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193화]의외의 인연
* * *
"이거 곤란하구만."
"곤란하긴 뭘 곤란하오? 그렇게 조심성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
주교 아르쿠스는 고개를 숙여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득 찬 건물들의 옥상이 하나의 선이 되어 하늘을 좁혀나가는 이 골목에서, 주교 아르쿠스와 용병 오그레손은 아주,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설마 이런 간단한 덫에 걸릴 줄이야..."
"그러게 계속 주의를 주지 않았소. 조심하라고."
아르쿠스가 오그레손의 타박에 고개를 돌렸다.
못생긴 오그레손의 얼굴이 거꾸로 보니 더 못생겼기 때문이다.
절대 오그레손의 맞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건 아니다. 라고 스스로 세뇌한 아르쿠스.
그렇다.
지금 아르쿠스는 올가미 덫에 걸려 공중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상황이었다.
"이거 더럽게 안 풀리는구만. 진짜 잘라 내면 안 되오?"
오그레손이 손에 퉷하고 침을 뱉은 뒤 쓱쓱 문지르고는 대검을 들어 올렸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두고 왜 이렇게 어려운 방식을 쓰냐는 것이었다.
"아, 그러면 갑자기 뚝 떨어질 것 아닌가."
아르쿠스가 다시 고개를 숙여 하늘을 바라보았다.
올가미 덫은 엉성하기에 머리와 지면이 고작 30cm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지만, 오히려 가깝기에 느껴지는 공포가 있는 법이었다.
이렇게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이 엉만진창인 만담을 펼치고 있을 때.
"오늘은 운이 좋군. 돈 많아 보이는 성직자와 둔해 보이는 용병이라니."
"음. 운이 좋군."
"운이 좋군."
언제나 그렇듯, 가차랜드의 골목에서는 일정한 확률로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난다.
이번에도 그렇다.
가장 흔하다고 볼 수 있는 도적 습격 이벤트가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벤트와 조금 다른 점은, 이 자들은 정말 돈이 모자라 강도짓을 하는 시민들이라는 점이겠지만.
"가진 걸 다 내놓으면 덫을 풀어 주고 목숨도 살려주지."
"운이 좋은 녀석들이군."
"우리처럼 상냥한 사람들을 만나다니."
"운이 좋군."
강도들의 수가 점점 늘어갔다.
돈 냄새를 맡고 골목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작 둘은 페럴란트 출신이었기에 은화 열 세 냥이 전부였지만 이마저도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면 빠듯한 돈이었다.
"...절대 안 되지."
함정에 걸리지 않았던 용병 오그레손은 대검을 치켜들었다.
이 고단한 여행길에서 마을에 들릴 때마다 주교의 돈으로 맥주 한 잔을 하는 게 낙이던 오그레손에게 있어서 이 남은 돈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용병이란, 가끔 맥주 한 잔에 목숨을 팔기도 하는 법이다.
양손으로 긴 손잡이를 잡은 뒤 머리에 거의 붙이듯 검신을 들어 올려 검 끝을 앞으로 내세웠다.
마치 황소가 뿔을 내민 듯한 자세.
이는 오그레손이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취한 최고의 자세였다.
도적들은 대부분 단검만 쥐고 있었고, 방어가 취약했다.
그렇다면 급소가 많은 상체를 노려 최대한 빠르게 이 도적들을 무력화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아르쿠스는 오그레손을 도와주고는 싶었으나 이렇게 시계추처럼 대롱대롱거리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도움도 제대로 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아르쿠스는 오그레손을 응원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도적들과 오그레손이 대치하던 상황.
"...인내심이 바닥나려고 하는군. 쳐라!"
"운이 좋군!"
"저 모자는 내거야!"
이 긴 대치에 지친 도적들이 먼저 달려들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민첩하게 땅과 벽을 박차며 달려드는 도적에 오그레손이 순간적으로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놀람은 필연적으로 약간의 틈을 만들고 말았다.
틈이 생기자, 도적들이 그 틈을 향해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었다.
오그레손은 자기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그 실수가 가져온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했다.
그러나 오그레손이 기다리던 실수에 대한 결과는 없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골목의 건물 하나가 날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안에 아무도 없었는지 그저 건물만 우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면서 당연하게도 골목에 엄청난 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먼지로 인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된 상황.
도적들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건물이 무너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달 시키신 분! 나와라!"
먼지가 조금 가라앉고 시야가 약간 확보되자, 거기엔 공룡과 공룡을 탄 고블린이 있었으니까.
"어서 나와라! 나와서 로제 크림 파스타를 받아라!"
고블린이 왕의 위엄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그 말에 도적들이 크게 주눅이 들었다.
물론, 전혀 주눅 들 만한 말은 아니었으나 분위기상 주눅이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냐? 너야?"
고블린이 도적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적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급하게 저었다.
"이상하군.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고블린이 고뇌에 빠져 폰을 바라보았다.
지도 앱에는 분명 여기가 목적지라고 되어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는 고블린.
설마 방금 전 날려 버린 건물이 목적지 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뭐가 보이, 콜록! 나?"
주교 아르쿠스는 아직 낮게 깔린 먼지들로 인해 전혀 주변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오그레손에게 주변의 상황을 물었다.
"...갈까마귀시여. 맙소사."
그러나 오그레손은 지금 전혀 주교에게 설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그레손이 평소엔 찾지도 않았던 신을 찾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폭군의 위엄이 가득한 거대한 도마뱀을 보면서 경외로움에 빠져 있었으니까.
저게 혹시 동화에 나오던 드래곤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도미닉 경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오크들과 마법 소녀의 싸움이 완전히 끝자락에 닿은 것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싸움 끝에, 이긴 건 오크였다.
"작은 휴먼이여,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큭. 비겁하게 쪽수로 상대하다니!"
오크 두목이 호탕하게 웃었다.
"누구라도 나와 상대하면 그런 말을 한다. 작은 휴먼."
오크 두목은 이상하게도 오크 무리를 단수로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다! 하나의 근원에서 태어났으니 하나의 묶음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하나고, 넌 일 대 일에서 진 거다, 작은 휴먼!"
오크 두목이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크 두목의 논리가 틀린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가차랜드의 시스템은 오크들을 '하나'의 캐릭터로 보고 있었다.
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의 뜻 중 하나였는데, 캐릭터 하나하나가 아닌 여러 캐릭터의 묶음을 하나의 캐릭터로 취급하는 실험을 통해 가차랜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방패병 3명이라던가, 소총수 5명이 한 카드로 묶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1~2성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시민들에 대한 자비심이기도 했다.
더 이상 성장이 힘들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묶어 하나의 카드로 만들면 조금이나마 더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비심.
오크 두목과 오크들은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뽑힌 이들이었다.
"...큭. 죽여라!"
마법 소녀가 기대에 찬 눈으로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뿅? 아직 2차, 3차 변신이 남아 있으면서 뿅!"
마스코트 티라미수가 마법 소녀 벨 플뢰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야... 오크잖아? 분명히 날 이렇게 저렇게 아무렇게 다룰 것이 당연하잖아?"
마법 소녀가 주변이 밝아질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티라미수에게 속삭였다.
티라미수는 분명 처음엔 멀쩡했던 벨 플뢰르가 어째서 이렇게 뒤틀린 취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벨 플뢰르가 괴롭고 힘들 때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했던 티라미수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법 소녀 벨 플뢰르는 곧 있을 오크들의 행동을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찢길까? 희롱당할까? 다져져서 한 끼의 저녁밥이 될까?
꿈과 희망이 가득한 마법 소녀가 하기엔 너무나도 두려운 생각들.
그러나 마법 소녀 벨 플뢰르는 이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휴먼, 너는 아주 잘 싸운다. 우리, 잘 싸우는 휴먼 좋아한다! 이제 넌 명예 오크다! 오크의 친구다!"
"우리가 명예 인간이 되는 건 어떨까, 두목?"
"오크가 인간? 인간이 오크? 인? 간?"
오크 두목이 벨 플뢰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크들은 이렇게나 잘 싸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잘 싸운다는 뜻은, 오크들이 이기지도, 지지도 못할 정도로 비슷비슷한 실력자라는 소리였다.
너무 강해도 싫고, 너무 약해도 싫다.
마법 소녀의 힘은 그런 오크들의 취향에 딱 맞는 강함이었다.
이에 오크들이 감명받아 마법 소녀와 친하게 지낼 생각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뺨을 세게 올려치면 감동해서 요구를 들어 주겠지의 표본.
그러나 마법 소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데. 오크들이 왜 이리 신사다운 건데.
벨 플뢰르가 오크 두목이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냥하게 건네진 두꺼운 손을 탁 쳐 버렸다.
"협상 결렬이야! 2차전 시작해! 당장!"
마법 소녀가 새로운 폼으로 변하며 벌떡 일어났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과연 작은 휴먼의 말이 맞다! 이렇게 말랑말랑한 건 우리 오크의 것이 아니다! 피와 살이 터지는 전투야말로 친구가 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제안을 거절당한 오크 두목은 벨 플뢰르의 행동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개판이로군."
도미닉 경이 카운터에서 앨리스에게 줄 쿠키 하나를 계산하고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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