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72화 (172/528)

〈 172화 〉 [171화]황무지와 가차월드

* * *

도미닉 경이 황무지의 총독과 만난 그때.

도미니카 경도 도미닉 경과 마찬가지로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과 달리 거미전차를 타고 있었기에 좀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으나, 정작 지금 도미니카 경은 날아오는 투사체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건 너무하잖아!"

도미니카 경이 마침 날아오던 폭발물을 방패로 쳐 내며 말했다.

조종석에 들어올 뻔했던 폭탄은 방패에 막혀 거미전차의 경사로를 따라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폭탄은 경사로의 끝에서 통하고 튀어 좀비들 사이로 들어가 폭발했다.

폭발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좀비들이 밀집해 있었기에 대여섯 정도의 좀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저걸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도미니카 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저 멀리 있는 폭발물 투척 포대를 보았다.

도미니카 경이 있는 곳은 가차랜드가 있는 방향의 출입구였다.

추격자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먼저 진을 친 곳이기도 했다.

반대편 입구는 너무 멀어 좀비들만 몰려들었으나, 이곳은 추격자들의 진지가 있는 만큼 더 다양하고 귀찮은 방법으로 도미니카 경을 괴롭게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저 폭발물 투척 포대였다.

짜증이 날 정도로 구식의 고정형 투석기에 시한폭탄을 실어 날려 보내는, 과거와 현재의 엉망진창인 조화.

놀랍게도 가차월드의 벽을 넘어가려는 폭발물들은 다시 퉁겨져나와 좀비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나, 다시금 그 자리를 새로운 좀비들이 메웠다.

좀비가 말 그대로 고기 방패로서 전진하고, 폭발물 포대가 도미니카 경에게 위협을 가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미니카 경은 거미전차를 옆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도미니카 경의 옆에서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귀가 찢어질 듯한... 아니,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하게도, 이는 도미니카 경을 향한 저격이었다.

폭발물 포대가 있는 언덕을 포함해, 조금이라도 높은 언덕이 있으면 어김없이 저격수들이 배치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출입구의 틈새로 도미니카 경이 보이는 자리마다 저격수가 있었다.

대전차 임무가 가능한 대구경 저격총들을 든 저격수들은 틈이 생기면 바로 출입구의 좁은 틈을 통해 도미니카 경을 저격했다.

마땅히 저격수에 대처할 방도가 없는 도미니카 경은 그저 그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 뿐.

"...빨리 끝냈으면 좋겠는데."

도미니카 경이 괜히 짜증이 난다는 듯 출입구를 향해 몰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머스킷을 쏘았다.

범위 내의 좀비들이 단체로 스턴에 걸려 뒤에서 오는 좀비들을 막아서는 임시 벽이 되었다.

스턴의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좀비들이 출입구를 통해 들어올 때마다 거미전차의 커다란 다리들이 개미를 밟듯 좀비들을 환영했다.

도미니카 경은 거미 전차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하며 다시금 날아드는 폭발물을 방패로 막아 냈다.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팔에 저격총의 관통탄환이 스쳐 지나갔다.

...

"우리도 도미닉 경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총독이 말했다.

"이래 봬도 이 황무지에선 꽤 알아주는 개척자니,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총독의 말에 그의 뒤로 안드로이드들이 오와 열을 맞춰 줄을 섰다.

대부분 어떤 종류인지 알지도 못하는 총기류를 하나씩 든 안드로이드였으나, 그 사이로 칵테일 셰이커를 든 바텐더나 방패를 든 도미닉 경처럼 특이한 안드로이드들도 있었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수백.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좀비의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방금 전 이 소수의 인원이 해낸 결과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지역은 여러분의 도움으로 거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요. 아마 조금씩 더 밀려오는 좀비들만 상대하면 되겠지."

"그렇겠죠. 아, 방금 전 저희 부관이 좀비 유인 신호기를 제거했다고 합니다."

총독이 희소식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여긴 해결되었다고 생각해도 좋겠군. 그렇다면 반대편이 걱정이오."

"반대편이요?"

총독이 눈을 빛냈다.

무언가 건수를 잡았다는 느낌의 눈빛.

"그렇소. 도미니카 경이 그곳을 지키고 있지."

"도미니카 경 왔다아­!"

총독이 지금의 외관과 어울리지 않게 기묘한 자세로 기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길래 와보길 잘했어. 이렇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원본을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총독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사실 총독은 도미닉 경의 팬 중 하나였다.

정확하게는 도감을 채우기 위해, 겸사겸사 좋은 성능을 가졌기에 도미닉 경의 카드를 뽑으려 했던 총독.

그러나 총독은 있는 자원 없는 자원 모두 긁어모아 도미닉 경을 뽑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최대한 써먹어야겠다며 온갖 상황에 도미닉 경을 써본 총독.

그러나 놀랍게도 도미닉 경은 순찰, 레이드, 영역 지원, 탱커의 본분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요리와 빨래, 그리고 상담과 타 부대 지원까지 못 하는 것이 없는 만능 캐릭터였다.

이것도 잘해? 그럼 이건? 이것도 잘한다고? 그건?

이런 상태가 지속되며 서서히 스며들듯 호감도가 쭉쭉 오른 총독.

그리고 이런 총독의 마음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있었으니...

얼마 전 클랜장에게 도미닉 경을 빌려주고받은 돈으로 카드 팩 교환소를 찾은 총독.

그리고 그는 그 압도적인 자본을 바탕으로... 저번에 뽑지 못했던 도미니카 경 뿐만 아니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파생 카드들도 모두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카드들도 이른바 '제 값'을 하는 카드들이었고, 총독은 그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 대한 호감을 더더욱 키워나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선순환으로 이루어진 팬심!

총독은 도미닉 경 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경의 팬이기도 했기에,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에 대해 언급하자 급하게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과연 지원을 갈 수 있을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가 문제야."

"관측 결과, 여기서 반대쪽 출입구까지는 무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해, 총독."

총독의 뒤에 있던 안드로이드 중 두 명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총독이 그 말을 듣고 가차월드 내부를 살폈다.

이 지역에서는 이제 절반 이상의 놀이기구들이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가차월드 전체를 살펴보면 고작 0.03% 밖에 밝아지지 않은 상태.

그만큼 아직 어둠이 가득한 가차월드였기에 반대편 출입구로 유추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빛이 가득 새어 나오는지역이 또 하나 있었으니까.

총독은 안드로이드의 말대로 여기서 저기까지 가기엔 꽤 어렵겠다는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도미닉 경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렇군."

도미닉 경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부탁을 좀 하고 싶소. 여기를 지켜 주실 수 있겠소?"

"그럼 도미닉 경은요?"

"나는 도미니카 경을 지원하러 갈 거요."

"그, 꽤 멀지 않습니까?"

총독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두운데다가 돌아가려면 하루는 걸릴겁니다."

"왜 돌아간다고 생각하시오?"

총독이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도미닉 경의 눈을 마주 보았다.

도미닉 경은 다 계획이 있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도미니카 경이 지키고 있는 출입구.

"이거... 이거 너무 위험한데?"

도미니카 경은 슬슬 내구도가 위험한 상황까지 몰린 거미 전차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 한두 번 폭탄에 피격당하면 내구도가 완전히 깎여 기동이 정지되리라.

그렇게 생각한 도미니카 경이 본능적으로 출입구를 향해 거미전차를 움직였다.

마침 날아오던 두 개의 폭발물이 거미전차의 근처에서 정확한 타이밍으로 폭발했다.

[거미 전차 대파! 복귀 후 수복을 진행하십시오!]

라는 문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거미 전차.

방금 전까지도 맹렬하게 증기를 뿜어내며 그 맹위를 떨치던 거미 전차의 최후였다.

그러나 거미 전차의 최후가 허망하지는 않았다.

알다시피 거미 전차는 높이만 해도 몇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고, 그 덩치로 출입구를 틀어막은 덕분에 잠깐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도미니카 경이 고철더미가 된 거미 전차에서 뛰어내리며 방패와 검을 들었다.

좁은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좀비 하나를 검으로 썰어 버린 후 방패로 밀쳐 내 틈새를 막아 버린 도미니카 경.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기기는 했는데, 이제 어쩐다..."

그렇다. 도미니카 경은 본능적으로 움직여 시간을 버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이제 이후가 문제였다.

도미니카 경이 상대에 비해서 더 나은 상태였던 건 좁은 출입구와 그 출입구를 모두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거미 전차의 존재였다.

이제 그중 하나를 잃었으니, 상황이 점점 더 도미니카 경에게 불리해질 거라는 건 당연한 일.

"...그래도 일단 버틸 만큼은 버텼어."

도미니카 경이 가차월드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제 절반 정도 불이 켜진 놀이기구들.

저 멀리 105도 각도까지 치솟아 오르는 커다란 배... 바이킹이라고 불리는 놀이기구가 보였다.

하늘 높이 솟구치며 보는 사람마저 아찔하게 만드는 배.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격? 아니다.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공기를 밀어내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윙윙대는 소리와 함께 점점 도미니카 경의 귀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이었다.

도미니카 경이 댐의 구멍을 막듯, 방패로 틈새를 막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도미니카 경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곳엔, 어두운 밤하늘에 동화되어 가차월드의 불빛에 그 실루엣만 간신히 보이는 비행선이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