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146화]탱커 노조
* * *
"그래서, 우리 탱커 노조가 눈독들이는 사람을 건드린 자는 누구?"
녹슨 갑옷을 입은 여기사가 끈적한 액체로 인해 부식된 녹슨 대검을 꺼내 들었다.
"수호자. 귀함. 보호해야함."
걸어 다니는 관에 달린 스피커에서 변조된 음성이 나왔다.
여기사가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 뒤에는 강철의 관이 양옆에 달린 중기관총의 총구를 전방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쏠 수 있도록.
좁은 골목길이었기에 대충 쏘더라도 명중률은 100%에 가까울 것이었다.
일성 동맹의 인원들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최대한 엄폐물과 장애물을 만들어 그 뒤어 숨거나, 혹은 옥상이나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도움에 감사드리오."
도미닉 경이 새롭게 나타난 둘에게 고개를 숙였다.
둘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도미닉 경은 이미 제압당해 추방당했으리라.
"뭘. 사실 우리가 좀 늦게 도착한 거긴 한데..."
"탱커. 기동성 느림. 어쩔 수 없음."
여기사가 도미닉 경의 감사 인사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은 그제야 여기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얼굴의 절반은 진액이 흐르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꽤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옷은 전신을 가리는 판금 방식이었는데, 여기저기 녹슬고 뒤틀려 있어 조금만 잘못해도 파상풍의 위험이 있어 보였다.
도미닉 경은 마지막으로 그녀가 든 검을 바라보았다.
무려 2미터에 달하는 클레이모어의 형식을 취한 대검은 녹색의 역겨운 진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는데, 갑옷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몸에 좋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폭음이 들리더니, 도미닉 경의 앞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하하! 티끌도 모이면 강력하다고!"
"이, 이게 맞는 거야?"
"적어도 저놈들은 맞았잖아!"
"어...진짜?"
옥상에서 쥐 수인 떼가 나타났다.
그들의 옆에는 잡철로 만든 조잡한 대포가 있었는데, 얼마나 조잡한지 대포 옆에 있던 쥐 수인 하나는 손이 날아가 깜짝 놀란 상태가 될 정도였다.
갑자기 공격을 시작한 쥐 수인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다들 괜찮은 거요?"
"그래. 인정하지. 방심했네."
"피해 보고. 전무."
포격으로 인한 흙먼지가 가라앉자 쥐 수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셋 모두 아무런 피해 없이 그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미, 믿을 수 없다!"
"한 번 더! 한 번 더!"
"장전봉이 어디 갔지?"
안 그래도 엉성한 대포를 오합지졸인 쥐 수인떼가 다루고 있으려니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전장.
그들이 왜 1성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쥐 수인 떼들은 그나마 일성 동맹에서 가장 뛰어난 포병 전력.
일성 동맹 측에서 쥐 수인들을 중심으로 방진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사격 준비!"
다리 하나를 의족으로 바꾼 깡마른 해적이 소리쳤다.
그러자 골목길의 창문들이 일제히 열리더니 화승총을 든 해적들이 튀어나와 심지에 불을 붙였다.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도미닉 경의 일행을 향해 쏟아지는 탄환.
"위험하오!"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시스템은 도움을 받은 것을 파티 플레이라고 인식했는지 이미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의 툴 팁을 바꿔놓은 상태였다.
11.25%의 피해감소와 함께 최대 체력의 10%에 달하는 보호막이 세 탱커에게 씌워졌다.
당연하게도, 일성 동맹의 사격은 셋의 보호막을 절반 정도 깎는 데 그쳤다.
"그다지 위험할 일도 없는데 말이야."
여기사가 말했다.
"납득. 이해. 공감."
강철의 관에서 음산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둘은 막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세마저 편하게 풀어두고 있었다.
이들은 어째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가차랜드에서는 시너지라는 것이 있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이득.
여기에 모인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탱커라는 점.
그렇다.
3탱커 시너지가 활성화 되어 추가적인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탱커(2/3/4) : 방어력과 저항력이 20/30/40% 상승합니다. 피해를 입을 시 5초동안 잃은 체력의 20/30/40%에 달하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쿨타임 30초)]
도미닉 경의 눈앞에 떠오른 시너지 창.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강해 보이는 효과.
가차랜드는 게임 기반의 세상답게 지속해서 업데이트가 되는 곳.
시너지라고 해서 항상 그대로라는 법은 없었다.
특히 탱커 시너지의 경우, 안 그래도 부족한 탱커를 위해 자잘한 버프를 해준 결과 이처럼 엄청난 시너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길게 말했으나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일성 동맹의 화력으로는, 절대 이 세 명의 탱커들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제기랄."
박춘배가 이를 갈며 갑자기 난입한 두 탱커들을 노려보았다.
쥐 수인들의 대포가 다시 한번 발사되었으나 이번엔 강철의 관이 쏘아낸 미사일의 요격으로 무력화 된 상황.
탱커들이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음에도 상황은 점점 일성 동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박춘배가 힐끔 하인스를 바라보았다.
하인스는 여전히 주사기를 들고 있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
잠시 머리를 굴려 손익을 계산한 박춘배가 골목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후퇴! 퇴각!"
그 말을 들은 이들이 순간적으로 박춘배를 바라보았다.
"퇴각해! 당장!"
그 말을 끝으로 박춘배가 하인스를 한 번 바라보더니, 하수구 뚜껑을 열고는 쏘옥 들어가 사라졌다.
지도자가 도망가 버린 상황에 일성 동맹은 그저 서로를 쳐다보며 멍한 상태로 서 있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곧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여기사가 당황한 듯한 손으로 대검을 붕붕 휘둘렀다.
"야! 이러는 게 어딨어! 당장 돌아와라, 이 명예도 모르는 자식들아!"
"이해할 수 없음. 우리의 승리. 괜한 싸움 필요 없음."
여기사가 씩씩거리며 분노를 표출하자 강철의 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도미닉 경도 갑작스럽게 이겨 버린 이 상황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보다 더 관심이 있는 건 눈앞의 두 탱커였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드리오. 덕분에 살 수 있었소."
가차랜드에서 목숨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실제로 추방당할 뻔했던 도미닉 경으로서는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였다.
"뭘, 다 돕고 사는 거지."
여기사가 고름에 엉망으로 엉킨 장발을 긁적거렸다.
"그나저나 도움을 주신 은인들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했구려. 혹시 이름을 알 수 있겠소?"
"뭐야, 머슬만이 우리 소개도 안 해줬던 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
여기사는 머슬만이 도미닉 경에게 탱커 노조에 대해서 알려 줬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생각해 보니 아직 도미닉 경은 탱커 노조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알지 못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뭐, 그럼 간단하게 소개하지. 난 판데모니아. 저기 깡통은 L00K야. 엘공공케이. 그냥 룩이라고 불러도 되고."
"나. 룩. 별명."
두 탱커는 각각 자기 이름을 말했다.
"나는 도미닉 경이오."
도미닉 경은 그들의 이름을 되새기며 자신을 소개했다.
"알아. 이미 우린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거든."
위기에 딱 멋있게 등장하려고 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어. 라며 머쓱하게 말한 판데모니아.
일성 동맹의 인원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그들이 서로를 소개하는 도중에도 여전히 그들의 곁엔 도망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니, 도망치는 사람들은 그나마 정신이라도 제대로 박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쏴라! 쏴!"
"저, 포신이 휘었습니다!"
"그럼 뒤집어서 쏴!"
아직 패닉에 빠져 마구 포탄을 발사하는 쥐 수인들이나
푹.
"하하! 마침내...?"
주사기를 들고 탱커들을 향해 아무나 맞으라고 기도하며 휘두른 하인스 같은 얼간이도 있었으니까.
주사기의 내용물이 어디론가 흘러 들어간다.
그 끔찍한 액체가 모두 사라지자 하인스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으나, 아무런 이상도 없는 세 사람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 하인스.
빠르게 눈알을 굴리던 그는 마침내 자기 주사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
주사기는 탱커에게 꽂혀 있기는 했다.
"젠장."
다만, 룩의 강철의 육체에 꽂혀, 전혀 의미 없이 땅바닥으로 새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해킹 툴. 의미 없음."
"그러니까. 애초에 그거 막힌지가 언젠데."
"뭐...?"
두 탱커의 대화에 멍한 표정을 지은 하인스.
"막혔다는 것이 무슨 말이오?"
도미닉 경도 두 사람의 말이 궁금한지 되물었다.
"아. 맞다. 이거 최신 정보였지?"
"해킹 툴 악용사례 발견. 중앙 시스템. 해킹 툴 무력화."
"응. 최근에 해킹 툴 피해사례가 속출하는 바람에 중앙 시스템에서 오토 밴 시스템을 풀어 버렸거든. 성좌 하나가 청원을 넣었다고 들었는데 이름이... 아... 아..."
"아임 낫 리틀."
"그래. 아임 낫 리틀."
판데모니아가 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이 눈을 끔벅였다.
아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는 허망한 표정으로 방패를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해킹 툴이 무해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 더 이상 경계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나저나..."
대신, 도미닉 경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하인스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어떻게 할 거요?"
"글쎄."
판데모니아가 턱을 쓰다듬었다.
"아마, 재판에 넘겨지지 않을까?"
하인스의 뒤로 펑! 하고 쥐 수인들이 대포와 함께 폭발하는 것이 보였다.
마치 그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것처럼.
하인스는 상황은 파악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파악했다.
이제 자신은 망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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