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173화]위기의 가차월드
* * *
"거의 끝나가는구려."
도미닉 경이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완전히 방어선을 구축한 안드로이드들의 총알세례에 좀비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그저 소모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쪽도 마찬가지야."
도미니카 경이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가차월드를 바라보았다.
가차월드는 황무지에 위치해 있었고, 황무지의 밤은 꽤 추웠던 것이다.
"하지만 충전하는 시간이 있다고 했으니,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는 더 오래 걸리겠지."
현재 가차월드의 놀이기구는 75% 정도 복구된 상태.
조금만 더 있으면 대관람차까지 전력이 닿을 것이다.
이를 위해 돈 카스텔로가 비상금으로 숨겨둔 막대한 양의 가차석을 크레딧으로 환전하는 중이었고, 그만큼 복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소."
도미닉 경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좀비 군단의 공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
공세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왜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가지 않는 거요?"
도미닉 경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도미니카 경과 총독은 말이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갑자기 공세를 멈출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증원."
도미니카 경이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았다.
"지금의 인원으로 뚫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 아닐까?"
"아니면, 계획을 바꾼 것이 아닐까요?"
총독이 말했다.
"방금 전 도미닉 경에게 듣기로, 이 습격자들은 돈 카스텔로인가하는 사람을 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회해서 바로 목표를 노리는 거라면"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모두 그럴싸한 가정이었다.
"총독.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겠소?"
도미닉 경이 총독에게 물었다.
도미니카 경도 마찬가지로 총독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전장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선봉장 스타일이지, 머리를 쓰며 싸우는 지략가는 아니었던 탓이다.
총독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시선에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더니, 이내 간단한 작전을 하나 세웠다.
"일단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총독이 작전을 세우는 그 시각.
몰래 진지를 빠져나간 보스와 Z는 양산박의 인원들과 조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보상의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양산박이 개입해 달라?"
"그게 우리 제안의 요점이야."
보스가 IQ 150이 적한 모자를 쓴 여성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만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단 말이지."
누가 정보를 제대로 넘기지 않아서인가? 라고 이죽거리는 보스.
"하."
여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우린 아는 그대로 말했어. 너희의 무능을 우리에게 전가시키지 마."
"뭐, 좋아. 우리가 무능한 건 무능한 거니까."
보스는 이상할 정도로 자기 실수를 쉽게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모든 계획이 어긋났다는 것도 사실이지."
보스가 눈을 희번뜩 빛내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원하는 바가 뭔데?"
여자는 보스의 눈빛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보스는 수틀리면 혼자 죽을 생각이 없었다.
분명히 양산박과의 거래를 입증할 증거를 몇 개... 혹은 몇십 개는 가지고 있으리라.
물론 겨우 그 정도의 증거로 양산박이 큰 피해를 보지는 않겠지만... 양산박의 간부들은 그 대가를 여성에게 청구할 것이 틀림없었다.
"우린 계속 우리가 원하는 바를 말했어."
보스 대신 Z가 말을 이었다.
"양산박의 지원이 필요해. 그것도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지원이."
Z의 말에 보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여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병력은 못 보내. 저번에 간부 하나가 헛짓하는 바람에 병력이 거의 없어. 그렇다고 해서 불법 무기를 지원하자니 해킹 툴도 막혀 버렸고. 대신 이렇게 하자."
여성이 모자를 푹 눌러쓰며 둘을 노려보았다.
입은 웃고 있었으나, 모자의 챙 아래로 섬뜩할 정도로 살기가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
"우리가 가차월드의 방화벽을 뚫어 줄 테니, 너희가 공세를 다시 한번 펼치는 거야."
보스와 Z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양산박 측의 지원은 그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보였다.
"좋아."
보스가 시가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교섭 타결이로군."
보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사실, 보스는 양산박이 내건 제안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보스 스스로 자기는 양보할 줄 아는 신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양산박 측 여성 역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보스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여성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다시 좀비들이 몰려옵니다!"
출입구에 2중, 3중으로 방어선을 구축한 안드로이드들이 총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번이 마지막 공세일지도 모르겠군."
총독이 힐끔 대관람차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90% 가량 불이 들어온 놀이기구들.
대관람차의 예비 배터리들을 충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늦어도 3~4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좀비들이 걸어온다.
그러나 총독은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미 황무지에 내린 어둠은 새벽이 다가오면서 서서히 걷혀나가는 상태.
아직 어둡고 흐릿하기는 했으나, 맨눈으로 보고 대처할 수 있을 정도까지 시야가 확보된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좀비들의 공세가 어디로 오는지 모두 파악이 가능한 상황이었으며, 그 말은 좁은 진입로와 두터운 방어선이라는 메리트를 가진 총독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보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총독이 어깨에 걸친 코트를 여미며 말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혹시 모를 암살자의 침입을 대비해 돈 카스텔로에게 간 상태였다.
좀비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는지 출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놀랍게도 아슬아슬하게 사거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절묘한 거리였다.
"...한 번에 들이치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통하지 않을 텐데. 라고 총독이 중얼거렸다.
"저런 건 얼마가 오더라도 무섭지 않은걸."
핑크 머리에 제복을 입은 맹한 눈의 부관이 총독에게 말했다.
"...그래도 일단 경계를 강화해. 전방 제대로 주시하고."
그러나 어째서인지 총독은 불안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가차랜드의 고인물로서 단련된 감이 보낸 경고는 결코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불안함을 감지한 총독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경계를 강화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총독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돈 카스텔로가 있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왜 돌아온 거야? 출입구가 뚫리기라도 했어?"
돈 카스텔로가 퀭한 눈으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마침 황무지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 덕분에 출입구는 안전하오."
도미닉 경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황무지에서 만난 총독이라는 사람.
도미닉 경과 도미닉 경의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개척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
"하긴. 규모의 차이는 무시할 것이 못되지. 규모는 질이 아니라 양으로 승부하는 게 더 효과적이니까."
돈 카스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개개인으로 봤을 때엔 대여섯 명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패였으나, 그 규모가 백이 넘고, 천이 넘고, 만이 넘어가면 말이 달라졌다.
오히려 그 정도의 규모라면 도미닉 경 하나보다는 1성 짜리 딜러 100명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무심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지나갔으나, 도미니카 경은 분명하게 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차렸다.
"돈 카스텔로가...고개를 끄덕여?"
도미니카 경이 놀란 눈으로 돈 카스텔로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보이는 고된 노동의 흔적들.
돈 카스텔로는 원래 턱이 세 겹으로 겹쳐질 정도에 슬쩍 밀면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으나, 밤새 집중력을 유지하며 쉴 새 없이 복구 작업을 진행한 탓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살이 빠져 버린 상태였다.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도미닉 경도 돈 카스텔로를 바라보았다.
턱과 목이 구분되었고, 불독처럼 늘어졌던 볼살이 조금 통통한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허리를 좌우로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뱃살도 줄어든 상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놀란 눈으로 돈 카스텔로를 바라보자 돈 카스텔로는 당황하며 자기 모습을 살폈다.
"아, 어쩐지 당분이 땡기더라니."
돈 카스텔로가 자기 모습을 확인한 뒤 그렇게 투덜거렸다.
"어차피 며칠 뒤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신경 쓰지 마."
돈 카스텔로는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돈 카스텔로와 그의 가족들은 한 가지에 빠지면 식음을 전폐하고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일까? 효율을 위해서 평상시에 몸에 에너지를 비축해 두는 것이 일종의 가족 내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누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갑자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앞에 더 큰 충격을 줄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1차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2차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일부 부대가 고립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총독은 후방으로 이송되었으나, 가차월드의 출입구가 측에게 점령당했습니다.]
[가차월드에 좀비 군단이 퍼집니다.]
기존의 충격과 피로를 단숨에 날려 버릴 만큼 충격적인 메시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돈 카스텔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