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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95화 (195/528)

〈 195화 〉 [194화]의외의 인연

* * *

"세상에 맙소사. 드래곤인가?"

오그레손이 눈앞에 있는 거대한 공룡을 보고 말했다.

덩치가 꽤 큰 오그레손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큰 공룡.

그러나 오그레손은 곧 이 공룡이 드래곤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배달을 하려는데 목적지가 없다! 이상하다!"

공룡의 등에 고블린이 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화에서 나오는 드래곤들은 전부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존재들이었기에 필멸자가 함부로 자신을 대하는 것에 화를 낸다고 되어 있었다.

물론 오그레손이 잘못 기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드래곤이 아니라면 눈앞에 있는 저 거대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거 참, 고블린이라."

도적 두목이 말했다.

"고블린 따위는 손쉬운 상대지. 안 그래?"

"운이 좋군요."

도적 두목이 도적들과 낄낄거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블린은 낮은 레벨의 스테이지에서 잡몹으로 나오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도적들이 레이드를 뛸 만큼 성급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만일 레이드를 뛰어본 적 있는 자들이라면 정글의 왕 콩가를 못 알아볼 리 없었으니까.

도적들이 양손에 든 단검을 저글링하면서 콩가에게 다가섰다.

이상한 파충류를 타고 있긴 했지만 앞발이 매우 짧았기에 꼬리와 커다란 입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콩가의 진정한 힘은 물리적인 무언가가 아니었다.

"...배달을 방해하는 무리다!"

콩가는 다가오는 도적들을 보며 기겁했다.

그가 배달 대행에 대해서 배울 때 가끔 배달부를 습격하고 음식을 빼앗아 가는 이들에 대한 것도 배웠다.

아무래도 이 도적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인 모양이다. 라고 생각한 콩가는 순식간에 손이 달린 북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신명 나게 젬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에서, 레이드 보스의 기술이 작렬했다.

숙련된 파티도 한 번 맞으면 기겁을 하는 기믹 앞에서, 도적들이 살아남을 리 없었다.

...

"고맙소이다... 그... 고블린?"

"정글의 왕 콩가다. 콩가라고 부르면 된다."

도적들이 전멸하고 나서 아르쿠스는 다시 땅에 발을 내딪을 수 있었다.

오그레손은 여전히 공룡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아르쿠스는 고블린이 왜 이 전사들의 전당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며 콩가에게 자기소개했다.

"페럴란트의 주교, 아르쿠스요. 다시 한번 감사드리외다, 콩가."

"페럴란트?"

콩가가 익숙한 지명에 반응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도미닉 경이 왔다는 곳 아니던가.

"혹시 도미닉 경이라고 아나?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도미닉 경?"

주교 아르쿠스가 콩가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미닉이란 이름을 가진 기사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기사만 해도 수백 명을 넘어가자, 아르쿠스는 혼자 생각하는 대신 특징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 도미닉 경은 어떻게 생겼소?"

"외눈이다! 깃털을 꽃았다! 검과 방패를 쓴다!"

"...갈색 머리에 녹안을 가지고 있고?"

"그렇다! 알면서 왜 물었나?"

콩가가 아르쿠스에게 타박했다.

그러나 아르쿠스는 콩가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무언가 놀란 듯 눈을 부릅뜬 채로 생각에 잠겨 버린 탓이다.

"상투스 도미니쿠스(Sanctus Dominicus)...!"

아르쿠스가 성호를 그었다.

고블린 왕 콩가의 말이 맞다면, 지금 콩가가 묘사하는 도미닉 경은 성인으로 시성된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리라.

아르쿠스가 상념에서 벗어나 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낡은 양피지에 그려진 성인의 이콘(Icon)을 꺼내 콩가에게 보여 주었다.

한 번 더 확인해 보려는 셈이었다.

"혹시 이렇게 생기지 않았소?"

콩가가 낡은 양피지에 그려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성화 특유의 미묘한 표정을 지은 갈색 머리의 외눈박이 기사.

성화에서 도미닉 경은 겁에 질린 붉은 피부의 마족에게 방패를 들이민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의 후광과 방패에서는 빛이 새어 나와 마족들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콩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이 조금 더 잘생기기는 했지만 분명 도미닉 경이었기 때문이다.

"맞다. 이렇게 생겼다!"

"오, 세상에. 하얀 갈까마귀시여."

주교 아르쿠스가 성호를 연달아 그었다.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농노의 수호 성인. 자수성가한 이들과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성실한 이들에게 축복을 내린다고 알려진 성인이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아르쿠스는 콩가의 말에 여기가 천국 중 하나인 전사들의 전당임을 다시 한번 확고하게 믿게 되었다.

"그 도미닉 경과 아시는 사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순식간에 아르쿠스의 말이 공손해졌다.

페럴란트라는 말을 듣고 도미닉 경을 떠올렸다면, 평소에도 꽤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리라.

아르쿠스는 눈앞의 고블린이 실은 성인들 중 하나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했다.

"그렇다. 방금 전에도 같이 커피를 마신 사이다."

"세상에나. 하얀 갈까마귀시여...!"

이제 아르쿠스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페럴란트 출신의 신앙인들과 농노들, 기사와 전사들 사이에서 도미닉 경이 가지는 위치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아르쿠스 주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지순례를 한다고 했지만, 사실 도미닉 경의 위령비와 그가 죽었던 성지, 그리고 도미닉 경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복원된 생가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만큼 페럴란트 사람들이 도미닉 경에게 가진 경외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경이란 말이오? 바로 이 도미닉 경?"

공룡에 정신이 팔렸었던 오그레손도 도미닉 경이라는 말에 목에 걸어 둔로켓을 꺼냈다.

그곳에는 성서의 한 구절과 함께 도미닉 경의 성화가 작게 그려져 있었다.

물론, 성화가 더 잘 생기게 그려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주교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그레손도 놀란 눈을 하고 콩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과 있었다는 말은, 이 근처에 도미닉 경이 있다는 말이오?"

"그렇다... 아! 이제 가야만 한다. 시간이 늦었다!"

콩가가 다급하게 외치며 포르티시모 템포스트에 올라탔다.

배달 하나가 취소되었다는 말과 함께 새로운 배달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이미 배달 하나를 실수해 버린 탓에 마음이 다급해진 콩가는 새롭게 만난 페럴란트의 인연들을 보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도미닉 경을 보면 당신들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그럼 이만!"

그 말과 동시에 티라노사우르스가 클래식 음악과 함께 후진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틀더니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여긴 정말 전사들의 전당인 모양이오."

오그레손이 꿈을 꾸는 듯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성령이 인도하신 이유가 있었구나. 나의 신실한 기도가 도미닉 경에게 닿은 것이야...!"

주교 아르쿠스가 무릎을 꿇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무려 377마디 동안 쉬지 않고 단 한 마디도 겹치지 않는 온갖 감사 인사를 올리던 아르쿠스 옆으로 오그레손이 다가왔다.

"이럴 때가 아니오."

아르쿠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오그레손을 바라보았다.

"콩가라는 고블린은 도미닉 경에 대해서 안다고 그랬소. 그 말인 즉, 저 고블린을 따라다니다 보면 도미닉 경을 볼 확률이 높지 않겠소?"

"!"

아르쿠스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당장 그를 따라가야 해. 콩가가 어디로 갔지?"

"모르겠소. 저기 어디론가 간 것 같은데..."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콩가가 사라진 방향 근처를 바라보았다.

그 길은 방금 전 자신들이 온 방향이었다.

"운명의 장난이로다."

"그러게 말이오.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니."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들의 입이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그들의 표정은 환하기 그지없었다.

도미닉 경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

마법 소녀와 오크들의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도로를 점거하고 결투를 벌이는 두 무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베르 경감이 출동한 것이다.

"그러니까, 가차랜드에 오신지 얼마 안 되어서 이런 일을 벌이셨다?"

자베르 경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려는 오크들과 마법 소녀.

특히 마법 소녀의 마스코트 티라미수는 자베르 경감에게 격렬한 항의를 보내고 있었다.

"스위트 하트 왕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뿅! 다 이긴 상황에 무승부라니, 말도 안 된다 뿅! 변호사를 선임하겠다 뿅!"

"여긴 가차랜드야, 친구. 가차랜드에선 가차랜드의 법을 따라야지!"

"그것도 스위트 하트 왕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뿅!"

마스코트 티라미수가 떼를 쓰기 시작했으나 자베르 경감은 익숙하다는 듯 둘에게 경고 딱지를 발급했다.

딱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도로 교통 방해]

[벌금 5만 크레딧.]

그렇다.

결투는 가차랜드의 법률 상 합법이었지만, 정작 그들이 잡힌 이유는 도로 교통 방해였다.

"별난 일도 다 있군."

도미닉 경이 방금 나온 쿠키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은 교통을 방해할 만한 곳에서 싸운 적이 없었기에 저런 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안 것이다.

그때였다.

"또 만난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콩가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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