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59화 (159/528)

〈 159화 〉 [158화]새로운 세상

* * *

14번째 알파테스트가 시작된 지 이틀 째 되는 날.

도미닉 경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방패로 허수아비를 치며 아침을 맞이했다.

물론, 여전히 도미닉 경의 소유로 된 도미닉 경의 집에서 말이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도미닉 경이 물병을 들어 목을 축일 정도로만 조금 마셨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넓은 바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군."

도미닉 경이 방패를 쥐느라 손바닥에 찬 땀을 옷에 대충 닦아내었다.

'이건 14번째 기념품이야.'라고 적힌 하얀 티셔츠에 손자국이 얼룩처럼 남았다가 사라졌다.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귀라고는 했으나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

기억도, 육체도, 경험과 보상도 모두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회귀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회귀가 처음이었기에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다.

대신 도미닉 경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여전히 자기 소유인 집을 바라보았다.

"일찍도 일어났네."

도미닉 경이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미니카 경이 방패를 들고 도미닉 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이건 미사일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티셔츠가 험악한 흉부를 애써 가리려고 노력하는 듯 너무나 편한 복장을 한 채 도미닉 경의 앞에 도착한 도미니카 경.

"일어났구려, 도미니카 경."

"덕분에. 숙취가 좀 남아 있긴 한데­"

도미니카 경의 하나 남은 눈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숙취로 인한 두통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어제 그렇게나 달렸으니 당연하겠지.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은 문득 도미니카 경에게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시내에 좀 나가야겠소. 당신을 위한 침대를 하나 사야겠으니."

"아."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소유인 집에서 살고 있었다.

다행히 침대는 둘이 누워도 충분할 정도로 큰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둘이 같이 자기에는 서로 부담되는 상황.

도미닉 경으로서는 아무리 또 하나의 자신이라지만 미혼의 여성과 같이 잔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고,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집에 얹혀 사는 것에 부끄러움과 부담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사실, 나도 그거 제안하고 싶었거든."

도미니카 경이 붉어진 볼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다면... 점심을 먹고 출발하도록 하겠소."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했다.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 다 말없이 일어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오후에 외출하는 것은 외출하는 것이었고, 훈련은 훈련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의 방패와 도미니카 경의 방패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궤적을 그리며 허수아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옷을 갈아입고 시내로 나섰다.

평상시였더라면 현대적, 혹은 근미래적인 건물들이 가득 세워져 있었겠으나, 지금 시내는 마치 서부시대의 목조 건축물로 가득한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느낌이 사뭇 다른 데?"

도미니카 경이 감상을 말했다.

도미닉 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도 길은 비슷한 모양이오."

도미닉 경이 지도 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재 둘은 상업 지구로 향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상업 지구에 자주 들른 도미닉 경이었기에 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서부극에서 볼 법한 건축물들을 지나 마침내 상업지구에 도착한 둘.

그리고 그들은, 상업 지구마저도 대규모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실,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상업 지구는 동양풍과 서양풍, 그리고 아랍풍이 적당히 섞인 듯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과거에는 몰개성한 건물과 복잡한 골목으로 이루어진 곳이었으나, 이제 정말 상업 지구라는 이름의 시장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사과 사세요! 사과! 싱싱합니다!"

"얼마요?"

"그냥 사시면 그냥 사과는 개당 120크레딧, 싱싱한 사과는 170크레딧인데, 1200크레딧으로 10연차를 돌리면 3% 확률로 싱싱한 사과가, 17% 확률로 그냥 사과가 나옵니다!"

"...그 정도면 할 만한데?"

물론, 여전히 가차랜드 사람들의 엉망인 경제 관념은 그대로인 상황이었지만.

도미닉 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전히 물건을 '가챠'로 산다는 것은 도미닉 경에게 어색한 일이었다.

"여기서부턴 나도 알 것 같은데."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혹시 저기 골목에서 꺾어서 들어간 뒤, 다시 오른쪽 아니야?"

도미니카 경이 대충 손가락으로 지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미닉 경은 지도를 잠깐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니카 경의 말이 대충 맞았기 때문이었다.

"저기가 사탕가게고, 저기가 부동산이고..."

도미니카 경이 손가락으로 가게 하나하나를 짚어나갔다.

모습은 조금 바뀌었을지 몰라도, 위치는 그대로인 모양.

도미니카 경이 뿌듯한 듯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뭐, 크게 바뀌진 않았나 보네."

"거의 다 왔소."

도미닉 경이 말했다.

도미니카의 말대로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자, 예전에 한 번 들린 적 있던 가구점이 보였다.

"좋아. 그럼 일단 침대 코너가 어딘지 볼까... 음?"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을 앞질러 앞으로 나서다가 문득 무언가를 본 듯 발길을 멈췄다.

도미닉 경은 휴대폰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지도 앱과 함께 화면을 절전모드로 바꾸다가 발길을 멈춘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시선을 확인하고, 도미니카 경이 바라보는 방향을 같이 바라보았다.

"!"

"!"

"저, 마왕님? 일단 집에 가시는 것이..."

"대공 전하! 위험합니다!"

그곳엔, 마왕 뚜 르 방과 용사 뽀 르 작이 험악한 표정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물론, 2등신의 말랑말랑한 몸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이다.

마왕 뚜 르 방이 눈썹을 기울이며 뽀 르 작에게 손가락질 했다.

뽀 르 작이 그 도발을 보고 발끈했는지, 역시나 말랑말랑한 스펀지 검을 뽑아 들며 당장에라도 돌격할 듯 자세를 취했다.

참모장과 행정관이 그런 둘을 말려보려고 노력했으나, 여전히 둘은 요지부동.

오히려 말리면 말릴수록 무거운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진다.

그리고 마침 내, 팽팽하게 당기던 실이 끊어지듯, 컵에 가득 찬 물 위로 물방울을 떨어뜨리듯 순식간에 균형이 깨졌다.

마왕과 용사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둘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꼬옥 안아주었다.

"!"

"!"

서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무언가 활기차게 대화하는 둘.

참모장과 행정관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까 봐 빨리 돌아가려고 했던 건데. 참모장이 생각했다.

용사님과 마왕이 친구라니, 이 무슨 비극적인 일인가! 행정관이 남몰래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참모장과 행정관이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무언가 대화하고, 팔다리를 크게 휘두르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말랑말랑한 턱에 조랭이떡 같은 손을 괴며 고민하더니 이내 서로에게서 다섯 걸음 씩 물러났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나름 엄숙한 분위기를 내며 대치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광경을 똑똑히,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관전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말려야 되지 않을까?"

도미니카 경이 물었다.

"뭐, 언제나 그랬듯 우리가 끼어들어서 좋을 것은 없어 보이오. 무엇보다... 이건 저들의 일이잖소."

도미닉 경이 손가락으로 참모장과 행정관을 가리켰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마왕님! 용사를 혼쭐내는 겁니다!"

"무엇이! 대공 전하. 마왕에게 정의로운 한 방을 먹이는 겁니다!"

참모장과 행정관이 다시금 험악해지는 듯한 분위기를 반기며 각자의 주군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찾아온 일촉즉발의 상황.

마왕이 등 뒤에 맨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용사도 망토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그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폭신.

하고 둘의 중간에서 두 물체가 부딪쳤다.

톡.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 두 물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두 눈을... 그러니까, 둘이 합쳐 두 개인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바로,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

둘의 봉제 인형이었다.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리틀 도미니카 경과, 그 위에서 한 바퀴 앞구르기를 하며 다시 땅바닥에 쓰러진 리틀 도미닉 경.

마왕과 용사가 서로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각자의 인형에게 다가가 그 인형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마왕과 용사의 비율이 2등신이었기에 거의 둘과 비슷한 크기의 인형들은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각자의 주인을 향해 포옥 안겼다.

"!"

"?"

마왕과 용사가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인형을 꼭 껴안았다.

도미닉 경은 마치 그 모습이 상대에게 자기 물건을 자랑하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도미니카 경은 어째서인지 동생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뚜 르 방과 뽀 르 작은 서로의 인형도 마음에 든 듯 가까이 다가가 각자의 인형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를 인정한다는 듯, 말랑말랑한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마왕과 용사가 의기투합한 모습.

"...?"

오직 참모장과 행정관만이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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