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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71화 (171/528)

〈 171화 〉 [170화]황무지와 가차월드

* * *

도미닉 경은 가차월드와 황무지를 잇는 다리의 한가운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가차월드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의 불빛이 출입구로 새어 나오며 도미닉 경의 등 뒤를 밝혔다.

얼마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밝은지 도미닉 경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하지만 여러분은 유추하셨을 테지만...

도미닉 경은 웃고 있었다.

도미닉 경이 다리의 중간에 도착하자, 마침 좀비들의 선두가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어둠 속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을 잠시 노려보았다.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몰려오는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미닉 경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온 좀비 하나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는 좀비.

"...이게 도대체­"

도미닉 경은 마치 방패로 솜을 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도미닉 경은 좀비에 물렸을 때보다도 더 당황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일단 두어 마리의 좀비를 다시 한번 방패로 쳐 내고 칼로 벴다.

그러자 마치 두부처럼 손쉽게 으스러지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끊어지는 좀비들.

"...이 정도면 할 만 하군."

도미닉 경은 여전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엔 수없이 많은 눈동자들이 흉흉하게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 눈빛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기수]가 발동되면서 하늘에서 깃발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다리 한가운데, 즉 도미닉 경과 그리 머지 않은 곳에 떨어진 깃발은 좀비 하나를 그대로 꿰뚫어 버리고 땅에 고정되었다.

깃발 자체는 시스템조차 따로 적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피해량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피해량으로도 손쉽게 쓰러질 정도로 좀비들은 나약한 상태.

도미닉 경의 등 뒤, 가차월드에서 또 하나의 조명이 켜졌다.

회전 목마 근처, 출입문을 향해 입을 벌린 광대 모습의 귀신의 집.

어두운 밤, 어설프게 설치된 조명으로 인해 얼굴에 섬뜩한 그늘이 생긴 광대의 모습은 마치 몰려오는 좀비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비웃는 것 같았다.

가차월드에 어서 오라고.

...

도미닉 경이 이 나약한 좀비 군단과 싸우는 동안 도미닉 경의 몸속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이 좀비에게 물린 오른팔이 문제였다.

옷을 찢어 피가 통하지 않게끔 긴급 조치하기는 했으나 겨우 그 정도로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좀비가 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몸 어딘가에서 이상 징후라도 나타나야 정상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이상할 정도로 멀쩡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는 슬라임 덕분이었다.

도미닉 경의 휴대폰 속 S.P.Y앱에 사는 바로 그 슬라임.

도미닉 경의 휴대폰 안에 사는 슬라임은 원래 차원과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개체였다.

그러나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차원으로 넘어옴에 따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사이에 있던 슬라임도 완전히 이 차원의 객체로 인정받은 것이다.

덕분에 미약하게나마 어플리케이션을 넘어 도미닉 경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슬라임.

슬라임은 도미닉 경의 위험을 느끼고 도미닉 경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몸에 이상한 무언가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슬라임은 미약한 지능을 가졌으나, 본능적으로 도미닉 경의 몸에 퍼지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알다시피, 슬라임은 균열이나 뒤틀림을 복구하는 능력이 있었다.

재생력.

슬라임은 그 재생력을 이용해 도미닉 경의 상태를 조금씩 회복시켰다.

재밌게도 슬라임의 재생력과 도미닉 경의 저항력은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 능력과 거의 비슷했으며, 이로 인해 팽팽한 균형이 완성되었다.

좀비에게 한 번이라도 더 물리면 이 균형도 깨지겠지만, 현재 도미닉 경은 오른팔은 좀비, 그 외의 부위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특이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미닉 경은 그저 검을 휘두르고 방패를 밀고 당길 뿐이었다.

"...조금 버거워지는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이 중얼거렸다.

이미 수백 마리의 좀비를 처리한 도미닉 경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좀비들이 공격 한 번에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수백 마리의 좀비로 쌓은 시체 벽 위에 올라간 도미닉 경이 기어오르는 좀비 하나를 칼로 찌르고 방패로 밀쳐 냈다.

두 번의 공격을 맞고 나서야 쓰러지며 좀비의 물결 사이로 떨어지는 좀비.

도미닉 경은 떨어져 나간 좀비를 확인할 틈도 없이 다른 좀비를 쳐 냈다.

또다시 수십 마리의 좀비를 쳐 내자 이젠 3대가 되었다.

그 이후 또 수십 마리를 쳐 내자 4대를 때려야 했다.

도미닉 경이 딜러였더라면 아직도 좀비를 한 방에 죽였을 수 있겠지만, 도미닉 경의 공격력이 너무나도 낮아서 일어난 상황.

"...이거 시간 내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도미닉 경이 흘끗 가차월드를 살펴보았다.

도미닉 경이 맡은 구역에서는 아직 대관람차에 전력조차 연결하지 못했는지, 25% 정도의 공간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나머지 75%를 위해 더 오랫동안 버텨야 하는 상황.

도미닉 경이 다시 황무지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고작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여전히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가득 포착되었다.

얼마나 많은지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적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때였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밝은 불빛이 도미닉 경의 하나 남은 눈을 강타했다.

도미닉 경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차단된 상태가 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주변의 공격에 취약해진 절체절명의 상황.

부르릉­

하는 소리가 더 가까이서 들렸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주변이 잠잠해졌다.

"...갑자기 황무지에 불빛이 보여서 와봤더니­"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

마침 도미닉 경은 시야가 점점 돌아오고 있었기에 흐릿하게나마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가시가 잔뜩 박힌 장갑과 쇠사슬을 엮어 만든 목걸이, 파란 두건과 짙은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남자.

"혹시 도미닉 경 아니십니까?"

할리 데이비슨 위에서 상하쌍대형 산탄총을 어깨에 걸친, 북슬북슬한 털과 근육 덕분에 마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자가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그렇소만."

도미닉 경은 주변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 다리를 가득 메웠던 좀비들은 이미 잘게 갈려진 파편이 되어 땅에 흩뿌려져 있었고, 저 멀리 붉은 조명탄이 하늘을 수놓으며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흩뿌려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명탄 아래에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좀비들이 드러났는데, 무기질적인 느낌의 사람들이 총을 들고 좀비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래.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 혹은 사냥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았다.

이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사냥을 멍하게 바라보던 도미닉 경.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머리에 삼색의 깃털을 꼽고, 안대를 꼈으며 방패를 들고 전방을 향해 달려가는 이.

도미닉 경은 그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바로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다!"

도미닉 경 자신이었으니까.

...

"역시나. 도미닉 경이었군요."

마초적인 남자가 빛날 정도로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을 총독이라고 소개했는데, 본 모습은 따로 있고 지금의 모습은 컨셉이라고 말했다.

"황무지에서 불빛이 보여 순찰을 나와봤는데, 이렇게 도미닉 경이 나올 줄이야..."

"도미닉 경이... 둘?"

총독의 옆에 있던 맹한 눈매의 부관이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쳐다보았다.

정확하게는 총독의 뒤에 사열된 도미닉 경과 진짜 도미닉 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다! 행복하지!"

도미닉 경이 총독의 뒤에 있는 도미닉 경을 유심히 보았다.

총독의 뒤에 있는 도미닉 경은 얼핏 보면 진짜 도미닉 경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자세히 보면 몇몇 군데에서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가짜 도미닉 경은 굉장히 어설픈 어휘만을 구사했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나 '행복함' 정도만 넣어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짜 도미닉 경과 다르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존재했다.

"이게 그... 안드로이드인가하는 거요?"

"뭐, 그렇긴 합니다."

총독이 프로레슬러처럼 쇼맨십이 넘치는 자세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개척자겠구려."

"그것도 맞네요."

총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끼려던 총독이 장갑에 박힌 가시에 찔려 움찔했으나, 상남자스럽게 참아내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총독이 힐끔 눈을 돌려 가차월드를 보았다.

"보아하니 유원지... 같아 보이는데."

"우린 대관람차를 움직여야 하오. 그렇게 부탁받았지."

"대관람차?"

총독이 고개를 들어 가차월드의 중앙에 있는,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과연. 한 구역의 모든 기구를 활성화 시켜야 대관람차를 향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인가.

총독은 눈썰미가 좋은 편이었기에 그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좀비들이 여기를 습격한 거요. 방심하다가 한 번 물리기까지 했소."

도미닉 경이 천을 꽉 묶어 검게 변한쪽 팔을 보여 주었다.

여전히 바이러스에 감염된 팔은 기괴하게 뒤틀리며 맥동하고 있었다.

총독이 도미닉 경의 팔을 보며 기겁했다.

아무리 탱커라지만, 물리면 몇 분 이내로 좀비가 되어 버리는 바이러스에 저렇게나 저항할 수 있다는 말이야? 라고 생각하며.

"그... 괜찮습니까?"

총독이 보기만 해도 고통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아!"

총독의 말에 도미닉 경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 [탱커] 특성이 아니라 [라이더] 특성인 걸 깜빡했소."

그 말에 총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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