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162화]참모장과 행정관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말이 없어졌다.
그만큼 현재 참모장과 행정관의 공세가 매서웠던 탓이다.
"큭."
참모장이 도미닉 경의 방패에 스쳤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스템은 그것을 공격으로 인식하고 확률을 계산해 스턴 상태로 만들었다.
참모장의 움직임이 멈추자, 도미니카 경이 방패로 참모장을 쳐 내고 머스킷을 꺼내 행정관을 향해 발사했다.
참모장을 끊기 전에 행정관의 방해를 막으려던 것이다.
그러나 행정관의 캐스팅이 더 빨랐다.
[자크 대공국의 칙령]이 발동하며, 행정관의 마법의 화살 개수가 증가하고 공격의 일부가 관통 피해로 변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마법의 화살들을 모두 도미닉 경에게 쏘아내었다.
도미니카 경의 기술, [충격과 공포]가 닿기 직전의 일이었다.
행정관은 도미니카 경의 기술에 맞고 스턴 상태에 걸렸으나, 도미닉 경의 다음 공격을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마구 쏘아지는 눈먼 화살들이 도미닉 경을 휩쓸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고 화살을 막아 내는 데 전력을 다 했다.
아무리 기본 방어력이 높고 10%가 넘는 피해 감소 효과가 있다지만, 마법적인 화살이 가진 관통력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관의 공격으로 인해 도미닉 경이 방어에 전념하는 동안, 참모장이 스턴 상태에서 풀려났다.
정신을 차린 참모장의 주먹이 도미니카 경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도미니카 경이 방패를 들어 주먹을 막아 내려고 했으나, 방패가 잠깐 시야를 막아선 사이 참모장이 도미니카 경의 뒤로 돌아 어깨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윽!"
도미니카 경이 충격으로 머스킷을 떨어뜨렸다.
도미니카 경이 대신 검을 뽑아 들려고 노력했으나,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연찮은 불행으로 급소를 가격당했습니다. 3초간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그렇다.
사실, 참모장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과의 결투 이후 나름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특성, 혹은 특수 기술의 발현.
딜러들의 특성상 군중 제어기는 크게 효과가 없었다.
상태 이상 한 번 거는 것보다 딜을 한 번 더 넣는 게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참모장은 단지 도미닉 경에게 한 방을 먹이기 위해 새로운 군중 제어 기술을 연마한 것이다.
물론, 도미닉 경이 아니라 도미니카 경이 당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참모장의 주먹이 다시 한번 도미니카 경에게 휘둘러진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빠른 대처로 도미니카 경이 다시 검을 잡을 시간을 벌었다.
이 처절한결투는 더 처절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드러낸, 아주 행복한 미소를.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싸우고 있는 동안, 앨리스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앨리스는 가장 큰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알게 모르게 행정관을 향해 쇠뇌를 발사하고 있었다.
물론 앨리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장비로 취급되기에 피해량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가진 공격력의 중간 정도였으나, 그 정도만 해도 행정관을 거슬리게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뽁. 하고 끝에 빨판이 달린 화살이 행정관의 이마에 꽂혔다.
"...이것이!"
행정관이 분노하며 화살을 앨리스에게 날렸다.
물론, 앨리스에게 닿은 공격은 앨리스에게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앨리스에게는.
앨리스에게 닿은 공격은 고스란히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나누어 받았다.
앨리스의 공격은 그리 강하진 않지만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앨리스의 공격으로 시선이 분산된 덕분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피해를 조금이라도 덜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현재 앨리스가 하는 일은 꽤 큰일인 것이다.
"휴."
앨리스가 숨을 몰아쉬며 다시 쇠뇌에 화살을 장전했다.
이번엔 끝에 작은 솜주머니가 달려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쁜 종류의 화살이었다.
"음?"
쇠뇌에 장착된 가늠쇠로 노발대발하는 행정관을 향해 조준한 앨리스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조준을 풀었다.
그리고 화려하게 날뛰는 참모장의 움직임 사이로 골목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 닮았는걸?"
앨리스가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키 만큼 커다란 뿔.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보라색 머리카락.
왠지 마왕 뚜 르 방과 비슷해 보이는 외모.
"에이. 설마."
앨리스는 저 소녀가 뚜 르 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친구는 2등신에 말랑말랑 귀여운 소녀였지, 저렇게 비율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닮은 사람일까? 아니면 뚜 르 방에게 누나가 있는 것일까?
앨리스는 지금이 전투 상황이라는 것도 잊고 골목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뚜 르 방을 보며 생각했다.
앨리스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격렬한 전투 지역을 지나 골목길로 걸어갔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동경하는 앨리스는, 어느새 호기심을 바로바로 풀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 된 것이다.
...
"지, 지금 나가야 될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마왕과 용사는 여전히 안절부절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그들이 교환한 간식은 다 먹은지 오래지만, 너무나도 격렬하게 싸우는 탓에 끼어들기가 그랬던 것이다.
몸이 2등신일 때는 괜찮았지만, 비율이 달라진 탓인지 생각하는 방법마저 달라진 듯한 둘.
그때였다.
"저기요!"
"꺄악!"
"누, 누구야?"
마왕과 용사가 바로 옆에서 들린 큰 소리에 놀라 펄쩍 뛰었다.
마왕이 고개를 홱 하고 돌리며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아."
마왕은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그녀의 친구, 앨리스였다.
"혹시 뚜 르 방"
뜨끔. 하고 마왕이 몸을 움찔했다.
용사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마왕과 앨리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의 언니 되시나요?"
앨리스가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뚜 르 방은 그 해맑은 엉뚱함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기회라는 듯 거짓말을 시작했다.
"그게, 맞아. 뚜 르 방의 언니야. 응. 아무튼... 어. 음..."
그러나 마왕 뚜 르 방은 마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왕은 정직해야 한다고 참모장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았던가.
"그러셨구나!"
앨리스는 자기 생각이 맞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했다.
물론, 전혀 의심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앨리스의 육체는 15세를 넘어 성인의 것이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아직 3살 같은 15세의 것이었으니까.
마왕 뚜 르 방은 앨리스의 말에 맞다고 맞장구를 치려고 했으나, 그녀의 해맑음에 되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 맞아. 뚜 르 방."
"...!"
앨리스가 놀란 표정으로 뚜 르 방을 쳐다보았다.
뚜 르 방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생각해내려고 노력한다.
음... 성장기라고 할까? 아니야. 성장기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게 자랐잖아.
게다가 원래대로 돌아갈 텐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부질없었다.
"...성장기구나!"
"응?"
앨리스가 자기 친구, 뚜 르 방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그랬어. 성장기에는 하루에도 수십 센치미터씩 자란다고!"
엄마는 수십 미터씩 자랐다고 했어. 사람마다 다르대. 라고 해맑은 미소를 지은 앨리스.
그렇다.
그녀의 어머니가 서리 거인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하늘 끝에 닿을 것 같이 큰 서리 거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인의 처지에서 봤을 때, 뚜 르 방의 변화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장 앨리스도, 15세의 나이로 성인 남성 만큼이나 큰 키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응. 맞아. 그런데 다시 2등신이 될 수도 있어."
"마족의 성장기는 그런 거야?"
"...응."
앨리스가 눈을 깜빡이며 말하자, 마왕 뚜 르 방이 대충 그런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그나저나..."
앨리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뚜 르 방에게 말했다.
"저기 있는 사람, 네 보호자 아니야?"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알기로 참모장은 뚜 르 방을 모시는 사람.
뚜 르 방이 이렇게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게... 말하자면 복잡한데..."
마왕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앨리스는 슬쩍 마왕과 용사의 표정을 살피고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잘못한 게 있구나?"
"!"
마왕이 어떻게 알았냐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야, 내가 잘못했을 때랑 똑같은 표정인걸."
앨리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때 도망갔었는데, 엄마가 바로 찾아버렸어. 그런데 엄마한테 사과하니까, 엄마의 화가 풀렸어."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지금까지 참모장과 행정관이 화를 내더라도, 마왕과 용사가 사과하면 언제나 화를 풀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을 터였다.
"고마워."
마왕이 이 덩치가 큰 어린아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덕분에 우리가"
"사과할 용기가 생겼어."
마왕과 용사가 환한 미소로 앨리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응!"
앨리스는 지금 상황이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 웃으니 좋은 걸겠지. 라며 마주 웃어 주었다.
마왕과 용사가 골목길을 나서는 입구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한 걸음, 참모장과 행정관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장 마왕다운, 그리고 용사다운 카리스마로 이렇게 외쳤다.
"당장 멈춰!"
"명령이다!"
가장 멋진 자세를 취하면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