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192화]의외의 인연
* * *
"자아아아아아아악은 휴우우우우우우우머어어어어어언!"
오크 두목의 분노가 벨 플뢰르에게 향했다.
"귀 아프다 뿅."
오크 두목의 분노에 찬 외침에 마스코트로 보이는 미묘한 동물이 버럭 화를 내질렀다.
"우리 벨이 놀라잖냐 뿅! 오크 같이 생겨선 우리 귀여운 벨에게 무슨 짓이냐 뿅!"
"오크 같이 생긴 게 아니라 오크다! 이 작은 털 뭉치야!"
"털 뭉치라니 뿅! 난 털 뭉치가 아니다 뿅! 어엿하게 티라미수라는 이름이 있다 뿅!"
"티라미... 뭐? 피라미라고?"
"이익...! 벨! 아무래도 저 오크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뿅!"
"그래 맞아, 티라미수. 따끔한 교훈이 필요할 것 같네."
도미닉 경은 어디선가 갑자기 땡땡땡하는 소리를 들었다.
도미닉 경이 이 소리가 어디서 나온 소리인지 확인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마법 소녀와 오크들은 이미 첫 번째 탐색전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건 뭐냐, 작은 인간?"
오크의 녹슨 고철 장갑에 무언가가 박힌 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야, 내 능력이지."
마법 소녀의 옆에 구운 토스트로 된 대포가 나타났다.
바삭바삭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대포는 안에 엄청난 양의 바게트를 내재하고 있어 언제라도 그 바게트를 쏘아낼 수 있었다.
오크가 장갑에 박힌 무언가를 뜯어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확실히 바게트로군. 그것도 꽤 맛있는 바게트. 오크 두목이 그렇게 생각했다.
"꽤 맛있는... 아니, 멋있는 능력이로군, 작은 인간."
오크 두목이 말했다.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운 거지?"
"이래 봬도 대학교 수석이라서 말이야."
마법 소녀가 시답잖은 말을 꺼냈다.
"스위트 하트 대학 무기공학과 6학년 3반 반장이기에 할 수 있는 능력이지."
벨 플뢰르가 당당한 포즈로 말했다.
얼굴엔 어째서인지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무기 공학이 그 무기였나?"
"재료 공학과로 이름 바꿨으니까, 저건 진짜 무기에 대한 학과가 아닐까?"
"부끄러움도 모르나?"
오크들이 수군거렸다.
무식한 오크들이 듣기에도 저건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었으니까.
"너희들이 뭘 아냐 뿅! 벨 플뢰르가 그렇다면 그런 거댜 뿅!"
오크들의 발언에 마스코트 티라미수가 발끈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던 도미닉 경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으나, 이렇게 머리 아프고 혼란스러운 적은 손에 꼽았다.
무엇보다도, 도미닉 경은 소외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 갑자기 나타나 결투를 신청한 오크나, 갑자기 결투에 난입해 제멋대로 오크와 싸우는 마법 소녀나 모두 도미닉 경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도미닉 경은 기사였고, 전략을 위해선 전술을, 전술을 위해선 개인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도미닉 경은 목적을 명확히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의 목적은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을 찾는 것이었지, 이들과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틈을 타 자리를 벗어나려던 도미닉 경.
그때였다.
"도, 도미닉 경 아닌가?"
도미닉 경은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미닉 경이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엔 젬베를 매단 티라노사우르스를 탄 고블린이 있었다.
고블린 왕 콩가였다.
...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요?"
도미닉 경이 설탕을 듬뿍 탄 핫초코를 마시며 말했다.
도미닉 경과 콩가는 오크들과 마법 소녀가 싸우는 모습이 잘 보이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분명히 당신은..."
"일단 확실하게 하자! 여기 있다는 말이 내가 왜 살아 있냐는 말이냐, 아니면 무슨 용무로 여길 들렸냐는 말이냐?"
왜소한 체격의 고블린 콩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요."
도미닉 경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래, 그래! 그때 난 사실 거의 죽음을 예감했다."
콩가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콩가와 그의 애완 티라노사우르스 포르티시모 템포스트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데이터였고, 버그에 걸려 한 번 삭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 백업 데이터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크, 클라우드? 그런 곳에 저장된 예비 데이터가 있어 날 살려낼 수 있었다더군."
콩가의 말에 도미닉 경이 문득 예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고블린 왕 콩가가 레이드 보스로 참여한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미닉 경은 문득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당신은 레이드 보스잖소. 이렇게 나와 있어도 괜찮은 거요?"
"아, 난 로테이션 쪽이다. 이번에 들어온 후배 트롬처럼 상시 레이드가 아니라서 괜찮다."
"로테이션?"
"설마 레이드를 해 본 적이 없는 건가? 레이드는 보통 일주일간격으로 바뀌는 로테이션 레이드와 언제나 티켓만 있으면 잡을 수 있는 상시 레이드로 나뉜다. 난 저번 주였으니 당분간은 쉴 수 있다."
대략 한 달 정도는 쉴 수 있다며 히죽히죽 웃던 고블린 왕 콩가.
"가차랜드는 참 좋은 곳이다. 열심히 싸우다 토벌당하면 내 가치가 더 높아진다. 그렇게 가치가 높아지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당신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리요?"
"그건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진 기억이든, 아니면 미친 과학자가 내 뇌에 전기자극을 보내는 것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도미닉 경의 물음에 콩가는 이상한 것을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너희도 나와 같다. 난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너흰 외부에서 온다는 것만 다를 뿐, 모든 것을 버리고 가차랜드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너희와 태어나 가차랜드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나는 어떤 차이도 없다."
콩가의 말에 도미닉 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콩가의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의 기사로서 페럴란트에서 살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차랜드로 와서는 그 모든 게 과거의 기억일 뿐이었다.
"맛도 알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감각을 생생히 느낀다. 만들어졌다고? 누구나 부모가 자식을 만든다. 다만 그들은 유전자로, 나는데이터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고작 그 차이는 가차랜드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가차랜드였고, 일반적인 상식을 기대하면 배신당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도미닉 경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 부분은 이제 확실히 이해했소.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소.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요?"
"배달 때문이다."
"배달?"
도미닉 경은 콩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되물었다.
콩가의 짧은 대답으로는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오."
도미닉 경이 목이 타는지 이제는 미지근해진 핫초코를 들이마셨다.
달콤씁쓸한 맛이 입에 맴돌자 도미닉 경의 마음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별 건 아니다. 요즘 세상의 맛있는 것을 먹고,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니 크레딧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업으로 배달일하는 것이다."
콩가가 슬쩍 밖에 세워둔 애완 공룡 포르티시모 템포스트를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도 무심코 티라노사우르스에 눈을 돌렸는데, 템포스트의 등에는 배달용 가방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먹고 즐겼길래..."
도미닉 경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도미닉 경은 제법 인기 있는 편이다.
인기가 있는 만큼 언찬트에서 나오는 인센티브는 연금과 같았고, 카드 팩 교환소에서 도미닉 경의 카드를 팔아 나온 금액으로도 도미닉 경은 충분히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모든 가차랜드의 시민들이 도미닉 경과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재화가 부족했다.
부족한 이유는 다양했으나, 정말 그들에겐 재화가 부족했다.
자기 가치를 올리기 위해선 자기 계발이 필요했다.
돈을 모아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이런저런 이벤트에서 눈도장을 찍거나, 스테이지들을 열심히 깨며 자기 강함을 증명하는 등의 일은 필연적으로 모두 돈이 필요했다.
물론 가차랜드의 사람들이 가챠에 미쳐 사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기 가치를 위한 투자였다.
그런 것으로 하자.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언제나 재화의 부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고블린 왕 콩가도 마찬가지였다.
정글의 왕이라는 칭호가 있었으나, 정작 정글도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것이었기에 정작 콩가의 재산은 그의 애완 티라노사우르스 포르티시모 템포스트와 젬베 정도밖에 없다.
도미닉 경과 콩가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각자의 음료를 홀짝였다.
피투성이 오크들과 여기저기 옷이 찢어진 채로 헐떡이는 마법 소녀.
오크들과 마법 소녀 간의 싸움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들어선 듯싶었다.
띵동. 하고 콩가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콩가가 폰을 슬쩍 바라보자, 거기엔 배달 요청이 와 있었다.
"아무튼, 나중에 한 번 레이드에 찾아와. 한 달 뒤에 있기는 하지만 그... 좀 살살 해줄게."
콩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건 아니라고 여겼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이미 버그로 강화된 콩가의 패턴을 파훼한 적있었던 도미닉 경 앞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콩가가 카페를 나섰다.
도미닉 경은 티라노사우르스를 타고 저 멀리 달려가는 고블린 왕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너머에선 여전히 오크들과 마법 소녀의 혈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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