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75화 (175/528)

〈 175화 〉 [174화]위기의 가차월드

* * *

가차월드의 출입구.

"지금 당장 모든 부대는 후퇴하라! 후퇴해 다음 방어선에서 집결...아악!"

"분대장님이 당했다! 내가 업고 갈 테니까 너희들은 빨리 다음 집결지로 이동해!"

황무지와 가차월드를 잇는 통로가 적들의 손에 넘어갔다.

좀비들이 몰려와 안드로이드들을 둘러싸고 물어뜯는다.

안드로이드의 특성상 감염은 되지 않지만, 내부에 있던 전깃줄과 내골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분대장이라고 불린 이가 그 좀비들 중 하나의 미간에 탄환을 박아넣고는 후퇴 명령을 내렸으나, 그녀를 노리고 날아온 저격을 맞고 손에서 권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후퇴. 후퇴. 끝없는 후퇴.

총독은 이를 악물었다.

가차랜드에서는 가치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

지금 쓰러진 안드로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완전히 죽는 대신 대파 판정을 받고 총독부의 수복실로 전이 되리라.

그런데도 총독은 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상대측의 지휘본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총독은 분노하는 것일까?

수복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럴 리가. 총독은 그 '도미닉 경' 카드의 초반본을 뽑은 전적이 있는 사람이다.

애정 가득 키운 안드로이드들이 허무하게 당해서? 어쩌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분노한 이유는... 전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완전히 대패했다는 사실이었다.

총독은 방금 전 있었던 적의 공세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

동이 슬슬 터오기 시작하는 황무지.

좀비 군단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잡은 채 사거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일제히 달려들 생각인가?"

총독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저 좁은 입구로 들어오는 건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가차월드의 출입구는 그다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에 수십 명 정도만 들어올 수 있었다.

야간의 어둠 속,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총독의 군세는 좀비들을 잘 막아 내지 않았던가.

하물며 점점 해가 떠오르며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한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공세같단 말이지..."

그래서일까? 총독은 지독한 오판을 하고 말았다.

눈앞의 적들이 바로 이전의 공세와 똑같이 오리라는 오판.

그래서 총독은 안타깝게도 좀비의 군세 사이에서 움직이는 몇몇 부대들을 보지 못했다.

가차월드의 높고 알록달록한 펜스, 혹은 방화벽이라고 불리는 곳에 바짝 붙은 부대들을.

해가 완전히 떠올라 햇빛이 총독의 시야를 잠시 가린 그 순간, 좀비의 군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언덕들에 설치된 포대에서 폭발물들이 날아오기 시작했고, 저격수들은 참호에서 머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좀비와 인간의 혼성 부대 몇 부대가 가차월드의 담을 넘었다.

가차월드의 담은 시스템의 보호받는 상태였기에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틀린 것이었다.

가차월드는 가차랜드의 초창기 컨텐츠였고, 그 당시의 보안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보안체계였으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보안체계는 적당한 수준의 실력자라면 얼마든지 뚫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시스템을 너무 맹신한 돈 카스텔로와 총독의 잘못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총독은 전방에서 오는 좀비들만 주시하고 있었다.

이는 안드로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총독의 뒤에 있던 지원부대에서 비명이 들리기 전까진.

"꺄악!"

총독이 뒤에서 들린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무슨­"

총독이 상황을 물었으나 곧 입을 다물었다.

후방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검과 총을 든 습격자들이 보급 텐트와 구호소를 불태우고 있었다.

좀비들은 집요하게 수복중인 안드로이드들을 노렸고, 간부로 보이는 이들은 그 자리에 깃발을 꽂았다.

순식간에 후방을 초토화시킨 좀비 군단이 몸을 돌려 출입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들 후퇴해! 후퇴해야 한다!"

총독이 다급하게 외쳤다.

"총독? 그게 무슨­"

가장 가까운 참호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기관총 사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자기 얼굴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린 좀비의 썩은 입 속이었다.

"...에?"

콱. 하고 기관총 사수 하나가 쓰러졌다.

"후퇴! 후퇴해!"

총독이 다급하게 전방을 향해 외쳤다.

지금 상황에서 우물쭈물하다간 양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세로 전멸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총독의 군세는 오랫동안 총독과 싸워온 베테랑들이었다.

총독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고참병들의 주도 하에 참호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후방으로 간다! 포위를 뚫고 2차... 아니, 3차 방어선 까지 후퇴해!"

총독이 땅에 굴러떨어진 기관단총을 들고 앞장서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총독을 중심으로 뭉쳐 방어진형을 구축한 총독의 친위대들이 길을 뚫었다.

출입구를 통해 더 많은 좀비들과 습격자들이 나타났다.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여기서 모두 전멸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미 좀비의 파도에 휩쓸려 고립된 부대도 이미 몇 부대나 있었다.

2차 방어선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모를 적들이 이미 2차 방어선을 점령하고 있었기에, 총독의 군세는 2차를 넘어 3차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총독이 이를 악물었다.

안일하게 생각한 자기 패배다. 그렇게 생각했다.

...

이것이 지금까지 총독의 군세가 겪은 일이었다.

"3차 방어선이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적들의 손에 넘어가진 않은 모양입니다!"

총독이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패배의 쓴맛에 입이 바짝 말라가던 총독이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만들어둔 3차 방어선은 출입구에서 제법 멀었으나, 대관람차로 향하는 큰길마다 거대한 초소와 방벽을 세워둔 상태였다.

총독은 쓸 일이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최대한 안전하게 가자고 생각한 과거의 총독이 자랑스러웠다.

"당장 3차 방어선에서 재집결한다. 그리고 격퇴가 아니라 시간을 최대한 끄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

총독이 힐끔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 구역의 놀이기구들은 모두 복구된 상태였다.

이 구역의 전력이 대관람차에 연결되며 1/12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 2/12이 되더니, 총독이 있는 지역 위에 퍼센테이지로 1%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총독은 주변의 안드로이드들을 적절한 위치로 배치하면서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마흔 둘. 마흔 셋. 마흔 넷.

마흔 다섯.

45까지 세자 또 한 번 올라가는 퍼센테이지.

2%를 가리키는 퍼센테이지를 보며 총독은 생각했다.

앞으로 약 12시간 정도 버티면 되는 건가.

총독이 완전히 태세를 재정비한 안드로이드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할 만할지도 모르겠다고.

아니, 할 만 해야 한다고.

...

"이게 무슨..."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돈 카스텔로는 당황하기보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어."

다시 서류를 들어 올린 돈 카스텔로가 방금 전보다 약 20% 빠른 속도로 서류를 처리했다.

20%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 이유는, 말 그대로 퍼센테이지가 20% 정도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내가 일하는 동안 호위를 좀 해 줘. 아무래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출입구가 뚫린 게 불안해."

"그럴필요 없다, 동생아."

그때였다.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돈 카스텔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더욱 탐욕스러운 얼굴을 한 자가 나타났다.

돈 카스텔로의 형, 돈 카르텔로였다.

"꽤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구나."

"...형님."

돈 카르텔로가 투실투실 살이 오른 불독과 같은 얼굴로 돈 카스텔로를 노려보았다.

돈 카스텔로도 지지 않고 돈 카르텔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손은 여전히 서류를 결재하는 도중이었다.

"우리 동생, 왜 이렇게 여위었는지 모르겠군."

돈 카르텔로가 불쌍하다는 듯 돈 카스텔로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넘기라고 할 때 넘겨줬으면 편했을 것 아니냐?"

"그건 내가 일궈낸 정당한 내 소유물입니다."

돈 카스텔로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돈 카르텔로를 바라보았다.

"하."

돈 카르텔로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곧 여기로 보스와 Z가 들이닥칠거다. 난 그 전에... 형 된 도리로서 너에게 항복을 권유하러 온 거고."

"항복이라니. 그런 건 쫄리는 사람들이나 제안하는 거라고 형님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야말로 팽팽한 분위기에서 불꽃이 튀고 있는 상황.

그때였다.

"그, 혹시 혼자 온 거야?"

도미니카 경이 돈 카르텔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 그런 셈이지. 난 사절로 온 거니까."

인원이 많으면 몰래 올 수가 없잖아. 라고 돈 카르텔로가 말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아니, 별 건 아니고."

돈 카르텔로의 물음에 도미니카 경이 멋쩍게 웃으며 하하 웃었다.

"무슨 생각으로 혼자 왔나 싶어서."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돈 카르텔로의 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돈 카르텔로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어째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돈 카르텔로는 자신을 공격한 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고 쓰러지는 돈 카르텔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근엄한 표정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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