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59화]Channel.02
* * *
"!"
"!"
마왕 뚜 르 방과 용사 뽀 르 작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랑말랑한 손으로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싸우는 걸지도 몰랐다.
"저거... 인형으로 싸우고 있는 거요?"
도미닉 경이 황당하다는 듯 전혀 긴장감 없는 싸움을 바라보았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각자 가진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에게 명령을 내려 푹신푹신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스펀지로 된 말랑말랑한 검과 골판지로 된 방패를 든 리틀 도미닉 경!
코르크 마개를 쏘아내는 공기총과 골판지로 된 방패를 든 리틀 도미니카 경!
긴장감 넘치는 가차랜드에 느슨함을 가져다줄 작은 드림 매치!
솜으로 가득한데다가 정성스러운 마감으로 인해 서로에게 전혀 피해를 줄 수 없는 말랑말랑한 세기의 대결!
마왕과 용사의 대리인... 대리 인형의 싸움은 영원할 것만 같았으나, 곧 이 사소하고 작은 이벤트 매치는 끝을 맺었다.
새로운 결투의 기본 룰 상으로 10분이 지나면 판정을 통해 승자를 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그마한결투를 승리한쪽은... 없었다.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
"?"
마왕과 용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리틀 도미닉 경의 체력이 더 우세한 것처럼 보였는데. 라고 마왕이 생각했다.
마지막 한 방으로 리틀 도미니카 경이 이겼을 텐데. 라고 용사가 생각했다.
그러나 마왕과 용사는 서로 오해하는 것이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 모두 그 어떤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 결투의 주체는 마왕과 용사지,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의 전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거의 동시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둘은 모두 한 세력을 이끄는 수장.
하염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둘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의 시선이 공중에서 격돌했다.
뚜 르 방이 뽀작뽀작 뽀 르 작에게 걸음을 옮겼다.
뽀 르 작이 뚜방뚜방 뚜르방에게 다가 갔다.
둘은 방금 전, 두 봉제 인형이 싸운 장소의 중심에 서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엎어지면 이마를 부딪칠 수도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마왕의 등 뒤에서 검고 불길한 차원 문이 열렸다.
용사의 찬란한 빛을 내뿜는 스펀지 성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마왕의 차원문에서 투사체가 후두둑하고 용사를 향해 날아갔다.
용사가 손을 뻗어 날아오는 투사체를 순식간에 모두 잡아채고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날아간 달 모양 검기.
그 검기를 바라보던 마왕이 옆으로 한 칸 움직였다.
검기는 마왕을 스치지도 못한 채 검고 불길한 차원문 속으로 사라졌다.
서술만 본다면 마왕과 용사가 세계의 명운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고 여겼겠지만, 사실 이건 언제나 있었던 간식 교환이었다.
마계의 가장 사악한 제과제빵의 정수, 콜라맛 사탕과 자크 공작령의 가장 신성한 제과제빵의 정수, 달맞이 쿠키를 교환한 것이다.
저번 평행세계 이벤트 때 급격하게 친해진 둘은, 시스템 몰래 SNS를 열어 서로 메시지를 교환하던 사이.
그건 불법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서로 슬라임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듯,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 꽤 있는 편이었다.
아직 가차랜드가 완성이 된 세계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SNS에서 서로의 간식을 자랑하며 더욱 친해진 둘은 다음에 만날 때 꼭 간식을 교환하자고 약속했고, 오늘 그 약속은 지켜졌다.
그리고 그 약속은 참모장과 행정관의 눈을 속여가며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들킨다면 압수당할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둘이 머리를 맞대어 내린 것이 바로 이 어설픈 연극이었다.
실제로 싸우는 척하면서 몰래 공격 사이에 간식을 섞어 건네주자는 제안.
"저기, 마왕님? 방금 그거 쿠키 아닙니까?"
"대공 전하? 손에 쥔 그 사탕은 뭡니까?"
그러나 오랫동안 주군들을 모셔온 둘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
"!"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충격을 받은 듯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어떻게 안 거지? 분명 우리 계획은 완벽했을 텐데!
모르겠어. 혹시 몰라서 있는 힘껏 휘둘렀는데!
뚜 르 방과 뽀 르 작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마왕님? 차원문 좀 열어 보시겠습니까? 저번처럼 쓰레기를 쌓아두거나 하진 않으셨겠지요?"
"대공 전하. 손을 좀 펴 보시지요. 분명히 사탕을 본 것 같아서 그럽니다."
참모장과 행정관이 천천히 마왕과 용사에게 다가왔다.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참모장과 행정관의 표정을 보며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이걸 빼앗기면 안 돼.
하지만 이러다간 빼앗길지도 몰라!
마왕과 용사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이미 친한 수준을 넘어 영혼의 파트너 수준까지 발전한 둘의 우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
그런데도 둘은 좀처럼 이 상황을 파훼할 계획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때였다.
마왕 뚜 르 방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뽀 르 작에게 말했다.
"...!"
뽀 르 작이 뚜 르 방의 계획을 듣고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왕과 용사의 지척에 다가온 두 노괴는 만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마왕과 용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은 전혀 웃지 않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자... 마왕님. 전대 마왕님에게 보고하기 전에 빨리 차원 문을"
"대공 전하. 대공 전하의 의지는 잘 알겠으나 우선 주먹을 펴고 제게 그 내용물을 보여 주시면"
마치 아이를 달래듯 친절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주군을 어르고 달래는 두 노인.
그때였다.
마왕의 뿔 사이에서 보라색 전기 구체가 생성되더니 순식간에 폭발하며 엄청난 빛을 내뿜었다.
물론, 이 빛은 마기를 가득 머금었기에 참모장에게는 평소보다 약간 눈부신 정도였으나, 행정관에게는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악! 누, 눈이!"
이 엄청난 마기의 폭발로 생성된 섬광은, 효과적으로 행정관의 시야를 차단했다.
"...이게 무슨"
행정관이 두 눈을 부여잡고 쓰러지자, 참모장이 마왕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용사의 성검이 내뿜는 번쩍이는 섬광이 그대로 참모장의 눈에 작렬했다.
"...! 내 눈!"
참모장은 행정관이 그랬던 것처럼 두 눈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다.
"!"
"...!"
마왕과 용사가 지금이 기회라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뽈뽈뽈 달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등 뒤로 숨었다.
"...응?"
지금까지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던 도미니카 경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요?"
도미닉 경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마왕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마왕도, 용사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마왕과 용사는 그 자리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 어떤 전조도, 징조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마왕님! 이게 무슨!"
참모장이 아직 이중 삼중으로 보이는 시야를 애써 진정시키며 마왕을 찾았다.
그러나 마왕 뚜 르 방은 이미 그 자리에 없는 상태.
참모장이 고개를 빠르게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마왕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공 전하! 어디 계십니까!"
참모장이 정신을 차리고 바로 정신을 차린 행정관도 용사 뽀 르 작을 찾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왕처럼 용사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참모장과 행정관이 서로를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주군이 도망쳤다.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발아래가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이 지상에서 약 30cm 정도 떨어진 상태라는 것도 바로 알아차렸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놀라운 반응속도로 균형을 잡은 채 제대로 착지하는 데 성공했으나, 마왕과 용사는 조금 달랐다.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이 바닥에서 통통 튀기며 데굴데굴 굴렀다.
"도대체 이건 뭐요?"
도미닉 경이 물었다.
"...아무래도 이거, 그건 거 같은데."
"그거?"
도미니카 경이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듯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무언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도미닉 경은 생각에 잠긴 도미니카를 귀찮게 하는 대신 그 사이 주변을 둘러보며 정보를 모았다.
"쌉니다, 싸요! 사과가 싱싱합니다! 신선한 사과 하나에 170크레딧! 그냥 사과는 120 크레딧! 1200크레딧으로 10연차를 돌리면 3% 확률로 싱싱한 사과가, 17% 확률로 그냥 사과가!"
"거 할 만하군. 10연차 주시오."
"감사합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전혀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방금 사라졌던 곳 그대로였다.
"어라? 스승님?"
그때였다.
도미닉 경은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2번 채널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앨리스가 있었다.
손에 삼단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앨리스는 어째서인지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며 질문을 날리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이 돌아보자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과 눈을 마주쳤다.
"어라?"
앨리스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둘?"
앨리스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앨리스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은 그만큼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것이었으니까.
툭. 하고 아이스크림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