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39화 (139/528)

〈 139화 〉 [138화]재판

* * *

도미닉 경이 걸음을 옮긴 곳은 카드 팩 거래소.

그중에서도 카드 풀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여전히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대기표를 뽑은 도미닉 경이 의자에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 시간대라 그런지 도미닉 경의 차례는 금방 돌아왔다.

"어서 오시... 도미닉 경이로군."

우연의 일치일까?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셴롱의 창구에 도달했다.

"오랜만이오."

"그래. 도미닉 경. 보아하니... 카드를 새로이 찍으러 온 건가?"

셴롱이 눈을 빛냈다.

현재 리틀 도미닉 경이 대 히트를 치며 도미닉 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태.

세금을 제외하고도 도미닉 경의 카드 하나 당 대륙 하나 수준의 수익을 올린 카드 팩 교환소로서는 도미닉 경의 방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소."

도미닉 경이 말했다.

예스. 셴롱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복각? 아니면 새로운 카드인가?"

셴롱의 말을 들은 도미닉 경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둘의 차이는 뭐요?"

"복각은 말 그대로 예전에 찍었던 카드를 더 찍어내는 거지."

셴롱의 설명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이 이해했다는 걸 알아차린 셴롱이 설명을 이어갔다.

"새로운 카드는 새로운 특성, 혹은 새로운 특수 기술이 생겼을 때 가능하네. 대략 설명하자면... 이렇겠군."

셴롱은 자기 덱에서 몇 장의 카드를 꺼냈다.

예시용으로 들고 다니는 카드들이었다.

셴롱이 그중 자기 모습이 인쇄된 두 장의 카드를 위아래로 놓으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복각일세. 이전에 찍은 카드를 똑같이 찍어내는 것이지."

그리고 이번엔 그 옆으로 두 장의 카드를 내려놓았다.

각각 인간 모습의 셴롱과 기모노를 입은 셴롱.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카드일세. 예시로 쓰인 카드는 셴롱(★★★), 필멸자 셴롱(★★★), 정월 셴롱(★★★)이지."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 남은 의문.

도미닉 경은 그 의문을 바로 셴롱에게 던졌다.

"이건... 스킨이랑 다른 점이 뭐요?"

"크게 다르지."

셴롱이 말했다.

"스킨은 한 캐릭터에 하나일세. 그 말은, 아무리 많은 스킨을 사더라도 결국 캐릭터는 하나이며, 그 캐릭터가 입을 수 있는 옷도 하나."

"하지만 이렇게 캐릭터를 나누어 팔면, 사람들은 한 파티에서 다양한 '당신'을 즐길 수 있는 걸세."

"뜻밖에도 둘 다 가차랜드에서 잘나가는 방식일세."

도미닉 경은 셴롱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는 다 같은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을 여러 카드로 나누어서 판다고?

그러나 여기는 가차랜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떤 일을 저질러도 납득이 되는 마법의 단어, 가차랜드인 것이다.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다.

가차랜드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지. 라며 스스로 납득해 버린 도미닉 경.

셴롱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도미닉 경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자네는 복각인가, 아니면 신규?"

"둘 다요."

"둘 다?"

도미닉 경의 말에 셴롱이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놀란 눈으로 외쳤다.

"자네, 3성이 된 거군?"

"그렇소."

신규 캐릭터는 새로운 특성이나 새로운 특수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특성이나 특수 능력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큰 굴곡을 겪어 특성이 달라졌거나, 혹은 3성이 되어 새로운 특성을 선택하는 경우.

도미닉 경의 외관이나 느낌은 예전에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분명히 3성이 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번엔 얼마나 찍어낼 생각인가?"

셴롱이 자본주의 정신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총합 십만 장? 혹시 백만 장?

현재 도미닉 경의 인지도가 고점을 찍은 상황에서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그렇게 행복 회로를 돌리는 셴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도미닉 경이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 장이오."

"천 장?"

"그렇소. 천 장."

"각각?"

"총합."

하. 맙소사. 셴롱의 다리가 풀렸다.

물론 그는 동양풍의 용이었기에 다리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여의주를 잡은 짧은 다리가 전부였지만.

"이봐, 도미닉 경. 자네가 자신을 얼마나 얕보는지는 잘 알겠네."

셴롱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도미닉 경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저번에 10장만 찍었을 때 기억나나? 내가 지금까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그때 자네에게 더 찍자고,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었어."

실제로 셴롱이 도미닉 경의 카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들이 셴롱을 협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잠시 주제를 바꿔보지. 자네, 리틀 도미닉 경을 아는가?"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임 낫 리틀의 주관으로 판매되는 인형.

"그렇다면, 그 리틀 도미닉 경이... 그래. 오늘이 첫날이로군. 얼마나 팔렸는지 아는가?"

"얼마나 팔렸소?"

"스무 개."

"과연."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많이 팔리긴 했으나 대충 그 정도는 팔릴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셴롱의 다음 말에 도미닉 경은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고 말았다.

"15초 만에 완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들어 셴롱을 바라보았다.

"예약 대기 인원..."

셴롱은 주머니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콧잔등에 걸었다.

그리고 휴대폰에 검색된 수치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현재 예약 인원, 약 2만 명."

2만 명!

도미닉 경은 충격에 빠졌다.

설마 그 정도나 되는 인원이 리틀 도미닉 경을 구매하려고 대기하고 있을 줄이야.

"인형만 해도 그 정도일세. 무엇보다 리틀 도미닉 경은 캐릭터 카드를 인스톨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그럼 일단 2만."

셴롱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인형을 산 사람들만 자네의 카드를 원할 것 같은가? 아니지, 아니야. 자네는 이미 자네의 가치를 드러내고 인정받았네. 그런 자네를 원하는 개척자와 성좌들이 얼마나 많겠나? 내가 알려줄까? 저번에 자네 카드를 뽑으려고 모인 성좌와 개척자의 숫자. 무려 삼만 하고도 칠천 이백 명이었네. 그때보다 더 인지도가 높아진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군."

도미닉 경은 그제야 자기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5만 명.

가차랜드 전체를 보면 그리 큰 인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에 도달한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사람임을 감안 한다면 엄청난 숫자!

"이제 자네의 발언이 얼마나 멍청한 말이었는지 이해가 되나?"

셴롱의 말에 도미닉 경은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로 잡아서 5만 장은 뽑았어야 하는 상황에서 고작 천장을 뽑으려고 했다니.

"...그럼 일단 복각은 5만 장으로 잡읍시다. 새로운 카드는... 글쎄."

셴롱이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카드 풀 전체로 보기엔 5만장은 특정 카드 군에서 0.5%의 확률로 뽑힐 정도의 양.

레어도도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정도의 양인 것이다.

셴롱이 이렇게 속으로 좋아하는 동안, 도미닉 경은 자기 특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새로운 특성들을 받기는 했으나, 이 특성들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실례하겠소."

도미닉 경이 카드를 꺼내 특성을 확인했다.

[[라이더] : 탈 것에 탈 경우 특별한 방어타입을 얻고 기동력이 증가합니다.]

[[나이트 배너렛] : 당신은 기사 중의 기사입니다. 깃발이 추가적인 효과를 얻습니다.]

[[스팀펑크] : 황동과 증기, 그리고 벨 에포크!]

[[야전사령관] : 깃발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몇몇은 직관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나, 몇몇은 그 효과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 특성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신규 카드는 몇 장이나?"

셴롱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4장이오."

"4장?"

터무니없는 수치.

셴롱은 도미닉 경이 또 저번처럼 너무 적게 뽑으려고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도미닉 경과 셴롱이 이해한 바가 달라서 생긴 촌극이었다.

셴롱이 이야기 한 것은 몇 장의 새로운 카드를 만들 것이냐였고, 도미닉 경이 생각한 것은 몇 개의 새로운 카드를 만들 것이냐는 것이었으니까.

구겨지는 셴롱의 얼굴을 본 도미닉 경이 문득 자기 말이 잘못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4개의 신규 카드를 만들 거요."

"4개?"

방금 전까지 구겨져 있던 셴롱의 얼굴이 이젠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예전에 회귀자 하나가 7개를 얻었던 것과 환생자 하나가 5개를 얻은 이후 셴롱이 본 가장 많은 수의 특성이었으니까.

"아니지, 탱커 특성까지 하면 5개인 셈인가."

셴롱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것들도 각각 5만 장 씩­"

"아니, 잠깐."

셴롱이 도미닉 경의 말을 잠깐 막았다.

셴롱의 눈이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복각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은... 프리미엄을 붙이자고."

"프리미엄 말이오?"

도미닉 경이 되물었다.

"그래. 너무 많은 카드는 오히려 가치를 상실하는 법이야."

개암 3동의 자랑 박춘배처럼 말이지. 셴롱이 킬킬 웃었다.

"그러니 복각을 제외하면... 다른 카드들은 가치를 위해 소량만 찍어내자고."

각각 무난하게 1000장 정도가 어떨까.도미닉 경은 셴롱의 제안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가치를 위해서라.

도미닉 경은 그 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도미닉 경이 셴롱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곧... 계약은 성사되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