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131화]행정부 입성
* * *
레오나르도는 지금 너무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이 뱀파이어가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밤의 마술사의 폭발 마술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고, 폭발에 휩쓸린 사람들은 곧바로 섬광과 화염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그나마 도미닉 경의 대처로 기절 정도로 끝났으나 플라기우스와 예카테리나는 빈사 상태에서 즉사.
심지어 시전자였던 밤의 마술사는 그을음조차 남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레오나르도는 창백한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미로도 뚫리고, 투입된 인원도 다 사라졌으니 도미닉 경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 행정부에 혼란이 오고 말리라.
"...차라리 이건 기회야."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어째서인지 의지를 다졌다.
분명히 무언가 계획을 세운 것이 틀림없었다.
"영화에서 보면 나처럼 너드인 사람이 꼭 활약하게 되거든."
취소. 그는 아직 혈기 왕성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레오나르도는 행정부에서 슬쩍 나와 도미닉 경이 쓰러진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몰래 도미닉 경의 데이터에 해킹을 시도했다.
"양산박의 코딩 실력은 형편없으니까 분명히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
그가 밖으로 나온 이유는 상대의 허가 없이 해킹하는 것... 아니, 그냥 유저에 대한 해킹 자체가 범죄였기에 최대한 로그를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원격으로 해킹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에 로그가 남을 테니까.
레오나르도는 도미닉 경의 카드의 정보 사이에서 BIN 파일과 CUE 파일, 그리고 ISO 파일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양산박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레오나르도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C:/Program_files(X86)/Gachalands/User/Sir_Dominic/Data/Log/00010807/A$%^543.txt까지 꼼꼼하게 뒤져 본 레오나르도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도미닉 경은 양산박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오해가 있었을 뿐이었다.
...
"세상에.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레오나르도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눈을 굴렸다.
코더는 유저와 엮여서는 안 된다.
강제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불문율에 가까운 격언.
코더는 유저를 위해 정보나 물품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코더는 유저의 정보를 침해하거나 다른 이에게 유저의 정보를 제공해서도 아니 된다.
레오나르도는 이 중 두 번째, 개인 정보 보호와 보안에 관한 법률을 어겼다.
그것뿐이라면 어떻게 사과만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도미닉 경에 대한 정보가 오해라는 것이 밝혀진 순간 레오나르도는 살인 교사, 허위 정보 유포 등의 죄까지 저지른 셈이 되어 버렸다.
노련한 코더라면 덤덤하게 보상에 대해서 협상하고 자기 죗값을 치렀겠으나, 아직 애송이인 레오나르도에게 있어서 이는 겪어 보지도 못했고, 겪어 볼 것으로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기에 그저 얼을 탈 뿐이었다.
이를 어쩐다, 이를 어째.
레오나르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부끄러움과 혼란에 빠졌다.
두고 갈까? 모른 척하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앨리스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레오나르도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뒤로 주춤거리다가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은 레오나르도.
그 꼴이 마치 범죄 현장을 들킨 사람과 같았다.
"어,어,어,어째서"
어떻게 그 폭발에도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지?
레오나르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앨리스의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도미닉 경의 장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
노력만 하면 영생을 살 수 있는 뱀파이어는 상대방의 핏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이를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레오나르도가 핏줄 페티쉬가 있다는 점도 한몫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또한 그는 코더.
방금 전 도미닉 경의 데이터를 뒤져 본 결과값과 앨리스에게서 보이는 일부 정보값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조합해 레오나르도는 앨리스가 어린아이이며, 도미닉 경의 장비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스승님에게 뭐 하는 거예요?"
앨리스가 순수하게 적의를 가지고 물었다.
물론 아이답게 온전히 살기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레오나르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정도는 충분했다.
"그...사실 내가 오해를 했단다."
레오나르도는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하는 순간 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결과였다.
"오해요?"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에게 무슨 오해요?"
"그"
레오나르도는 앨리스에게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앨리스에게 말하기보다는 도미닉 경이 일어난 후 해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건 도미닉 경이 일어나면 말해줄게. ...혹시 아이스크림 좋아하니?"
레오나르도가 앨리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래 봬도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장비가 된 인간.
서로의 신뢰가 매우 끈끈하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앨리스에게 잘 보여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혹시 모르지. 앨리스가 도미닉 경에게 조언해 줄지도.
그렇게 생각한 레오나르도의 계략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랬는데..."
"도미닉 경도 같이 옮기면 되지. 그럼 보호자가 같이 다니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레오나르도는 필사적이었다.
지금까지 옳은 일을 한다고 벌인 일이 오해 하나로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 상태.
그나마 잘못한 것을 바로잡으려면 도미닉 경의 용서가 필요했다.
"...좋아요!"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고, 그렇다고 도미닉 경과 떨어지기는 싫은 상황에서 레오나르도의 제안은 앨리스에게 괜찮은 제안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그럴까. 앨리스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가요! 저 삼단 아이스크림 먹어보고 싶었어요!"
쓰러진 도미닉 경과 히메를 양쪽 어깨에 하나씩 들쳐맨 앨리스가 레오나르도에게 외쳤다.
"어? 으,응."
그리고 그 엄청난 힘에 레오나르도의 어깨가 좁아졌다.
절대 위축된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스스로 그렇게 위로했다.
...
그렇게 레오나르도와 앨리스는 행정부 내부로 들어왔다.
도미닉 경이 양산박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 이상 도미닉 경은 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아군이 된 셈이니까.
무엇보다도 현재 행정부 디펜스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도미닉 경이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
자판기에서 삼단 아이스크림을 산 레오나르도가 앨리스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여기, 말했던 아이스크림. 이제 난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인데, 잠시 혼자 있을 수 있겠니?"
"네!"
앨리스는 행정부의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 도미닉 경이 누워 있는 벤치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오나르도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이미 보상 방안과 스스로에 대한 처벌 협상안까지 다 구상한 상태였다.
레오나르도를 이렇게나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 건...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도 이불을 뻥뻥 찰 정도로 큰 부끄러움.
본디 정의를 위한다며 앞으로 나서는 일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그 정의를 위한 일이 사실은 오해였고, 그저 자기 뻘짓이었다면?
그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 레오나르도가 그런 상태였다.
얼굴을 감싸고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레오나르도의 창백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스승님! 일어났네요?"
그때였다.
도미닉 경이 벌떡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부끄러워하는 뱀파이어 레오나르도와 시선이 마주쳤다.
"...레오나르도 공?"
아, 세상에.
레오나르도는 도미닉 경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더욱 자괴감을 느꼈다.
...
"그러니까... 내가 양산박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했단 말이오?"
도미닉 경은 레오나르도에게서 지금까지 있었던 오해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지금 행정부가 공격당하는 상태라고 했으니 오해할 만 하오."
도미닉 경은 레오나르도의 오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신 보상을 드리긴 할 겁니다. 그나저나... 행정부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레오나르도는 도미닉 경에게 보상을 약속한 뒤 여기 온 이유를 물었다.
"강화 도중에 서버 문제로 장비가 날아갔소."
"아."
이번엔 레오나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행정부 디펜스가 일어나기 전, 양산박의 기습적인 테러로 인해 행정부 건물의 일부가 날아가는 바람에 서버를 되돌린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여파에 휩쓸린 모양이었다.
"그거라면 제가 좀 도와 드릴 수 있겠군요."
레오나르도가 당당한 자세로 말했다.
"행정부에 건의해서 고치는 것보다는 제가 고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실제로 행정부의 늦장 대응으로 마음 졸이는 것보다는 믿을 만한 코더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의 처지에서도 이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해킹은 범죄지만, 동의 하에 코드를 고치는 일은 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레오나르도의 행동은 부담스러운 호의로 다가왔다.
이걸 받아들여도 좋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냥 제게 맡겨 주시면 안 될까요?"
도미닉 경의 고민을 본 레오나르도가 비굴하게 빌기 시작했다.
"제발."
레오나르도는 필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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