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168화]가차월드
* * *
돈 카스텔로가 열심히 간판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인트 칠은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무작위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정상적으로 나옵니다.]
"아, 좀!"
돈 카스텔로는 손에 든 붓을 집어던지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다시 페인트 칠을 시작했다.
"뭘 하는 중이오, 돈 카스텔로?"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
돈 카스텔로가 고개를 돌려... 아니, 온몸을 돌려 아래를 쳐다보았다.
고개만 돌리기에는 돈 카스텔로의 목이 너무 굵었던 탓이다.
그곳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아, 내 친구 도미닉 경! 그리고... 도미니카 경!"
돈 카스텔로가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지역에 대한 복구를 실행하던 참일세!"
그렇게 외친 돈 카스텔로는 다시 붓을 들고 간판을 칠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하더니, 왜 여기를 복구하는 거요?"
"형님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거든."
"...?"
"아. 그렇지. 이젠 모두 알려 줘도 되겠지."
돈 카스텔로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나와 형님이 서로 갈라져 싸우게 생겼네."
"형님은 탐욕스러워서 내 것마저 노리기 시작했거든."
"심지어 외부의 인원까지 끌어들인 것을 보면, 계획된 일이 틀림없어."
"하지만... 가족 간의 정이 그렇게 쉽게 떨어질 리가 없잖은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어보는 거야."
돈 카스텔로가 다시 간판을 모두 칠했다.
[무작위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차월드 입구가 복구되었습니다.]
[가차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오래된 옛 데이터로 말이지."
하필이면 이게 가장 마지막에 고쳐질게 뭐람. 정말 운이 없군. 하고 말한 돈 카스텔로가 고개를 들어 가차월드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고쳐진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 쿵짝짝하며 서커스에 어울릴 법한 무곡이 흘러나온다.
아직은 조금 낡은 상태인 건물과 천막들 사이로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기계들에 달려 있던 조명들까지 켜지며 가차월드는 화려하게 부활을 알렸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입구 너머로 마치 자기들을 부르는 듯한 그 음악과 불빛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와. 가차월드에."
돈 카스텔로가 씨익 웃으며 환영의 말을 전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돈 카스텔로의 안내로 가차월드 내부를 걷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과 즐거운 음악, 그리고 여기저기 눈길을 끄는 장식물과 기계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 화려한 장소에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여기는 대체 뭘 하던 곳이오?"
"가차랜드의 옛 유산이지."
돈 카스텔로가 웃었다.
"가차랜드는 알다시피 이런저런 실험적인 시도가 자주 있는 편이야. 하지만 그 목적만큼은 명확해. 재밌을 것."
"그리고 여기가 바로..."
돈 카스텔로가 이 화려한 곳에서 가장 허름하고 엉망인 건물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한 사무실이 있었다.
"가차랜드에서 한 때 가장 즐거움이 가득했던 곳, 가차월드고."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곳♬ 가차월드♪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돈 카스텔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엉망진창인 리듬을 듣고도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노래가 은근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해되질 않네."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도대체 왜 그런 곳이 이런 폐허가 된 거야?"
"좋은 질문이야, 친구."
돈 카스텔로가 사무실 의자 위의 먼지를 대충 털어낸 뒤 그 자리에 앉았다.
"가차랜드의 생태? 분위기? 그런 것 때문이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말없이 돈 카스텔로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물티슈를 꺼내 책상을 대충 닦은 돈 카스텔로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가차랜드는 유흥거리로 가득한 곳이야. 놀이기구가 주는 즐거움? 가챠를 돌리는 즐거움에 비할 수 없지. 짜릿함? 레이드와 전쟁, 결투, 심지어 인생을 건 캐삭빵... 아, 이건 이제 불법이지. 아무튼, 그런 것들이 가득한데 왜 놀이기구를 타야하지?"
물론 이건 가차랜드 시민 한정이야. 다른 차원은 모르겠고. 라고 사족을 덧붙인 돈 카스텔로.
"좋소. 이 장소에 대한 건 이해했소. 그런데 왜 하필 여기인 거요?"
돈 카스텔로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그걸 알려면 우선, 몇 가지를 알아야 해."
돈 카스텔로가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잠깐 말을 해도 괜찮을지 고민하던 돈 카스텔로가 마침내 결심을 했는지 말을 시작했다.
"우선 여기를 정한 이유를 말하기 전에, 우리 형님에 대해서 말해야겠군."
"우리 형님은 무능하고 탐욕스럽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명석하고... 천재는 아니었지만 수재 정도는 되는 사람."
"그런 형이 탐욕스럽게 변한 건... 바로 이 가차월드 때문이었어."
돈 카스텔로는 머뭇거렸으나, 이내 점점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가차월드는 우리 형제에게 있어서 참 의미 깊은 곳이야."
돈 카스텔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가 가득한 커튼을 걷었다.
얼룩이 가득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불빛들.
그 화려한 놀이기구들을 자세히 보면 낡고 녹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얼룩이 가득한 흐릿한 창문을 통해서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형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릴 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여기 놀러왔지."
"형님은 대관람차를 좋아했어. 나는 회전목마를 좋아했고."
영원히 돌아가는 대관람차와 회전목마처럼 가차월드도 영원할 줄 알았지.
라는 말을 애써 삼킨 돈 카스텔로.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은 돈 카스텔로가 말을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차월드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 갑자기 말이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헛웃음을 짓는 돈 카스텔로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가진 슬픔이 표정에서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별 이유는 없었어. 그냥... 가치가 사라진 거지. 알다시피 가차랜드는 가치가 전부거든. 다른 컨텐츠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 가차월드에 갈 필요가 없어진 거야."
"우리 형제에게 있어서 몹시 나쁜 소식이었지. 아주, 몹시 나쁜 소식."
"형님은 가차월드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아버지를 졸라 가차월드 부지를 샀어. 그리고 전문 경영인을 둬서 다시 가차월드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했지."
"...그 시도는 무려 스물다섯 번이나 실패했어."
돈 카스텔로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로 형은...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했고, 무능해졌지. 어쩌면 미쳐 버린 걸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가차월드를 부활시키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습관은 남아서 탐욕적으로 변한 거고."
"그래서."
도미니카 경이 돈 카스텔로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네가 여기에 온 것과, 네 형님이 너를 공격하는 것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지금 말하려고 했어."
돈 카스텔로가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며 공기와 함께 연기를 들이마셨다.
"지금부터 우리는, 저 대관람차를 부활시킬거야, 친구들."
돈 카스텔로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형님은 대관람차를 좋아했지. 만일 이 가차랜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대관람차까지 가동되는 것을 본다면 형님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지도 몰라."
"왜 하필 지금이오?"
도미닉 경이 물었다.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않았으면서, 왜 지금 시도해 보는 거요?"
"그야..."
돈 카스텔로가 멋쩍은 듯 말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돈보다 형님이 우선이니 이렇게 시도하는 거고."
실제로 돈 카스텔로의 형, 돈 카르텔로는 이 유원지를 복구하기 위해 과장을 보태어 가차랜드의 반의반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쓸어 담았다.
그리고 결과는 알다시피... 모두 실패로 끝났고.
돈 카스텔로가 말한 돈 문제는 충분한 사유가 되는 것이다.
돈 카스텔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하지만 우린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소."
"그러니까. 도와달라곤 했지만, 이런 건 건축가나 세리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야?"
"아, 그건 걱정할 것 없어, 친구들."
돈 카스텔로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걱정을 일축했다.
"친구들이 할 일은 가차월드의 재건이 아니야."
돈 카스텔로의 책상 위에는 어느새 서류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돈 카스텔로가 말했다.
"둘은 따로 할 일이 있어."
...
"저건..."
보스와 Z는 돈 카스텔로가 도망친 황무지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아니, 폐허였던 것을 바라보았다.
느릿한 템포임에도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3박자의 음악에 맞춰 점멸하는 화려한 조명들.
빨갛고 노랗고 파란색으로 채워진, 보기만 해도 흥미가 마구 샘솟는 천막과 풍선들.
점점 어두워지는 황무지의 하늘과 대조되며 이 화려한 유원지는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가차월드."
보스와 Z와 함께 얼떨결에 같이 움직인 돈 카르텔로는 저 화려한 조명과 음악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돈 카르텔로가 이를 악물었다.
감히, 추억을 방패로 쓰려고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 돈 카르텔로.
그런 돈 카르텔로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보스와 Z는 저 유원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있는 애들로 공격하면 되지 않나?"
"그건 불가능해. 그냥 폐허라면 모를까, 지금은 가차월드로 복구된 상태잖아. 분명 그때의 설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거라고."
"그럼 지금 공격할 수 없는 상태라는 말이지? ...머리 좀 쓴 모양이군."
보스가 가차월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Z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한 말을 내뱉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공격 못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보스가 Z를 바라보았다.
Z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가차월드를 바라보았다.
그건 확신에 가득 찬 웃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