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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50화 (150/528)

〈 150화 〉 [149화]탱커 노조

* * *

탱커 노조 소속 의원, 빅 머슬만의 사무실.

빅 머슬만 의원은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천으로 트로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머슬만 의원이 환한 미소로 건강한 치아를 보여 주며 더블 바이셉스 자세를 취하는 이 황금 트로피는 그가 보디빌딩 이벤트 내추럴 부문에서 우승을 하며 받은 보상이었다.

등신대의 트로피를 흐뭇하게 쳐다보던 머슬만.

그때, 머슬만의 팩스에서 종이 한 장이 튀어나왔다.

"...?"

사실 이미 고도의 기술화가 된 가차랜드에서 팩스는 과거의 유산이었으나, 거의 동갑에 가까운 조카의 변덕으로 하나 놓아둔 팩스.

머슬만 의원은 코에 걸쳐진 안경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팩스에 다가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머슬만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사실인가?"

머슬만은 지금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종이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

"...저 여자는 누구지?"

가차벅스의 바깥 전봇대 중 하나.

그곳에서... 닌자가 나타났다.

정확하게 나타난 것은 바로 쿠노이치 히메.

그녀는 가차벅스의 맑은 유리창 너머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도미닉 경과 여성들을 바라보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렇다. 여성들.

도미닉 경은 하나도 아니고, 두 명의 여성과 같이 가차벅스에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째서 히메는 여기서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건 우연의 일치였다.

히메에게 있어서 저번 '데이트'는 실패에 가까웠다.

도미닉 경과 함께 멋지게 활약하기는 했지만 정작 관계 개선에는 실패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히메는 방에 틀어박혀 애착 인형인 우사기 상에게 몇 날며칠 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다.

히메의 아버지, 무사시가 찾아와 조언을 좀 건네기도 했으나 히메는 요지부동이었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는 것이 어떻겠니?'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히메의 어머니, 이치코가 한 말이었다.

딸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어머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히메의 상태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히메도 어머니의 말에 역시 자기 꼴이 너무 꼴불견이라고 여겼는지 이치코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내로 나온 히메.

오랜만에 나온 탓일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들이쉬는 공기는 맑고...

나름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 같았다.

"진작 이렇게 나올걸 그랬네."

히메가 미소를 지으며 거리를 걸었다.

상가를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보이면 잠시 구경하다가 가기도하고,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가 있으면 하나 구입해 먹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자신도 모르게 여우 귀와 꼬리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히메.

히메는 슬슬 간식보다는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시간이었거니와 활동량이 많은 쿠노이치가 겨우 길거리 음식 몇 개... 아니, 몇십 개에 배가 부를 리가 없었다.

히메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평소에도 자주 가던 단골집을 찾았다.

"...줄이 너무 기네."

카드 팩 교환소 앞에 있는 맛집.

최근 히메가 푹 빠진 유부초밥을 전문적으로 하는 집이었다.

평소라면 한두 자리 정도는 비어 있었겠으나, 오늘따라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

히메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그 자리를 떠났다.

기다리기에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큰길로 나온 히메.

급한 대로 닭꼬치를 다섯 개를 산 후 계산하려던 히메가 돈을 건네는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도미닉 경?"

그녀는 방금 전 얼핏 보였던 사람을 찾기 위해 인파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미닉 경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에이 설마. 아니, 그래도...

히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도미닉 경을 향해­

"여기 거스름 돈이요."

"...아! 네! 감사합니다."

히메의 상념은 노점상인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깨져 버렸다.

거스름 돈과 닭꼬치 5개를 받은 히메는 순식간에 다섯 닭꼬치를 뱃속으로 털어 넣고 남은 꼬치를 두고 떠났다.

지금은 배고픔보다 도미닉 경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히메가 큰길의 인파 사이를 지나치며 방금 전 도미닉 경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지나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히메의 키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기에 시야가 매우 제한되는 상황.

하지만 히메가 누구인가.

바로 쿠노이치가 아니던가?

히메는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쳐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길을 지나다니는 인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저 멀리 삼색 깃털을 꽃은 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갈색의 머리카락과 기사의 복장, 그리고 방패를 보아... 도미닉 경이 틀림없었다.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나타난 귀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문득 아버지, 무사시가 했던 조언이 하나 떠오른 히메.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면 절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한 번 찍은 나무가 넘어지지 않았다고 포기하진 않듯이, 열 번, 백 번을 행하면 못 할 일이 없는 것이란다.'

그래. 히메는 저번 데이트를 실패했다.

그래서 뭐?

아버지의 말대로, 열 번, 백 번 시도하면 한 번은 성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히메가 자리를 박차고 도미닉 경이 있는 곳으로 뛰쳐올랐다.

"도미닉 경­"

히메가 우연을 가장해 도미닉 경에게 인사하려고 했으나, 도미닉 경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히메가 본 것은 가차벅스로 들어가는 도미닉 경과 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잠시 뒤 메이드 복을 입은 또 한 명의 여성이 도미닉 경의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

히메의 표정은 마치 악귀, 나찰, 아수라, 야차... 그 어떤 것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악독하게 변해 있었다.

도대체 저 여성들은 누구이며, 왜 도미닉 경과 저렇게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가?

도대체 도미닉 경은 왜 저렇게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가?

아니지, 아니야.

히메의 표정이 부처의 표정처럼 온화해졌다.

히메야, 또 속느냐?

저번에도 오해로 인해 도미닉 경에게 폐를 끼쳐 놓고도 이렇게 또 오해하려고 해?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다스린 히메.

그러나 온전히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해 악마와 천사가 남아 히메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저것 봐. 도미닉 경이 또 기사랑 같이 있네? 심지어 이번엔 메이드와 같이?

악마가 속삭였다.

그러게. 메이드까지 있는 걸 보니까 1 1일까? 아니면 부유한 집안의 영애일까?

천사가 속삭였다.

이야, 저 아름다움을 봐. 젊고, 아름답고, 심지어 강인하고...

히메가 악마의 속삭임에 고개를 들어 판데모니아를 보았다.

그녀의 절반은 고름과 역병으로 가득했지만, 히메가 보는 방향에서는 나름 멀쩡해 보였다.

그래 맞아. 도미닉 경도 남자인데,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쪽을 선택하지 않겠어?

천사가 악마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야말로 누가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상황.

그러나 이렇게 천사와 악마가 모두 부정적으로 말하자 오히려 히메의 머릿속이 냉정해졌다.

그래. 이건 내 오해에서 비롯되는 속삭임이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둘 다 부정적으로 굴리가 없잖아?

라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히메.

그러나 그런 히메의 마음에 다시 불을 붙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저, 저저...저!"

히메가 손가락질하며 도미닉 경과 판데모니아를 가리켰다.

판데모니아가 손을 뻗어 도미닉 경의 볼을 매만지더니, 이내 둘의 얼굴이 겹쳤다.

히메의 처지에서는 판데모니아의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그... 키스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동안 얼굴을 겹치고 있던 도미닉 경과 판데모니아가 다시 멀어졌다.

판데모니아의 얼굴이 불타는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히메의 얼굴이 다시 한번 악귀, 나찰, 아수라, 야차... 그 어떤 것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험악하게 변했다.

...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잠깐."

도미닉 경은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하려고 했으나, 판데모니아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방금 전부터 신경 쓰이던 것이 있어서."

판데모니아의 얼굴이 도미닉 경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판데모니아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기에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다.

특히 가끔 시력이 확 나빠지는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때가.

판데모니아의 얼굴이 도미닉 경의 얼굴을 가까이서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느낌이네."

"...무엇이 말이오?"

도미닉 경이 판데모니아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안대 안쪽 말이야. 내 가면이랑 비슷한 역할이구나. 하고."

난 또 패션으로 쓰고 다니는 줄 알았거든. 하고 낄낄거린 판데모니아.

그녀는 마이페이스적인 기질이 다분했다.

그때, 갑자기 판데모니아의 시야가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도미닉 경과 판데모니아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치 조금만 더 닿으면 입술과 입술이 마주 닿을 것처럼 가까운 것을 말이다.

물론, 이는 시야가 돌아오면서 거리감각이 이상해진 탓에 일어난 착시였으나, 판데모니아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뒤로 확 빼내며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가까이서 남자를 구경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시야가 이상해졌었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 알지?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거 말이야."

"...무얼 말이오?"

도미닉 경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판데모니아의 말에 반문했다.

이렇게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법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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