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133화]행정부 디펜스
* * *
레오나르도의 걸음은행정부의 길을 모두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것은 행정부의 뒷문 중 하나였다.
"자! 이제 밖으로 나가서 행정부를 쭉 돌아 정문으로 가면 됩니다."
레오나르도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저기. 지금 거기는 양산박의 습격을 받고 있다면서요? 1차 방어선까지 밀렸다고 했으니 가장 위험한 길 아닌가요?"
히메가 나름 상식적인 선에서 질문했으나, 레오나르도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반짝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길을 몰라서요."
아. 그거 알지. 도미닉 경이 어째서인지 레오나르도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실제로 가차랜드의 세 날개, 행정부와 시스템 인더스트리, 그리고 블랙 그룹의 본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증축과 개축을 많이 시도했다.
특히 행정부는 고칠 수 있음에도 관료주의의 성격상 귀찮음에 빠져 전혀 개선하지 않는다.
"행정부는 야근 없어도 퇴근하다가 밤을 샌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복잡해서 말이죠. 한시가 급할 땐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돌아가는 것이 더 빠르다구요."
레오나르도는 길을 찾다가 헤매는 것보다 차라리 습격자 무리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 더 빠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행정부에 몇 번을 오면서 생긴 나름의 지혜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히메가 고개를 끄덕였다.
히메가 길잡이와 관련된 기술이 있었더라면 최단 거리를 알아보겠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쿠노이치.
잠입이라면 몰라도 길을 찾는 것은 영 어려운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길잡이 포지션은 레오나르도였고, 길잡이의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다들 그럼 이 길로 가는 거 동의하시는 겁니다?"
레오나르도가 도미닉 경의 파티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돕겠다고 한 이상 최대한 빨리 도우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히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도미닉 경의 결정을 따랐다.
앨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도미닉 경과 히메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밌어보여서 따라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동의했다는 걸 인지했다는 표시였다.
"그럼 좋습니다... 문을 열죠."
레오나르도가 문을 열었다.
"응?"
그리고 문밖에서 담배를 피며 쉬고 있던 양산박의 일원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미안합니다. 흡연실을 찾지 못해서 악!"
양산박의 졸개의 미간에 쿠나이가 박혔다.
"어... 여기부터 양산박의 졸개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레오나르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습격자들의 공세는 행정부의 정문에 국한되었지만 고착이 심해지자 우회로를 찾으러 나온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뭐야? 무슨 일이야.., 구옌?"
"비명 소리를 보니 날아다니는 스파게티라도 본... 누구냐!"
양산박 졸개의 비명에 새로운 졸개들이 나타났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건네며 다가온 졸개들은 쓰러진 졸개와 도미닉 경의 파티를 보며 순식간에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레오나르도가 도미닉 경의 뒤로 숨었다.
역시나 레오나르도의 예상대로 습격자가 더 있었다.
"여기도 안전하지 못한 것 같군요."
레오나르도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이 천천히 다가오는 졸개들을 바라보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뚫고 지나가면 그만이오."
그 말이 신호탄이 되어 히메의 쿠나이가 졸개들의 목으로 날아갔다.
몇몇 졸개들은 견제를 위해 던진 쿠나이에 맞아 쓰러졌으나 몇몇은 순간적인 반응으로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딱히 피했다고 해서 더 나을 것은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도미닉 경의 방패 모서리가 그들의 광대뼈를 으스러뜨렸으니까.
레오나르도는 나름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순간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리지 않고, 도미닉 경과 히메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앨리스가 다가와 아이스크림 콘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털어 넣은 뒤 레오나르도에게 말했다.
"빨리 길을 알려 줘요. 스승님이랑 히메 공이 길을 뚫을 거예요."
레오나르도는 앨리스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엄마 말대로 코딩같은 거 배우지 말고 그냥 멋진 특수 기술 하나 정도나 배워둘 걸 후회하면서.
...
"여기가 정문입니다."
레오나르도가 지도 앱을 보며 소리쳤다.
처음에는 정문을 정면 돌파할 생각이었으나 생각보다 습격자의 인원이 너무 많았다.
소규모였다면 모르겠으나 최소 여단급, 혹은 군단급 인원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우회하려는 생각하게 되리라.
"생각해 보니 말이오."
나무 뒤에 숨어 있었던 도미닉 경이 말했다.
"탈 것을 타면, 가능하지 않겠소?"
마침 혼란한 상황이니 로비 내부에서 탈 것을 타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이 레오나르도에게 물었다.
어쩌면 참 가차랜드 사람 같은 사고방식.
"...탈 것을 가지고 계세요? 아니지, 비행선은 떨어졌다면서요. 그럼 없는 거 아닌"
레오나르도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도미닉 경은 거미전차를 소환했다.
마치 거기에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듯, 행정부 외곽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비를 지급하며 나타난 거미전차.
그 엄청난 위용에 레오나르도가 할 말을 잠시 잃었다.
"...그렇다고 해도 탈 것은 보통 1인용이잖습니까."
아. 하고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선은 수송선을 겸했기에 사람을 여럿 태울 수 있었지만 거미전차는 온전히 1인용이었다.
"아니, 뭔가 괜찮은 수가 생각났어요."
가만히 있던 히메가 의견을 피력했다.
"레오나르도의 말은 우리 모두가 저 탈것을 타고 들어갈 수 없지 않냐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꼭 한 번에 같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요?"
아. 하고 이번엔 레오나르도가 탄성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같이 움직였기에 정문 돌파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같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런 레오나르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 저거 추가적인 특성이 있나요?"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 피해를 입으면 과부하가 걸려 잠시 속도가 빨라지오. 이후 잠시 느려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큰 차이는 없고."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도미닉 경의 말에 히메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도미닉 경. 우리 돌파하죠."
히메는 거미전차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하니 저 거미전차는 [차량 헤비 아머]에 [고중량]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차량 충격량 법칙을 감안 하면 돌파력은 충분할 거란 말이죠. 애초에 정문을 돌파할 생각으로 여기 온 거잖아요?"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의 설명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돌파하려고 온 것은 맞았으니까.
"입구에 근처에 전깃줄이 있어요. 뜯겨진 흔적이 있네요."
히메가 빠르게 눈을 돌리며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습격자의 공격으로 인해 뜯겨나간 고압 전선.
전기가 파직거리는 전선이 분명히 경로 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고압 전류를 파직직 흩뿌리면서.
왜 도로 한가운데 전선이 지나가고 있는지 알 방도는 없었으나 히메는 저 전선이 쓸모가 있으리라고 여겼다.
도미닉 경이 히메의 설명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그 전깃줄을 눈에 담았다.
과연. 도미닉 경은 전장에 오래 있었던 만큼 히메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준비하리다."
"네. 뒤를 이을게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서로 엉뚱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서로가 하는 말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결론만 말한 것이었다.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도미닉 경이 거미전차를 이끌고 끊겨진 전선이 있는 곳을 지나 정문을 돌파한다.
그럼 히메가 그 뒤를 쫓아 뚫린 길을 돌파한다.
쿠노이치의 기본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이용한 간단한 작전.
앨리스는 도미닉 경과 같이 거미전차에 타면 되었고, 레오나르도는 히메가 들고 뛰면 된다.
그렇게 암묵적인 약속이 끝난 도미닉 경과 히메는 잠시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의 엔진이 부릉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잡아라, 앨리스."
"네. 스승님!"
도미닉 경이 앨리스에게 짧게 경고한 뒤 곧바로 엔진을 최대출력으로 돌렸다.
엄청난 양의 증기와 함께 거미전차가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쿵쿵거리며 가속이 붙은 거미전차가 파지직 거리는 전깃줄 사이를 지나자 떠오르는 시스템 창.
[엔진 과부하! 5초간 이동 속도가 증가하며, 이후 5초간 방전됩니다!]
저번보다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최대 속도를 넘어 몸이 뒤로 쏠릴 정도로 빨라진 거미전차를 보며 생각했다.
충분하다고.
"어? 어어?"
"다들 피해라! 미친! 거미 전차다!"
엄청난 속도로 정문을 향해 달려 나가는 거미전차.
정문을 에워싼 수많은 습격자가 몸을 피하거나 반격했으나, 미처 그러지도 못한 이들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좌우로 날아가 아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지어 반격으로 제대로 피해라도 주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지금 장비를 복구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특수 능력 [기수]의 효과가 증가한 상태였다.
평소라면 고작 피해 감소가 4%에 불과했겠지만, 지금은 무려 T4 사단 깃발 효과로 인해 125%가 증가한 9%.
도미닉 경의 거미 전차는 그야말로 막을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났다.
도미닉 경의 전차가 움직인 경로에 붉은 길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 5초의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도미닉 경의 전차는 정문을 넘어 1차 방어선이 있던 자리에 멈춰 섰다.
[방전되었습니다. 5초간 이동 속도가 크게 감소합니다.]
거미전차가 느릿하게 움직였지만 이제 상관은 없었다.
도미닉 경은 도움을 주러 온다는 1차 목표를 이뤘으니까.
"스승님, 저번에도 그랬지만... 최고예요!"
앨리스가 빨갛게 상기된 볼을 문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등장에 앨리스의 환호가 합쳐지자 로비 내부의 시선이 모두 도미닉 경에게 쏠렸다.
"도미닉 경이다!"
"도미닉 경이 1차 방어선에서 적들을 밀고 있다!"
도미닉 경을 알아본 사람들이 외쳤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외쳤다.
'오늘 밤, 도미닉 경이 디펜스에 참여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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