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66화 (166/528)

〈 166화 〉 [165화]카르텔

* * *

"...이해할 수 없군. 도대체 우리에게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그야... 우리가 지금까지 깎아 먹은 '명성'을 되찾으려고 하는 거지."

어둡고 밀폐된 좁은 공간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그리고 그 테이블을 기준으로 양쪽에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하. 양산박이 더 떨어질 명성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니까 말이야."

양복을 입은 사람이 둘.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걸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야."

머리에 'IQ 150 이상'이라고 적힌 긴 머리의 여성이 하나.

"뭐, 당신들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여성이 빙글빙글 웃으며 손을 까닥거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손가락은, 이내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뚝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한 여성.

"...빨리 대답이나 해. 내가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아서 말이야."

한숨을 내쉰 여성이 어디선가 젠가와 고블린 모형들을 꺼냈다.

그리고 삐죽삐죽한 머리를 가진 남자의 피규어를 마지막으로 꺼내 들었다.

"이 탑이 완성될 때까지 시간을 주지."

그리고 젠가로 탑을 쌓기 시작하는 여성.

"하."

반대편에 있던 양복들 중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흰 머리가 듬성듬성 난 댄디한 사람이었는데, 시종일관 여유가 넘쳐흘렀다.

"우리 아류로 흥하는 녀석들이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댄디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깊게 그 연기를 들이쉬었다.

"어떤가, Z?"

"그러니까."

댄디한 남성의 옆에 있던, Z라고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탓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는 어째서인지 팔에 피 묻은 붕대를 감고 있었고, 급하게 수리한 듯한 권총을 매만지고 있었다.

"게임성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돈은 잘 버는 녀석들이 왜 우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Z는 댄디한 사내에게 시가를 하나 얻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총을 들어 그 끝을 여성에게 겨누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접근한 이유가 뭐지, 애드?"

"이거 섭섭하네."

여성은 총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탑을 쌓을 뿐이었다.

이미 탑은 절반 이상 쌓여 있었고, 남은 젠가 부품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때 우리 좋았잖아, Z?"

"...예전의 일이지. 애드."

"보스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내가 양산박으로 갔다지만, 아직도 그 걸로 꽁해 있잖아?"

"하. 말은 잘하는군."

마침내 여성이 탑을 모두 쌓았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있는 틈 사이에 고블린과 영웅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야. 과거의 모든 앙금을 털어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

"..."

양복을 입은 둘은 양산박 측 여성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고블린을 탑 위에 쌓는 그때에,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여성에게 총구를 내밀었다.

"...이거 거절로 봐도 될­"

탕! 하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탑이 무너져 내리며 그 위에 있던 고블린들이 땅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이런 제안을 할 때는, 상대에게 믿음을 먼저 보여줘야 하는 거다, 애드."

"물론, 우린 사소한 거로는 신경 쓰지 않지만 말이지."

두 남자의 총구에서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Z는 입에 물고 있던 시가에 불을 붙였다.

"...하, 하하. 역시나."

놀랍게도, 아직 양산박 측의 여성은 살아 있었다.

다 알고 있었군. 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땅에 떨어진 모자를 다시 주워 눌러썼다.

그녀의 뒤에 있던 도청장치가, 총알보다 더 작은 도청장치가 박살 난 채 파지직 거리고 있었다.

혹시 몰라 추가로 달아둔 예비 도청장치까지 모두.

...

"좋은 아침."

도미니카 경이 밖으로 나오며 외쳤다.

"좋은 아침이오."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고 허수아비를 치며 대답했다.

언제부터 훈련하고 있었던 것일까?

언제나 제 모습을 유지하던 허수아비가 오늘따라 너덜너덜했다.

"...밥이나 먹고 해. 벌써 9시야."

도미니카 경이 질린다는 듯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카 경도 훈련이라면 지지 않는 성격이었으나, 도미닉 경의 훈련은 이미 훈련의 범주를 넘어가 자기 학대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좀 쉬엄쉬엄 하라고. 쉬는 것도 훈련이라고 배우지 않았어?"

"...그렇군. 그 사실을 잊고 있었소."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로울 때에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혼란스러울 때에는 중간중간 쉬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페럴란트에서 도미닉 경이 모셨던 스승 중 하나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떠올린 도미닉 경이 슬쩍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보기에도 허수아비는 심각할 정도로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뭘 만든 거요?"

도미닉 경이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뭔가 익숙한 향이 나는데."

"감자와 당근, 브로콜리, 그리고 닭고기를 넣은 스튜."

"...훌륭하군!"

도미니카 경이 메뉴를 말하자, 도미닉 경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도미닉 경이 가장 좋아하는 고향의 음식이었으니까.

둘은 나란히 서서 치킨 스튜에 대한 108가지 좋은 점에 대해서 깊은 토론을 나누며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계십니까? 천국 택배... 어라? 오늘은 나와 계셨군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으로 바라보았다.

거기엔 언제나 택배를 담당하는 천사가 있었다.

"아, 훈련을 마치고 들어가려던 참이오."

"그나저나 손에 든 건 뭐야? 편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나름대로 친근한 천사에게 화답했다.

"네. 편지네요. 보내는 사람은... 돈 카스텔로 씨... 잠깐, 돈이 누구누구 씨라는 말이니까 이건 카스텔로 씨씨가 되는 건가?"

잠깐 헛소리를 내뱉은 천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튼 돈 카스텔로에게서 온 편지입니다."

천사가 편지 봉투를 건넸다.

도미닉 경이 편지를 받아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티 하나 없는 하얀 봉투에 찍힌 붉은 밀랍 인장.

뒤에는 유려한 필기체로 돈 카스텔로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튼, 전 이만 다시 가 보겠습니다."

천사가 날개를 퍼덕였다.

"서명은 필요 없소?"

"원래 편지는 서명 안 해도 돼요. 택배만 받는 거라서."

그렇게 말한 천사가 반짝이는 별처럼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아 사라졌다.

"참 빠르군."

"그러게. 혹시나 싸우게 되면 대처할 방도가 없을지도."

그렇게 천사에 대해 감상을 나눈 둘.

도미닉 경은 집 안으로 들어서며 편지를 열어 보았다.

[내 영원한 친구, 도미닉 경에게.]

[반갑네, 친구. 나 기억하나? 돈 카스텔로일세.]

[사실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좀 곤란한 일에 엮여서 말이야.]

[혹시나 시간이 남는다면, 그리고 날 도와줄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날 도와줄 수 있겠나?]

[물론, 그냥 도와달라는 말은 아닐세.]

[알다시피, 이 돈 카스텔로는 절대 은원을 잊는 법이 없지.]

[언제나 합당한 대가를 자네에게 약속하겠네.]

[이왕이면 빠르게 결정을 내려 답장해 주길 바라며.]

[자네를 가장 생각하는 친구, 돈 카스텔로가.]

도미닉 경이 식탁 앞 의자에 앉았다.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아, 도와달라는군."

"돕는다니, 뭘?"

"그것까진 적혀 있지 않소."

도미닉 경은 몇 번이고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으나, 정작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왜 그를 도와야 하는가? 그는 도대체 무슨 일에 연루된 것인가?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이 스튜가 든 그릇을 그의 앞에 둘 때까지 편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도와주지 않을 것도 아니잖아."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반대편에 그릇을 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 도미닉 경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할 리가 없으니까."

아, 이거 맛있네. 당근이 아삭아삭하면서도 녹아내리듯 목으로 넘어가. 라고 도미니카 경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도미니카 경의 말을 들은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는 무슨 이유로 도움을 청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상태였지, 전혀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돈 카스텔로는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에서 명성을 쌓도록 도와준 인물 중 하나였으며, 가장 처음 도미닉 경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런 사람을 외면할 만큼, 도미닉 경은 야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뭐, 일단 밥이나 먹고 답장해야겠소."

도미닉 경이 편지를 접고 저 멀리 편지를 놓았다.

도미닉 경은 숫가락으로 스튜를 듬뿍 떠 입에 집어넣었다.

브로콜리의 미묘한 맛 사이로 퍼지는 닭고기의 감칠맛이 참 마음에 들었다.

...

"...전화를 받지 않는군."

도미닉 경은 식사를 마친 이후, 가볍게 몸을 씻고 돈 카스텔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언찬트 개발 때 다른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삐 소리가 들린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도미닉 경이 또 한 번 들리는 자동 응답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편지를 보낸 것이 이런 이유였나?"

돈 카스텔로가 바보도 아니고, 이미 통신망이 잘 깔린 가차랜드에서 괜히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닐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결정했는지, 그는 자기 방에 들어가 종이와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삐뚤삐뚤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용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엉망인 글씨.

도미닉 경은 굉장한 악필이었다.

마침내 편지를 다 쓴 도미닉 경이 폰으로 편지를 보내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그 정보에 나온 대로 따라 해 편지를 돈 카스텔로 앞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돈 카스텔로가 이 편지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도미닉 경은 돈 카스텔로의 제안에 선택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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