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179화]가차월드 후일담
* * *
"다들 빨리 움직여!"
"아, 거 막 때리지 마십쇼. 맞는 좀비 기분 나쁩니다."
"오늘은 지하 감옥이 포식하겠군..."
가차랜드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경찰, 자베르 경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뒤로는 뒷골목의 습격자들과 좀비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고 있었는데, 경찰차 몇 대로는 부족했던지 자베르 경감이 지원을 불렀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도미닉 경."
무전기에 대고 계속해서 지원을 요청하던 자베르 경감이 도미닉 경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돈 시타델로께서 두 아드님에 대한 걱정을 얼마나 하시던지... 덕분에 저희 경찰도 체면치레 정도는 했습니다."
자베르 경감이 그 야수 같은 구레나룻을 매만졌다.
돈 시타델로는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가차랜드의 세 날개 중 하나인 블랙 그룹의 2인자였고, 그만큼 놀라울 정도로 권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아들들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당연하게도 돈 시타델로가 평소 각별히 지내던 경찰 고위직들이 바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경찰들도 자세한 내막은 몰랐으나, 그래도 돈 카르텔로와 돈 카스텔로가 멀쩡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돈 시타델로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하십니다."
자베르 경감이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어째서인지 정말 감탄한 표정이었다.
"5성에 달하는 실력자인 보스와 Z를 생포하다니, 과연 도미닉 경이라고 해야 할지..."
과연. 5성이었나. 어쩐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이 지금 막 출입구에서 나오는 Z와 보스를 바라보았다.
둘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는데, 보스는 Z를 탓하기 바빴고, Z는 침묵을 지켰다.
"네가 조금만 더 잘했어도 이런 일은!"
"..."
보스와 Z가 경찰차의 뒷좌석에 연행되었다.
도미닉 경은 그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전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
가차월드의 최종병기가 나타나자마자 습격자들의 무장 해제가 진행되었다.
물론 자의적으로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륜이라고 불린 최종병기가 내뿜는 평화의 오라가 그들을 강제로 무장 해제 시킨 것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무장이 해제된 채 가벼운 티셔츠와 청바지 정도만 남았다.
갑옷은 물론, 무기가 될 법한 모든 것은 해제되었다.
"이럴 순 없어."
Z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단검이 들려 있었는데, 평화의 오라 속에서 해제되었다가 다시 장착되기를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버그처럼 일렁이는 단검을 꽉 쥔 Z가 핏발이 선 눈으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 너머에 있는 돈 카스텔로를 바라보았다.
"똑똑하긴 하구나. 이번엔 내가 졌어."
털썩. 하고 Z가 주저앉았다.
평화의 오라에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한 채 제압당한 것이다.
"이제 난 법의 심판을 받겠지."
가차랜드의 법률 시스템은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다.
모든 항목은 중앙 시스템의 엄정한 판결 아래에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피해자가 만족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무고한 피해자가 나온 적도 없었고.
적어도 지금 법률 시스템이 정착된 이후에는 그랬다.
그랬기에 Z는 법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래도 상관없어. 보스가 멀쩡하다면 상관없으니까."
그러나 Z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 나를 묶어라. 기사답게 공은 세워야지."
Z가 히죽거리며 도미닉 경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분명히 무언가 꾸미는 것이 있다.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이었으나 이내 Z를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그렇군. 그건가."
그때였다.
구석에서 멍하게 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던 돈 카르텔로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의 찌질하고 무능한 말투가 아닌 총명함과 이지적인 느낌의 말투였다.
"...돌아왔구나. 형."
돈 카스텔로가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감격한 눈으로 돈 카르텔로를 바라보았다.
"Z는 보스를 믿는 모양이군. 아마 그가 변호사를 선임해 형기를 줄여주리라, 그리고 보석금을 지급해 풀어 주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돈 카르텔로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매우 논리적인 말을 내뱉었다.
"멍청한 돈 카르텔로의 증언은 어차피 엉망일 테니 사람들은 증거로 쳐주지도 않을 테고."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걸 어째."
돈 카르텔로가 Z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서 폰을 꺼냈다.
그리고 단축번호를 누르기 전 이렇게 말했다.
"그건 보스가 잡히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이지. 그리고... 아직 보스는 네가 잡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고."
"...!"
Z의 눈이 부릅 떠졌다.
뒷골목에서 눈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Z였기에 돈 카르텔로의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게 가능할 것 같!"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혹시 들어 줄 수 있습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돈 카르텔로를 보았다.
지금까지의 멍청한 모습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권위적인 모습.
"...말해 보시오."
도미닉 경이 돈 카르텔로에게 말했다.
그러자 돈 카르텔로는 전화기의 단축 번호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것을 확인하더니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자의 입을 좀 막아주시겠소? 지금부터 연기를 좀 해야 해서."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하기엔 언제 전화가 연결될지 몰랐으니까.
"뭐? 잠깐"
도미니카 경이 바로 Z의 입을 막았다.
Z는 입을 가린 손을 치우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도미닉 경이 어깨를 잡고 누르자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짧다면 짧은 통화음.
돈 카르텔로에게는 충분히 긴 시간 후에, 보스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뭐?"]
돈 카르텔로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꿨다.
탐욕스러우면서도 어리석은 말투로.
["무슨 일이야..? Z 전화를 왜 니가"]
"알다시피 지금 모두 무장 해제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Z가 적에게 잡혀 버린 상황입니다! 전 틈을 봐서 땅에 떨어진 Z의 전화를 들고 도망쳤구요!"
그 연기가 얼마나 실감나던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마저 그런가? 하고 속을 정도였다.
["...버려."]
"네?"
["어차피 Z만큼 쓸 만한 패는 널리고 널렸어. 나라도 살아야지. 안 그래?"]
전화기 너머에서 충격적인 발언이 들렸다.
Z의 눈이 부릅 떠졌다.
설마 보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돈 카르텔로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전화를 끊었다.
["뭐? 잠깐, 너 뭐"]
뚝. 하고 끊긴 통화.
전화기를 허공에 던졌다가 받으며 만족한 미소를 지은 돈 카르텔로가 Z를 바라보았다.
"이런, 이런, Z 선생. 안 됐네."
돈 카르텔로가 Z를 도발하듯 말했다.
그 도발이 아니더라도 이미 Z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보스의 배신은 뼈 아팠지만, 이제 그는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거래하지."
그리고 Z는 그 방책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보스의 위치를 알 방법이 있어. 나도 이런 날이 올까 봐 예전에 해 둔 것이 있지."
보스를 고발하는 대신 자기의 형량을 줄여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선택을.
...
그리해서 뒷골목에서 악명이 자자했던 보스와 Z는 잡히고 말았다.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옥에서 하루하루 나갈 날을 세어가겠지.
돈 카스텔로가 경찰차 뒷좌석에 연행되는 보스와 Z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현재 엄청나게 마른 상태였는데, 얼마나 말랐는지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뼈가 시릴 정도였다.
그때였다.
그의 어깨 위로 담요 하나가 덮어졌다.
돈 카스텔로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돈 카르텔로가 있었다.
여전히 돼지 같지만, 탐욕스럽지는 않은 표정으로.
"...형님."
"코코아라도 마실래?"
돈 카르텔로가 어눌하게 말을 걸며 잔을 내밀었다.
방금 전의 이성적이고 멋진 모습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모든 게 연기고 이게 돈 카르텔로의 본모습일지도 모르지.
"형님."
잔을 받아들고 그 달콤함을 음미하던 돈 카스텔로가 물었다.
"혹시 지금까지 다 연기였던 건가?"
휭. 하고 황무지의 거친 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쳤다.
제법 싸늘한 탓에 돈 카스텔로는 어깨에 두른 담요를 당겨 여몄다.
"그건 아니야."
입을 한 번 다신 돈 카르텔로가 말했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긴 하지만... 정말 내 의지였는지 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
돈 카르텔로가 말했다.
"...그럼 됐어."
돈 카스텔로가 코코아를 홀짝였다.
적어도 여기에 독이나 설사약이 들어 있지 않은 것만 봐도 형의 탐욕과 무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돈 카르텔로가 잔 하나를 더 집어 들고 돈 카스텔로의 옆에 앉았다.
"적어도 네 노력이 날 감동시킨 덕분에, 내가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
돈 카르텔로가 코코아를 홀짝였다.
돈 카르텔로는 가차월드를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정확하게는 복원까지는 성공했으나, 손님을 유치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더 재미있는 컨텐츠가 넘쳐나는 가차랜드에서 가차월드라는 유원지는 한물 간 컨텐츠였으니까.
계속되는 적자와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병에 걸려 버린 돈 카르텔로는, 또 한 번 가차월드가 파산하자 완전히 미쳐 버렸던 것이다.
그런 그의 앞에 과거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자 그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에 매달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고.
"...역시 가차월드는 아름다워. 그렇지?"
돈 카르텔로가 웃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으나 불독을 닮은 그의 얼굴 탓에 돈 카스텔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얼마나 들었냐?"
돈 카르텔로가 돈 카스텔로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그대로 기억하는 돈 카르텔로로서는 돈 카스텔로에게 어떻게든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돈 가문에서 가장 좋은 사과 수단은... 바로 돈이었고.
"뭐, 좀 들긴 했지."
"그러니까 얼마나?"
돈 카스텔로가 돈 카르텔로의 귀에 대고 정확한 액수를 말했다.
그러자 돈 카르텔로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가진 회사를 몇 개 팔아야겠군. 싸게 줄 테니까 인수해 갈래?"
"뭐, 가격만 맞는다면야."
돈 카르텔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에 나름의 절충안을 내놓으며 코코아를 마셨다.
그리고 돈 카스텔로는 그 거래를 가장한 사과받아들이며 코코아를 마셨다.
이것이 돈 가문의 사과 방식이었다.
...
"가차월드와 내 모든 회사 및 지분을 맞바꾸는 것은 어때?"
"...장난해? 형님이 완전 손해 보는 거라고!"
"뭐 어때. 대신에 내가 또 가차월드를 말아먹으면 네가 좀 도와주는 걸로. 오케이?"
"...그래."
돈 카르텔로와 돈 카스텔로가 거래하고 있는 그때.
그들의 뒤에 언제부턴가 수상한 회전초 하나가 미동도 없이 멈춰있었다.
그 회전초를 자세히 본 사람들은 바로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겠으나, 현재 가차월드 주변에서 회전초를 유심히 볼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는 어디론가 정보를 보내고 있었고, 그 정보가 도착한 컴퓨터 앞에는 바로 IQ 150 이상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여성이 있었다.
"이번 건 망했네."
여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히 왕이가 실패한 게 아닌 모양이야."
여성이 영상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는지 굳어 버린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 준 여성이 다시 한번 컴퓨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계획은 운이 나빴지만, 다음엔 다를 거야, 도미닉 경."
그렇게 한참을 컴퓨터를 노려보던 여성은 다시 자기 관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비밀번호를 15초에서 30초 정도 틀린 이후에 말이다.
...
"그나저나 말이오."
"응?"
사건이 모두 끝난 뒤, 도미닉 경은 따로 돈 카스텔로를 찾았다.
너무 과하게 에너지를 쓴 나머지 병원에 입원해 영양제를 맞은 돈 카스텔로는 이제 다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있었다.
"그 륜인가 뭔가 하는 최종병기는 대체 뭐였던 거요?"
"아, 그거."
돈 카스텔로는 1인실에 있는 티비 리모컨을 들고 티비를 켰다.
그러자 원래 보던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티비.
"사실, 그거 최종병기 아니야."
"...?"
"뭐랄까... 가차월드 마지막 발악 같은 거지."
돈 카스텔로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발악?"
도미닉 경이 되물었다.
"그래. 발악."
마침내 원하는 채널을 찾았는지 리모컨을 다시 내려놓은 돈 카스텔로.
"알다시피 형님은 가차월드를 살리기 위해 정말 모든 수를 다 썼어. 그리고 그건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형님이 계획한 프로젝트였지."
"물론 예산 문제로 좌초된 이후 파산의 수순을 밟기는 했지만, 그 프로젝트야말로 형님의 영혼이 담긴 정수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내가 대관람차에 집착한 이유이기도하고."
돈 카스텔로는 그 말을 끝으로 티비를 바라보았다.
티비에서는 핫 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정보가 나오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에게도 익숙한 장소였다.
["자! 오늘은 다시 개장한 가차월드에 왔는데요! 놀랍게도 거대 로봇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일지, 오늘 저 드미트리와 함께 확인해 보시죠! 그럼 출발!"]
[가차랜드 외곽 황무지에 위치한 가차랜드. 이곳에는 정말 특이한 것이 있다는 데~?]
["아유, 말도 마요. 요즘 그거 보려고 여기저기서 놀러 와."]
사람으로 북적북적한 가차월드.
도미닉 경은 가차월드가 잘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잘되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던지, 괜히 멋쩍은 미소를 지은 돈 카스텔로.
티비에서는 정말 순박하고 순수한 미소를 짓는 돈 카르텔로가 나오고 있었다.
["저희 가차월드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