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44화]일성 동맹
* * *
마술사 말라이가 카드를 셔플하며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듯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촤라락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셔플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뿐더러,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 하는 카드들.
그런데도 말라이는 짜잔! 하는 제스쳐와 함께 진지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다시피, 내 이름은 말라이. 일성 동맹에서도 최악의 삼 대장 중 하나."
말라이가 묻지도 않은 정보를 마구 내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했다시피, 우리는 도미닉 경 자네를 좋게 보지 않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소."
"이미 우리가 먼저 공격했잖아. 그럼 예상할 수 있었겠지."
심지어 마이페이스.
말라이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마구 섞어내기 시작했다.
"잠시 우리가 싸우기 전에, 운세를 한 번 보도록 하지. 스페이드 에이스가 나오면 내가 이기는 거고, 나머지가 나오면 도미닉 경, 당신이 이기는 거야."
뜻밖에 잘 섞이는 카드패.
그러나 도미닉 경은 손바닥에 숨긴 카드 하나를 보고야 말았다.
너무 엉성하게 숨기고 있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상태의 카드 하나.
"그, 손에 있는 카드는 뭐요?"
셔플을 하던 손이 움찔하며 멈췄다.
마치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린 말라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 어떻게 트릭을 알아낸 거지?"
말라이는 지금까지 자기 마술을 들켜본 적이 없었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뜻밖에 상냥하기 그지없어, 말라이의 엉터리 마술을 보고도 지적을 했던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무려 7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라이가 마술로 지적받은 적은 바로 지금, 도미닉 경의 일침 한 번이 전부였다.
말라이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
설마, 내 마술의 트릭이 알려진 건가? 아니면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그 순간, 말라이의 떨림이 멎었다.
그래. 맞아. 그랬군.
말라이는 결론을 내렸다.
"당신... 안대 아래에 마법적인 시야를 숨기고 있었군."
그렇다.
자기 마술은 완벽하며, 절대로 들킬 일이 없다.
그렇다면, 도미닉 경이 초자연적인 힘으로 알아맞춘 것이다.
결론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기사였고, 외관 상으로는 전혀 마법적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
남은 곳은 단 하나.
바로 안대의 안쪽이었다.
"사기꾼! 그런 치사한 수법을 숨기다니, 이 사기꾼!"
말레이가 무차별적인 비방을 날렸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황당해진 도미닉 경이 해명을 위해 안대를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시오. 이게 무슨 마법적인 힘이 있다고"
"으헉!"
말레이가 놀라 나자빠졌다.
도미닉 경이 안대를 한 부분은 끔찍할 정도로 패이고 짓이겨진 상처로 가득했다.
가차랜드 내 청소년 필터로 인해 평소에는 검열된 상태로 보였으나, 말레이는 가차랜드에서도 오래 살아왔으며, 그만큼 자극에 목마른 고인물.
그는 비공식적으로 고어와 음란물을 표시할 수 있는 성인 필터를 켠 상태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아무 검열도 되지 않은 엄청난 상처와 흉터는 순간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반응에 도미닉 경은 잠시 당황하다가 아차 싶었는지 다시 안대를 내렸다.
도미닉 경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비주얼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안대 안쪽을 보여 주지 않은 나머지 다른 사람의 반응을 채 생각하지 못했던 것.
말레이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안대 아래는 보여 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법도, 마술도 아니었어! 사술이나 주술, 그것도 아니면 악마와 계약을 했군!"
말레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났다.
"내가 널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더 늘었다, 도미닉 경!"
말레이는 순간 겁을 먹었다.
겁을? 내가?
말레이가 생각했다.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자기는 분명... 분노한 것이다.
정도를 걷는 마법이나 마술이 아니라, 사술을 본 것에 대한 분노.
전혀 사실과는 달랐으나, 말레이는 정신 승리를 시전했다.
"비록 내가 1성이지만 '그것'의 도움으로 3성의 힘을 낼 수 있지. 당장"
"그만. 말레이. 그만해."
말레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도미닉 경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레이가 나타난 골목과는 정반대의 장소였는데, 그곳에는 벽에 기대어 선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있었다.
"박춘배!"
"어이쿠, 세상에. 다 알려 줘라, 다 알려 줘. 아주 동네방네 떠뜰고 다니는구만."
박춘배라 불린 이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자가 사술을 쓰고 있다! 당장 신고를"
"도미닉 경은 그런 거 안 써."
박춘배가 말레이의 말을 끊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도미닉 경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잖아? 말레이 자네의 '망상'은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의'를 잊으면 안 되지."
박춘배의 날카로운 말에 말레이는 차마 반발할 수 없었다.
대신 말레이는 입술을 짓이기며 분을 삼켰다.
도미닉 경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지금 분위기가 그리 험악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긴장을 풀고 방패를 살짝 내려놓은 도미닉 경.
그때 문득 의문점 하나가 생겼다.
도대체 이들이 말한 목적은 무엇이며, 왜 자신에게 적의와 호의를 동시에 가지는가?
왜 이들은 도미닉 경을 습격했는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 도미닉 경이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은 박춘배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이며, 왜 나를 공격한 거요?"
"아, 그렇지."
박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일성 동맹"
"그건 알고 있더군."
말레이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그런 말레이를 흘낏 째려본 박춘배가 말레이에게 주의를 주며 말을 이어갔다.
"좀 조용히 해. 아무튼, 우리 일성 동맹은 말 그대로 일성들로 이루어진 클랜.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 년이 넘도록 일성인 사람들이지."
"보통 일성에서 이성으로 가는 시각은 약 2년에서 5년 사이. 이성에서 삼성으로 가는 것은 거기서 5년 더."
"그런데 말이야, 어디 사는 누군가가 반년도 안 되어서 3성을 떡하니 찍었네?"
"그러면 사람들이 질투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 비결이 뭔지 궁금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바로 그거야. 도미닉 경, 자네에게 호의와 악의를 동시에 가지는 이유가."
"우린 질투하는 셈이야. 자네의 유능함을."
"그리고 우린 동경하고 있지. 자네의 유능함을."
"뭐, 걱정 하지마. 적당히 습격하고, 적당히 친해지는 게 우리의 첫 목표거든.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좋아."
도미닉 경은 박춘배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꽤 긴 말이었으나, 핵심을 말하면 바로 위의 대화로 요약이 되는 상황.
도미닉 경은 박춘배와 말레이를 서로 바라보았다.
호의적인 얼굴의 박춘배.
악의로 가득한 말레이.
"어때, 우리와 나름... 줄타기하는 관계가 되지 않겠나? 우린 자네와 치고받고 싸우며 친해지고 싶은데."
마법 소녀와 악의 조직이 싸우다 정들어 결혼하듯 말이야. 라는 농담과 함께 손을 건넨 박춘배.
도미닉 경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
박춘배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누구나 더 나은 사람에게 질투심을 품거나 경쟁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
그저, 이들은 그 욕망에 더 충실하게 도미닉 경과 관계에 대해 확실한 선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무언가 찜찜함을 느꼈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서로 친해지는 것은 좋았으나, 어딘가 논리가 비어 있고 엉망진창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도미닉 경은 잠시 박춘배의 눈을 바라보았다.
박춘배는 여전히 호의적인 눈빛으로 도미닉 경을 보았다.
도미닉 경은 그 눈빛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고 다짐했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소."
"뭐지? 다 알려주지.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말이야."
박춘배는 험악한 얼굴이 더 험악해질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눈빛은 그대로였다.
"방금 말레이 공이 '그것'만 있다면 3성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했지."
박춘배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도미닉 경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박춘배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지워졌다.
"혹시, 당신들은..."
박춘배의 고개와 눈동자가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레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온 얼굴로 명령을 전달했다.
공격해.
"양산박과, 무슨 관계요?"
도미닉 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미닉 경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아니, 도미닉 경은 철로 된 관에 갇혀 버렸다.
안에 가시가 빼곡히 달린 강철의 관, 아이언 메이든의 뚜껑이 닫히며 안에서 우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어떻게 할 거야, 박춘배? 작전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은데."
박춘배와 말레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실, 이들은 지금까지 어설픈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방심을 유도한 뒤, 굿 캅 배드 캅 전략으로 호감을 쌓아 도미닉 경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전.
그러나 도미닉 경은 놀랍게도 명석하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그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실을 알아버린 것이었다.
너무 급한 나머지 도미닉 경에게 즉사기를 날려 버리기는 했으나, 어차피 가차랜드에서는 가치만 있다면 얼마든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
조만간 도미닉 경이 일성 동맹의 뒤를 캘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일성 동맹에게 매우... 귀찮은 일이었고.
"뭘 어째? 당연히"
박춘배는 플랜 B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말하기 직전...
끼이익하고 소름 끼치는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박춘배와 말레이가 고개를 돌려 아이언메이든을 쳐다보았다.
아이언 메이드의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손가락이 돋아나더니, 이내 점점 틈을 넓혀나갔다.
마침내 열 손가락이 모두 보이자, 손등에 힘줄이 돋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언 메이든이 열렸다.
"위험할 뻔했소."
그리고 그 안에서, 너덜너덜한 갑옷을 입은 도미닉 경이 뛰쳐나왔다.
박춘배와 말레이가 질린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즉사기마저 극복했다고? 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