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164화]새로운 세상 후일담
* * *
"침대는 여기 두면 되겠소?"
도미닉 경이 인벤토리에서 침대를 꺼내 방 가운데 놓았다.
물론, 도미닉 경의 방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이 산 집에는 추가적으로 방을 살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있던 옵션은 아니다.
회귀하면서 생긴 패치 내역 중 하나였다.
태그 매치 룰이 새롭게 나옴에 따라, 집도 태그 매치 전용으로 꾸밀 수 있게끔 변한 것이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돌아오는 길에 부동산에 들려 가차석을 추가로 지급해 새로운 방 하나를 만들었다.
"이것저것 사오길 잘했네. 벽지나 바닥재도 없이 딸랑 침대만 있을 뻔했어."
도미니카 경이 소소한 물건들을 선반에 올려 두며 말했다.
아이보리 색과 갈색을 섞은 듯 우아한 벽지와 호두나무 원목으로 된 진한 갈색의 바닥재는 마치 귀족의 방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창문에 커튼을 달아주며 말했다.
"가차랜드란 곳은 볼 때마다 새로운 곳인 것 같소."
"그러게."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수긍했다.
"참 별별일이 다 일어나는 것 같아."
도미니카 경이 방금 세워둔 옷장에 스킨들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했다.
물론 옷장은 도미닉 경의 방에 있는 것을 가져왔다.
이상하게도 옷장은 복사가 가능해 방마다 설치가 가능했다.
대신 스킨이 공유가 되는지, 옷장에는 도미닉 경의 스킨이 이미 채워져 있었다.
도미니카 경은 무심코 도미닉 경의 스킨도 가나다 순으로 정렬하다가 옷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라고 생각한 도미니카 경이 갑옷을 벗어 마지막으로 옷장에 집어넣었다.
'공격적인 전진성'이라고 적힌 검은 셔츠가 드러났다.
"...그, 아무 데서나 그렇게 훌렁훌렁 벗고 그러는 거 아니오."
도미닉 경이 어색하게 볼을 긁으며 말했다.
"뭐 어때? 이제 내 방인데. 오히려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내 집이기도 하오. 적어도."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린 채 쓸데없이 커튼의 주름을 펴기 시작했다.
도미니카 경은 무언가 재밌는 걸 찾았다는 듯 도미닉 경으로 등 뒤로 다가 갔다.
"이거 이거, 도미닉 경의 자기애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
챙하고 도미닉 경의 검집에서 칼이 뽑혀 나왔다.
칼의 날카로운 부분이 도미니카 경의 목덜미에 닿았다.
도미닉 경의 눈매가 검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보다도 더 날카롭게 빛났다.
"...아."
도미닉 경이 바보 같은 소리를 내었다.
"미안하오. 아무래도 아까의 여운이 그대로 남은 듯 하오."
도미닉 경이 다시 검을 검집에 수납했다.
도미니카 경이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쳐다보았다.
설마 놀렸다고 이렇게 과민 반응하는 건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도미니카 경은 크게 놀란 상태.
그러나 곧,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을 이해했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은 굉장히 말랑말랑한 삶을 살아온 상태.
그건 도미니카 경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랑말랑한 사건들은 도미닉 경의 공격적인 성향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반대로 말하자면... 도미닉 경의 공격성은 항상 눌려 있었다는 소리가 되었다.
한 번 전사가 된 이는 그 호전성을 잊지 못하는 법.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도 그랬다.
참모장 및 행정관과의 싸움에서 달아올라 버린 공격성은 눌려 있었던 만큼 그리 쉽게 가라앉힐 부류의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도미닉 경도, 도미니카 경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 도미니카 경은 덜 공격적이고, 도미닉 경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말인가?
그건 도미닉 경이 평소에도 기사도라는 명목하에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오고 있어서였다.
알다시피 억눌린 감정은 그만큼 더 크게 튀어 오르는 법이었다.
"...미안. 그걸 생각 못했네."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사과했다.
"아니오. 내가 좀 민감하게 대응한 것도 있으니 사과할 필요 없소.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미안하오. 지금 대화를 나누기에는 좀 그러니, 자고 내일 봅시다."
"응? 아. 그래. 시간도 늦었으니까."
도미닉 경이 황급하게 도미니카 경의 방을 빠져나왔다.
도미니카 경이 문이 닫혀 도미닉 경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예민하네."
그녀의 공격적인 흉부가 크게 들썩였다.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자기는 글렀군.
도미니카 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
"!"
"그렇지요. 마왕님. 저번 빌라에 비해선 상당히 좋은 곳이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참모장은 고풍스러운 성의 옥좌에 앉은 마왕을 보며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마왕의 위엄에 걸맞게, 마수의 뿔과 엘더 리치의 갈비뼈, 드래곤의 가죽과 흑요석으로 장식된 사악함의 정점과도 같은 옥좌!
누가 보더라도 마왕의 카리스마에 놀라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멋진 옥좌였다.
물론, 마왕님 만큼은 아니지만.
그러나 참모장의 감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히 최고만이 않을 수 있는 자리였으나,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마왕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옥좌가 하나가 아니었다.
"?"
용사 뽀 르 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참모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금과 다이아몬드, 루비와 벨벳, 비단과 곰 가죽으로 장식된 화려한 옥좌가 있었다.
"역시나! 대공 전하께 어울리는 옥좌로군요! 다만 아쉬운 점이, 대공 전하의 위엄을 모두 담기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행정관이 박수를 치며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참모장의 시선을 느꼈는지, 행정관은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뭘 보나?"
"너야말로."
참모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참모장의 뿔에 검은 기운이 몰려들어 험악한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행정관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손가락으로 안경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 새로 산 안경에 횃불의 불빛이 반사되어 하얗게 빛났다.
"?"
"!"
그러나 그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자그마한 손으로 옥좌를 탁탁 치며 참모장과 행정관을 불렀던 것이다.
"아, 그렇지요. 이런 실수를. 제 불찰입니다."
"물론, 모두 준비되어 있지요. 신호만 주신다면"
참모장과 행정관이 마왕과 용사의 행동에 쩔쩔맨다.
행정관이 박수로 신호를 보낸다.
참모장이 등 뒤에 숨긴 손가락으로 보낸 신호에 왕좌의 방의 입구가 열린다.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며 신비한 광경을 연출하는 동안, 그 사이에서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그 신비함이 마음에 드는 듯 옥좌에 기대었던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안개 속에 있던 형상은 천천히 옥좌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곧 그 정체가 드러났다.
매우 노련해 보이는 셰프였다.
그것도, 양손에 어린이 햄버그 세트를 든 셰프였다.
"!"
"!"
마왕과 용사가 동시에 만세를 불렀다.
셰프가 옥좌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둘 앞에 하나씩 어린이 햄버그 세트를 내려놓았다.
육즙이 가득한 햄버그.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와 볶음밥과 옥수수 샐러드까지!
무엇보다도, 미니 핫도그와 새우 튀김까지 있었다.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플라스틱으로 되어 다칠 걱정이 없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어느새 참모장과 행정관이 준 손수건을 목에 두른 채, 둘은 공격적으로 햄버그 세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
그러나 그 시도는 불발되었다.
셰프가 손을 뻗어 둘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엄숙한 표정을 지은 셰프가 마술처럼 허공에서 무언가를 생성해냈다.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볶음밥에다가 그 무언가를 꽃았다.
"!"
마왕의 것에는 마족을 뜻하는 검은 배경에 뿔 달린 붉은 악마의 깃발이
"!"
용사의 것에는 하얀 배경에 성검을 의미하는 금빛 검이 수놓아진 깃발이.
엉성하게 종이에 프린트해 이쑤시개에 달아 놓은 미니 깃발이 햄버그 세트에 꽃히자, 둘은 완전히 감격한 표정으로 이 완벽한 요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드셔도 좋습니다."
셰프의 허락이 떨어졌으나, 마왕과 용사는 요리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요리를 먹어도 되는 걸까? 라는 죄책감 까지 들 정도였다.
마왕과 용사의 초롱초롱한 눈.
누가 보더라도 흐뭇한 표정이 되리라.
그러나 여기, 마왕과 용사를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이가 둘 있었다.
"...제약만 없었더라면, 더 좋은 것을 해드렸을 텐데..."
"저주만 없었더라도..."
참모장은 손바닥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행정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 못해 피가 날 정도였다.
어째서 이들은 이 흐뭇한 광경을 보고도 이렇게나 슬퍼하는 것일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쾅. 하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손이 책상을 거세게 때렸다.
얼마나 크게 휘둘렀는지, 천장에 걸려 있던 미약한 조명이 삐걱삐걱 움직일 정도였다.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욕심이 그득한 얼굴.
부유한 졸부 같은 모습.
두 겹으로 된 턱.
돈 카스텔로였다.
돈 카스텔로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다시 한번 유심히 보더니, 무엇이 그리 화가 나는지 종이를 쫙쫙 찢어 버렸다.
"감히, 감히 어떻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지?"
돈 카스텔로가 숨이 찬 듯 씩씩거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어떻게 이 돈 카스텔로에게 이런 모욕을 줄 수가 있어!"
쾅! 하고 다시 한번 책상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돈 카스텔로.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군.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돈 카스텔로가 서랍을 열고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리고 잉크 병의 뚜껑을 따고, 만년필을 손에 쥐었다.
"부디 이 제안을 받아줬으면 좋겠는데."
마지막까지 멋진 필기체로 편지를 써 내려간 돈 카스텔로가 잉크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봉투에 편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붉은 밀랍으로 편지를 봉인한 후, 전화를 걸어 천국 택배를 불렀다.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을 말이야..."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은 돈 카스텔로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