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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53화 (153/528)

〈 153화 〉 [152화]난장판

* * *

도미닉 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왈록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었다.

도미닉 경의 시선을 느꼈는지 왈록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아, 별 건 아니야."

느긋하게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신 왈록은 잠시 커피의 향을 음미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내가 회귀자라는 걸 알려 줬던가?"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회귀 후에 코인을 하다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다른 회귀자들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아마 첫 출근 날 버그와 싸운 직후였던 것 같다.

"가차랜드에서 회귀는 흔한 일이거든. 알지? 얼마 전에도 백섭이 있었잖아."

생각보다 가차랜드에서 시각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서 말이야. 라고 덧붙인 왈록이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다른 회귀자의 개입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맞아."

왈록이 도넛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에 든 도넛 조각을 우물우물 씹어먹은 왈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도미닉 경의 의문에 대답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 방금 전의 폭발이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의 생일이나, 내가 도넛을 좋아한다는 거 말이야."

왈록이 씨익 웃었다.

도미닉 경은 왈록의 대답을 듣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엣­쵸."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꽃이 채 진화되지 않은 폭발의 중심지에서 한 소녀가 재채기를 하는 소리다.

재채기 치고는 굉장히 작고 귀여운 소리였으나, 이 소녀가 한 일을 생각하면 전혀 귀엽게 들리지 않으리라.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는 바로 블랙 그룹의 비밀 연구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그을린 잔해 위에 앉아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하는 소녀는 밴시 박사... 아니, 레미라는 소리였다.

레미는 제로에게 받은 물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았다.

그리고 그을음으로 가득한 보안경을 벗자 시야가 멀쩡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왜 실패하는 걸까, 제로?"

"언제나 그렇듯 레시피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레미가 고개를 돌려 아직 형태는 남아 있는 잔해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무언가를 실험하듯 비커와 플라스크로 가득한... 아니, 가득했을 실험실의 모습.

지금은 엉망이 되었으나, 이 실험실에서 레미는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다.

"아니, 레시피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10번은 넘게 제조했었잖아. 심지어 레시피보다 정확했다고!"

"시스템적으로 락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끙. 그렇다고 해킹으로 우회할 수도 없고."

여기까지 대화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리라.

도대체 이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레미는 레시피도 없이 처음 만들어 보는 '무언가'를 10 번도 더 만들어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레시피보다 정확하게 계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들어도 이상한 대화.

그러나 제로는 익숙하다는 듯 레미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째서 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는가?

"끙. 이번 회차도 레시피를 구해야 하는 거야?"

"5번이 넘는 회귀 동안 한순간도 빠짐없이 귀찮아하시는군요."

"그야... 레시피를 구하기 귀찮으니까."

레미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레미는 [회귀] 태그를 가지고 있다.

사실, 가차랜드에서 회귀는 그리 드문 태그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그때네."

레미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잠시 헤어질 때가 멀지 않았군요."

제로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 곧 다시 만나겠지만."

"네. 다시 만나겠지요."

레미와 제로의 대화는 마치 잠시 헤어질 사람들의 대화처럼 들렸다.

가차랜드에, 도미닉 경만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본사.

그 내부, 임원들이 모인 회의실에는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분의 생일이 언제지?"

시가를 입에 문 남자가 초조하게 물었다.

반대편에서 노트북을 열고 다급하게 타자를 치던 체크무늬 남방의 남자가 말했다.

"관측된 바로는... 내일입니다."

"내일이라."

시가를 입에 문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의 변덕이란."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여성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어디까지 갈까요?"

여성의 옆에 선 비서가 여성에게 물었다.

"글쎄."

여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의 변덕대로겠지."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임원들이 회의실 앞에 떠 있는 PPT를 바라보았다.

PPT에는 회귀 대책 회의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모든 직원에게 알립니다. 내일은 회장님의 탄생일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내일 회장님 탄생일입니다.]

"아. 세상에."

도미닉 경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 시스템 인더스트리 전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왈록은 그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력으로 지낸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번은 너무 빠른 데."

왈록이 투덜거렸다.

"그게 무슨­"

"일단 퇴근할 준비 하자고. 말려들기 전에."

도미닉 경이 왈록에게 무언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왈록은 급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하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왈록의 말대로 퇴근이 정답이었는지, 바로 이어진 시스템 메시지가 말했다.

[모든 직원은 퇴근 후 회장님 탄생의 여파를 대비하십시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도미닉 경은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일단 왈록과 시스템 메시지가 말하는 대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큰 것이 온다고 생각하면서.

...

가차랜드의 하수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박춘배가 비열하게 웃었다.

하수도의 빈 공간에 쌓인 수많은 상자들.

취급 주의가 붙은 작은 언덕 수준의 상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본 박춘배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 폭발이면 탱커고 뭐고 전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겠지?"

그렇다.

이 상자들은 모두 폭발물을 가득 담은 상자.

그리고... 이 공간은 바로 탱커 노조의 클랜 건물 바로 아래였다.

"지반째로 무너지면, 당연하게도 혼란에 빠지겠지."

말레이가 박춘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겉으로는 별일 아닌 것처럼 평온을 유지하는 말레이였으나, 내심 그도 이 엄청난 폭발물을 보고 가슴이 뛰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제 곧, 이 폭발이 끝나면..."

"우리 동맹이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돌입하겠지."

박춘배와 말레이가 마치 동화에 나오는 악당들처럼 마주 보고 비열하게 웃었다.

일성 동맹 측과 양산박이 세운 계획은 이랬다.

일성 동맹이 탱커 노조 건물 아래에 폭약을 설치해 지반과 함께 무너뜨린다.

그럼 탱커들은 당연하게도 혼란스러워할 것이고, 탱커의 입지가 강한 가차랜드의 모든 이목이 탱커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때, 양산박의 인원이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잠입한다.

현재 도미닉 경의 인적 사항이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외부적으로는 시스템을 교란시켜 탱커들의 부활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겉으로 보기엔 둘 모두 이익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상황.

"...이거 좀 불안 합니다?"

테일즈가 사악하게 웃는 박춘배와 말레이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잘 풀릴리가 없습니다. 무언가 있어요."

테일즈의 감이 속삭였다.

"우리가 잊은 무언가라도­"

"이봐, 테일즈."

말레이가 테일즈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걱정하는 것은 좋은데, 주변을 둘러 봐. 다들 불안해하는 거 안 보여?"

말레이의 말에 테일즈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테일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이들.

그리고 테일즈의 말대로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릴 리 없다며 겁을 먹은 이들.

테일즈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아차싶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합니다. 그러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무엇보다도."

박춘배가 테일즈의 변명을 끊고 말을 시작했다.

"잘 풀리면 좋은 걸지. 불안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우린 뒤가 없어. 이미 양산박과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추방당할 명분이 생겨 버린다고."

"그래. 이제 돌이킬 수 없지."

박춘배의 말에 말레이가 동의했다.

모두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하수도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아무튼­"

박춘배가 그 침묵을 깨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조금 있다가 우린 탱커 노조 건물을 무너뜨리고, 최대한 가차랜드에 혼란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일성 동맹의 인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춘배의 말대로 그들은 뒤가 없는 이들.

그렇기에, 뒤가 없는 사람들처럼 날뛰어야 했다.

아니, 날뛰어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양산박이 약속을 지킨다면 말이지만.

"시간 다 됐다."

박춘배가 힐끗 폭발물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터뜨려."

냉정한 한 마디가 하수도의 좁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이들.

그때였다.

테일즈는 어째서인지 불안감에 계속 시달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곧 회장이 깨어날­"

그러나 테일즈의 말이 일성 동맹의 인원들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이미 폭발이 일어나 하수도에 거대한 불꽃과 폭음이 일어났으니까.

폭발은 성공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탱커 노조의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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