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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43화 (143/528)

〈 143화 〉 [142화]일성 동맹

* * *

광기가 가득한 카드 팩 교환소.

이를 바라보고 있는 건 도미닉 경만이 아니었다.

카드 팩 교환소 맞은 편 골목에 기대어 긴 대기줄을 바라보던 수상한 사람이 골목의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 옆의 골목에서 후드를 쓰고 싱글벙글 웃는 사람들을 관찰하던 이가 인파 사이로 숨어들었다.

카드 팩 교환소 안, 의자에 앉아 있던 두꺼운 안경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슬픔에 빠진 이들을 훑어보고는 거리로 나왔다.

하나하나만 본다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이들.

"아."

"죄송합니다."

인파 사이에 섞여 있던 후드를 쓴 이가 카드 팩 교환소에서 나오던 안경의 남자와 부딪쳤다.

후드를 쓴 이는 대충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안경을 쓴 남자가 구겨진 옷을 탈탈 털었다.

옷 위로 부자연스러운 무언가의 형상이 보였으나, 이내 털어내는 손길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안경을 쓴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그 일련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몇 번이고 꺾은 뒤에야 발길을 멈춘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을 잃은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남자의 시선은 명확하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을 쓴 남자는 한참 동안 벽을 훑어보더니, 이내 원하는 것을 찾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어가는 벽에는 타이포그래피로 하나의 기둥을 그려놓은 상형문자들이 있었다.

상형문자에서 유일하게 다른 부분, 붉게 쓰인 글자 쪽을 세 번 두드린 남자는 한 발자국 물러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들어와."

남자의 뒤쪽, 벽의 그늘진 부분에서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나타났다.

방금 전 골목에 서서 대기줄을 바라보던 수상한 남자였다.

그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검고 무거운 문을 연 채로 안경을 낀 남자에게 손짓했다.

안경의 남자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골목의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골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

"초대장."

험악한 인상의 수상한 남자가 복도를 걸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경을 쓴 남자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수상한 남자에게 건넸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초대장을 펼친 수상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쓴 남자에게 종이를 돌려주었다.

"과연. 하인스의 추천으로 온 건가."

험악한 인상의 남자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험악한 건 여전했으나, 그나마 볼 만한 얼굴이 되었다.

"하인스의 추천이면 믿을 수 있지."

험악한 인상의 남자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옆에 있는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경첩이 낡고 녹슬었는지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는 문.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활짝 열고 안경의 사내를 향해 웃었다.

"일성 동맹에 온 걸 환영한다, 친구."

양팔을 활짝 펴고 격렬한 환영을 보낸 험악한 인상의 사내.

그의 팔 뒤, 수많은 사람이 안경을 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곳이 정말 존재했다니."

안경을 낀 사내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3년이나 있었는데도 감히 짐작도 하지 못했소."

"그럴 수밖에."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씨익 웃었다.

"우리 일성 동맹은 클랜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엉망진창 오합지졸이었거든. 최근에 스폰서가 붙으면서 세를 불려 나갈 수 있었지."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를 단검으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토끼 모양으로 예쁘게 잘린 사과를 깨끗한 접시에 예쁘게 올려놓은 사내는 그 사과를 안경의 사내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손님 대접용인 모양이었다.

안경의 사내는 사과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험악한 인상의 사내의 기대에 찬 눈빛에 무심코 하나를 먹고 말았다.

"아무튼, 이제 자네도 우리 일성 동맹의 일원이 되기로 했으니 자기소개를 조금 해볼까. 내 이름은 들어 본 적 있을지도 몰라. 개암 3동의 자랑, 박춘배라고 아나?"

"박춘배."

안경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캐릭터 카드를 너무 많이 찍어내 1성의 함정 삼인방이라고 불리는 이가 아니던가.

심지어 10년이 넘도록 2성을 찍지 못해 어디 쓸 데도 없다는 평을 듣는 함정 카드.

안경의 사내가 눈을 빛냈다.

가치가 세상의 전부인 가차랜드에서 10년 넘게 1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차랜드에서 생존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어떠한 가치를 바로 이 박춘배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일성 동맹의 맹주를 담당하고 있지."

"얼마나 오래 맹주로 있었던 거요?"

"10년."

아. 안경의 사내는 마침내 의문이 풀린 듯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들은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고, 일단 자네를 소개하는 게 먼저겠지. 가능하겠나?"

박춘배가 안경의 사내에게 말했다.

어두운 방, 전등 하나에 기대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안경을 쓴 남자에게 몰렸다.

"물론이오."

안경을 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의 명성보다는 못 하지만 최근 함정 4인방이라고 가끔 불리는 사람이 있지."

어디선가 디리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빼곡히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이 악기 소리가 어디서 들려왔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마구 돌렸다.

"개암 3동의 자랑 박춘배, 짐꾼 하인스, 보급형 마술사 말라이..."

디링. 하고 또 한 번 악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아성에 도전하는 최악의 도전자, 바드 테일즈."

탁! 탁! 탁! 하고 있을 리 없는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그 조명 아래에는 실크햇과 지팡이, 그리고 탭 슈즈를 입은 고블린들이 나타나 춤을 추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 세상에! 불운한 일이군요♬ 대부분의 선택은 새롭지 않죠♪ 당신이 운이 좋았더라면♭ 황소에 치이진 않았겠지♬ 세상에, 불운한 일이군요♩"

노래가 끝나자마자 불이 꺼지고 고블린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경을 낀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안경은 그저 위장에 불과했다.

어느새 안경을 벗고 바드가 입을 법한 빵모자와 헐렁한 중세풍 의상으로 갈아입은 바드, 테일즈가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드 테일즈.

특성과 스탯과 특수 기술이 모두 따로 노는 자!

그가 가차 풀에 등록된 것은 2년 전이지만, 그의 카드는 등록되자마자 엄청난 욕을 먹었다.

특성 [바드]는 노래를 통해 아군을 지원하는 지원가에 가까웠으나, 그의 스탯은 공격 속도에 몰려 있었고, 그의 특수 기술은 소환술이었다.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

그뿐이랴, 테일즈에게는 아주 큰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노래를 못 부른다는 점이었다.

세상에서 노래를 제일 못 부르는 자!

얼마나 노래를 못 부르는지 지나가던 고블린들이 내가 더 잘하겠다며 노래를 부를 정도.

방금 전에도 테일즈가 노래를 부르기 전에 고블린들이 나타나 노래를 불러 준 것이었다.

최악의 1성 라인인 짐꾼 하인스와 개암 3동의 자랑 박춘배, 그리고 보급형 마술사 말라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도 최악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최악의 1성!

"이거... 대단한 녀석이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군."

방금 전까지 관심 없는 척 카드 마술을 하고 있던 마술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나 마술을 못 하는지 바보도 트릭을 알아차릴 정도였으나, 그는 여전히 당당하게 카드를 손에 숨겼다가 드러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제 그 녀석만 오면 다섯 손가락이 완성되는 건가?"

등에 작은 가방을 맨, 금발로 염색한 단발의 남성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그는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고 이빨이 몇 개 없는 사람이었다.

피부는 바짝 탄 상태였으며 어째서인지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이들의 정체를 바로 알 지도 모른다.

아니, 카드 팩 교환소에서 카드를 뽑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얼굴들이었다.

보급형 마술사 말라이와 짐꾼 하인스.

아니, 주변을 둘러보라.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은 카드 팩을 개봉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이들이었다.

그리고 한 번쯤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파쇄기로 갈아버린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역시나."

사람들의 시선이 테일즈에게 쏠려 있을 때, 박춘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 일성 동맹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기분이군. 참 기분이 좋아."

"고맙소."

테일즈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 지, 테일즈가 박춘배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초대장에 적힌 '그것'말인데..."

"쉿."

박춘배가 테일즈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비밀기지로 간 이후에. 오케이?"

박춘배의 말에 테일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박춘배가 씨익 웃으며 테일즈의 입을 막아두었던 손을 떼었다.

"그럼, 다들 비밀기지로 가자고. 신입에게 설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

과연 일성 동맹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가져올 파장은 무엇인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곧 알게 되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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