도 있지 않은가! 무려 두 마리나!"

도미닉 경이 경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반투명한 두 마리의 하얀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두 마리의 하얀 갈까마귀..."

도미닉 경이 두 마리의 까마귀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단서가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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