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81화 (181/528)

〈 181화 〉 [180화]이상현상

* * *

황무지의 총독부.

"이걸 보여주면 그 녀석이 빡치겠지?"

총독은 싸인이 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히죽거렸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지휘관'과의 악연을 생각한다면, 그에게 이 카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통쾌한 상황이 연출되리라.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총독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를 다시 품에 소중히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총독의 목적지는 수복실.

지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지, 총독은 예상치 못하게 총력전을 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대파당한 안드로이드도 많았고, 그만큼 필요한 수복 자재도 많이 필요한 상황.

총독부 창고를 뒤져 예전에 받아 둔 수복 자재 선택 상자들을 뜯어낸 뒤 수복실의 자재를 채우러 가는 길이었다.

"...응?"

그때였다.

톡. 하고 총독의 정수리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총독의 정수리에서 한 번 튀어 올라 땅에 떨어진 무언가.

크기에 비해서 그리 아프지는 않았으나, 총독은 미묘하게 기분 나쁜 끈적임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숙인 총독.

"응?"

총독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이상하다. 아직 때가 아닌데...?"

그건 말랑말랑한 젤리였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집.

어제의 전투로 피곤할 법 한데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아침 일찍부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대련하고 있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거, 좀 짜증 나는구려."

"그러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좋다는 뜻이지."

도미닉 경은 거대한 증기 강화복을 입은 채 두꺼운 방패를 앞세워 전진했다.

모든 능력치가 크게 상승한 덕분에 이동 속도도 제법 빨랐으나, 오히려 가벼운 장갑으로 바꾼 도미니카 경에 비해선 느린 것이 사실이었다.

도미닉 경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강화복의 두꺼운 장갑으로 인해 거리감이 조금 어긋나기는 했으나, 휘둘러진 검은 무시무시할 정도의 풍압을 내뿜으며 허공을 갈랐다.

도미니카 경은 가볍게 뒤로 반 발자국 물러나 검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6연발 리볼버가 된 총을 들어 도미닉 경에게 쏘아냈다.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6발에 모두 [충격과 공포]효과가 내재하여 있어 더욱 성가신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 전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공격은 도미니카 경에게 닿지 못한다.

도미니카 경의 공격은 도미닉 경의 장갑을 뚫지 못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런 생각 하자마자 둘은 대련을 멈추고 방패를 내렸다.

도미닉 경이 검을 검집에 수납했다.

도미니카 경이 권총을 권총집에 넣고 검집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이건 꽤... 수동적이오."

"단독으로 행동하기엔 장단점이 명확하지만 확실히 이건 파티에 따라서 성능이 갈리겠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스승님! 그리고 스승님!"

오늘도 어김없이 앨리스가 찾아왔다.

그러나 앨리스의 모습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평소의 앨리스가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앨리스는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으니까.

호다닥 달려온 앨리스가 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분명 그만큼 급하게 뛰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더냐?"

"왜 이리 급하게 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앨리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앨리스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놀라운 소식을 하나 알렸다.

"오늘 젤리 호우가 내린대요!"

앨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표정은 앨리스와 달리 미묘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젤리 호우가 도대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아."

앨리스가 멍하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스승님들이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그, 젤리 호우는 말이에요, 말 그대로 젤리가 비처럼 내리는 날씨예요! 보통 젤리 비나 젤리 소나기 정도인데, 이번엔 젤리 호우래요!"

"그래서­"

"젤리는 어디다 쓰는 거야?"

도미닉 경이 앨리스의 말에 의문을 말하기도 전에 도미니카 경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마침 도미닉 경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먹어요. 그리고 교환해요!"

"먹는다?"

"교환한다고?"

도미닉 경은 젤리를 먹는다는 것에 관심을 두었고, 도미니카 경은 교환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젤리는 질리지 않는 은은한 단맛으로 유명해요. 콜렉터들 사이에서는 매 번 떨어지는 젤리를 모아 컬렉션을 만들기도 한대요!"

"콜렉터들에게 팔면 돈을 얻을 수 있지만, 사실 교환은 좀 달라요. 이건 요정들하고 거래하는 거예요!"

"요정들은 젤리를 좋아해요. 그래서 이 젤리들을 모아서 가져가면 괜찮은 걸로 바꿔줘요."

저도 저번에 100개 모아서 곰돌이 머그컵이랑 교환했어요. 라고 앨리스가 말했다.

가방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던 앨리스가 미묘하게 귀엽게 생긴 곰이 그려진 머그컵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런 건 어디서 알아내는 건지 궁금하구나."

도미닉 경이 앨리스에게 물었다.

"어... 제가 아는 건 카드에서 공지사항이나 패치 노트에 적혀 있는 거구요, 가끔 속보는 여기서 해 줘요."

앨리스가 자기 카드를 꺼내 왼쪽 하단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용 약관, 개인 정보 취급 방침 같은 아이콘들이 아주 작게 있었는데, 그 사이에 이질적인 문구가 보였다.

[SSR ON­AIR]

"SSR?"

도미니카 경이 중얼거렸다.

"시스템 서버 라디오(System Server Radio)의 약자예요."

앨리스가 그 의문에 대답했다.

"시스템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알려주는 공룡? 방송이래요."

앨리스는 공용 방송이라는 말하고 싶었으나 어휘력이 약한 앨리스에겐 공용이라는 단어는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도미닉 경은 무언가 홀린 듯이 그 버튼에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카드가 자기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거두었다.

대신 도미닉 경은 앨리스의 카드를 돌려주고 자기 카드를 꺼내 구석을 보았다.

그곳엔 역시나 SSR ON­AIR라는 문구가 있었다.

"눌러보지 그래?"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옆에 딱 붙어 구경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 여러분. 17부 방송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야, 시간 참 빠르네요. 오늘이 된 게 방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8시간 반이나 지났다니요! 물론 농담입니다. 이 악덕 기업은 온종일 떠들게 시키고는 휴식 시각은 쥐꼬리만큼 준다니까."]

["아무튼, 속보입니다. 오늘 젤리 호우가 내린다는 사실은 이미 일기예보를 본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텐데요. 그런데 현재 새로운 이상 현상이 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서쪽에서 캔디 우박이, 북쪽에서 설탕 폭설이, 동북쪽에서 인절미 가루 폭풍이 몰아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는 코더들을 보내 이 이상 현상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역학 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와."

앨리스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젤리 폭우뿐만 아니라 캔디 우박이랑 설탕 폭설, 그리고 인절미 가루 폭풍까지 일어난대요!"

이 달달한 이상 현상의 연속에 당분에 의한 흥분, 즉 슈가­하이가 일어난 듯 만세를 연신 외치던 앨리스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이런 건 보통 하나가 끝나고 나서 시간을 두고 일어날 텐데."

도미닉 경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그가 가차랜드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알아낸 사실은,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면 반드시 귀찮거나 힘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이 기묘한 이상 현상들의 발현으로 인해 무언가 곤란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리고 그건, 곧 떠오른 시스템 창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이상 현상 발생!]

[이상 현상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는 낮은 확률로 자연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역학 관계 조사 결과 누군가가 일부러 이상 현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범인은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빌런, 미스 달콤달콤(Ms.Sweetie)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빌런계의 유명인, 슈퍼 디럭스는 미스 달콤달콤의 범행에 깊은 유감을 표해­]

아, 역시나.

이래서 가차랜드를 싫어 할 수 없다니까.

도미닉 경이 씨익 웃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는 이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이상 현상을 일으킨 빌런에게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돌발 이벤트, '미스 달콤달콤을 잡아라!'가 시작됩니다.]

[잠시. 이름이 좀 구리다는 클레임이 들어와 임시로 이름을 '작전명 : 스위트 하트'로 변경합니다.]

[수많은 이상 현상을 뚫고 미스 달콤달콤을 잡으세요!]

[미스 달콤달콤을 잡는 순간, 이벤트에 참여한 분들께 약간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물론, 직접 잡으신 분께는 조금 더 큰 보상이 있겠죠!]

[부디 미스 달콤달콤을 잡고 가차랜드의 일상을 지켜 주세요!]

"스승님! 그리고 스승님! 저희도 이벤트 참여해요!"

앨리스가 흥분한 듯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서로가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왜 아니겠나.

이렇게나 재밌어 보이는걸 거절할 이유가 없지.

라는 결론을 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