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182화]이상현상 : 캔디 우박
* * *
도미니카 경과 합류한 도미닉 경은 서로 정보를 교환했다.
"이벤트에 쓰인 젤리는 블랙 그룹의 것이 맞다고 해."
"최근 세 군데 정도에서 젤리를 대량으로 사 갔다고 하오. 행정부와 시스템 인더스트리, 그리고 마왕 뚜 르 방."
"...행정부와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그렇다고 쳐도, 마왕은 왜?"
"사천왕들 복지라더군. 아무래도 달달한 걸 먹기엔 좀 험악하게 생겨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오."
"마왕군 다운 느낌이네."
그렇게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내 더 중요한 정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미스 달콤달콤은 신생 빌런이래. 가차랜드를 과자와 사탕, 케이크와 솜사탕으로 가득 채우는 게 꿈이라더군."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날씨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오. 아마 미스 달콤달콤의 짓이겠지."
그렇게 마지막 정보까지 교환한 도미닉과 도미니카 경은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
"당연하겠지. 날씨 시스템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하지만 어떻게?"
"순찰 돌면 되오."
"아."
도미니카 경이 잊고 있었다는 듯 맹한 표정을 지었다.
"너 경비였지. 그럼 뭐, 어렵진 않겠어."
"그럼 바로 갑시다. 망설일 이유가 없으니."
도미닉 경이 걸음을 옮겼다.
도미니카 경이 그 뒤를 따랐다.
앨리스가 머리 위에 햄스터 인형을 올려 두며 놀다가 저 멀리 걸어가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보았다.
앨리스는 급하게 둘의 뒤를 따라갔다.
...
"아쉽지만, 시스템 인더스트리 내부엔 외부인은 출입이 힘들어.후배는 여기 직원이니까 상관이 없는데, 나머지는..."
왈록이 곤란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쩔 수 없지."
도미니카 경이 빠르게 포기했다.
어차피 도미닉 경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으니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대한 정보는 도미닉 경이 모을 것이다.
그동안 도미니카 경은 행정부로 향해 정보를 모으면 될 것이었다.
도미닉 경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품에 햄스터 인형을 끌어안은 앨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도미니카 경을 도와 주거라.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네!"
앨리스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대한 건 맡길게."
도미니카 경이 그렇게 말하고 앨리스와 함께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건물을 나갔다.
"그래서"
왈록이 혼자 남은 도미닉 경에게 다시 한번 여기 온 목적을 물었다.
"기상 시스템을 보고 싶다고?"
"네."
도미닉 경의 단호한 대답에 왈록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평소라면 도넛이라도 먹으면서 생각을 정리했겠지만, 요즘 살이 부쩍 찐 왈록은 다이어트 중이라는 핑계로 도넛을 줄인 상태였다.
"뭐, 어려운 건 아니지. 사실 보는 건 언제라도 가능해. 너도 자주 봤을 텐데."
대신 만질 수는 없지만. 하고 말한 왈록.
도미닉 경은 왈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 자신이 기상 시스템을 봤다는 말인가?
"보아하니 언제 봤냐는 표정인데."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거. 이 건물 옥상에 있는 거."
왈록이 손가락으로 건물 옥상에 있는 안테나들을 표현했다.
아. 도미닉 경은 그제야 왈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항상 시스템 인더스트리 본사 건물 위에 있는 요상한 안테나들은 건물이 아무리 변화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게 설마 기상 시스템이었다니.
"보통은 쓸 일이 없어. 이미 중앙 시스템이 모든 날씨를 관리하거든."
"하지만 블랙 그룹의 요청이 있으면, 행정부의 허가 이후에 여기서 조작할 수 있어. 그러면 오늘처럼 날씨가 바뀌지. 그게 정말 말도 안 되는 날씨라도 말이야."
보자. 처음 회귀했을 때가 아마 가차월드에 불벼락이 내렸을 때였지 아마? 라고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 왈록.
"그나저나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젤리를 엄청나게 샀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입니다."
"아, 그거."
왈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사실 내가 산 거야. 그... 요즘 젤리 도넛이란 걸 만드는 연습하는 중이라."
다른 사람들에겐 다이어트 한다고 말했으니 좀 비밀로 해 줘. 라고 왈록이 부끄러운 듯 말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나 많은 젤리가 필요했는지 물어보려고 한 도미닉 경이었지만, 문득 평소 왈록이 먹던 도넛의 양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왈록이 도넛만큼 젤리를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그 정도의 젤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기상 시스템을 보려고? 안내해 줄까?"
왈록의 말에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변화무쌍한 복도에 익숙하지 않은 도미닉 경으로서는 왈록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좋아. 따라와."
왈록이 도미닉 경에게 손짓하며 복도를 향해 나아갔다.
도미닉 경은 왈록의 뒤를 따랐다.
...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나온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행정부로 향했다.
"도착하기는 했는데... 이제 어쩐다?"
도미니카 경이 행정부의 로비에서 큰 고민에 잠겼다.
행정부로 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도대체 어디부터 정보를 모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응? 어이쿠. 이거 도미니카 경 아닙니까."
"뭐? 아. 그러네."
도미니카 경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탱커 노조의 의원, 빅 머슬만과 그의 조카 판데모니아가 있었다.
"행정부에는 무슨 일로?"
빅 머슬만이 도미니카 경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저희는 미스 달콤달콤을 찾고 있어요!"
빅 머슬만의 질문에 앨리스가 대신 대답했다.
"뭐, 그렇지. 사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나 고민하던 참이야."
도미니카의 말에 빅 머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희도 미스 달콤달콤이 터뜨린 사건으로 인해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느려 터진 탱커들이 끈적끈적해져서 더욱 느려져 버렸지."
으. 기분 나빠. 라며 판데모니아가 몸을 떨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무얼 알고 싶으신 겁니까? 인연도 인연이니 도와드리겠습니다."
머슬만 의원이 반짝이는 하얀 치아가 훤히 드러나도록 미소 지었다.
"일단... 미스 달콤달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그도 가차랜드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등록이 되어 있을 거 아니야."
당연히 거기에 거주지도 적혀 있을지도 모르고. 안 그래?
도미니카 경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
머슬만이 맥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끙. 설마 정공법 중의 정공법인 상대의 본진을 찾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군요."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지 않아?"
"사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조금... 어렵게 생각하니까요. 단순한 것보다 복잡한 걸 먼저 해 보는 편입니다."
머슬만 의원이 잠시 도미니카 경의 직설적인 방법에 감탄하는 사이, 판데모니아와 앨리스는 햄스터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군요."
따라오시죠. 라고 말한 머슬만 의원이 먼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도미니카 경도 그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 거야?"
"아, 그러네요. 그걸 말하지 않았군요."
머슬만 의원이 뒤에서 따라오는 도미니카 경에게 대답했다.
"집을 가장 잘 찾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머슬만 의원이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어느 곳에 멈췄다.
"...이거 국영 기업이었어?"
"정확하게는 행정부 소속이긴 합니다."
도미니카 경이 도착한 곳을 어이가 없다는 듯 둘러보았다.
"천국 택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입구에 서 있던 천사 하나가 도미니카 경을 반겼다.
여기는 바로 천국 택배의 본사였다.
...
"여기가 바로 기상 시스템이 있는 곳이야."
왈록이 옥상의 문을 열며 말했다.
도미닉 경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옥상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조망으로 분리된 거대한 기계들과 맹렬하게 회전하는 톱니바퀴들, 그리고 철컥철컥하며 무언가를 계산하는 소리가 들렸다.
옥상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계산기와 같은 기계 장치.
그게 바로 기상 시스템의 본모습이었다.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도미닉 경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기상 시스템은 정교하면서도 그 규모가 남다른 장치였다.
"뭐, 가차랜드 전체의 날씨를 담당하는 기계니까."
왈록이 양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 규모는 당연한 거지."
왈록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기술력에 대한 자긍심.
도미닉 경은 왈록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기술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도미닉 경이 보기에도 이렇게나 경이로운데, 당연히 자긍심을 가질 만 했다.
"이걸로 방금 전처럼 젤리 호우를 일으키기도하고 그런 거군요... 음?"
도미닉 경이 펜스 너머의 기계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도중, 기계를 지지하던 기둥 중 하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도미닉 경은 시야가 매우 나쁜 편이었으나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누구냐!"
도미닉 경이 검을 뽑아 들었다.
기둥 뒤에 숨은 누군가가 움찔하는 기색이 도미닉 경이 있는 자리까지 느껴졌다.
"당장 나와서 신원을 밝히시오!"
"그래. 안 그러면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도미닉 경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왈록도 숨어 있는 누군가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도미닉 경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나 기둥 뒤의 누군가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대신 기둥 위의 누군가는 무언가를 기상 시스템을 향해 집어 던졌다.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스파크가 튀는 기상 시스템.
도미닉 경과 왈록이 전기가 흐르는 기상 시스템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기상 시스템이 예측을 실패합니다.]
[캔디 우박이 예상보다 일찍 가차랜드에 도착합니다!]
[모두 실내로 피하십시오! 사탕이 떨어집니다!]
시스템의 경고문이 올라왔다.
맙소사.
도미닉 경은 그 경고를 끄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온갖 달달한 색깔로 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먹구름에서 우르릉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피해!"
지상을 향해 사탕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