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140화]복각
* * *
도미닉 경의 카드가 복각되고, 새로운 카드들이 카드 풀에 합류하는 날.
오늘도 카드 팩 교환소는 서버가 견디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번엔 확률이 어떻게 된대?"
"0.5%래."
"...그 정도면 할 만한데?"
"그렇지? 난 집도 팔고 왔다니까. 분명 그 안에 뽑을 수 있을 거야."
하하 호호 웃으며 대기열에서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
물론 그 대화 내용까지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저번처럼 소숫점 7자리까지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0.5%.
200장 당 하나의 확률.
그 정도면 픽업 캐릭터 카드를 천장 쳐서 먹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라는 계산.
"그런데 말이야..."
귀족의 복식을 한 사람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기열을 바라보았다.
"대기열이 조금, 길지 않아?"
귀족의 말에 사람들이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기까지가 3만 명입니다. 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다.
사실, 셴롱이 예측한 5만이라는 숫자에는 한 가지 큰 오류가 있었다.
리틀 도미닉 경을 판매한 첫날의 예약 인원수만 2만이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현재 예약 인원이 실시간으로 만 명씩 증가하는 상황에서, 5만 장이라는 숫자는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
무엇보다도 한 사람당 하나만 뽑을 거라고 예측한 것이 패착이었다.
도미닉 경은 현재 3성.
그리고 복각한 카드는 과거와 똑같이 2성.
3성으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똑같은 카드를 뽑아 돌을 얻어야 했으니, 적어도 2장은 뽑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겨났다.
실제로 이 광기의 중심지에 있는 방독면의 지휘관을 보라.
그는 기존의 도미닉 경을 2장 뽑고도 3성 라이더 도미닉 경을 하나 더 뽑은 뒤, 다시금 기존의 도미닉 경을 뽑으려고 가진 재화를 모두 쏟아붓고 있었다.
미리 뽑아 둬서 나중에 4성으로 진화시킬 재료를 쌓아두겠다는 심산.
만일 운이 좋다면 5성으로 갈 만큼의 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서 도미닉 경의 카드를 뽑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여기, 이 광기가 넘치는 카드 팩 교환소에 새로운 이가 들어왔다.
"이해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제가 받은 명령이 있으니..."
이제 거의 인간에 가까워진 안드로이드, 코드 제로 백이었다.
제로는 양팔에 리틀 도미닉 경의 인형을 하나씩 낀 상태로 비어 있는 창구에 앉았다.
"어서 오라냥... 혹시 그거 리틀 도미닉 경이냥?"
창구에 앉아 지루하다는 듯 손님을 응대하던 고양이 수인이 눈을 빛내며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현재 예약이 밀리고 밀려 받는데 두 달은 걸린다는 리틀 도미닉 경.
어떻게 제로는 그런 도미닉 경의 인형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그녀가 최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두뇌는 인공 지능이었으며, 슈퍼 컴퓨터를 아득히 웃도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했고, 자체적으로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으며 그 누구보다 새로 고침이 빠른 것이다.
그렇게 터지기 직전의 서버를 뚫고 두 개의 인형을 손에 넣은 그녀.
물론 리틀 도미닉 경의 인형을 산 것은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다.
'오빠 인형이 나온대. 우리라도 사줘야지. 혹시 모르니까 2개 주문해.'
밴시 박사... 아니, 도미닉 경의 동생, 레미의 부탁이었다.
제로는 자기 창조주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정말 리틀 도미닉 경의 인형을 두 개를 샀던 것이다.
리틀 도미닉 경의 인형을 산 순간, 제로의 임무는 성공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카드 팩 교환소로 왔는가?
그것 역시 제로의 성능이 너무 좋은 것에서 비록되었다.
제로의 정보 수집능력은 그녀의 연산회로만큼이나 뛰어나서, 보통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정보까지 수집하는 경향이 있었다.
너무 성능이 좋은 나머지 효율이 나쁜 역설적인 상태.
제로는 정보의 바다에서 리틀 도미닉 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원본 리틀 도미닉 경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리틀 도미닉 경 인형은 캐릭터 카드를 인스톨해 움직일 수 있는 자율형 인형.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는 외부를 구성하는 하드 웨어와 영혼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로 나뉘었다.
소프트 웨어가 없다면 제로는 그저 안드로이드였고, 하드 웨어가 없다면 제로는 그저 인공 지능일 뿐이었다.
심, 기, 체.
심(心). 소프트 웨어.
기(?). 특성과 기술들.
체(?). 하드 웨어.
이 삼박자가 완성되어야 '코드 제로 백'이라는 개체가 완성되는 것이다.
...출처는 가챠 위키였다.
제로가 리틀 도미닉 경들을 쳐다보았다.
현재 이들은 심, 기, 체 중 체, 즉 하드 웨어만 존재하는 상태.
반 쪽도 아닌 33%의 상태로는 리틀 도미닉 경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이 제로의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나머지 67%를 채우기 위해 제로는 카드 팩 교환소를 들린 것이다.
캐릭터 카드는 영혼 뿐만 아니라 기술도 채워줄 것이니까.
캐릭터 카드를 뽑는 순간, 이 미완의 리틀 도미닉 경은 온전히 리틀 도미경으로 거듭나리라.
물론 레미가 제로의 행동과 생각을 알아차렸다면 바로 조율에 들어갔겠지만, 현재 레미는 실험으로 인해 바쁜 상황.
제로의 이상 행동을 제지할 방도가 없었다.
제로는 주머니에서 가차석을 꺼내 들었다.
레미가 제로를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끔 주는 용돈이었다.
모으고 모은 가차석이 대략 12,000 가차석.
한 팩, 10장을 깔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도미닉 경이 들어 있는 팩 하나요."
"우와 저거 실물은 처음 본다냥... 아, 팩 하나? 알겠다냥."
가차석을 받은 직원이 기사 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제로의 연산 회로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각 카드 별로 도미닉 경이 나올 확률이 0.5%.
필요한 카드는 두 개이니, 확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제로는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운이라는 것은 없다.
확률만이 있을 뿐.
...물론 이것도 가차 위키에 적힌 명언을 가장한 뻘소리였지만, 제로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산을 마친 제로는, 가차석을 받고 팩을 건네려는 직원에게 말했다.
"지금 손댄 거 말고, 저 뒤 왼쪽에서 17번째, 아래에서 8번째 팩으로 주시길."
팩을 건네려는 직원이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저거 말이냥?"
직원은 귀찮다는 듯 주려던 카드 팩을 다시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서서 제로가 말한 카드 팩을 꺼내 왔다.
제로는 그 카드 팩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기계다운 반듯한 궁서체로 팩에 서명했다.
그러자 카드 팩이 개봉되며 찬란한 무지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운이 좋다냥!"
고양이 수인이 축하한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러나 수인의 움직임이 곧 멈췄다.
카드 팩에서 나온 것은 5개의 무지갯빛 카드와 5개의 금색 카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고양이 수인은 컨셉조차 잊은 채 이 엄청난 운의 결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직 고양이 수인은 진정한 '공포'를 본 것이 아니었다.
"도미닉 경."
리틀 도미닉 경으로 금색 카드를 하나 뒤집은 제로.
그 자리엔 도미닉 경 카드가 있었다.
"도미닉 경."
또 하나의 금색 카드.
역시나 도미닉 경의 카드였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
이번엔 대담하게 두 장을 뒤집은 제로.
...역시나 도미닉 경의 카드.
아니, 도미닉 경의 카드가 아니었다.
제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카드도 복각된 건가? 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뽑은 카드는 도미니카 카드 두 장이었다.
"와 진짜 지금까지 여기서 일하면서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은 처음 본다. ...냥."
직원이 어떻게든 평정심을 되찾고 컨셉을 지켜내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금색 카드.
그러나 제로는 그 카드를 외면한 채 무지개 빛 카드로 시선을 옮겼다.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직원이 제로에게 물었다.
"왜 저건 안 까냥? 이왕이면 까는 것이 보기 좋지 않냥?"
합리적인 의심.
그러나 제로의 대답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미닉 경이 아니니까요."
"...?"
그걸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여기 오래 일한 자신도 어떤 카드가 나올지 모르는 마당에?
무지개 빛 카드의 차례.
"라이더."
그 말에 라이더 도미닉 경이 나왔다.
"스팀펑크."
그 말에 스팀펑크 도미닉 경이 나왔다.
그 이후 두 장의 무지개 빛 카드를 뒤집었으나, 더 이상의 도미닉 경 카드는 없었다.
제로는 마지막 금색 카드 하나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각 도미닉 경 2장, 복각 도미니카 경 2장, 라이더 도미닉 경, 스팀펑크 도미닉 경을 이미 뽑은 상태였고, 예상보다 더 많은 무지갯빛 카드를 뽑은 상태였으니까.
"잠깐, 잠깐! 이건 왜 안 까냥?"
직원이 황급하게 제로를 불러세웠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직원은 남은 하나가 너무 궁금한 상태였기에 다시 한번 되물은 것이다.
"...?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도미닉 경이 아니니까요. 3성은 돌이라도 필요하니 가져가지만, 2성은 돌 효율이 별로잖아요?"
당연한 듯 말하는 제로.
"그렇냥...? 그건 그렇고 어떻게 도미닉 경이 있는지 알았냥?"
사실, 직원은 제로가 카드를 까는 사이 몰래 부정 프로그램 검사기를 돌린 상태였다.
그리고 부정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중앙 시스템이 확인하는 것이니 정말 제로는 어떠한 공식으로 도미닉 경을 뽑아낸 것이리라.
잠시 고민하던 제로.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골고루 섞였다고 가정했을 때 확률 상 가장 높은 팩을 골랐습니다. 거기에 1번, 4번, 9번, 10번은 확정이라고 생각했구요."
직원은 제로의 말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제로가 말한 확률이란, 그저 감과 운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제로는 오컬트적인 요소를 전혀 믿지 않았기에 감과 운이라는 말을 이과적으로 풀어쓴 것이 불과했다.
그러니 말이 자꾸 헛돌 수밖에.
"믿을 수 없다면 한 번 열어 보죠."
제로가 마지막 금색 카드를 뒤집었다.
순간 제로의 동공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아무래도, 확률이 절 배신한 것 같군요."
제로가 마지막 카드를 공개했다.
그 카드는 바로... 도미닉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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