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147화]탱커 노조
* * *
"제기랄!"
박춘배가 험악한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침을 탁 뱉었다.
얼마나 급하게 달렸던지, 5분이나 숨을 고르고 있음에도 전혀 숨이 진정되지 않았다.
"설마 거기서 탱커 놈들이 개입할 줄이야."
박춘배가 으르렁거렸다.
"자기들 이권 챙기는 거에는 이골이 난 놈들이니까."
마술사 말레이가 적의를 가득 담아 말했다.
그 뒤쪽에서 간부로 보이는 몇몇이 그들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일성 동맹의 사람들은 탱커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특히나 탱커 노조에 가입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탱커들은 굉장히 편하게 성급을 올리는 것 같았으니까.
딜러들은 얼마나 경쟁이 심한지 파티를 맺으려고 해도 수십 대 일, 혹은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
그러나 탱커들은 그저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수십, 수백의 파티가 러브콜을 보낸다.
누구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차별.
그들은 이 차별을 아니꼽게 보았다.
그럴 수밖에.
사실, 일성 동맹의 시작은 근접 딜러 연합의 끄나풀이었다.
트롬이 의도적으로 사회의 낙오자 딜러들을 모아 선동하고 세뇌시킨 무리가라는 것이다.
당연히 탱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그 근간을 이루었다.
가차랜드의 유쾌함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치졸하고 어두운 정치의 세계!
얼마나 치밀하게 선동하고 세뇌했던지, 가차랜드에서는 일성 동맹이 근접 딜러 연합의 끄나풀이라는 사실을 일성 동맹만 몰랐다.
사실, 이 사실은 현재 박춘배와 말레이에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데리고 갔겠지?"
"글쎄. 그 녀석,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아마도."
박춘배와 말레이가 아련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인스, 너의 희생은 잊지 않으마. 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인스에게 눈짓으로 지령을 내린 것이 박춘배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가식적인 모습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아련하게 자기 세계에 빠져들 뻔했던 둘의 뒤에서 류트를 든 음유시인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렇게 동료를 버리고 와도 되는 겁니까?"
테일즈는 비난한다기보다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둘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봐, 테일즈."
박춘배가 테일즈를 향해 씨익 웃었다.
아니,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우리 일성 동맹은 고작 한 명 잃었다고 무너지지 않아. 오히려..."
"카드 풀에서 우리 카드가 나올 확률이나 오르겠지. 손해 볼 것도 없어."
말레이가 박춘배의 말에 끼어들며 낄낄 웃었다.
그들이 웃고 떠들며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비밀 아지트에 들어섰다.
지금은 과거에 사로잡혀 덜덜 떨기만 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일성 동맹의 간부인 네 사람... 아니, 이제 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며 비밀 아지트의 비밀 문을 닫았다.
...악당들이 생각하기엔 너무 희망찬 문구였다.
...
"우리 기지는 산업지구 북쪽에 있다!"
하인스가 비명을 지르며 기밀을 술술 불고 있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바로 옆에 있는 룩에게 물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왜 저러는 거요?"
"모름. 이해 안감."
하인스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허우적거렸다.
하인스의 앞에는 판데모니아가 검을 지팡이 삼아 짚고 서 있었는데, 그녀도 지금 상황이 황당한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하인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우리 아직 심문도 시작 안 했거든?"
"아플까 봐 미리 부는 거요. 고통에 약하거든."
하인스가 머쓱한 듯 흙먼지가 가득한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전히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하인스 멍청하다! 짐꾼은 다 저렇다!"
"그건 직업 차별적인 발언이다!"
"닥쳐라, 쥐놈아!"
"너도 쥐놈이다, 이 쥐놈아!"
방금 전까지 엉망진창인 전투가 있었던 골목길.
그 골목길은 포박당한 일성 동맹의 인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 엉성한 골목의 분위기에 관자놀이를 짚었다.
마치 시장바닥처럼 떠들어 대는 말들이 좁은 골목에 울려 메아리쳤다.
서로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말들은 점점 소리를 높여가며 서로의 감정을 자극했다.
묶여 있음에도 애벌레처럼 기어가 기어코 추하게 발차기를 날리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판데모니아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너희들은 어째서 '우리' 도미닉 경을 공격했으며, 해킹 툴은 어디서 구한 거지?"
자기 죄를 지적당한 하인스의 동공이 마구 떨렸다.
사실, 방금 전까지 일성 동맹을 위해 한 목숨 바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이런 상황이 되자 목숨이 아까워지기 시작한 탓이다.
하인스의 눈이 빠르게 굴러다녔다.
최대한 자기 죄를 줄여야 했다.
아니면... 희생양이라도 만들던가.
"사실... 저년입니다! 저년이 저희를 꼬셨어요!"
그리고 하인스의 결정은 바로 꼬리 자르기였다.
"...하인스님?"
"저년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저희 일성 동맹이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몰랐습니다! 그저 저 여자에게 속아 넘어간 것뿐이라구요!"
하인스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일단 지르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인스 님! 어떻게 절...!"
하인스에게 지목당한 여성이 상처받은 눈으로 하인스를 노려보았다.
"용사파티에서 잘 다니고 있는 저를 유혹해서 일성 동맹에 가입시킨 건 하인스 님이잖아요! 용사에게 상처 줄 걸 알면서도 하인스님 하나 보고 배신한 건데!"
"그, 그 입 다물어!"
하인스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실, 하인스는 희생양을 잘못 골랐다.
주변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을 골랐던 거지만, 정작 하인스의 죄목만 늘어나는 결과가 나와버린 것이다.
"그, 해킹 툴인 줄도 몰랐습니다. 전 수면제라고 알고 있었다구요! 이, 이건 다 박춘배와 말레이가 절 속여서"
"백주 대낮에 시민을 습격. 해킹 툴 소지. 의도적인 해킹 툴 사용. 악의적인 헤드헌팅."
판데모니아가 어디선가 양피지를 꺼내 깃펜으로 죄명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서늘하게 들리던지, 방금 전까지 필사적으로 자기변호를 하던 하인스의 입이 얼어붙어 버렸다.
"현장 적발, 현장 검거.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음."
판데모니아가 깃펜을 집어던지고 양피지에 적힌 죄목을 하나씩 다시 확인했다.
"룩. 이거 삼촌한테 좀 전달해줄래? 팩스 기능 남아 있지?"
"확인."
룩의 관 옆에서 작은 집게가 튀어나왔다가 양피지를 집어 들며 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미약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다시 양피지를 꺼내 판데모니아에게 건넸다.
"좋아. 사본은 보냈으니 진본을 보관해 두고"
양피지를 둘둘 감은 판데모니아가 인벤토리에 그 두루마리를 넣었다.
"좋아. 이제 여긴 삼촌이 와서 정리해 줄 거야. 끝. 우리가 할 일은 여기서 끝."
판데모니아가 개운한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는 가자고. 도미닉 경? 혹시 커피 좋아해? 커피 한 잔 사줄 테니까 이야기나 조금 나누고 싶은데."
판데모니아가 룩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판데모니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이다.
"좋아. 그럼 저 앞에 있는 가차벅스로 가자. 오늘의 랜덤 라떼가 맛있더라고."
도미닉 경의 수락을 받은 판데모니아가 살랑살랑 눈웃음을 치며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도미닉 경이 뒤따랐고, 도미닉 경의 뒤에 룩이 그 육중한 몸체로 지축을 울리며 따라왔다.
"그,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거요?"
도미닉 경이 뒤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판데모니아가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저들 말이오."
도미닉 경이 손가락으로 포박된 일성 동맹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글쎄."
판데모니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작게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지금."
도미닉 경은 판데모니아가 지금이라고 말한 직후에 바로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니, 하늘이 있었던 곳을 보았다.
맹렬하게 프로펠러를 회전하며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수송용 헬리콥터.
그 거대한 비행체가 좁은 골목으로 보이던 좁은 하늘을 모조리 가리고 있었다.
"오늘은 삼촌이 집에 있었던 모양이야. 이렇게나 빨리 인원을 보내준 걸 보면."
그 헬리콥터에서 수십 개의 줄이 흘러내리더니, 방탄복과 방독면, 그리고 돌격 소총으로 무장한 특공대가 레펠 하강을 시작했다.
"이제 의문이 해결되었지? 문제 해결!"
"아니, 하나 더 물어보고 싶소."
도미닉 경의 의문 중 하나가 해결되었으나, 이내 도미닉 경은 새로운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당신의 삼촌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요?"
"아, 그러네. 그게 궁금할 수도 있겠네."
판데모니아가 녹슨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환하게 웃었다.
"도미닉 경 당신도 잘 아는 사람이야."
비록 반쪽은 진물이 흐르는 가면으로 덮여져 있었으나, 나머지 절반으로도 골목이 환해지는 착각이 들 만큼 환한 웃음을.
"빅 머슬만 의원이 내 삼촌이거든."
도미닉 경은 그 환한 웃음을 멍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머슬만 의원은 23세가 아니던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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