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62화 (162/528)

〈 162화 〉 [161화]참모장과 행정관

* * *

"말해! 마왕님은 어디 있지?"

"그걸 왜 우리에게 묻소?"

도미닉 경은 참모장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자기들은 마왕과 용사에게 휘말린 사람들이었으니까.

"마왕님이 계신 곳을 말해!"

그러나 참모장은 막무가내로 도미닉 경을 협박할 뿐이었다.

...사실, 참모장은 지금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그는 가차랜드 초창기부터 무려 몇 대에 걸쳐서 마왕가를 모신 엘리트이자 베테랑.

그런 만큼... 몇 번에 걸쳐 마왕들의 최후를 바라본 인물이기도 했다.

한 시대에 마왕은 하나.

다행스럽게도 전대 마왕은 현 마왕 뚜 르 방에게 처음으로 '평화로운 방법'을 써서 계승했으나, 전전대 마왕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같이 한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잔혹하게 계승되어 왔다.

그리고... 참모장은 그런 트라우마를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겪어본 마족이었다.

그리고 이 PTSD에 걸린 참모장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은...

마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의존.

영혼에 새겨질 만큼 마왕에 대한 충성심은 자신이 마왕의 행동과 동선 하나하나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변했고, 이로 인해 마왕이 곁에 있어야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심각한 의존증이 생겨났다.

언제나 마왕을 찾아 다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마왕님을 믿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크다.

그러나 마왕님이 없다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그나저나 예전부터 우리를 납치범으로 모는군. 도대체 왜 그런 거요?"

참모장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도미닉 경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그건... 너희가 납치범이기 때문이지!"

도미닉 경의 물음에 말이 궁해진 참모장이 억지를 부렸다.

사실, 참모장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마왕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마왕님이 마음을 먹으면 못 할 것이 없었고, 가지지 못 하는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참모장은 더더욱 불안해했다.

마왕을 보필하는 것이 자기 사명.

그러나 마왕님께서 어느 날 자신을 떠나버린다면?

늙은 탓에 생긴 주책이었으나 참모장은 진정 그런 상황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참모장이 도미닉 경에게 역정을 부리는 것도, 마왕님께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제약을 거는 것도 모두 그 두려움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참모장이 이를 악물었다.

도미닉 경의 말을 더 들어서는 안 된다.

본능이 그리 속삭였다.

더 이상 들었다가는 정말 마왕의 참모장이 아니라, 그저 늙은 마족 A가 될지도 모른다고 속삭인다.

순식간에 팔에 생성된 마도 과학 건틀릿이 휘둘러진다.

주먹 쥔 손이 향하는 목적지는... 도미닉 경의 얼굴이었다.

"이 무슨!"

도미닉 경이 다급하게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했다.

"닥쳐라..."

참모장이 으르렁거렸다.

"넌 납치범이고, 내게 마왕님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이해했나?"

참모장이 상체를 숙인 채 고개만을 들어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참모장의 눈에서 검고 사이한 불길이 치솟았다.

이 모든 것은 마왕님을 위한 충성심의 발로다. 라고 참모장은 자신을 속였다.

참모장의 급발진이었다.

...

그렇다면 도미니카 경과 행정관은 무엇을 하는가?

여기도 도미닉 경과 참모장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용사님은... 용사님은 행복해야만 해."

행정관의 손에 마도서와 스크롤이 나타났다.

"전대 대공님이, 전대 대공님이 그렇게 바랬듯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행정관의 책에서 마법적인 문양이 펼쳐졌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대공님이 행복한지 아닌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

행정관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서 신성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빛이 흘러나왔다.

행정관도 참모장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무려 세 명의 대공, 즉 세 명의 용사를 보좌해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

그리고 가차랜드 초창기의 '용사'가 얼마나 가혹한 직업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두 귀로 똑똑히 들어온 사람이었다.

용사들은 하나같이 단 한 가지를 소망했었지. 라고 행정관이 생각했다.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한 삶. 이런 피와 절망으로 가득한 삶 말고.'

가차랜드의 초대 용사는 아직 가차랜드의 시스템이 채 정립되기도 전에 죽었다.

당시에는 다른 차원들과 마찬가지로 부활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아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

그렇게 초대 용사가 스러졌다.

'글쎄... 평화로우면 좋겠어.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길.'

2대 용사는 그나마 조금 나았다.

그는 부활 시스템이 정립된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니까.

그러나... 하필, 그는 양산박이 활개를 치던 때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수많은 악인들을 처단했으나... 그의 최후는 양산박의 해킹 툴 하나로 끝나버렸다.

행정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뽀 르 작 대공을 통해 전대 용사들을 투영하고 있었던 행정관.

초대처럼 부활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2대처럼 불법 프로그램으로 제재를 받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용사들의 옆에 있었더라면.

자신이 몸을 던져 용사들을 구했더라면.

행정관은 생각했다.

언제나 사건과 사고는 자신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초대 용사 때에는 용사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고 영지로 향하는 중이었었다.

2대 용사 때에는 영지를 시찰한다는 용사를 뒤로한 채, 영지의 행정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은 그가 없을 때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그가 용사의 옆에 있으려고 발버둥 치는 이유가.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그의 곁에는 용사가 없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는 용사가 간 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만이 행정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부터­"

행정관의 눈이 번쩍 떠졌다.

신성한 하얀 안광이 줄기줄기 흘러나온다.

간절하디 간절한 의지가 그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질문하겠다. 대공 전하가 어디로 가셨는지 말이다."

행정관이 쥔 책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그리고 넘어간 페이지 만큼 하늘에 떠오르는 마법진들.

"...이거 분위기 이상해지는데."

도미니카 경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도미닉 경이 대답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광기에 차오른 참모장과 행정관을 보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등이 맞닿았다.

"...말이 통하진 않겠지?"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정말 의문스럽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전장에서 저런 상태에 들어선 사람들을 자주 보아왔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대부분 어떤 사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거나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를 좀 먹는 상태.

페럴란트에서는 그것을 마족들의 정신 공격이라고 불렀다.

마족들의 사악한 주술이라면서, 신전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엄격한 감시 아래에서 그들을 '회복'시켰다.

마족의 기운에 노출되어 오래 살지는 못한다. 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어째서 회복된 이들이 오래 살지 못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등을 맞대고 방패를 들어 올려 사각을 최대한 줄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둘 모두 영혼에 각인될 정도로 훈련하고, 전장을 돌아다녔으니까.

이는 본능적인 일이었다.

"마왕님을 내놓아라­!"

거의 이성을 잃어버린 참모장이 건틀렛을 휘둘렀다.

도미닉 경의 방패에 부딪친 주먹은 충격파를 내뿜으며 도미닉 경의 방패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슬쩍 방패를 기울이는 것으로 충격의 절반을 흘려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도미닉 경에게 전달되어 손목이 시큰거렸다.

도미니카 경에게 마법의 화살들이 날아온다.

시작부터 전력을 전개한 행정관의 공격.

'원거리 사격 피해'인 마법의 화살들이 방패에 막혀 위력을 크게 잃었다.

그러나 '마법 피해'인 화살들은 시스템 적으로 방패를 뚫고 도미니카 경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현실적인 것과 시스템 적인 것의 결합으로 인해 생긴 이상한 판정.

"이거, 분위기 안 좋은데?"

"그러게 말이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중얼거리듯 서로에게 말했다.

광란 상태에 빠진 참모장과 행정관은 지금까지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마왕과 용사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참모장이 눈 깜빡할 사이에 다섯 번의 방향 전환을 이루어내며 도미닉 경의 하단, 방패 아래를 노렸다.

그리고 그 공격을 막아 내려고 방패를 내려 버린 도미닉 경.

상체에 생긴 빈틈으로 행정관의 마법의 화살이 날아온다.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허리를 잡고 옆으로 조금 밀쳐 내어 화살을 피할 수 있었으나, 참모장이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일어서며 도미니카 경에게 어퍼컷을 날린다.

도미니카 경은 그런 참모장의 공격을 허용하고는 허리춤에서 머스킷을 꺼내 참모장을 향해 쏘아내었다.

스턴에 걸린 참모장을 향해 도미닉 경의 방패와 도미니카 경의 검이 쇄도했다.

이대로라면 참모장은 도미닉 경의 무한 스턴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나 그런 참모장의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마법의 화살들이 쇄도한다.

참모장의 거대한 육체에 가려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마법의 화살에 대처하지 못한 도미닉 경이 멀쩡했던 눈을 부여잡는다.

상태 이상 블라인드에 걸려 버린 것이다.

말도 없이 이어지는 이 처절한 전투.

"...어쩌지?"

"지,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지 않을까?"

골목에서 두 소년 소녀가 이 엄청난 전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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