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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70화 (170/528)

〈 170화 〉 [169화]시뮬레이션

* * *

"이건 또 새롭군."

도미닉 경은 광장을 걸으며 이 새로운 경험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이끼와 녹조로 가득했던 분수대가 눈부시도록 하얀 대리석 분수대로 바뀌고, 덜컹덜컹 불안하던 목제 롤러코스터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교체된다.

찌그러진 채 방치되었던 쓰레기통이 사라지고 최신형 쓰레기통이 그 자리를 메운다.

여기저기 엉망이었던 길도 반듯하게 정비된다.

도미닉 경은 비행선 위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눈 깜박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바꿔나가는 가차월드의 모습이 얼마나 눈부신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미닉 경이 탄 비행선이 공중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하강을 시작하며 주차를 끝낸다.

도미닉 경이 비행선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출입문이었다.

황무지와 가차월드의 사이에 있는 출입문.

물론, 도미닉 경이 도착했던 그 출입문은 아니었다.

돈 카스텔로의 말에 의하면, 가차월드는 거의 가차랜드에 버금갈 정도로 커다란 영역을 자랑했다.

그만큼 가차월드에는 출입구가 여러 곳에 있었고, 여기가 바로 그중 하나인 것이다.

처음 도착했던 곳에서 출발했을 때는 아직 해가 떠 있던 상황이었으나, 이제는 황무지에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 상황.

첫 출입구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출입문임에도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가차월드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거대한 지 알 수 있으리라.

"좋아."

도미닉 경이 황무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여기를 막으면 된다는 말이지."

도미닉 경이 돈 카스텔로의 부탁을 떠올렸다.

...

'대관람차를 움직이기 위해선, 대관람차의 배터리들을 모두 충전시켜야 해.'

'왜 배터리냐고? 그야, 대관람차는 원래 가차월드의 모든 구역에서 전력을 공급받아야 움직일 수 있거든.'

'혹시라도 한 구역에서 이상이 생겼을 때 하루 정도 긴급하게 쓸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방법이지.'

'현재 내가 급하게 끌어올 수 있는 자본으로는 2개 구역이 한계야. 반대로 말하면, 2개 구역으로 수천 개의 구역만큼의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소리지.'

'배터리들을 충전해야, 대관람차를 움직일 수 있어.'

'하지만 분명히 습격자들이 방해하러 올 거야.'

'그때야말로, 너희들이 필요한 상황이지.'

'친구들, 그들의 습격을 막아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구역들은 각자 분리되어 있어서 출입구가 아니면 들어오지 못해. 이건 가차월드의 기본 룰이야.'

'...아직 제대로 실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입구만 막으면 된다는 소리지.'

'마침 2개 구역이니, 한 명씩 맡아줘. 부탁해.'

...

돈 카스텔로의 말을 떠올린 도미닉 경이 다시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이쪽의 출입문은 상당히 특이해서, 마치 도개교처럼 출입문과 황무지 사이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솔직히 여기로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도미닉 경이 검과 방패를 꺼내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지."

도미닉 경은 점점 어두워지는 황무지를 훑어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황무지는 순식간에 어두워져 이제 가차월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닿는 거리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이는 도미닉 경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도미닉 경은 저 멀리, 황무지의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

가차월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들을.

...

도미니카 경은 출입구에 도착했다.

물론 도미닉 경이 간 출입구가 아니라 원래 그들이 들어왔던 출입구였다.

"여기를 지키면 된다는 말이지."

도미니카 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전력 생산량을 알려주는 듯 점점 밝아지는 불빛들.

돈 카스텔로가 있는 힘껏 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도미니카 경이 다시 입구 너머를 바라보았다.

밝은 빛에 익숙해진 바람에 어두운 곳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눈에 빛의 잔상이 남아 시야가 엉망이었다.

너무 어두워져 한 치 앞도 분별할 수 없는 황무지의 밤.

그나마 가차월드의 빛이 새어 나오는 부분은 충분히 시야가 밝혀졌으나, 그나마도 정말 좁은 부분만 보였다.

"이걸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도미니카 경이 자기가 타고 있는 거미전차를 괜히 한 대 툭 쳤다.

거미전차의 전면부에는 커다란 조명들이 달려 있었는데, 주변을 전부 밝히지는 못해도 전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시야가 확보되었다.

게다가 입구를 거의 막아 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거미전차의 충돌크기로 인해 정말 든든한 상황.

도미니카 경은 괜히 허리춤에 찬 머스킷을 매만졌다.

묘한 기대감에 차 있는 상태로.

...

완전히 어둠에 내려앉은 황무지.

그러나 보스와 Z는 목표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어두운 황무지에서 유일하게 환하게 빛나고 있는 곳.

가차월드는 이 어둠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었다.

"그래서..."

보스가 Z에게 물었다.

"가능성은?"

"글쎄. 일단 1차는 시험해 봐야 알 것 같은데."

Z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새 와이셔츠 위에 방탄복을 입고 야구모자에 헤드셋을 낀 채 전방을 주시하던 Z.

그런 Z가 황무지의 어둠과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나지막이 말했다.

"시작했군."

그 말과 동시에, 황무지의 어둠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둠은 그대로였다.

어둠 속에서, 말도 안 되게 많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

"응?"

도미니카 경이 전방을 예의주시하다가 문득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미전차를 살짝 움직여 주변을 살피는 도미니카 경.

"크르릉..."

그때였다.

뜻밖에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낮고 탁한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그리고 벽을 따라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

도미니카 경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라 매만지던 머스킷을 겨누고 조준도 없이 발사했다.

특수 기술 [충격과 공포]의 효과가 터지며 스턴 상태에 빠진 무언가.

무언가가 움직임을 멈추자, 도미니카 경은 그제야 습격한 것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맙소사. 신이시여."

도미니카 경이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신을 찾았다.

그만큼 습격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르륵..."

창백한 피부 곳곳에 검게 썩어가는 멍과 얼룩들.

총알이 여기저기 박혀 있음에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뻣뻣한 몸.

탁하게 죽은 눈과 살아 있는 것이 용한 상처들.

도미니카 경은 이 불청객의 정체를 깨달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페럴란트에서 마족들과 싸울 때, 지겹도록 본 것 중 하나였으니까.

도미니카 경이 거미전차를 조종해 커다란 앞다리로 그 무언가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밟기 시작했다.

그들을 완전히 죽이는 방법은 불태우거나, 혹은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끔 뭉개버리는 것이었다.

여러분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이 어둠 속에서 습격한 불청객의 정체는 바로, 좀비였다.

도미니카 경은 슬쩍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데이터화 되어 사라지는 좀비를 보며 안도했다.

"...갑자기 좀비가 나타나다니."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둠이 깔린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거미전차의 조명이 비추고 있는 곳.

그곳을 바라본 도미니카 경이 한숨을 내뱉었다.

"돈 카스텔로의 걱정이 옳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그곳엔, 더 많은 불청객들이 엉망인 몸을 질질 끌며 가차월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아니, 그 보다도 더 많은 수의 좀비들이.

...

도미닉 경이라고 해서 습격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여기서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망했군."

도미닉 경은 팔뚝에선명하게 새겨진 이빨 자국을 보며 말했다.

그런 그의 옆에는 역시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시체 하나가 있었다.

방금 전, 도미닉 경은 어둠 속에서 습격을 받았다.

도미니카 경과 달리 가차월드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만 의존해야 했기에 더더욱 시야가 좁은 상황.

그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좀비 하나를, 도미닉 경은 대처하지 못했다.

도미닉 경이 물린 자국에서 파란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점점 초록빛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변이를 늦춰 보고자 옷을 찢어 상처 윗부분을 꽉 졸라 맨 도미닉 경.

피가 통하지 않아 창백해졌다가 붉게 변한 팔에 초록색으로 변한 핏줄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르릉...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어둠이 일렁거리듯 몰려온 좀비들이 마침내 가차월드의 불빛에 그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돈 카스텔로에게 이 입구를 막아달라고 부탁받은 상황.

마지막 한순간까지 그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황무지와 가차월드 사이에 존재하는 다리로 걸어 나가, 좀비들을 상대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옆으로, 어째서인지 회전목마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음악과 조명과 함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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