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58화 (158/528)

〈 158화 〉 [157화]새로운 세상

* * *

히메토츠키사이고 성.

히메와 츠키는 훈련장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둘은 알 수 없는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평행세계의 히메라고 할 수 있는 츠키는 히메의 영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간.

어떻게 보면 도플갱어라고 볼 수 있었고, 또 어떻게 보면 자기 혐오나 동족 혐오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히메와 츠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

운류 무사시와 운류 이치코 부부는 이 새롭게 생긴 딸을 차별 없이 대했다.

"츠키는 애교가 없어서 큰일이네요."

이치코가 손바닥으로 뺨을 매만지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사춘기인가 보오."

온몸을 붉은 갑옷으로 가린 무사시가 이치코를 향해 사랑스럽다는 듯 그리 말했다.

마치 하나의 딸처럼 느껴지는 두 명의 딸.

무사시와 이치코가 히메와 츠키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었다.

사실, 무사시와 이치코는 츠키가 자기 딸이면서도 자기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가차랜드에서 충분히 오래 산 둘이었고, 그만큼 가차랜드의 삶에 익숙해진 둘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츠키를 정말 자기 딸처럼 대하는가?

시스템이 시킨 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니었다.

사실, 이는 운류 무사시와 운류 이치코의... 소망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운류 무사시와 운류 이치코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정확하게는 히메를 낳은 이후, 둘 모두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히메사이고 성... 아니, 이제 히메토츠키사이고 성에서 일어난 대 사건.

운류 무사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육신'을 잃었고, 운류 이치코는...

아니, 안 돼.

밝은 생각을 해야 해.

이치코는 그날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려고 하자 의도적으로 밝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몇 명이나 낳는 것이 좋겠소?'

'둘. 딸로 둘 낳는 것이 좋겠네요.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서 애교를 가득 담았으면 좋겠어요.'

처음 무사시와 만나 사랑의 말을 나눴을 때의 일.

이치코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곧 흐릿하게 변했다.

다시 한번 그날, 그날의 일이 떠오르고 말았으니까.

'이치코!'

'무사시!'

폭발이 일어난다.

사방이 불길로 막혀 움직일 곳이 없다.

히메 사이고 성이... 불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이치코에게 다가오는 무사시.

이치코의 곁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무사시가 몸을 날려 이치코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치코는 고개를 저었다.

가차랜드의 초창기, 아직 지금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도 못했던 시절의 일이었으나 아직도 그녀는 그 일이 가끔 떠오르고는 했다.

"이치코? 이치코!"

"아."

무사시가 이치코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치코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괜찮소?"

무사시가 걱정이 가득 담긴 애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때가 생각나서 그만..."

"아."

이치코의 말에 무사시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 내가 조금 더 빨랐더라면­"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무사시가 자책을 하려고 하자 이를 가로막는 이치코.

"당신 덕분에 몸이라도 건사할 수 있었잖아요? 팔다리 멀쩡하게 말이에요."

이치코가 소매를 걷어 팔과 다리를 보여 주었다.

여전히 새하얗고 매끈한 피부.

그러나 무사시의 분위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치코는 그런 무사시를 바라보며 자책했다.

도대체 왜 지금 그때를 생각해서는­

그리고 머리를 굴려 지금 상황을 벗어날 궁리를 했다.

"츠키."

이치코의 입에서 츠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츠키도, 참 귀엽지 않나요?"

"...음."

이치코의 말은 정답이었던 모양인지, 무사시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혹시 그때 기억나요? 우리 처음 만나서 가족 계획을 세우던 날?"

"딸을 둘 낳고 싶다고 했었지."

무사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츠키는...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 거구려."

무사시의 시선이 저 멀리 어딘가로 향했다.

그 방향은 시스템 인더스트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무사시는 마음속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무시해도 좋을 그런 소원을 들어준 회장에 대한 감사를.

무사시가 이치코가 우려낸 말차 한 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온도도,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치코의 사랑은 가득 느껴지는 한 잔.

무사시는 두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제법!"

"사도는 정도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니!"

히메의 쿠나이와 츠키의 태도가 공중에서 격돌하며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

"어... 이게 뭐죠?"

­뭐긴 뭐임. 지금 대격변 수준으로 룰이 추가됨;;­회장이 단단히 각오를 했나 봄.

성좌 아임 낫 리틀은 갑자기 빛나기 시작하는 도미닉 경의 카드와 도미니카 경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두 카드는 하나로 이어지더니, 이내 뒷면으로 뒤집어졌다.

그러자 카드의 양식을 그대로 담은 커다란 카드가 되어 아래로 천천히 낙하했다.

[[★★★]도미닉 경 & 도미니카 경[태그 매치]]

[이 카드가 필드에 앞면 표시로 존재하는 한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습니다.]

[이 카드가 필드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환될 경우, 코인을 던져 앞면이면 공격 표시, 뒷면이면 수비 표시로 소환시킵니다.]

[이 카드가 공격 표시일 경우 이 카드를 도미니카 경으로 취급합니다.]

[이 카드가 공격 표시일 경우 2pt를 소모해 적 하나에게 '사소한' 피해를 주고 스턴 상태에 빠뜨립니다.(연속 사용 가능)]

[이 카드가 수비 표시일 경우 이 카드를 도미닉 경으로 취급합니다.]

[이 카드가 수비 표시일 경우 모든 캐릭터가 받는 피해가 11.25% 감소합니다. (반올림)]

일반 카드보다 두 배는 커다란 카드.

아임 낫 리틀은 카드의 텍스트를 유심히 바라보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이거... 이번에 새로 생긴 룰, 태그 매치죠?"

­ㅇㅇ 그러함.­사실 2차 알파 테스트 때 존재한 룰이긴 함. 너무 복잡하다고 나중에 간략화시켜서 추가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임 낫 리틀의 시청자들 중 가차랜드에서 오래 산 사람이거나 정보 수집에 능한 이들이 채팅을 올렸다.

"세상에. 그럼 지금 태그 매치가 가능한 카드가 몇 개나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지금까지 7장 풀렸다고 함.­가장 먼저 밝혀진 게 박춘배 & 말레이던가?­ㅇㅇ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카드라 가장 먼저 밝혀졌음.­그나저나 도미닉 경 & 도미니카 경이면 진짜 극악 확률 아님?­그나마 이번에 풀려서 5번째인가 6번째에 밝혀졌을 걸?

아임 낫 리틀의 질문에 시청자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했다.

"...이걸로 완성되었네요."

­?­아. 설마...

아임 낫 리틀은 시청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도 않고 바로 게임을 하나 켰다.

그리고 모드 창에 들어가 방금 만들어진 도미닉 경 & 도미니카 경 카드를 인스톨시켰다.

그러자 화면 가득히 떠오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들.

도미닉 경의 카드 5장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 5장.

그리고 방금 전 얻은 태그 매치 카드 1장까지 총 11장으로 구성된 선택창이 떠올랐다.

­아.­이건 아니지.

아임 낫 리틀의 시청자들이 역정을 내기 시작한다.

"언제나 생각했죠. 10장은 하나가 적고, 12장은 하나가 많고..."

"물론 지금까지 나온 게 10장이라 그 고민은 쓸데없는 고민이었죠."

"하지만 지금 2장같은 1장이 생겼으니­"

아임 낫 리틀이 게임을 실행시켰다.

넓은 경기장, 푸른 잔디, 햐얗게 칠해진 골대.

인트로 영상을 스킵하자 바로 떠오르는 메뉴 화면.

[풋볼 브롤러 11]

축구와 난투를 합쳐서 만든 희대의 괴작, 풋볼 브롤러 11이었다.

"마침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으로 구성된 팀을 하나 만들 수 있겠어요!"

­아, 방장! 당장 꺼!­어허. 씁.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격렬한 시청자들의 저항.

그러나 아임 낫 리틀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팀 구성 화면으로 들어갔다.

"오늘 할 메타는 0­0­10이에요. 그야말로 철벽을 친 듯 답답해지는 전략!"

팀 화면에 전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로 도배한 아임 낫 리틀.

­아, 나 자고 옴;;

시청자들의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바 올드 월드 블루스.

"그러니까..."

"응. 집을 잃었어."

밴시 박사... 아니, 레미는 바로 옆자리에서 생글생글 웃는 맹한 눈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초코 우유를 마시며 다리를 휘적거리는 이 소년은 바로 평행세계의 레미, 팬텀 박사.

"집만 잃었으면 이렇게 허무하지도 않지. 제로도, 내가 다니던 직장도, 내가 살던 세상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어."

아마 휴지통에 처박혀 있지 않을까? 라고 자조적으로 말한 팬텀 박사.

"전 여기 있습니다만."

"너 말고. 우리 제로."

제로가 눈치 없게 팬텀 박사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팬텀 박사는 짜증을 내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제로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신, 같이 살자는 거지?"

레미가 팬텀 박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레미의 말에 팬텀 박사가 빙글빙글 웃었다.

"역시 나야. 머리가 좋으니까 바로 알아차리잖아?"

"그래서­"

레미가 마시던 딸기 우유를 탁. 소리 나게 탁자 위로 놓았다.

그리고 팬텀 박사를 보며 말했다.

"내가 얻을 이득은?"

레미의 두 눈이 팬텀 박사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팬텀 박사의 진실성을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팬텀 박사는 레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레미의 눈을 쳐다보았다.

"설거지랑 화장실 청소는 내가 할게."

"오케이. 콜."

레미가 팬텀 박사의 말에 곧바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팬텀 박사도 웃으며 레미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후 딸기 우유와 초코 우유가 담긴 잔이 짠­하고 부딪쳤다.

천재 박사 듀오의 탄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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