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190화]엇갈림
* * *
[콜라보가 진행되는 동안 시스템이 불안정해질 예정입니다.]
[혼란스러우실수도 있으니, 대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긴급 공지는 아임 낫 리틀에게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콜라보?"
도미닉 경은 자기 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 또 새로운 개념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콜라보라는 새로운 개념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도미닉 경이 긴급 공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슈가하트 왕국, 페럴란트, 그리고 오크도크 부족 연맹.]
페럴란트.
도미닉 경이 그 익숙한 단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페럴란트라니. 설마 그 페럴란트인가?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
한참 동안 페럴란트라는 단어를 바라보던 도미닉 경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 건 도미닉 경의 방식이 아니었다.
차라리 가차랜드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차원에서 왔다는 이들을 찾아보는 것이 더 빠르리라.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이 장비를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스승님?"
"어? 뭐야? 어디 가?"
"아, 도미니카 경."
마당에 나오자, 그곳엔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가 있었다.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는 훈련하고 있었던지, 가벼운 차림에 방패만 들고 허수아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긴급 공지를 보았소?"
"봤지. 분명 다른 차원에서... 아."
도미니카 경은 왜 도미닉 경이 외출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페럴란트에서 찾아온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보려는 거구나?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않나?"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니카 경의 말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이 넓은 가차랜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가.
그 사람들 사이에서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을 찾는 건 늪에 빠진 진주 귀걸이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알잖소. 페럴란트 사람들의 특징을."
"아."
그러나 도미닉 경은 믿는 바가 있었다.
페럴란트의 사람들은 척박한 페럴란트에서도 살아갈 만큼 강인하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자기 이름 앞에 페럴란트를 붙여 페럴란트 사람이라는 걸 당당히 드러내는 걸 좋아했다.
당장 도미닉 경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그러네.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사실이었어."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도미닉 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녀도 잘 아는 사실이었지만,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무심코 넘겨 버린 것이다.
"그래서, 같이 가시겠소?"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에게 말했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으나, 그녀도 페럴란트 출신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음... 아니."
그러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무래도 이번 콜라보에서 말한 페럴란트는 아마도 원본일 거야. 내가 있던 사본의 세계가 아니라. 내가 있던 세계는 사라졌으니까."
도미니카 경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담겨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앨리스를 훈련시켜야 하니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거, 잘 알잖아?"
"그래도 이제 방패를 제대로 들어 올리는 법은 배웠어요!"
"그래. 이제 걸음마를 뗀 거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앨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미니카 경은 이 천진난만한 종자가 자만하지 않도록 약간의 쓴 소리를 곁들였다.
"아무튼, 원본의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내가 있어 봤자 좋을 거 하나 없을 거야. 그러니 이번엔 혼자 가보도록 해."
"알겠소."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상황.
싫다는 사람을 굳이 설득해 데려갈 만큼 그의 인내심은 강하지 못했다.
"그럼 다녀오겠소."
도미닉 경이 혹시나 삐뚤어졌을까 안대를 매만지며 몸을 돌렸다.
"다녀 와."
"다녀오세요!"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가 그런 도미닉 경을 배웅해주었다.
도미닉 경이 마당을 지나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포탈을 통해 가차랜드의 도심으로 향했다.
...
그 시각, 가차랜드의 도심 어딘가.
"여긴 도대체..."
"페럴란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이오."
주교 아르쿠스와 용병 오그레손은 번영한 가차랜드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높이 쌓아진 각진 탑들은 그 비싼 유리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유리를 통해 각 탑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탑들이 얼마나 높던지, 그리고 얼마나 많던지 수백, 수천의 탑이 빼곡히 땅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주교 아르쿠스는 마법사들과도 친분이 있었기에 페럴란트 마탑의 웅장함을 잘 알고 있었으나, 감히 마탑 따위가 이곳의 탑들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
"과연 성령께서 인도하신 땅이로다."
"...그 성령 소리 좀 그만할 수 없겠소?"
주교 아르쿠스가 터뜨린 감탄사에 오그레손이 투덜거렸다.
아르쿠스가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에 감탄하는 것은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지만, 오그레손에게 있어서 이 장소는 어쩐지 께름칙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있었다.
아르쿠스는 이곳의 놀랍고 찬란한 발전을 보고 감탄했다면, 오그레손은 주변의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무려 계약금을 두 배로 받는 도플졸트너이자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이었기에 사람을 보는 눈은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오그레손은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정상은 아닐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키가 140cm 정도 될 법한 어린아이가 3m는 족히 될 법한 자루에 주춧돌 만큼이나 큰 쇳덩이를 단 거대한 망치를 가볍게 한 손으로 휘두른다거나, 6kg은 족히 될 법한 단검을 순식간에 17번 휘두르거나 하는 것을 본 것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과 의상도 이상했다.
방어력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금속으로 된 속옷만 입고 다니질 않나, 양손에 도끼를 든 저 처자는 귀족들의 저택에서나 볼 법한 메이드의 복장을 하고 있지를 않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오그레손은 전장에서 오래 있었기에 어느 정도 상대의 강함을 가늠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사단장 이상의 무력을 가진 이들.
오그레손은 자기의 상식이 파괴되는 기분이 들었다.
"성령이 이끌었다고 해도 이상하오. 도대체 성령께서 뭘 원하셔서 우리를 이런 곳으로 인도했단 말이오? 이곳은 마치..."
신께서 안배하신 전사들의 전당과 비슷하지 않소.
오그레손은 그 뒷말을 삼켰다.
신이 만든 전사들의 전당이라는 뜻은, 여기가 저승이라는 소리였으니까.
"어쩌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해 저승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네."
아르쿠스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과거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지. 성인들 중에서는 마그누스 스텔라리스, 세 번 신실한 안토니오, 아미오스의 엘링투스, 성녀들 중에선 마가리타, 아리나, 침묵의 카렌..."
"그만! 그만하시오! 소름 돋소."
오그레손이 소매를 걷어 닭살이 돋은 팔을 보여 주었다.
주교의 말이 맞다면, 자기들은 산 자의 몸으로 저승에 온 거라는 말이지 않은가.
오그레손이 아르쿠스만큼 신실함과 교리에 대한 해박함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풍문으로 들은 바는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저승은 산 자가 올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린 선택받은 걸세."
그런 오그레손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쿠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사들의 전당이면 어떤가? 지금까지 천국과 지옥에 초대된 사람들은 많지만, 전사들의 전당을 상상하고 묘사한 사람들도 많지만, 전사들의 전당에 직접 발을 딛고 눈으로 본 사람은 우리가 처음일세. 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나? 오오, 페럴란트의 하얀 까마귀시여. 우리에게 어찌 이런 엄숙하고도 놀라운 과업을 맡기시나이까?"
오그레손은 아르쿠스의 말을 듣고 아르쿠스를 바라보았다.
이미 아르쿠스는 심장과 머리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 버릴 정도의 신앙으로 거의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수많은 전장을 거쳐오며 온갖 위험과 대면했던 오그레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아르쿠스의 광기에 찬 눈이 섬뜩할 수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닐세."
아르쿠스는 놀라울 정도로 눈 깜빡할 시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저승에는 산 자가 오래 있을 수 없다네. 그 말인 즉, 우리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이 영광스러운 전사들의 전당을 보고 듣고 느끼며 페럴란트의 신실한 신앙인들에게 이 위대한 전사들의 전당의 모습을 알릴 의무가 있다는 걸세."
이를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거겠지. 아르쿠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세! 방금 전 겪어본 바로는, 이곳의 사람들은 천국에 걸맞은 착한 심성을 가진 것 같지 않은가! 분명히 우리가 물어본다면 성실히 대답해 줄 걸세!"
"...거 천천히 좀 가시오! 이래 봬도 당신이 고용한 호위인데 떨어뜨리고 갈 셈이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순식간에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나 재밌기도 하지. 운명의 장난일까?
"어디서부터 찾으면 될까..."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이 지나친 그 자리에, 도미닉 경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약간의 차이가 만들어낸 극적인 엇갈림.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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