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82화 (182/528)

〈 182화 〉 [181화]이상현상 : 젤리 호우

* * *

톡. 토독.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집 안에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당에 젤리가 하나둘 떨어진다.

그리고 곧 젤리가 엄청난 기세로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건 처음 보오."

도미닉 경이 밖에서 슬쩍 받아온 젤리를 하나 우물거리며 말했다.

"응? 이런 거 뜻밖에 자주... 아. 맞다. 넌 시스템 인더스트리였구나."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손바닥에 놓인 젤리 몇 개를 집어가 입에 털어 넣었다.

창밖에서 우비를 입은 앨리스가 머리에 대야를 올린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젤리를 마구마구 받아 내고 있었다.

"블랙 그룹에서는 꽤 자주 있는 일이었거든."

"자주 있었다라?"

"이거 광고니까."

도미니카 경은 블랙 그룹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그런 것은 잠시 쉬는 동안 커피를 마시러 오는 입이 싼 직원들에게서 나오는 정보였고, 이를 통해서 이러한 이상 현상이 블랙 그룹의 판촉 행사, 혹은 광고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통은 개척자들을 노리고 하는 이벤트야. 그들은 안드로이드 것까지 대량으로 구매하거든. 하지만 말이야..."

도미니카 경은 이제 앨리스의 허리까지 올 정도로 쌓여 버린 젤리들을 바라보았다.

앨리스는 더 이상 있으면 젤리들 사이에 갇혀 버릴 것 같아 빠르게 도미닉 경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스승님들! 이만큼이나 모았어요!"

앨리스는 젤리들을 봉투에 담아 가방에 가득가득 챙기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요정들과 교환하고도 간식용으로 한참 남을 것이다.

앨리스가 우비를 벗었다.

젤리 중에서는 너무 말랑말랑한 것이 있었는지 우비는 형형색색의 젤리들로 엉망이었다.

"손이 끈적거려요!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스승님?"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집의 소유주는 도미닉 경으로 되어 있었기에 도미니카 경은 그저 앨리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앨리스가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자 도미니카 경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 정도로 뿌리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방금 시스템이 말했다시피, 이건 빌런의 소행 아니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동조했다.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한 일이지."

"그건 그래."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창문 너머로 마당을 바라보았다.

이제 젤리의 비는 서서히 그쳐가는 모양새였으나, 액체가 아닌 고체로 된 젤리는 필연적으로... 쌓이는 법이었다.

"저걸 치우는 것도 일이겠구려."

도미닉 경의 마당에는 이제 도미닉 경의 키 만큼이나 높이 쌓인 젤리가 있었다.

"인벤토리 쓰면 되지."

도미니카 경이 뜻밖에 현실적인 조언해주었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좋은 생각이었다.

...

젤리 호우가 완전히 그친 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인벤토리에 가득 젤리들을 집어넣었다.

얼마나 젤리가 많았던지 인벤토리가 끈적거릴 정도였지만 도미닉 경은 그리 개의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이벤트를 블랙 그룹에서 한다고 하지 않았소?"

"정확하게는 블랙 그룹이 기획하는 이벤트지. 보통 2월 14일이나 3월 14일, 11월 11일 쯤 한다더라고."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새로운 지식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다면 그 빌런... 이름이 미스 달콤달콤이라고 했던가? 그자는 블랙 그룹의 일원일지도 모르겠구려."

"글쎄."

도미니카 경이 회의적인 말을 내뱉었다.

"기획은 블랙 그룹에서 하는 것이 맞아. 하지만 정작 허락은 행정부에서 받아야 하고, 실행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하지."

어느 한 군데만으로는 절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라고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그렇다면 하나씩 가 보는 것도 방법이겠구려."

도미닉 경이 말했다.

"뭐, 여기저기 쌓은 인맥을 여기서 발휘할 때가 아니겠어?"

"그럼, 여기서 더 이상 지체할 일이 아니오. 당장 일어나 미스 달콤달콤을 찾아봅시다."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이 마당을 향해 한 발자국을 걸었다.

끈적한 바닥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어? 스승님! 잠시만요!"

앨리스가 손을 씻고 나왔다가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밖을 보자, 그곳에는 밖으로 나가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앨리스는 황급하게 둘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블랙 그룹의 본사.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첫 목적지로 블랙 그룹을 찾았다.

도미닉 경이 가장 의심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앨리스가 한 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서 젤리를 교환해 줘요!"

그렇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일단 인벤토리 내부에서 끈적거리는 젤리들을 처리할 생각으로 가장 먼저 블랙 그룹을 찾은 것이다.

"어서 오세요."

블랙 그룹의 본사 근처에 있는 천막.

그 천막에서는 현재 요정들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요정들은 천막을 찾아온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개 젤리의 교환에 대한 이야기였다.

"또 왔어요!"

"어라, 앨리스구나?"

요정 하나가 앨리스를 알아보았다.

"이번엔 뭘 교환하러 왔니?"

"햄스터 쿠션이요!"

앨리스가 손으로 가리킨 곳엔 미묘한 표정의 납작한 햄스터 인형이 있었다.

한 때 단종되었으나 가차랜드 시민들의 복각 요청으로 다시 팔기 시작한 인형.

"햄스터 인형은 5000 젤리야. 이번에 호우가 내리는 바람에 젤리의 가치가 많이 내려갔거든."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앨리스가 눈을 빛내며 대야 가득 담긴 젤리를 보여 주었다.

"잠시만."

요정이 다른 요정들을 불렀다.

마법의 힘을 이용해 10명의 요정이 대야를 들어 올려 저울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러자 대략적인 개수가 저울의 계기판에 나오기 시작했다.

"5300. 충분하구나. 남은 300은 따로 담아줄까?"

"네!"

요정들이 젤리를 들고 뒤편의 상자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300개 정도를 따로 빼내 예쁜 봉투에 담아 앨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앨리스가 빨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저렇게 교환하는 거로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동시에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이 요정의 앞으로 걸어갔다.

도미니카 경은 또 다른 요정에게 다가 갔다.

"어서 오세요! 젤리 교환은 처음이신가요?"

"저희 스승님이에요!"

"그래?"

요정은 동심 가득한 해맑은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맞이했다.

"무엇을 교환하고 싶으신가요?"

"알고 싶은 것이 있소."

도미닉 경은 단도직입적으로 요정에게 말했다.

요정들은 젤리를 교환하는 일하고 있으니, 이번 젤리 호우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

요정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동심이 가득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말이 좀 다르지."

요정은 입에 강아지풀 하나를 물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자, 무슨 정보를 원하실까? 정보의 무게에 따라 젤리의 무게도 달라지는 법이라."

"어머낭? 도미닉 경 아닌가용?"

그때였다.

도미닉 경의 뒤에서 익숙한 콧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이 뒤를 바라보자, 거기엔 바론 남작 부인이 있었다.

도미닉 경에게 처음으로 스킨을 만들어 준 바로 그 귀부인 말이다.

"세상엥. 오랜만에 보네용, 도미닉 경!"

남작 부인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도미닉 경의 손을 잡았다.

"아, 남작부인."

"요즘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들까용. 조금 섭섭하던 참이랍니당."

"아, 조만간 찾아뵐 예정이었소. 그나저나 여기엔 무슨 일로...?"

"요정들이 파는 비단을 사러 왔답니당. 감촉이 부드러워 여기저기서 자주 찾는 소재거든용."

남작 부인이 요정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나용, 훌두포크?"

"아? 아, 네! 대모님!"

방금 전까지 분위기를 잡던 요정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말했다.

"대모라닝, 지금 대모는 티타니아잖아용? 전 이미 은퇴했답니당.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어째서 여기엥...?"

"아, 정보를 모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정보라구용? 아! 그렇군용. 지금 미스 달콤달콤이 저지른 사건으로 가차랜드 전체가 떠들석하다죵?"

남작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잘 오셨네용. 요정들은 여기저기 엿듣고 재잘거리길 좋아하거든용. 저를 보세용! 저도 마찬가지잖아용?"

남작 부인이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그녀의 높게 땋은 머리가 흔들거렸다.

"아무튼 좋은 거래를 하길 바래용. 아. 그리고 훌두포크?"

"네, 네! 대모님... 아니, 전 대모님!"

"적당히 하세용. 적당히. 아셨죵?"

"네, 넵!"

남작 부인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순식간에 인파들 사이로 사라졌다.

저 멀리 남작 부인의 높이 땋은 머리카락이 보였으나, 이내 그마저도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봐요. 왜 대모님과 아는 사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요정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본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

요정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도미닉 경은, 남작 부인의 등장으로 자기가 더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서로 간 볼일 없어서 다행이지 않겠소. 이제 물어봐도 괜찮겠소?"

"얼마든지. 실제 가격에서 조금만 더 받고 팔지요."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에 가득했던 젤리가 바닥이 날 때까지 요정에게 물었다.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의 젤리보다 요정의 정보가 먼저 바닥이 났지만, 도미닉 경의 자비와 관용으로 남은 젤리를 모두 넘긴 것에 가까웠다.

"다음에 또 오세요!"

요정은 방금 전의 건방진 태도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채 놀라울 정도로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정보는 모아졌으니, 이제 다음으로 향할 차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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