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145화]일성 동맹
* * *
박춘배와 말레이는 즉사기마저 극복한 도미닉 경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바라보았다.
즉사기란 무엇인가?
시전 즉시 한 번은 죽인다고 즉사기가 아니던가.
그런 즉사기를 한 번 버텨 내다니.
버티고도 말을 할 겨를이 남아 있다니.
아무리 탱커에 대한 지속적인 버프가 있었다고는 해도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라고 해서 즉사기에 면역인 것은 아니었다.
이는 사실, 도미닉 경이 3성이 되면서 얻은 새로운 특성의 효과를 보기에 생긴 일이었다.
[나이트 배너렛].
직역하자면 상급 기사.
도미닉 경은 현재 탱커 특성의 상위 특성인 나이트 배너렛을 장착하는 상태였다.
새로운 캐릭터 카드를 찍어내면서 잠시 특성을 바꿔놓았던 것.
그리고 그 행동이 도미닉 경의 목숨을 한 번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트 배너렛] : 당신은 기사 중의 기사입니다. 깃발이 추가적인 효과를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이트 배너렛 특성의 설명이었다.
이로 인해, 도미닉 경은 이 특성을 낄 경우 깃발에 추가적인 효과를 얻는다는 설명처럼 T4 사단 깃발의 효과에 추가적인 효과가 붙었다.
특수 기술 [기수]의 효과가 125% 증가하는 것 외에도 효과가 생긴 것이다.
[사단 깃발(T4) : 이 깃발을 든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기수] 효과 125% 증가 및 [죽음 극복] 혹은 [전진 앞으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죽음 극복] : 당신은 죽을 위기에 처할 때 최대 체력의 20%를 즉시 회복하고 죽음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솔로 플레이 전용, 게임 당 1회)]
[[전진 앞으로] : 시전 즉시 당신과 당신의 파티, 그리고 당신이 이끄는 군세에게 5초 동안 최대 체력의 10%에 달하는 보호막을 씌웁니다. (파티/지휘관 전용, 쿨타임 1분)]
과연 3성다운 강력한 기술들.
이 중 [죽음 극복]의 효과가 터지며 즉사기를 한 번 버틸 수 있었다.
박춘배와 말레이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도미닉 경이 괴물처럼 보이기 시작했으나, 알았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알았더라면 오히려 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토해냈겠지.
딜러에게는 절대로 주지 않을 사기 특성을 전부 탱커에게 몰아준다면서 말이다.
저 멀리 종소리가 들린다.
빛 한 줄기가 골목으로 들어와 즉사기를 뚫고 나오는 도미닉 경을 조명한다.
은은한 찬송가가 도미닉 경의 복귀를 축하하는 듯 울려 퍼진다.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깃털들이 휘날리며 도미닉 경의 귀환을 축하한다.
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진 상황의 연속.
도미닉 경의 또 다른 특성, [시네마틱]이 발동된 것이다.
경쾌하게 울리던 종소리는 도미닉 경이 완전히 즉사기 판정을 벗어나자마자 멈췄다.
그야말로 도미닉 경에게 온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효과!
"...즉사기를 어떻게 피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멀쩡한 건 아니군."
말레이가 제대로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제대로 카드를 섞는다는 것은 그가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말레이의 말에 박춘배가 도미닉 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즉사기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갑옷.
멀쩡해 보이지 않는 상태.
말레이의 말 대로였다.
도미닉 경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 즉사기를 막아 냈으나, 완전히 막아 낸 것은 아닌 듯싶었다.
"아마도... 20%."
말레이가 도미닉 경의 체력을 가늠했다.
가차랜드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말레이의 추측은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20%라. 그 정도면 아직 할 만한걸?"
박춘배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둘 다 미안한데"
그때, 어디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지금, 기회인가?"
박춘배와 말레이가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짐꾼 하나를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찰랑거리는 단발.
금발임에도 쓸데없이 좋은 머릿결.
그리고 금발이 아까울 정도로 못생긴 얼굴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아마도?"
"즉사기를 한 번 버티기는 했지만 멀쩡한 상태는 아니야."
박춘배와 말레이가 새롭게 나타난 인물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이 기분 나쁜 사람의 이름은 하인스.
짐꾼 하인스였다.
"이 모든 것을 보니 영감이 떠오르는군요."
하인스의 뒤로 바드 테일즈가 나타났다.
"이 상황을 음악으로"
"닥쳐."
하인스가 눈을 부릅뜬 채 테일즈를 노려보았다.
테일즈는 그 기세에 눌려 입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모자에 달린 깃털도 시무룩해진 듯 추욱 늘어졌다.
"기회라."
테일즈의 입을 막은 하인스가 비열하게 웃었다.
"'그걸' 쓸 데가 온 건가?"
"그게 '그것'이 아니라 '그거'인 거지?"
"그래."
박춘배의 물음에 하인스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불길한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
바로 해킹 툴이었다.
도미닉 경의 하나 남은 눈이 커졌다.
도미닉 경은 저 액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아임 낫 리틀이 죽을 뻔했다며 도미닉 경에게 조심하라고 알려 준 정보였을 것이다.
저 액체를 주입당하면 바로 가차랜드에서 추방.
도미닉 경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제 저걸 저 시대착오적인 기사에게 주입하면 된다는 말이지..."
말레이가 주사기 속에서 불길하게 소용돌이치는 액체를 바라보며 몽롱하게 속삭였다.
"그"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본 테일즈가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테일즈에게 집중되었다.
"'그거'말입니다. 더 있나요?"
"아니, 이거 하나뿐이지."
"그럼 투입에 실패할 경우엔 어떻게 합니까?"
"그러지 않도록 확실하게 제압한 뒤 투입을 해야겠지."
하인스와 테일즈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도미닉 경은 말없이 둘의 대화를 들었다.
체력을 조금 회복할 필요성이 있을뿐더러, 자연스럽게 일성 동맹의 목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만!"
그때, 박춘배가 소리쳤다.
"도미닉 경이 대놓고 회복하고 있잖아, 이 멍청이들아!"
박춘배의 험악한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러게 말이야. 바로 행동으로 옮겨도 모자랄 판에."
말레이가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그러자 손에서 폭죽이 날아가더니, 하늘에 붉은색 불꽃을 수놓았다.
그 불꽃이 신호였을까?
이 어둡고 좁은 골목의 곳곳에서 수상한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이프나 망치, 혹은 모래가 가득 담긴 양말 같은 것을 들고 나타나는 불한당들.
"도미닉 경의 단점은 우리가 잘 알지."
박춘배가 비열하게 웃었다.
"패턴에 약하다는 거? 강약약 강강약약?"
"그거 말고."
말레이의 농담에 정색한 박춘배가 도미닉 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 번에 하나씩만 상대할 수 있다는 점."
그렇다.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로 여러 사람과의 전투에 특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러 사람에게서 버티는 것에 특화된 것일 뿐, 실질적으로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인원은 하나, 많아봤자 둘이었다.
도미닉 경은 뒷걸음질을 치려다 뒤에서 날아온 일격을 감지하고 앞으로 펄쩍 뛰었다.
녹슨 망치가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이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쳤다.
"이런이런, 우리가 당신에 대해서 모를 거로 생각했나?"
박춘배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라. 우리가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좋은 뜻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지."
그렇게 말한 박춘배가 허리춤에 찬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야구방망이로 도끼를 쳐올려 도미닉 경에게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매우 비효율적인 공격방식이었으나, 괜히 박춘배가 최악의 1성 삼대장에 꼽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말레이는 아직 즉사기를 다시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마술 트릭을 써서 아군에게 버프를 주고 있었고, 하인즈는 쓸데없이 여성 동료를 희롱하고 있었으며, 테일즈는 흥이 오르는지 류트를 들고 딩딩거리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고블린이 나타나서 탭댄스까지 추자, 이 골목은 아주 혼란스러운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난장판에서, 도미닉 경은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며 활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파이프를 방패로 막아 낸 도미닉 경이 사람들의 틈새 사이로 길을 발견하였으나, 이내 그곳은 말레이의 마술로 막히고 말았다.
아직 도미닉 경의 체력은 넉넉한 편이었으나, 이대로 가면 제압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도미닉 경은 자기가 제압당하는 순간 해킹 툴을 주입받고 바로 추방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광역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라고 도미닉 경이 실없는 생각했다.
도저히 빠져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자, 도미닉 경은 그저 지금 상황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노력하며 즐기는 사람은 어떨까?
온 세상이 나서서 그런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하늘에서 무언가 육중한 것이 떨어진다.
쿵하고 골목에 낙하한 무언가에 의해서 피어오른 먼지에 일성 동맹의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탱커를 괴롭히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아요."
"음."
아니, 떨어진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잠시 피어올랐던 먼지가 걷히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거대한 강철의 관.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다리를 꼬고 있는 녹슬고 부패한 갑옷을 입은 여기사.
"그것도 말이야, 우리 탱커 노조가 눈독들이는 사람을 건드리는 거라면, 죽어 마땅하지 않을까?"
"음."
여기사가 걸어 다니는 강철의 관에서 땅으로 가볍게 뛰어내리며 도미닉 경의 앞으로 나섰다.
강철의 관의 총구가 도미닉 경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게 향했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