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183화]이상현상 : 히메
* * *
하늘에서 내리는 사탕의 비.
왈록은 가끔 겪던 일이었기에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으나, 도미닉 경은 그저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탕이 떨어져 내린다.
평범한 사탕은 아니다.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그리고 그 안에 우주를 담은 듯한 신비한 사탕.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신비함 그 자체인 그 사탕에 도미닉 경은 정신을 빼앗긴 것이다.
"후배!"
건물 안에 들어선 왈록이 도미닉 경을 불렀다.
헛. 하고 도미닉 경이 상념에서 벗어났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세상이 다시금 빠르게 움직인다.
도미닉 경이 몸을 틀어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이미 사탕은 도미닉 경의 지척까지 닿은 상태였다.
그때였다.
"도미닉 경! 위험해요!"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이 그 목소리에 채 반응하기도 전에 도미닉 경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누군가가 도미닉 경에게 태클을 걸어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와 한 덩이가 되어 구른 도미닉 경은, 다행스럽게도 사탕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건물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이 있던 자리에 떨어진 사탕이 아름답게 빛나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보기에는 아름다웠으나, 날카로운 조각들의 파편들을 눈앞에서 바라보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리라.
"위험할 뻔했네. 도미닉 경, 괜찮아요?"
아.
도미닉 경이 비산하는 사탕 파편에서 시선을 돌렸다.
자기를 구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고개를 돌린 도미닉 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도미닉 경?"
그곳엔, 쿠노이치 히메가 있었다.
...
"어째서 여기에 있었던 거요?"
"닌자의 습성이 뭔지 아세요?"
그건 바로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라고 히메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히메는 시스템 인더스트리 근처의 건물들 사이를 오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와중, 도미닉 경을 발견해 반가운 마음에 달려오다가 이상 현상이 일어나자 본능적으로 도미닉 경을 구했다는 것이다.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이 조금 미심쩍기는 했으나 가차랜드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스파크를 일으키며 오작동하는 기상 시스템.
떨어지는 사탕으로 인해 더더욱 심하게 파손되어가는 모습에 도미닉 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수상한 사람을 보지 못했소?"
"어디에서요?"
"이 옥상에서 말이오."
도미닉 경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히메.
그리고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치며 도미닉 경의 말에 답했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검은 물체를 보긴 했어요.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히메의 말은 꽤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도미닉 경이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탕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바닥은 이미 사탕 가루로 인해 날카로운 가시밭길이 되어 버린 상황.
"어디로 가야 하는데?"
그때, 왈록이 끼어들었다.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가 행정부에 있소.이번 이벤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말이오."
도미닉 경이 말했다.
"다시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는데, 이래서야..."
"통화는 시도해 봤나요?"
히메가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듣고 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날씨가 너무 나쁜 탓인지 통화권 이탈 표시가 뜬 것이다.
"...통화도 불가능한 것 같소."
"행정부. 행정부라..."
왈록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행정부만 가면 되는 건가?"
"그렇소."
도미닉 경이 다시금 기상 시스템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기상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온 것이었는데, 놓치고 말았잖소. 이제 도미니카 경의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소."
도미닉 경이 찾아야 하는 정보는 모두 모은 상태.
"그렇다면 또 방법이 있지."
왈록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만큼 게이트와 포탈이 잘 구비된 곳도 없어. 오죽했으면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다니는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매일 10km를 이동한다고 하지."
"행정부로 가는 게이트는 13층 아래에 있어. 아니, 지하 13층이던가? 이놈의 회사는 매일 구조가 바뀌니 항상 헷갈린단 말이야."
"다행이네요.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것이 좋겠죠."
히메가 도미닉 경을 향해 웃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히메의 웃음을 잠시 바라보다가 왈록에게 말했다.
"나를 게이트로 데려다 주시오. 당장 행정부로 향해야겠소."
도미닉 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상 시스템을 바라보았다.
"빨리 와 후배. 길 잃지 말고."
미묘한 표정을 지은 도미닉 경은 이내 왈록의 재촉에 걸음을 옮겼다.
...
행정부에 있는 천국 택배 본사.
도미니카 경은 꽤 신성모독적인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천사들이 컨베이어 벨트 사이를 날아다니며 택배를 옮기고 있었고, 구석에서 고객 응대를 담당하는 천사들은 전화 한 통이 걸려올 때마다 날개에서 깃털이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휴게실이라고 적힌 곳에서는 네 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와 여덟 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담배를 피며 부장을 씹어대고 있었고, 말단으로 보이는 작은 날개를 가진 천사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을 뿐이었다.
"여기가... 천국 택배?"
도미니카 경이 약간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예산이 조금 부족하다더군요."
머슬만 의원이 변명이라도 하는 듯 말했다.
"최근 천국의 관리자가 회귀자 하나에게 과하게 투자하는 바람에 자금난을 겪는다고..."
도미니카 경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가차랜드란 곳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웠다.
충격을 받은 건 충격을 받은 것이고, 일은 일이었으니까.
미스 달콤달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최소한의 정보는 모아야 했다.
"고객님?"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이 의아한 듯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아."
도미니카 경은 그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객님? 괜찮으신가요? 의사라도 불러드릴까요?"
"괜찮아요. 그... 별 건 아닙니다. 조금 충격을 받은 상태라..."
"아. 그러네요. 여기 처음 오시는 분들은 좀 충격받고 그러세요."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그 미소가 서글펐다.
"아무튼, 여기 오신 사유가 무엇인가요? 혹시 뒤에 있는 것을 어디로 보내실 생각인가요?"
천사가 도미니카 경의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앨리스가 햄스터 인형을 껴안은 채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앨리스를 택배로 부치라는 소리는 아닐 테니, 아마 햄스터 인형에 대한 말이겠지.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저었다.
도미니카 경이 원하는 건 택배를 보내는 것이 아닌,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는 정보를 얻으려고 왔어요."
"정보라..."
천사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다시금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아는 한도 내에선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미스 달콤달콤의 집 주소."
"...네?"
도미니카 경은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했다.
도미니카 경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천사.
"저, 선생님? 개인 정보에 대한 건 알려드릴 수 없"
"돌발 이벤트라서 말입니다."
머슬만이 지원에 나섰다.
"무엇보다, 그녀는 빌런입니다. 지금 시스템이 인정한 빌런이에요. 지금도 그녀 때문에 밖은 난리도 아닙니다."
"..."
"누가 구급 키트 좀 가져와!"
그때였다.
밖에 택배를 나르던 천사가 사탕 파편이 가득 박힌 채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천사를 들쳐메고 안으로 들어왔다.
"의사 불러!"
"지금 밖에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사탕이 쏟아지고 있어요! 의사를 불러도 못 올 거라구요!"
"제길, 그렇다고 이렇게 둘 순 없잖아!"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상황.
판데모니아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여전히 햄스터 인형과 앨리스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고, 앨리스는 그런 판데모니아의 배려 아닌 배려 덕분에 피투성이 천사를 보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보시죠."
이 참담한 상황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머슬만이 입을 열었다.
"미스 달콤달콤은 지금 선을 넘었습니다. 당신의 결단이 없으면 더 많은 희생자가 나타날 수 있겠지요."
"..."
"혹시나 부담스러우시다면, 저희가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래 봬도 전 탱커 노조의 의원이고, 탱커 노조는 그 정도의 힘은 있으니까요."
"..."
"그래도 부담스러우시다면..."
"됐어요."
"!"
"잠시만 기다려요. 전산망에 접속해야 하니까요."
천사가 침울한 표정으로 코를 훌쩍였다.
분명 저기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천사를 보고 마음이 약해진 것이리라.
"...여기 있어요."
여전히 훌쩍거리며 무언가가 인쇄된 종이를 건네는 천사.
도미니카 경은 그 종이를 받아 내용을 보았다.
미스 달콤달콤의 집 주소가 적힌 종이.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가세요. 전... 전... 잠시 쉬어야겠어요."
천사는 애써 참던 눈물을 서럽게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이리라.
도미니카 경은 차마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한 채로 천국 택배를 나왔다.
"...입맛이 좀 쓰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죠."
머슬만 의원이 참담하게 말했다.
그때였다.
도미니카 경의 옆에서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게이트 안에서 두 명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이거 제대로 작동한 건 맞는 거요?"
"으... 머리야..."
"...도미닉 경?"
머슬만이 어이가 없다는 듯 튀어나온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과 히메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