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148화]탱커 노조
* * *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있어."
판데모니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의 어깨에 달린 갑주가 들썩거리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도미닉 경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판데모니아의 외모는 고름과 진액을 감안 하더라도 20대에 가까운 외관이었으니까.
"그, 뭐랄까. 알고 보면 좀 간단해. 작은 아버지가 결혼을 좀 늦게 하시는 바람에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거지."
도미닉 경이 하나 남은 눈을 깜빡이며 판데모니아를 쳐다보았다.
늦게 결혼한다니. 그런 경우가 있는 건가?
페럴란트에서는 조혼 풍습이 있어 일찍 결혼을 하다 보니 그런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
아.
도미닉 경은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여기 혼기를 놓쳐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 있지 않은가.
바로 도미닉 경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성도 머슬만이겠군. 그렇소?"
도미닉 경이 머쓱하게 아무 질문이나 내뱉었다.
"그런 셈이지. 판데모니아 머슬만."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둘, 아니 셋은 골목을 나와 큰길로 나섰다.
"가차벅스는 이쪽이야."
판데모니아가 손짓하며 걸음을 옮겼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 나쁜 점액이 걸음마다 흘러내렸으나, 이를 더럽다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는 가차랜드였고, 특성에 따라서 얼마든지 신체의 결손, 혹은 부정적인 요소가 발현될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판데모니아는 그런 점액과 고름을 포함하더라도 상당히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도미닉 경은 턱을 쓰다듬으며 판데모니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판데모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하기라도 한 것일까?
"걸음걸이가 상당히 당당하구려.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오."
그럴 리가.
도미닉 경은 판데모니아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있었다.
귀족 출신 기사들의 텃세에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온 도미닉 경이 가진 버릇 중 하나였다.
"그런가?"
판데모니아가 진액이 말라붙은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며 풍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차벅스 가게 안으로 들어선 도미닉 경과 판데모니아는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았다.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모던한 감성이 가득해 기사들끼리 오기엔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게는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도미닉 경은 뭐 마실거야? 난 가차라떼 시키려고 하는데."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오. 나도 같은 것으로 시키겠소. 아. 여기선 내가"
"됐어. 메이드장이 다 결제할 거야."
판데모니아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알코올 소독제를 손에 뿌리고 마구 비볐다.
그리고 항균 물티슈를 꺼내 남은 알콜을 닦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 일련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으나 그저 개성이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가게 안을 바라보았다.
잠깐.
도미닉 경은 이 자리에 앉은 사람 수를 세어보았다.
도미닉 경과 판데모니아, 둘 뿐.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로 갔는가?
"룩 공은 어디로...?"
"아. 걱정하지마. 주차하고 오는 중일 거야."
"주차?"
"설마 그 기계가 본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여기. 대령 완료."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도미닉 경의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그곳에는 의수를 단 날카로운 인상의 메이드가 있었는데, 손에는 가차라떼 3잔이 올려진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이분은...?"
도미닉 경은 방금 전, 판데모니아가 메이드장이라고 한 것을 기억하였으나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확인차 되물었다.
"L003. 내 유모이자 보디가드이자 메이드장. 아, 잘 마실게."
"확인. 내 기쁨."
판데모니아가 룩이 건네주는 가차라떼를 들고 빨때로 쪽 빨아 마셨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판데모니아와 룩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판데모니아가 가차라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미닉 경도 탈 것에 대한 특성이 있잖아. 그런 거야."
아. 하고 도미닉 경이 납득했다.
"아. 고맙소."
메이드장 룩이 도미닉 경에게 가차라떼를 내려주었다.
도미닉 경은 감사의 인사를 한 뒤, 가차라떼를 들고 판데모니아와 똑같이 빨대로 빨아 마셨다.
가차라떼에서는 약간 탄 듯한 진한 단맛이 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잔을 들어 올린 룩이 판데모니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역시나 빨대로 내용물을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잠깐 동안의 정적.
도미닉 경은 이 정적 동안 말없이 이 달콤한 액체를 두어 번 더 빨아들였다.
그리고 더 이상 답답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판데모니아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타이밍도 그렇고, 참 시기적절하게 오신 것 같소. 마치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야,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판데모니아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지, 감시라기보다는... 보호에 가까운가? 관측?"
"당하는 처지에서는. 감시."
판데모니아가 룩에게 묻자, 룩은 판데모니아에게 답했다.
"뭐, 그럼 감시라고 하지 뭐."
흔쾌하게 자기 행동을 수긍한 판데모니아가 가차라떼를 한 번 들이켰다.
"사실, 우리 탱커 노조... 탱커 노조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머슬만 의원이 설명해 준 적이 있소."
"좋아. 그래도 약간 설명하자면 탱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모임, 탱커 노동 조합에서는 도미닉 경 당신을 유심히 보고 있었어."
판데모니아가 손을 펼쳐 도미닉 경을 가리켰다.
"빅 머슬만 삼촌이 탱커의 희망이 나타났다고 얼마나 떠들고 다녔는지, 탱커 노조 내에선 도미닉 경,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긍정. 리틀 도미닉 경. 나도 가지고 있음."
룩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치마 사이에서 리틀 도미닉 경을 꺼내 들었다.
리틀 도미닉 경은 갑자기 밝아진 세상이 어색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사실 당신에 대한 관측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거든. 그런데 당신에 대해서 너무 궁금해진 거 있지? 그래서 바꿨어. 내 의지로."
"경고. 내용이 산으로 갈 여지가 있음."
"아. 그렇지. 아무튼, 우린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어."
"왜 나를 그렇게 감시... 아니, 관찰한 거요?"
도미닉 경은 판데모니아의 진실성 있는 태도에 약간 누그러진 태도를 취했다.
판데모니아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양팔을 책상 위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방금 전 알코올과 물티슈로 닦아낸 상태였기에 책상에 묻어나오는 것은 없었다.
"탱커 노조는, 당신을 필요로 하니까."
"나를... 말이오?"
도미닉 경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빅 머슬만 의원이 제안한 것이었겠지.
"...어째서 나를 탱커 노조에 가입시키려고 하는 거요?"
"빅 머슬만 삼촌은 그저 당신이 스타가 되기를 바라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해. 아니, 우리 파벌은 말이야."
판데모니아가 도미닉 경과 눈을 마주쳤다.
"빅 삼촌은 탱커의 부흥을 위해선 탱커 노조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같은 생각하는 탱커들에게 지지를 받는 입장이고."
"삼촌의 파벌에 있어서, 그들은 조연이야.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말이야."
"하지만 우린 달라. 젊은 탱커들의 생각은 다르지. 왜 우리가 조연이 되어야 해? 우리가 주연이 되어 이끌면 되잖아?"
"그래. 알아. 특정 직업에 대해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트롬이 그랬지."
여기까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나간 판데모니아가 목이 타는지 가차라떼를 쭉 들이켰다.
"도미닉 경 당신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아. 그리고 삼촌의 파벌의 도움이 있다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것이라는 것도 부정하지 않지."
"하지만 거기에 왜 우리가 없어야 하지? 그저 조연으로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도미닉 경이 희망이다. 그러나 우리도 희망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좀 바보 같을지도 몰라. 듣고 웃지 마?"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을 우리 탱커 노조에 가입시킨다는 거야."
판데모니아가 잠시 도미닉 경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도미닉 경이 비웃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안심한 판데모니아가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 적어도 비웃지는 않았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길게 말한 것과 내가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 연관성이 뭐요?"
도미닉 경이 되물었다.
판데모니아는 도미닉 경의 질문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은 그저 판데모니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같이 나아가자는 거지."
"그렇게 말하니 확 와닿는군."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차라떼를 쭉 들이켰다.
사실, 도미닉 경은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는 아직도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경비이기는 했으나 이는 그저 직업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먹은 탓에 도미닉 경은 알게 모르게 자잘한 이득을 놓치는 상태.
그 사실을 기억해낸 도미닉 경은 이제 슬슬 어느 곳이든 소속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미닉 경이 조금 더 고민을 이어 나가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도미닉 경 앞에서 판데모니아는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가입 할래?"
도미닉 경이 결정을 내린 대로 고개를 움직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