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134화]행정부 디펜스
* * *
"맙소사..."
"스승님! 뒤에 폭발물이에요!"
"알았다!"
거미전차가 행정부 로비에서 날뛰고 있다.
도미닉 경의 운전실력은 그다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미전차가 괜히 전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약간 어설픈 운전실력마저도 기세를 꺾기엔 충분한 상황.
투박한 움직임은 오히려 무기질적으로 살육을 행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설프게 움직이는 거미전차의 다리들은 기괴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양산박의 습격자들에게만.
로비를 지키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어색하고 투박한 움직임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도미닉 경이 도우러 왔다는 사실, 그 하나만 기억했다.
도미닉 경의 등장으로 행정부 로비의 전세는 급격하게 반전되었다.
댐에 구멍이 난 듯 몰려오던 양산박의 습격자들은 그 구멍이 막히자마자 순식간에 정리되었고, 다시 1차 방어선 직전까지 수복할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의 전차의 뒤에 달린 배기관들이 엄청난 증기를 뿜어내었다.
삐이익하고 귀가 아픈 증기소리가 마치 괴물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저, 저자는 검과 방패를 쓴다! 그 말은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다는 거야! 저 금속 거미에도 따로 무기는 없잖아! 허세에 속지 마라!"
그나마 양산박에서 아직 머리가 돌아가는 이가 있었는지 주변 이들의 사기를 북돋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그의 어깨에 적중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차원이라면 크게 위험한 부위는 아니었으나, 가차랜드에서 데미지 판정은 어딜 맞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일격! 추가 피해와 함께 추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열심히 열변을 토하던 양산박의 연설가가 픽 쓰러졌다.
"어, 어어?"
"원거리 공격수단 없다며! 검과 방패 뿐이라며!"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그나마 안정을 되찾던 이들마저 패닉에 빠졌다.
도대체 이 화살은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스승님 말대로네요. 이것도 평타로 치나 봐요!"
거미전차의 위에서 석궁을 들어 올린 앨리스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렇다.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장비로 취급되는 상태였으며, 앨리스에 대한 공격은 도미닉 경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는 것은 이미 확인이 끝난 사실.
도미닉 경은 문득 거기서 더 나아갔다.
반대로 앨리스가 공격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앨리스의 공격은 시스템상 도미닉 경의 추가적인 평타로 인정되는 것이다.
앨리스가 더 노력한다면 도미닉 경과 함께 합격기를 펼치거나, 혹은 도미닉 경의 빈 틈을 노려 적에게 투사체를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앨리스는 이것저것 배우는 중이었고, 아직 연계나 지원사격에 대해서 배우기에는 훈련이 부족했다.
아직은거미 전차나 비행선을 탄 채, 그것도 나름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단계.
앨리스가 더 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더 깊은 생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히메의 경고가 도미닉 경의 상념을 깨웠다.
도미닉 경의 뒤에서 날아온 쿠나이가 하늘에서 칼을 들고 낙하하는 양산박의 졸개를 꿰뚫고 날아갔다.
졸개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정신 차리세요, 도미닉 경! 무슨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히메가 로비 내부로 들어오면서 외쳤다.
그녀의 왼손에는 레오나르도의 멱살이 잡혀 있었는데, 들고 왔다기보다는 끌고 왔다는 표현이 정확한 듯 보였다.
"미안하오!"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함과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다시 거미전차를 움직여 아예 입구를 막아 버리듯 틀어막고 엔진에 묵혀 있던 증기를 한 번에 배출해냈다.
삐이익! 하고 물끓는 소리.
평범한 증기 배출 소리였으나 이미 도미닉 경의 등장에 겁을 먹은 양산박의 졸개들에게는 괴물 거미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도망쳐야 해."
졸개 중 하나가 말했다.
"...도망쳐야 해."
그 옆에 있던 졸개가 말했다.
급격한 사기 저하.
사실, 이는 도미닉 경의 등장이 아니었더라도 일어날 일이긴 했다.
양산박의 습격자들은 그저 수적 우위를 믿고 공세를 지속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일부 인원은 양산박의 금지된 힘마저 개방한 상태.
문제는, 이들이 금방 행정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예산 절감 문제로 보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밥도 먹지 못한 채 계속해서 죽었다 살아나며 싸우는 양산박의 졸개들.
육체의 피로는 부활로 풀 수 있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가 극단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지금까지 그 정신을 붙잡고 있었던 것도 행정부의 로비를 뚫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있어서였으나, 그마저도 2차 방어선에 막히며 완전히 한계에 몰린 상태였다.
도미닉 경이 아니더라도 분명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을 상황.
그런 상황에 도미닉 경이 딱 등장해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자, 양산박의 졸개들은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도망쳐야 해!"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이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연쇄적인 사기 저하는 곧 양산박 군단 전체로 퍼져나갔다.
양산박의 군세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
"오합지졸이군."
행정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누군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던 기묘하게 아름다운 사내는 어느새 왕의 옷을 입고 있었다.
"되는 게 없어. 어째서일까? 돈이 부족했나? 과금을 더 해야 해? 아니면 그저 운이 없었나?"
사내는 조금씩 조금씩 화를 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화를 참지 못하고 술병을 집어 던졌다.
직선을 그리며 날아간 술병이 벽에 부딪쳐 쨍그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돈? 역대급으로 쏟아부었어! 과금? 최고들만 엄선해 뽑았고, 복제도 성공 시켰어! 운? 나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어딨겠어!"
남자가 씨익씨익 거리며 숨을 골랐다.
그저 도미닉 경을 얻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세상이 나를 방해하는 거지?
매우 오만한 생각.
그러나 지금까지 원하는 건 모두 얻어왔던 남자에게는 당연한 생각이리라.
"아니, 아니야."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순식간에 화가 풀린 사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건 다 조제프 준장의 문제야. 그녀가 잘했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 그녀가 패배한 이후에 모든 것이 눈덩이가 되어 굴러간 거야."
놀라울 정도의 자기 합리화.
왕의 옷을 입은 남자는 언제 분노했었냐는 듯 생글생글 웃었다.
"내가 직접 나섰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지 않았겠지. 음. 그래. 내 잘못도 조금 있는 것 같군."
"지금부터라도 내 계획대로 움직여야겠어... 그것을 풀어."
왕의 옷을 입은 자 뒤에는 언제부터인가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있었다.
사내는 검은 옷을 입은 자에게 명령을 내리고 다시 새로운 술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생각하면서.
...
"맙소사."
마침 회복이 끝난 머슬만은 회복실을 나오자마자 엄청난 장면을 보았다.
도미닉 경의 등장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적의 공세.
그리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오합지졸 상태의 졸개들.
도미닉 경은 그저 타이밍 맞게 도착했을 뿐이었으나, 머슬만 의원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느꼈다.
도미닉 경은 탱커의 희망이다. 라는 생각.
그때였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도망치던 졸개들 중 몇몇 목이 떨어졌다.
양산박의 간부가 퇴각을 막기 위해 본보기로 처형한 것일까?
아니, 양산박의 간부들은 제일 먼저 도망치다가 역시 목이 떨어졌다.
일순간 전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미닉 경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전장에 의문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자는...!"
그리고 마침내 도미닉 경은 전장을 침묵시킨 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저 자가 어떻게 여기에...?"
도미닉 경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분명히 저자는 레이드 보스가 되어 영원히 갇혀 있을 텐데.
도미닉 경이 황당한 표정으로 전장에 난입한 이를 바라보았다.
"나 을(를) 기다렸나?"
화려한 갑옷.
커다란 날개.
누가 봐도 강해 보이는 대검.
그러나 그 모든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로 접힌 턱과 엄청난 뱃살.
전 근접 딜러 연합 의원, 현 레이드 보스 트롬이었다.
[공격 측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 숨겨진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공격 측에서 양산형 비밀무기, 코드네임 트롬을 보스로 참전시킵니다!]
[보스를 잡을 시, 공격측은 패배를 인정하고 보상을 줄 것을 약조했습니다.]
혹시나 가짜라고 생각할까 봐 시스템이 확인 사살까지 마쳤다.
저자는 정말로 트롬이었다.
"어떻게..."
도미닉 경이 중얼거렸다.
그만큼 트롬의 등장은 뜬금없었고, 또 충격적인 것이었다.
"당연히 거래이다. 나리."
트롬은 여전히 힘에 취한 상태였는지 양산박식 문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내가 보스가 되었으나 양산박에,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돕습니다."
엉망진창인 문법이었으나 트롬이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했다.
중앙 시스템의 제재로 인해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처지가 되었으나 이미 양산박이 가지고 있던 채무는 그대로였기에 그 채무를 갚으러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하고자 하는 말을 마친 트롬이 대검을 들고 도미닉 경에게 검 끝을 겨눴다.
"너!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broken. 책임지다!"
펄럭. 하고 거대한 날개가 펄럭이며 트롬의 몸이 솟구쳤다.
당장에라도 도미닉 경을 향해 날아갈 듯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