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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54화 (154/528)

〈 154화 〉 [153화]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

* * *

도미닉 경과 왈록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입구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건물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거나, 땅과 물이 역전되어 있거나, 유리 대신 나무가, 벽 대신 바다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어째서인지 그래픽이 깨진 것처럼 지직 거리고 있었다.

"저게 뭡니까?"

도미닉 경이 왈록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은 그다지 시력이 좋지 않았음에도 명확하게 보이는 그래픽적 균열을 볼 수 있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사훈이 뭔지 알고 있나?"

왈록이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입구에 있는 돌을 가리켰다.

끝에서 처음까지.

도미닉 경은 예전에도 이 문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저 문구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처음이 다가오는 거야. 누구나 처음은 어색하고, 엉망이고, 어눌하지."

왈록이 외쳤다.

도미닉 경은 문득 왈록이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귀에서 울리는 이명을 그제야 느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도미닉 경은 몇 번이고 되뇌인 그 말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때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폭발이 일어났다.

얼마나 큰 폭발이었던지 건물 한 채가 통째로 공중에 들썩하고 튀어 오르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도미닉 경은 그 소리에 놀라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탱커 노조 건물이 있는 방향이군."

왈록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이내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나자 왈록의 몸이 멈칫했다.

"...잠깐. 지금 폭발이 두 번 일어난 건가?"

도미닉 경은 조용히 손을 들어 손가락 3개를 들었다.

귀에서 들리는 심각한 이명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왈록의 말은 제대로 들렸으나, 도미닉 경은 어째서 그런지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세 번... 세 번이라..."

왈록이 불안한 듯 손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큰일 났군."

왈록의 말을 끝으로 갑자기 세상이 하얀빛으로 가득 찼다.

"예상보다도 더 빠르­"

왈록의 목소리마저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정신을 잃을 듯 말 듯 하얀 세상을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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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무언가를 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코드들.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엄청난 수의 0과 1들.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가차랜드를 이루는 근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청난 지식의 파도가 도미닉 경을 덮친다.

"이상하네. 아직 '태어날' 때가 아닌데."

"뭐, 언제는 제 때 태어났던가? 내가 태어난 때가 기준이 되는 거지."

"내가 태어나는 시각은 불변.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아."

도미닉 경의 뒤에서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쩌면 혼잣말일수도 있었다.

도미닉 경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양복에 코트를 입은 채, 입에 사탕을 물고 있는 어린아이가 비싸 보이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도미닉 경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순식간에 늙어 흰 수염이 가득한 건장한 노인이 되었다.

그는 다시 젊어져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여성이 되었다.

그는 다시 어려져 다시 사탕을 물고 있는 어린이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느낌.

도미닉 경은 그 기묘한 이질감에 몸을 떨었으나, 이내 순식간에 이 상황이 익숙해지고 말았다.

그만큼 눈앞의 사람은 놀라운 친화력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노인이 말했다.

"네가 도미닉 경이구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인원 말이야."

아이와 청년이 각각 한마디씩을 거들었다.

물론 그들은 하나였기에 문장은 한 사람이 말했으나, 여러 사람이 뚝뚝 끊어 말하듯 들렸다.

"말해줘."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왜 내 변덕보다도 하루 더 일찍 일어난 거지?"

도미닉 경은 눈앞의 사람의 말을 이해했으나, 또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이란 말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정직하게 사실을 말했다.

"아."

"미안."

"불변성과 가변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이에게 너무 가혹했구나."

노인이 청년의 입을 통해 아이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정해진 때에 태어나야 할 존재."

"하지만 하루 일찍 태어나고 말았지."

"그리고 오늘은 바로 내가 태어나기로 약속된 날이야."

도미닉 경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엉망진창인 상황에 지식 수용량이 가득 차 넘쳐흐르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

"난 끝에서 태어난 존재."

"다만, 처음을 향해서 갈 뿐."

"가차랜드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아."

도미닉 경이 한계에 다다랐다.

하얀 세상에 흐르던 0과 1이 거꾸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숨어 있던 코드들이 다시 생성되더니, 곧 창문을 지나 다시금 하얀 세상에 도착했다.

[Copyright (C) 0000 Gachaland Sys Industry, Inc]

도미닉 경은 처음 보는 문구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

그 느낌마저 어색해졌을 즈음에...

[알파 테스트 no.13이(가) 끝났습니다.]

[초기화가 진행됩니다.]

도미닉 경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도미닉 경이 숨을 헐떡였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도미닉 경의 얼굴에 식은땀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돌아왔구나,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황급하게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앞치마를 입은 채 도넛을 튀기고 있는 왈록이 있었다.

...

"첫 번째 회귀를 축하해. 후배. 보아하니 성공적으로 회귀한 모양이군."

왈록이 갓 튀긴 도넛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너무 뜨거웠던지 입천장이 데여 펄쩍 뛴 왈록.

그런 왈록에게 도미닉 경은 황급하게 의문점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온 거야."

왔다? 왔었다?라고 잠시 고민하던 왈록이 자기가 한 말을 정정했다.

"아니, 올 거라는 말이 가장 정확하겠군."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온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미닉 경은 왈록의 말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지만, 대답해 줄 수 있는 이가 왈록 밖에 없었기에 그저 독촉을 하는 정도에서 선을 그었다.

"...기억하지 못하는군. 하긴. 첫 회귀때는 다 그렇지."

도미닉 경의 태도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왈록이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가차랜드는 완벽한 세상이 아니야. 오히려 불완정하고, 엉터리인 세상에 가깝지."

완벽한 세상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라고 어깨를 으쓱한 왈록이 말을 이어갔다.

"혹시 하나라도 기억나는 것 있어? 회귀를 경험하는 동안 말이야."

왈록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알파 테스트."

도미닉 경이 마지막에 본 것을 말했다.

거의 유일하게 도미닉 경의 머리에 온전히 남아 있는 단어들이었다.

"좋아. 알파 테스트."

왈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회귀치고 그만큼 기억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가차랜드의 관리는 행정부가, 유지는 시스템 인더스트리가, 운영은 블랙 그룹이 한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말이야, 여기엔 가장 큰 하나가 비어 있어."

왈록이 새로 튀긴 도넛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방향성이지."

도미닉 경이 왈록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게 다 무슨 말이라는 것인가? 라는 표정으로.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이제 진짜 설명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은 가차랜드의 방향성이야. 그는 먼 미래에 태어나 과거로 나아가며 하나하나 마음에 드는 것들을 확인하지.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거야. 예를 들면..."

왈록이 어느 한 곳을 집게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박춘배와 말레이가 서 있었다.

그들은 예전의 모습과 사뭇 달랐는데, 박춘배는 온몸에 폭탄을 둘둘 감고 복면을 쓴 험악한 대머리가 되어 있었고, 말레이는 카드 문양이 새겨진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다이너마이트를 허리춤에 쟁여놓고 있었다.

"저렇게, 캐릭터성의 변화부터..."

집게가 또 한 군데를 가리켰다.

"저렇게 캐릭터의 추방까지 이루어지는 거야."

말 한마디로 이토록 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은 회장밖에 없을걸? 하고 말한 왈록.

그가 가리킨 곳에는 마치 마네킹처럼 더미데이터로만 남아버린 하인스의 껍질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귀 후에 가장 골때리는 점은­"

"하하! 도미닉 경! 위대한 악당 박춘배의 계략을 과연 막아 낼 수 있을까?"

[악독한 박춘배(★)]

"카드 한 장 골라보시지. 아마... 죽음. 정방향이겠군."

[비열한 말레이(★)]

[라이벌리 생성! 박춘배와 말레이가 도미닉 경에게 주는 피해가 50% 증가합니다. 대신 도미닉 경에게 받는 피해도 50% 증가합니다.]

"세상이 완전히 대격변이 일어난다는 점이겠지."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죽박죽이던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건물이 나름 테마에 따라 분류되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엉망진창 섞여 있던 도심지가 테마에 따라 분리되었다.

지금까지 엉망진창이던 세계관이, 나름 정돈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번 회귀는 정말 마음에 드는군. 적어도 깔끔하기라도 하잖아."

왈록이 만족한 표정으로 도넛을 하나 입에 집어넣었다.

도미닉 경은 멍하게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 엄청난 대격변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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