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92화 (192/528)

〈 192화 〉 [191화]무식함과 화려함

* * *

"옷이 이상하지는 않을까."

도미닉 경은 옷깃을 매만지며 가차랜드의 시내를 돌아다녔다.

도미닉 경이 입은 옷은 남작 부인이 만들어 준 화려한 기사의 예복이었는데, 황금처럼 반짝이는 노란 금술들이 매력적으로 흔들거렸다.

페럴란트에서 오신 손님들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는 다소 화려할 수도 있는 복장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안대를 다시 고쳐 쓰며 계속해서 외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봐, 휴먼!"

그때였다.

누군가가 도미닉 경을 불렀다.

저 깊은 동굴 속에서 말하듯 자체적으로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에 도미닉 경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이 쪽을 봐주는 휴먼이 있군, 휴먼."

도미닉 경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고 살짝 놀란 듯 하나 남은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고철과 재활용품으로 된 장비를 입은 오크가 서 있었다.

물론 도미닉 경이 놀란 이유가 오크가 유창하게 말을 한다거나 꽤 괜찮은 장비를 입어서라는 인종 차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눈앞의 오크가 도미닉 경보다도 머리가 세 개는 더 큰 거구의 인물이었던 탓이고, 또 그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양 갈래머리를 하는 탓이었다.

쓸데없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흔들리며, 이 험악하게 생긴 오크는 말을 이었다.

"휴먼! 꽤 강해 보인다! 싸우자!"

"아, 그건 굉장히 오크다운 발언이었소."

도미닉 경은 이상한 곳에서 감탄했다.

오크라고 하면 야만적이고 무식하며 싸움을 좋아하는 전투광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도미닉 경은 오크들이 다소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는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이 감탄한 이유는 눈앞의 오크가 정말... 오크의 스테레오 타입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오크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우린 오크니까!"

"맞다, 두목! 우린 오크니까 오크다운 게 아니라 오크인 거다!"

"오크가 오크... 뭐? 어려운 말 쓰지 마라!"

두목이라고 불린 양 갈래머리의 오크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던 오크의 정수리에 정권을 꽂아 넣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더라면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갈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으나, 정작 맞은 오크는 익숙하다는 듯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비틀거릴 뿐이었다.

"두목, 상냥하다! 손속에 자비를 둔다!"

그러자 다른 오크들이 두목의 자비심에 놀랐다는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무튼 싸우자, 휴먼! 난 강한 사람과 싸우는 걸 좋아한다. 너 강하다. 그러니 나와 싸워야 한다!"

두목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도미닉 경을 도발했다.

그의 팔에 끼워진 녹슨 고철 장갑에서 쇳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다른 사람들도 있잖소. 왜 하필 나를?"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차랜드의 도심인 만큼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를 고르면 될 것인데, 왜 하필 도미닉 경이란 말인가?

"그야 간단한 것이다, 휴먼."

두목이라 불린 오크가 눈을 부릅 뜨며 말했다.

"다른 이들은 너무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도미닉 경이 황당하다는 듯 오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크는 더욱 당연하다는 듯 당당히 외쳤다.

"오크라고 해서 무조건 강한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만만하고 익숙하게 강한 사람과 싸워야 명예와 명성와 승리를 얻는 법이다!"

그랬다.

오크들은 가차랜드에 와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가차랜드엔 화려하거나 강해 보이거나 혹은 이상한 장비를 낀 사람이 많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오크들에게 있어서 미지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장비들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되지 않았다.

물론 오크들도 전사들이니 도미닉 경처럼 호승심이 강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오크들은 전사들이 아니었다.

무려 비열하고 야비한 전사들... 아니, 야비하고 비열한 전사들이었다.

"너, 검과 방패를 쓴다. 이상한 거 안 쓴다. 그러니 우리가 싸워도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두목의 논리는 이랬다.

다른 이들과 싸우는 건 오크들에게 불리하다. 왜? 그들이 모르는 무기를 들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도미닉 경과 싸우는 건 해볼 만 하다. 왜? 검과 방패라는 익숙한 무기를 들고 있으니까!

다소 이상한 논리였지만 오크들은 그런 논리를 당연하다고 여겼다.

"...좋소. 걸어온 싸움을 피하는 건 기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니까."

도미닉 경이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기사?"

오크 두목이 놀란 듯 바라보았다.

"넌 말도 없고 투구도 없다! 기사는 다 거인에 황금으로 된 투구를 쓴 놈들 아닌가?"

오크 두목은 자기 차원에서의 기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은 키가 3미터에 톤 단위의 장갑을 두르고 황금으로 장식 된 투구를 쓴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차원에서의 기사들은 톤 단위의 갑옷을 입힌 난폭한 말을 타고 다녔는데, 얼마나 크고 난폭한지 어설픈 오크들은 투레질 한 방에 납작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눈앞의 도미닉 경은 스스로 기사라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도미닉 경은 일반인들 중에선 제법 키가 큰 편이었으나, 기사라고 하기엔 너무 난쟁이였다.

"모든 기사가 다 말을 타거나 그런 건 아니오."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어 올리고 검을 높이 들어 검 끝을 오크에게 향했다.

"나처럼 가난한 기사도 있는 법이외다."

도미닉 경의 자세를 본 오크는 흠칫 몸을 떨었다.

도미닉 경에게서 나오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군. 너는 기사다, 휴먼."

오크 두목이 쓸데없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며 말했다.

기괴할 정도로 크게 자란 주걱턱과 여기저기 흠집이 난 어금니를 드러낸 오크 두목이 등에 매어 두었던 거대한 망치를 들어 올렸다.

망치엔 어째서인지 커다란 핑크색 리본이 달려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기세를 보니 즐거운 싸움이 될 것 같다, 휴먼."

오크 두목이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싸움이다! 싸움이야!"

"기사다! 두목이 기사와 싸운다!"

"저렇게 비실비실한 녀석이 기사라고? 난 두목이 이길 것 같아!"

도미닉 경과 오크 두목의 대치가 시작되며 다른 오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적어도 이 오크들은 매우 호전적이고 유쾌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선수는 양보하겠소."

도미닉 경이 오크 두목을 도발했다.

가차랜드의 시스템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도미닉 경으로서는 눈앞의 오크가 얼마나 강한 녀석이든지 간에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죽더라도 상관없었다.

알다시피 가차랜드에서 죽음이란 흔한 것이었다.

가치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었으니까.

"...마음에 든다, 휴먼!"

오크가 기괴할 정도로 큰 미소를 지으며 돌진했다.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커다란 망치가 도미닉 경의 머리 위로 내려찍힌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의 특성과 특수 기술들로 인해 오크의 공격은 실질적으로 도미닉 경에게 거의 통하지 않을 것이다.

도미닉 경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싸울 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호승심이 가득한 미소였다.

그러나 그때였다.

"멈추세요!"

뾰롱­하는 소리와 함께 불청객이 이 신성한결투에 난입했다.

도미닉 경은 망치가 방패에 닿자마자 밀쳐 내버릴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눈앞에 생긴 하트 모양의 반투명한 분홍색 배리어가 망치를 막아 낸 탓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작은 휴먼?"

오크 두목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늘진 눈으로 난입한 누군가를 노려보았다.

"...마법 소녀 벨 플뢰르! 우아하게 등장!"

탓. 하는 소리와 함께 자세를 취하며 땅에 착지한 소녀 하나.

그야말로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화려한 꽃을 형상화한 붉은색과 녹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소녀였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작은 휴먼!"

"벨 플뢰르예요!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괴물들은 용서치 않겠어요!"

오크 두목은 신성한결투에 난입한 벨 플뢰르라는 마법 소녀에게 버럭 화를 냈으나, 마법 소녀는 어째서인지 대화에서 겉도는 화법을 행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겨우 자세를 바로잡고 그 마법 소녀라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멋졌지? 이번 거 멋졌지?"

"멋졌다 뿅! 여자애들이 뿅 가겠다 뿅!"

벨 플뢰르는 자기애가 강했던지 방금 전 했던 행동을 반복하며 자아 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 옆에는 이상하게 생긴 작은 동물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말 끝마다 뿅을 붙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수상한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어째서 전투를 방해한단 말인가?

"아, 거기 시민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마법 소녀 벨 플뢰르가 지켜드릴 테니까요!"

"자아아아아아아악은 휴우우우우우우우머어어어어어언!"

오크 두목은 배에서부터 끌어올린 노호성을 터뜨렸다.

마법 소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세들을 연이어 취하며 자기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난장판이구만. 하고.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