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129화]막간
* * *
시간을 잠시 돌려, 도미닉 경이 골목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젠장."
현재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탱커 포지션을 담당하는 머슬만 의원이 욕을 내뱉었다.
평소의 점잖고 신사다운 분위기와 달리, 지금의 머슬만은 온몸의 핏줄이 곤두선 채 신경질적으로 습격자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머슬만이 습격자의 침입을 막아 내는 동안 의원들과 행정부 직원들은 중간중간 빠져나온 습격자를 퇴치하거나 지원사격했다.
행정부 로비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디펜스 게임처럼 변해 있는 상태.
"방화벽! 방화벽 복구하세요!"
직원 중 하나가 코더들 중 하나에게 외쳤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행정부의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러 나왔다가 같이 갇혀 버린 코더들.
그들도 행정부 디펜스에 한 손을 거들고 있었다.
"도대체 왜 도미닉 경이 여기에?"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여기에 충격을 받고 멍하게 서 있는 코더가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한 때 언찬트를 만든 개발자들 중 하나이며, 지금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코더 중 하나였다.
언찬트를 만들며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더 멋진 코드를 짜고 싶었던 이 아마추어 코더는 마침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헤드헌팅을 받아들였고, 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로그라이크를 만들었던 경력을 살려 로그라이크 알고리즘 보안 프로그램을 만든 그.
복잡한 길로 시간을 끌고, 사람을 투입해 제압한다.
들어간 사람이 역으로 제압당하더라도 시간을 끌었기에 새로운 사람을 투입한다.
그렇게 무한 반복하는 간단하지만 비효율적인 프로그램.
마치 행정부의 비효율적인 행정과 같은 이 알고리즘은 행정부의 고위층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고, 행정부의 보안 시스템 중 하나로 그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오늘이 바로 레오나르도가 로그라이크 알고리즘 보안 프로그램을 행정부에 설치하러 온 날이었으나, 알다시피 이렇게 일이 터져 버린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행정부로 들어오려는 듯 루트를 잡은 도미닉 경의 파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경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상황.
사실 예전에 쓰던 보안 프로그램과 충돌이 일어나며 아이템이 섞여서 일어난 일이었으나, 현장에 나가 본 적이 이번이 처음인 레오나르도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대신 레오나르도는 누군가의 도움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그럴듯한 추측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행정부로 들어오려는 거지? 양산박이 습격하는 이때에?"
사실, 알 수 없는 이들의 습격이라고는 말했으나 이는 대외적으로 양산박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위함일 뿐, 아는 사람은 습격자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레오나르도도 양산박의 존재를 아는 이들 중 하나였다.
레오나르도의 보안 시스템을 뚫으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고, 이를 통해 양산박의 존재를 알게 된 사례.
행정부로 들어오려는 습격자.
그리고 그 습격자들처럼 행정부로 오려는 도미닉 경.
그럴듯한 상황. 그럴듯한 생각.
"도미닉 경이... 양산박과 손을 잡은 거야!"
이제야 저들이 왜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공세를 유지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들은 그저 시선끌기를 위한 미끼.
진짜는 바로 도미닉 경을 행정부로 잠입시키는 것.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생각.
그리고 그 생각들이 모여레오나르도는 완전히 어긋난 결론을 내려 버리고 말았다.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도미닉 경을 막아야 해!"
안 그래도빈혈과 저혈압으로 창백한 이 어린 뱀파이어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오나르도는 급하게 박쥐로 변해 행정부의 보안팀을 향해 날아갔다.
도미닉 경을 막아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
행정부 보안실은 여러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행정부는 직접적인 고용이 아닌, 길드들에게 보안을 맏겨 서로 경쟁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경쟁해 더 나은 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으로 쓰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길드들도 영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몰래 담합해 적당한 선에서 적당한 시간대를 갈라서 가져갔다.
행정부의 시선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뜻밖에 길드 단위의 물자를 받는 일은 꽤 짭짤한 일이었으니까.
오늘은 촉수의 탐구자 측의 길드들이 행정부의 보안을 서는 날이었다.
사실 보안실의 직원들은 양산박을 막기 위해 총출동한 상태였지만, 만일을 대비해 세 사람이 남아 있었다.
"심심하네."
"흥. 네가 유능했더라면 심심하지 않았겠지."
"...넌 심심하지도 않나보지?"
"그렇다. 난 유능하니까."
예카테리나가 고개를 돌려 플라기우스를 잘근잘근 씹어대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나름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전혀 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두 사람.
예카테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플라기우스를 욕하는 것도 지겨워질 만큼 심심했으니까.
그때였다.
보안실 내부로 박쥐 하나가 날아들어왔다.
하늘에서 크게 한 바퀴 선회한 박쥐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공중에서 급하게 정지한 박쥐가 사람으로 변해 땅에 내려앉자, 자연스럽게 레오나르도는 사람들의 시선의 가운데 있게 되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사람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이 양산박과 손을 잡았습니다!"
"뭐?"
예카테리나가 이상한 것을 들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뭔 개소리야?"
"양산박의 습격은 진짜 공격을 숨기기 위한 허초였어요! 진짜 공격은 도미닉 경이란 말입니다!"
레오나르도의 말은 생각의 흐름대로 내뱉어져 엉망이었지만 예카테리나는 그 의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이? 왜?
예카테리나는 도미닉 경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에 3지역에서 만났던 기억을 되새겨 도미닉 경이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의 생각과 달리, 플라기우스는 그 말을 그대로 믿은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플라기우스가 자기 역병 향로와 최근 파밍에 성공한 역병 비수를 들어 올렸다.
"뭐 하려고?"
예카테리나가 비수에서 뚝뚝 떨어지는 썩은 물에 기겁하며 물었다.
"도미닉 경을 막으러 간다. 그 생각뿐이다."
플라기우스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예카테리나보다 더 큰 공을 세울 기회.
사실 플라기우스와 예카테리나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서로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플라기우스는 남성 우월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자가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 플라기우스였기에 적극적인 성격의 예카테리나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적어도 저 여자보다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할 만큼 예카테리나를 싫어하는 플라기우스.
그런 예카테리나를 확실히 제치고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는 일을 마다할 리 없었다.
"아니, 그래도 확인은 해야..."
"그래? 잘되었군. 그렇게 앉아 있어라."
플라기우스는 정말 거기 있으라는 말이었으나, 예카테리나에게는 도발처럼 들렸다.
계속 신중하게 생각하던 예카테리나였으나 플라기우스의 도발은 유치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순간 발끈한 예카테리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히 도발을 해? 좋아. 나도 가겠어."
"흥. 따라올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거기 코더? 길을 안내해라. 우리가 해결해주지."
"아, 네. 여기로 가면 가까울겁니다."
플라기우스와 예카테리나는 옥신각신하며 레오나르도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이가 하나.
"흐힉? 하."
마술사의 옷을 입고, 얼굴에는 형광물질로 해골을 그린 이가 플라기우스와 예카테리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도 역시 촉수의 탐구자 측 길드에 속한 인원이었으며, 보안실을 지키는 세 사람 중 하나였다.
잠시 소변이 급해 화장실을 갔다 오자마자 어디론가 가는 둘을 바라보던 마술사는 이내 보안실을 지키는 것보다 둘을 따라가는 것이 더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히."
마술사는 그대로 두 사람을 따라갔다.
보안실을 텅 비워 놓은 채로.
...
[곧 도미닉 경이 여기로 올 겁니다. 준비하세요.]
레오나르도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은 2D 세상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둘 모두 가차랜드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었기에 2D세상에 처음 오면 반드시 겪는다는 2D멀미는 하지 않았다.
"난 준비 끝났는 걸?"
"흥. 저 여자보다는 내가 더 완벽하다."
플라기우스와 예카테리나는 서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얼마나 서로를 깎아내려고 하는지, 그들의 뒤에 마술사가 도착한 것도 모를 정도였다.
"힠.하힉."
그래서일까? 둘은 갑자기 들린 마술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깜짝이야! 밤의 마술사, 언제 온 겁니까?"
"마술사가 아니라 암살자로 전직이라도 한 것인가?"
마술사는 두 사람의 반응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가 변명하기도 전에 레오나르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했습니다. 빨리 숨어계세요. 기습 한 번은 될 겁니다. 옛 서적에도 닌자를 대할 때 기습 한 번은 괜찮다고 했으니...]
도미닉 경이 2D 세계에 도착한 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