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177화]12시간
* *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대관람차에 폭탄을 설치한 습격자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그들이 쓴 폭탄은 요새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이 낡고 녹슨 철제 구조물을 충분히 날리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대관람차는 멀쩡했다.
어째서?
"...아!"
습격자 하나가 문득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연기가 대관람차에 닿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대관람차 주위에 얇은 막이 있어 연기가 그 막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충전기! 충격 흡수형 충전기다!"
"뭐? SAC2999 Shock Absorption Charger mark.3 Prototype 이라고?"
"...그게 뭔데."
습격자들 중 하나가 그 정체를 알고 다른 습격자들에게 알렸다.
함정. 함정이다.
대관람차가 괜히 노출된 상태로 방치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대관람차는 추변의 충격을 흡수해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치가 있었다.
이는 나중에 알려 줄 기믹을 수행하기 위해 달아 놓은 장치였는데, 오랫동안 방치된 상황에서 작동을 정지한 상태였었다.
대관람차의 기믹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면 그저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돈 카스텔로는 그 기믹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충격 흡수형 충전기를 가장 최우선으로 복구한 돈 카스텔로.
그러나 충격 흡수형 충전기에는 단점이 있었다.
바로, 충격이 없으면 그저 고철더미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때, 바로 돈 카스텔로의 사무실로 습격자들이 쳐들어왔다.
습격자들의 공격. 이건 변수였다.
돈 카스텔로는 순식간에 계획을 하나 짜내려갔다.
임시로 만든 어설픈 계획이었으나, 돈 카스텔로는 놀라운 실행력을 바탕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적들이 대관람차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여기서 시간을 끌기만 한다면'
'...충분하겠지.'
마치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듯 중얼거린 말.
그러나 돈 카스텔로는 누군가가 이 말에 낚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돈 카스텔로의 이 허술한 계획은 정말 누군가를 낚는 데 성공했고...
"빨리 후방에 알려! 포격을 중지하라고! 폭발을 멈춰!"
전방에 있던 습격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의 말이 후방까지 닿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근처에 있던 무전병이 후방의 무전병에게 전보를 보내는 그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장전을 마친 포대들이 일제히 폭발물을 날려 보냈다.
가장 먼저 충격 흡수형 충전기를 알아차린 습격자가 멍하게 붉은 점을 반짝이며 하늘을 나는 폭발물의 편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카운트가 오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리고 그 생각은 곧 사실이 되었다.
틱.
10/12.
...
대관람차.
가차월드의 중심.
그래서일까? 대관람차는 놀이기구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기능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시계였다.
가차랜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을 살린 기능.
"아무래도 저 시곗바늘이 12시에 도착하면 복구가 완료되는 것 같네."
도미니카 경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대관람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둥근 대관람차의 모습 위로 조명으로 만들어진 시곗바늘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대치만 하던 습격자들이 대관람차에 대한 테러에 실패하자마자 다시금 문을 부수고 들어올 준비하는 것도 같이 보였지만 도미니카 경은 습격자들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정말 조금만 더 있으면 대관람차가 복구되리라.
"...약 3시간. 아니지. 2시간 반 정도 남았나."
돈 카스텔로가 만년필을 탁하고 내려놓았다.
너무 오랫동안 서류를 바라본 탓인지 눈이 침침했다.
"단 게 땡기는구만."
돈 카스텔로가 손가락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이젠 거의 볼이 홀쭉해 보일 정도였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도미닉 경이 잠시 잠궈두었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언가 불도저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문을 열고 돌아오는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도미닉 경의 저돌적인 돌파력을 직접 관전할 수 있었다.
아무튼 도미닉 경의 손에는 음료수와 에너지 바가 들려 있었는데, 이는 도미닉 경이 근처에 있던 자판기를 기억하고 뽑아온 것이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파는 것이 2개밖에 없었소."
그렇다.
가차월드도 가차랜드에 소속된 장소였고, 그랬기에 당연하게도 모든 상품은 무작위로 받을 수 있었다.
자판기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물음표로 표시된 음료수와 물음표로 표시된 과자를 하나씩 누른 도미닉 경이 가져온 것은 은은한 형광 초록색이 빛을 발하는 파란색 액체가 든 투명한 통과 무려 20g에 1만 칼로리나 들어 있는 벽돌만큼이나 단단한 에너지바였다.
"가격은 싸더군."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이 돈 카스텔로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
"...고마워."
돈 카스텔로가 미심쩍게 생긴 음료수와 과자를 조금씩 먹었다.
뜻밖에 음료수에선 복숭아 맛이 났다.
"이제 곧 다시 공세가 시작될 것 같은데?"
도미니카 경이 긴장을 풀고 있는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특성도 바꿨으니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겠소?"
도미닉 경이 말했다.
그렇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라이더] 특성을 쓰고 있었으나,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특성을 바꿨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내에서 [라이더]특성을 제대로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 말에 돈 카스텔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특성의 교환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장에라도 날뛰고 싶어 미칠 지경이오."
쿵.쿵.
"그야 그렇겠지. 방금 전에도 그렇게 날뛰었으니."
도미니카 경이 방금 전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건 날뛴것도 아니냐는 듯 말했다.
허리춤에 찬 총을 꺼내 빙글빙글 돌리며 말이다.
쿵. 쿵.
"그건... 그렇군."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핀잔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잡담하는 건 좋은데 말이야."
입안이 바짝 마를 정도로 건조한 에너지 바를 음료수로 억지로 넘긴 돈 카스텔로가 말했다.
"이제 곧 문이 또 한 번 박살 날 것 같은데."
쿵. 쿵. 우지직.
돈 카스텔로의 말대로 문이 박살 나며 공성추의 머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 실례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공성추가 후퇴하더니, 길 리 슈트를 입은 예의 바른 습격자 하나가 문의 잠금을 풀고 문을 벌컥 열었다.
"실례지만 가차월드의 소유권을 저희에게 넘겨주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예의 바르게 황당한 말을 내뱉는 습격자.
"그럴 리가."
"그렇군요."
돈 카스텔로가 정중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예의 바른 습격자가 길 리 슈트를 벗어 던졌다.
"그럼 죽이고 빼앗는 수밖에."
야구모자에 헤드셋을 끼고 방탄복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남자.
Z였다.
Z는 다짜고짜 돈 카스텔로를 향해 산탄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상하쌍대형 더블 배럴 샷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 발의 총성.
그러나 총알이 돈 카스텔로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두꺼운 갑옷을 입은 도미닉 경이 돈 카스텔로의 앞에 서서 방패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의 등에 달린 증기기관이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팀펑크] : 황동과 증기, 그리고 벨 에포크!]
[스팀펑크 특성을 가진 사람은 언제라도 증기 강화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증기 강화복은 착용자의 스탯을 크게 증가시켜줍니다.]
치익하고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배출되었다.
자욱한 안개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으나 Z는 당황하지 않고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증기 강화복은 금속으로 되어 있었기에 움직이면 큰 소리가 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Z의 집중은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쪽 손등에 총알이 박혔다.
"윽!"
Z가 더블 배럴 샷건을 떨어뜨렸다.
도미니카 경의 특성 [보안관]의 효과였다.
낭패로군. Z가 생각했다.
사실, Z는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총독이 이끄는 방어선을 공격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관람차를 공격하는 건 오히려 적들에게 좋은 일이었다.
결국 보스와 Z가 내릴 결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돈 카스텔로를 습격해진행을 멈춘다.
그리고 돈 카스텔로를 데리고 가 세뇌시킨다.
다행스럽게도 충직한 보스의 부하들이 가차랜드 곳곳에서 사건을 일으켜 시간을 버는 중이라고 했다.
앞으로 약 3시간.
그 사이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 조급한 마음으로 다급하게 달려온 Z.
그러나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직감한 Z는 이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으... 머리야... 여기가 어디지...?"
그때였다.
사무실 구석에서 쓰러져 있던 돈 카르텔로가 깨어났다.
Z는 문득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 하나를 잡아챘다.
"돈 카르텔로! 작전대로!"
아직 안개가 자욱한 방 안.
Z가 그렇게 소리치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순간 돈 카르텔로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안개가 자욱해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돈 카르텔로는 깨어난 상황.
돈 카스텔로 마저 돈 카르텔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정작 돈 카르텔로는 작전? 무슨 작전? 하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