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163화]참모장과 행정관
* * *
"당장 멈춰!"
"명령이다!"
마왕과 용사가 자기가 생각하는가장 멋진 자세를 취했다.
마왕은 양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가슴을 내민 채 최대한 화난 표정을 지었고, 용사는 검을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짜잔하는 느낌으로 서 있었다.
...사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멋진 자세였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멋진 척하는 것 같이 보였으니까.
"...멋있다!"
그래. 그래도 마왕과 용사, 그리고 앨리스가 생각하기엔 꽤 멋진 모습이었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의 외침에 참모장과 행정관이 반응했다.
도미닉 경의 방어를 어떻게든 돌파하고 비열한 일격을 먹이려던 참모장과 도미니카 경의 방패가 마치 고슴도치로 보일 정도로 마법의 화살을 날리던 행정관의 움직임이 멈춘 것이다.
"마왕님?"
"대공 전하?"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마왕님!"
이 기묘한 침묵과 대치 상태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참모장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야위셨습니까. 그동안 밥은 먹고 다니신 겁니까?"
참으로... 과한 충성심.
참모장과 마왕은 헤어진 지 채 1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나 참모장은 마치 일주일... 아니, 한 달은 못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참모장이 소녀의 모습을 한 마왕에게 달려가 어깨를 부여잡고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마왕의 입가에 쿠키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으나, 참모장은 애써 그 잔해를 무시하며 손으로 볼을 살짝 털어 주었다.
그야말로 충성심이 넘치는 부하의 전형적인 모습.
"...너무 반응이 과한 거 아니야?"
마왕이 참모장의 호들갑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마왕은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참모장을 꼬옥 안아주었다.
"미안해."
"!"
참모장이 화들짝 놀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이 말을 막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 아니. 마왕님께서 미안하실 건 없... 아니, 이게 이니지. 분명히 마왕님께서 무언가를 숨겼... 다는 보장이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어지는 문장들.
그 문장들 사이에서 마침내 참모장이 원하는 문장을 찾았는지, 참모장의 동요가 멎었다.
"...제게 미안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왕님께선 언제든지 제게 미안할 짓을 하고도 사과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게 마왕님다운 일이니까요."
"...거짓말."
"그래도 원하신다면, 사과하신 걸 받아들이겠습니다. 마왕님은 자유분방한 분이시니, 그런 여흥거리가 있어도 이상할 것 없지 않습니까."
마왕과 참모장 사이에 훈훈한 기운이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내뿜던 살벌한 기세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야말로... 말랑말랑한 상황.
"그... 재회 중에 미안하오만"
그때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도미닉 경이 둘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혹시 이쪽이... 마왕이오?"
도미닉 경이 소녀의 모습을 한 마왕을 바라보았다.
"...네 이놈! 마왕님께는 '님' 자를 붙여라!"
참모장이 버럭 화를 내었다.
도미닉 경을 보자마자 다시 사라졌던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물론 도미닉 경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원래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쁘게 보이는 법.
가차랜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네가 마왕님을 납치하지 않았더라면!"
"아, 그거 아니야. 사실 내가 납치한 거에 가깝긴 한데..."
"...그렇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참모장이 염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왕이 아니라고 하자마자 바로 자기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고 인정해 버린 것이다.
"...미안하군. 오해를 한 것 같네."
참모장이 도미닉 경에게 허리를 숙였다.
갑자기 바뀐 태도에 도미닉 경이 당황할 정도로 말이다.
"그, 갑자기 그렇게 고개를 숙이진 않아도"
"하지만!"
도미닉 경이 손이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어 허공을 맴돌았다.
그때, 참모장이 갑자기 허리를 숙인 채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참모장의 두 눈에는 이글거리는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자네를 의심할걸세. 늘 그랬듯이."
"아. 그럼 나 도미닉 경의 집에 놀러가도 되겠다. 허락해준 거야?"
참모장의 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사실 참모장은 도미닉 경에게 신뢰를 보낸 것이었다.
마왕님이 사라진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 볼 사람으로 생각할 정도로 도미닉 경을 인정한 것이다.
마왕은 참모장의 화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도미닉 경에 대한 신뢰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지만...
"...그게 무슨 소리요?"
참모장의 성격이며 화법을 잘 알지 못하는 도미닉 경으로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튼. 다음번에 만나면, 밥이나 한 번 먹지. 이번 실례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하고 싶으니까."
참모장이 머쓱한 듯 말을 돌렸다.
뭐랄까... 자기 말에 대해서 따로 설명을 곁들이는 건 조금 무안한 일이었으니까.
"...돌아가시지요, 마왕님."
"응?"
"사실, 오늘 상업 지구에 맛있는 어린이 햄버그 정식이 있다고 해서 온 것 아니었습니까? 이제 조금 있으면 런치 타임이 끝나고 말 겁니다. 빨리 가야 늦지 않겠지요."
"...아!"
마왕이 그제야 자기가 왜 상업 지구에 나와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차마 기다릴 수 없다는 듯 흥분해 발을 동동 굴렀다.
"햄버그 정식!"
"네. 예약은 해 뒀었으니 가기만 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마왕과 참모장은 도미닉 경의 앞에서 그렇게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둘의 훈훈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어쨌든, 모든 것이 잘 풀려서 다행이오. 다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도미닉 경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 마왕이 2등신의 모습이 아니라 소녀의 모습을 하는지, 그리고 왜 참모장이 저리 이중 인격처럼 구는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으나, 도미닉 경은 좀 더 깊고,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2번 채널이라고 하는데, 1번 채널은 어떻게 가는 거요?"
도미닉 경이 자기 폰을 들며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곳엔 지도 앱이 켜져 있었다.
[2번 채널에서 1번 채널로 이동]
[1번 채널로 이동 후 상업지구 중앙 광장 방향으로 직진 50미터]
[직진 후 첫 골목에서 우회전]
이라고 적힌 지도가.
도미닉 경은 그중 첫 번째 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니 1번 채널로 이동하라고 되어 있던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말이오."
도미닉 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참고로, 도미니카 경도 도미닉 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1번 채널로 가는 길이 어디야?"
도미니카 경도 감격에 차 있는 용사와 행정관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말하고 있었다.
...
"고맙소."
"정말 고마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마왕과 용사, 그리고 참모장과 행정관에게 감사를 전했다.
도움을 받아 1번 채널로 돌아온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앨리스.
그들의 반대편에는, 어째서인지 다시 2등신으로 돌아온 마왕과 용사가 있었다.
"!"
"?"
"오히려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어서 미안하다고 마왕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번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보는군, 미천한 것."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말랑말랑한쪽 팔을 팔랑팔랑 휘두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고차원적인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참모장과 행정관의 해석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몰래 과자를 좀 준비해 달래요. 비밀로 하고."
앨리스가 그 사이에 몰래 전달받은 내용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속삭였다.
"아무튼"
"이번 일은 다시 한번 사과하지."
"아무래도 오래 살다 보니, 주책만 늘거든."
참모장과 행정관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그야말로 진심 어린 사과의 표본과도 같은 각도.
"그... 괜찮소."
"우리라도 그렇게 오해했을 테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사과받아들이자, 다시 허리를 편 두 사람.
"이제 마왕님 점심 드셔야 하는 시간이니, 이만 가보도록 하지."
"용사님께서 배가 고프셔서 말이야. ...이 문제에 대한 보상은 다음에 편지로 논의하겠네."
참모장과 행정관이 마왕과 용사와 같이 큰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앨리스는 잠시 후 마왕과 용사가 뒤를 돌아보며 짧은 팔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 또 보자고 하네요."
앨리스가 그 행동을 해석해주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그럼 이제 우리도 침대를 사러 가 볼까?"
"침대요?"
앨리스가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혹시 그거, 프릴이 하늘하늘 달린 건가요?"
"어...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힝."
앨리스가 제멋대로 기대하다가 제멋대로 실망했다.
사실, 앨리스가 도미닉 경의 집에서 침대를 쓸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스승님과 취향이 겹쳐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아."
도미닉 경이 바보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야..?"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그녀는 또 하나의 그였기에 그 탄식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별 건 아니오."
도미닉 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도대체 마왕과 용사가 왜 모습이 바뀌는 지 물어보질 못해서 말이오."
"아."
도미니카 경이 바보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마왕과 용사.
지금은 다시 2등신의 짤막한 몸으로 돌아왔지만, 방금 전까지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소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도미니카 경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알아버린 이상, 계속 생각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찝찝한 표정으로 마왕과 용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일 학교 가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