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176화]12시간
* * *
딸깍.
또 하나의 카운트가 올라갔다.
이제 대관람차 위에는 7/12라는 문구가 달려 있었다.
"이제 절반이 넘었소!"
도미닉 경이 방패의 아래쪽 끝으로 폭발물을 걷어내며 소리쳤다.
폭발물은 습격자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하나, 둘, 혹은 다섯 정도를 처리한 듯싶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조금 무리해서라도 더 빠르게 복구할 테니까!"
빠르다. 돈 카스텔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대관람차를 돌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
하나는 대관람차를 돌릴 예비 배터리들을 충전하는 것.
또 하나는 대관람차를 수리하는 것.
지금 상황이라면 배터리는 제시간 내로 충분히 충전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관람차의 내구도였다.
오랜 시간 방치된 가차월드인 만큼 놀이기구들 중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놀이기구들은 돈 카스텔로가 돈을 쏟아 부어 임시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하기는 했으나, 대관람차는 달랐다.
오로지 완벽하고, 완전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돈 카스텔로는 손을 덜덜 떨면서도 구두 밑창에 숨겨두었던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 대관람차의 복구에 돈을 쏟아부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돈 카스텔로가 수척해진 얼굴로 말했다.
도미니카 경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습격자가 기절 상태에 걸렸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동시에 방패를 밀어쳐 반 발자국 정도 들어온 이들을 다시 두 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적들이 대관람차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여기서 시간을 끌기만 한다면"
앞으로 6시간. 돈 카스텔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충분하겠지."
돈 카스텔로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서류에 눈길을 돌렸다.
지금은 대관람차에 온 신경을 몰두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럴 수 있게끔 확실하게 자기 몫을 다 하는 중이었고.
...
"그렇단 말이지."
그러나 이런 돈 카스텔로의 말은 그대로 보스와 Z에게 전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습격자들은 보스의 지시를 받기 위해서 무전기를 하나씩 들고 간 상태였고, 지나치게 긴 대치 상황으로 인해 쉴 틈 없이 교신이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 돈 카스텔로의 말을 들은 귀 밝은 습격자 하나가 있었다는 점은 보스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적어도 이 지나칠 정도로 긴 대치를 피해 갈 수 있는 패가 하나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보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당장 대치하는 척만 해. 그리고 인원을 나눠서 대관람차로 보내라."
"하지만 폭발물이 조금 부족합니다."
"후속 부대를 보낼 것이다."
"네? 하지만"
"여긴 뒷골목이 아니야. 뒷골목의 룰과는 다른 곳이지."
보스가 말을 이어갔다.
"한 번 투입되면 끝인 뒷골목과는 다르게, 여긴 얼마든지 후속 부대를 보낼 수 있단 말이다."
"...아! 그렇군요! 룰이 달라서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습니다!"
가차랜드에서는 각 지역 별로 특별한 룰이 있는 경우가 있었다.
도미닉 경처럼 혼자 활동한다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룰도 있었지만, 한 번 그 지역에서 죽을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재진입 금지라거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원이 다음 기간까지 특별한 보너스를 받는 등 다양하고 특이한 룰들도 많았다.
그리고 보스와 Z가 살던 뒷골목은 전쟁을 선포하고 한 번 죽으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재진입을 할 수 없는 룰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아무튼, 당장 부대를 나눠 대관람차로 보내라. 나머지는 계속 돈 카스텔로를 포위하고."
"네!"
뚝. 하고 무전이 끊겼다.
분명히 보스의 말을 전달하러 간 거겠지.
"어떻게 생각하나, Z?"
"글쎄. 반반이지. 함정일 가능성과 진실일 가능성. 그렇게 반반."
Z의 말에 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손해 볼 것은 없는 정보지."
보스가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이제 반 이상 불이 들어온 대관람차.
아직은 어딘가 녹슬고 뒤틀려보였으나, 서서히 복구가 되어가는 대관람차.
"저게 어쩌면 키 포인트였을지도 모르겠군."
보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래. 저게 키 포인트였어."
"왜 그래?"
Z가 보스의 이상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생각해 봐. 대관람차는 이 가차월드의 중심이나 다름없어. 가차월드의 상징이라고."
시그니쳐. 메인. 뭐라고 불러야 하지? 라며 보스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가차월드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대관람차가 복원되면, 가차월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가차월드가 활성화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정확해."
보스가 Z의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차월드의 본래 모습이 돌아오는 거야."
딸깍. 하고 또 하나의 카운트가 올라갔다.
8/12.
"가차월드의 본래 목적은 유흥이었지."
"전쟁이나 싸움이 아니라, 그보다 더 본질적인... 즐거움."
보스가 작게 중얼거리다가 Z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차월드 내부에선 원래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어. 누구든 즐거움을 방해 받을 권리는 없다는 것이 그 요지였지.하지만 지금은? 내부에서 싸우는데도 제재가 들어오지 않아. 이건 아직 가차월드가 활성화 되지 않았다는 증거고.아마 저 대관람차가 가차월드의 평화 지대를 생성하는 역장 생성기일 거야. 그렇다면..."
"저게 활성화되는 순간, 우린 망하는 거겠군."
"그렇지."
보스의 말에 Z가 설명을 덧붙였다.
Z의 설명을 들은 보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그래. 시간은 저들의 편이야. 그러기 위해서 당장 저 대관람차의 복구를 저지할 필요가 있어."
보스가 비열하게 웃었다.
돈 카스텔로가 제법 머리를 쓴 모양이지만, 결국 이렇게 빈틈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지금 당장 후속 부대를 대관람차로 보내. 이왕이면..."
보스가 대관람차를 힐끗 바라보았다.
"있는 폭발물을 전부 끌어들여서."
보스가 환하게 웃으며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
"라고 생각하겠지."
돈 카스텔로가 중얼거렸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방패로 습격자들을 모두 문밖으로 몰아내자 사무실의 문이 다시 복구되었다.
돈 카스텔로가 돈을 써서 순식간에 사무실을 복구한 것이었다.
"분명히 내가 중얼거린 걸 저들 중 하나는 들었을 거란 말이야."
돈 카스텔로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온 힘을 쏟았는지 이제 완전히 정상 체중으로 돌아온 돈 카스텔로의 모습은 이제 자신감이 넘치는 사업가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반드시 대관람차의 복구를 막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쓸테지."
"그렇다면 당장 대관람차를 지키러 가야 하는 것 아니오?"
도미닉 경이 문을 걸어 잠그며 말했다.
새롭게 달린 문은 철로 되어 있었는데, 가로로 판자를 덧대어 잠그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럴 필요 없어."
돈 카스텔로가 도미닉 경을 보며 웃었다.
"오히려, 그걸 노리는 거니까."
"그걸 노린다고?"
도미니카 경이 물었다.
"대관람차를 공격하는 걸... 노린 거라고?"
"가차랜드 대관람차에 대해선, 아는 사람만 아는 기믹이 숨겨져 있지."
돈 카스텔로가 서류를 결재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 기믹을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어."
돈 카스텔로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
"모두 힘을 내라! 적의 공세가 사그라지고 있다!"
초소 위에서 확성기를 든 총독이 안드로이드들을 격려했다.
그저 격려를 위한 빈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좀비들의 공세가 약해지고 있었고, 이는 안드로이드들도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총독이 힐끔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이제 카운트는 8개.
앞으로 4개의 카운트가 남아 있었다.
저 카운트가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상황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한 총독.
그때였다.
쾅!
하고 대관람차 쪽에서 폭발음이 들린 것은.
"...대관람차가!"
총독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대관람차는 이 정도 폭발은 끄덕없다는 듯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겨우 한 번의 폭발에 안심할 수는 없는 일.
쾅! 쾅! 쾅!
첫 폭발음은 신호탄이었다는 듯,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얼마나 심하게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는지, 검고 흰 연기가 대관람차를 완전히 가려 버릴 정도.
"...맙소사."
총독은 아파오기 시작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 폭발 사이에서 대관람차가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지금까지 대관람차가 희망이라고 생각해 온 총독으로서는 좌절스러운 일이었다.
"...음?"
그러나 이내 총독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대관람차가 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대관람차가 다시 드러났다.
멀쩡한 상태로.
"...어떻게?"
대관람차는 여전히 가차월드의 중심에서 우뚝 서 있었다.
아무 변화도 없이.
아니, 변화는 있었다.
딸깍.
그런 소리가 들렸다.
총독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카운트를 바라보았다.
9/12.
또 하나의 카운트가 올라갔다.
올라간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한참 남아 있던 카운트 하나가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