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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44화 (144/528)

〈 144화 〉 [143화]일성 동맹

* * *

노을마저 사라져가며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간.

도미닉 경은 카드 팩 교환소를 나와 거리를 걸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사람들이 도미닉 경의 카드에 열광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리틀 도미닉 경을 가진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가차랜드에서 일어난 일로 제법 명성을 쌓았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는 했으나, 생각보다 더 큰 반응에 멍해진 상황.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내 자신에게 엄격했던 걸지도 모르겠군."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나저나..."

문득 도미닉 경은 카드 팩 교환소에서 받은 돈을 확인했다.

제법 많은 액수의 가차석과 크레딧.

도미닉 경의 카드가 속한 카드팩이 팔리면서 그 비율만큼 정산된 돈.

돈에 그다지 관심이 덜한 도미닉 경이었으나, 이렇게 눈앞에 거금이 생기니 조금은 다른 마음이 들었다.

"오늘 저녁은, 좀 호화롭게 먹어볼까."

도미닉 경의 관심이 저녁 식사에 쏠렸다.

척박한 페럴란트 출신으로서 편식하거나 종교적 이유로 못 먹거나 하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

지금 도미닉 경은 온전히 크랜베리 잼을 얹은 미트볼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었다.

저번에 거리를 걷다가 보았던 미트볼.

고기는커녕 먹을 것도 부족한 페럴란트 출신인 도미닉 경으로서는 그 맛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주급으로 돼지고기를 받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병들고 굶주린 돼지여서 맛이 별로였다.

하지만 가차랜드에 도착해 먹은 고기는 가히 천상의 맛.

그 맛을 기억하는 도미닉 경으로서는 고기로 만든 완자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크랜베리 잼의 존재.

크랜베리 잼을 바른 미트볼이라니.

도대체 어떤 맛일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도미닉 경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성격.

호기심을 바로바로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호화로운 저녁에 대해서 기대하며 골목길로 들어선 바로 그때­

"춉!"

탓. 하고 도미닉 경의 목 뒤에 충격이 가해졌다.

도미닉 경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하! 보라니까! 이거 먹힌다고 했지!"

"이게 왜 진짜야...?"

의문의 목소리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도미닉 경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탱커]특성이 엉성한 상태 이상을 저항합니다. 저항 성공!]

도미닉 경은 특성을 통해 다시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다.

물론, 습격한 이의 기습이 너무 허접한 나머지 특성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버텼을 것이지만.

멀쩡하게 다시 몸을 바로 세운 도미닉 경이 습격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둘.

왼쪽에 있던 키가 작은 사내가 당황한 듯 높은 목소리로 키 큰 사내에게 말했다.

"이봐! 아무 효과가 없잖아!"

"어...? 이상하다? 영화에선 이렇게 하면 기절하던데...?"

키 작은 사내가 역정을 내자 키 큰 사내가 당황해 머리를 긁적였다.

도미닉 경은 이 황당한 상황에 말문이 막혀 어이가 없다는 듯 둘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도대체 왜 이 둘이 도미닉 경의 뒷목을 쳤는지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노, 노려보고 있어!"

"그, 좋아. 저 사람은 눈이 하나니까, 우리가 양쪽으로 찢어지면 하나는 살 수 있을 거야."

"그, 그럼 니가 왼쪽으로 가. 내가 오른쪽으로 갈게!"

키 큰 사내가 왼쪽을 돌아보았다.

왼쪽은 벽으로 막혀 있었고, 도미닉 경의 입장에서 안대를 끼지 않은 방향이었다.

"싫어! 니가 왼쪽으로 가! 내가 오른쪽으로­"

"중간에 끼어들어서 미안하오."

도미닉 경이 이 황당한 촌극을 잠시 멈추며 끼어들었다.

키 작은 사내와 키 큰 사내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도미닉 경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골목에서 들어오는 빛이 역광이 되어 도미닉 경의 눈만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은 둘에게 있어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을 정도의 공포였다.

"무, 무엇을 알고 싶으신 겁니까?"

"야! 비밀 서약했잖아!"

키 큰 남자는 순식간에 도미닉 경에게 압도 되었는지 고분고분하게 말했으나, 키 작은 남자는 자기가 한 계약을 생각하며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마, 맞아. 비밀 서약."

키 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는 것처럼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전장에서 검을 휘두를 줄이나 알지 심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도미닉 경은 쉽게 대안을 떠올릴 수 없었다.

"이를 어쩐다..."

도미닉 경이 무의식적으로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방패의 표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저 말해도 될까요? 갑자기 배신하고 비밀을 막 털어놓고 싶습니다!"

"저 작은 놈은 덩치가 작아 알고 있는 것도 적습니다! 제가 더 많이 압니다!"

사실, 이 둘은 도미닉 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이었다.

도미닉 경을 습격하려고 했으니, 습격 대상을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그리고 며칠 전, 행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낸 둘.

무려 하룻밤을 꼬박 새며 트롬을 제압한 사실을 알아낸 둘은 도미닉 경에 대한 정면 승부는 답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렇게 기습을 하다가 실패한 것이고.

모르는 사람들이 방패를 매만지는 도미닉 경을 보았더라면 그저 대기 모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정도 어설프게 진실을 알고 있는 둘은 그 모습이 협박처럼 느껴졌다.

8시간 동안 방패로 맞기는 싫다.

그 생각에 닿자마자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백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일성 동맹이라고 합니다. 별이 하나인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랜이지요."

"우리 기지는 북쪽에 있습니다!"

"원한다면 거기까지 안내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비굴하게 변한 두 사람.

도미닉 경은 이게 무슨 일인지 또 한 번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뭐... 거기까지 알고 싶었던 건 아니­"

"이거 참, 역시 1성 짜리인가? 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군."

그때 골목에서 음산한 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서늘하게 바닥을 타고 흐르듯 퍼지는 안개로 시야가 흐릿해지자, 어두운 골목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배신이라니, 역시 1성짜리를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인가?"

"누, 누굽니까?"

"저희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두 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인원을 향해 소리쳤다.

"알다마다."

휙. 하고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하늘하늘 거리는 소리.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윽...?"

두 남자의 목에 가느다란 실선이 그어졌다.

키가 작은 남자는 그나마 자기 목을 쥐어 잡으며 한 마디 외침이라도 남겼으나, 큰 남자의 목은 그대로 흘러내려 땅으로 떨어졌다.

"배신자들."

어두운 골목에 드러난 실루엣이 경멸스럽다는 듯 말했다.

도미닉 경은 손에 쥐었던 방패를 들어 올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새롭게 나타난 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아냈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요?"

도미닉 경은 경솔하게 먼저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도미닉 경은 대화를 시도했다.

"자네에게 결코 좋은 마음을 품지는 않은 자."

실루엣이 대답했다.

여전히 안개는 자욱하고, 골목은 어두웠다.

도미닉 경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 상황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배신자라고 했으니, 당신도 일성 동맹의 사람이오?"

"...놀랍군. 그렇게 유추할 줄이야."

의문의 실루엣이 감탄을 터뜨렸다.

"그 정도까지 알 정도라면, 내 정체를 숨길 이유도 없겠지."

차가운 안개가 도미닉 경의 다리에 휘감겨 서늘한 감각을 새겼다.

탁. 탁. 탁. 하고 어두웠던 골목에 달린 등불이 켜졌다.

일렁거리는 불길을 따라 춤추는 그림자.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마술사였다.

"어땠는가, 내 마술이? 신체 절단 마술말이야."

마술사가 카드를 하나 날렸다.

그러나 그 카드는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펄럭이며 땅에 떨어졌다.

도미닉 경은 그 카드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미닉 경의 이름값이 높다더니, 설마 내가 일성 동맹이라는 것을 알아맞출줄이야."

마술사가 카드를 손에 올려 두고 스윽스윽하더니 카드가 사라졌다.

그러나 얼마나 엉성하던지 손목 소매에 숨긴 카드가 슬쩍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바로 마술사 말라이라는 것까지 알아맞추다니."

"...거기까진 몰랐소."

"알아낸 시각은 다르지만, 결국 알아내긴 했잖아. 그게 그거지. 놀라워."

마술사는 아주 신비한 척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비둘기가 날아가거나, 지팡이가 꽃이 되거나, 가슴팍에서 꺼낸 손수건이 무한대로 나타나거나...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도미닉 경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이 마술사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마술과 화술에 있어서는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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