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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27화 (127/528)

〈 127화 〉 [126화]킹 오브 로그라이크

* * *

어떤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으리라.

앨리스와 도미닉 경은 연결되어 있으니 앨리스를 공격하면 도미닉 경을 소환할 수 있으리라고.

옳은 말이지만 이 말에는 두 가지 허점이 존재했다.

첫 번째로, 히메는 그 이동을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로 알았으나 정확한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현재 도미닉 경과 히메가 데이트 상태였기에 우호적인 파티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호적인 파티를 맺으면 아군에 대한 오사나 오폭이 사라지며, 서로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모두 막힌다는 건 가차랜드의 상식.

그리고 도미닉 경이 인정한 가차랜드 상식인 히메는 바로 그 상식에 매여 앨리스를 공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히메는 바로 이 우호적인 파티를 맺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로 도미닉 경을 찾았다.

바로 같은 구역에 팀원이 있을 시 HP 바나 이름이 표시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저긴가!"

히메는 바로 파티 옵션을 켜 버리자마자 바코드처럼 촘촘한 HP 바를 찾아내었다.

일반적인 딜러로서는 절대 생길 수 없는 저 촘촘함을 보니 분명 도미닉 경이리라.

히메가 어깨에 앨리스를 메고 옥상과 옥상 사이를 뛰어 넘었다.

"스승님께서 공격당하고 계세요!"

어깨에서 앨리스가 황급하게 외쳤다.

"나도 알아!"

히메는 앨리스에게 존대를 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의도 버리고 완전히 말을 놓았다.

그녀는 조금씩 줄어들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하는 체력 바를 바라보며 도미닉 경이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고 짐작했다.

연기가 낮게 깔린데다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도미닉 경이 무엇과 싸우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빨리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듯 건물의 옥상을 뛰어넘은 히메는 곧 여기가 도미닉 경이 싸우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HP 바가 가장 가까이서 보였던데다가, 금속이 서로 부딪치고 살이 베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다음!"

저 아래서 도미닉 경의 소리가 들렸다.

언뜻 연기 사이사이로 보이는 인원을 보았을 때, 도미닉 경은 최소 넷 이상을 상대하는 건지도 몰랐다.

히메는 입술을 짓이기며 도미닉 경이 있을 방향을 내려다보았다.

"앨리스, 지금 우린 도미닉 경을 구출하러 갈 거야. 이해했지?"

"...네!"

히메는 앨리스가 긍정하자마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건물의 가장자리에 섰다.

그리고 바로 아래, 연기를 향해 낙하했다.

하얗고 푹신해 보이는, 그러나 하얗지도, 푹신하지도 않은 연기가 히메를 삼켰다.

...

"...조제프 준장."

도미닉 경은 황후의 복장을 입은 여인을 노려보았다.

뾰족한 머리카락과 이빨은 가차랜드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개성이었기에 도미닉 경은 바로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어째서 거기에 있는 거요? 양산박의 사람들과 말이오."

도미닉 경이 조제프 준장을 경계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조제프 준장은 슬픈 눈으로 도미닉 경을 볼 뿐이었다.

"그분께서 당신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나를 원한다고? 누가?"

"알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 분께서 원하시기에 이뤄질 뿐."

도미닉 경은 조제프 준장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방금 전부터 말과 행동은 거만하고 도도했으나, 눈 만큼은, 저 눈빛 만큼은 애원하듯 슬프고 처량하게 빛났다.

"선택하세요."

절대 고르지 마세요.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그분의 아래에 들어올지..."

그렇게 말한 조제프 준장이 화려한 옷소매를 올려 입을 가리며 교태롭게 웃었다.

"혹은, 거절하고 죽을지."

도미닉 경은 조제프 준장의 눈빛으로 정답을 알아차렸다.

거절하라는 말과 동시에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이다.

과도한 해석이라고 볼 여지는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녀가 일종의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한 번 결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나이였고.

"거절하겠소."

"거절한다구요?"

도미닉 경을 둘러싼 여인들의 표정이 표독해졌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분은 신과 같은 존재.

그분이 이미 결정내린 일을 '선택'하는 것도 모자라 '거부'까지 한 도미닉 경은 마교, 사파, 녹림채보다 못한 사람인 것이다.

"황후님! 저 자의 목을 벨 수 있게끔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나 그녀들은 바로 도미닉 경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일종의 금제에 빠져 있었고, 그 금제를 어기는 순간 그분께 버림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황후... 아니, 조제프 준장의 눈앞에 선택지가 떴다.

여성들 앞에 있는 선택지는 [허락하기.]

그리고 도미닉 경의 앞에 있는 선택지가 [용서하기.]

조제프 준장은 힘겹게 도미닉 경의 앞에 있는 선택지까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데 성공했으나, 어떤 필연적인 힘으로 인해 [허락하기.]를 누르고 말았다.

그녀의 눈에 좌절감이 감돌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미닉 경은 그저 어깨를 빙빙 돌리며 안개 사이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허깨비같은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오랜만에 온전히 행복한 기분에 잠겼다.

이는 이 정도의 위기를 오랜만에 겪어본 탓이기도 했지만...

"빈틈! 죽음세요!"

도미닉 경이 흐.하고 미소 짓자 방심했다고 생각한 한 여인이 직검을 내질렀다.

직검은 도미닉 경의 동공에 점으로 보일 정도로 정석적인 찌르기였으며, 또한 거리감각이 부족한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대로 검을 휘둘러 자석처럼 검 면과 검 면을 댄 후, 자기 검의 가드 부분과 직검의 끝부분이 닿도록 검의 위치를 움직였다.

"어어?"

지렛대처럼 힘이 작용하는 위치의 차이로 허무하게 옆으로 빗겨나가며 틈을 보인 여인의 뒷목에 도미닉 경의 검 끝이 박혔다.

"꺄악!"

도미닉 경의 검이 여인의 목을 완전히 관통해 버린 탓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으나, 정작 비명은 다른 여인에게서 나왔다.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그래. 도미닉 경은 이 정도의 위기를 오랜만에 겪어본 탓도 있었지만, 도미닉 경이 행복함을 빌어 저들을 비웃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겨우, 두꺼운 가죽도, 갑옷도, 날카로운 검과 이빨과 손톱도 없이 이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어?

도미닉 경은 기사였다.

그리고 전장에서 가장 행복한, 다르게 말해 미친 것처럼 날뛰는 전사이기도 했다.

가차랜드에 오고 나서 이것저것 겪어보고, 여동생도 다시 만나며 많이 순화되었으나 그 본질은 전쟁 기계에 가까운 상태.

도미닉 경은 생각으로 전쟁을 타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본능으로 전투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본능이 도미닉 경에게 속삭였다.

저들은 그저 삼류라고.

도미닉 경은 여전히 행복하게 웃었다.

"...쳐!"

이제 격식마저 잊어버린 듯 여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도미닉 경은 검의 뒷면으로 벽을 탁탁 치며 도발했다.

"다음!"

마치 선배 기사가 후배 기사의 검술을 파훼하며 가지고 놀듯 말이다.

...

도미닉 경과 무장한 여인들 간의 싸움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도미닉 경은 경험의 우세를 통해 여인들을 상대했고, 여인들은 머릿수로 도미닉 경을 압박했다.

골목이라는 특성상 둘에서 셋 이상 한 번에 공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지금까지는 도미닉 경이 조금 우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탱커였고, 그 말은 DPS가 그리 높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이 하나를 처리하면 둘이 부활했고, 둘을 처리하면 셋이 도착했다.

이대로라면 도미닉 경이 먼저 지쳐 쓰러지고 말리라.

그러나 도미닉 경은 여전히 멀쩡한 모습을 보이며 여인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다음!"

학습 능력이 없는지 멍청하게도 또 무작정 돌진하다가 목과 심장, 그리고 명치에 한 번씩 찔려 죽어 버린 여인을 발로 걷어차며 도미닉 경이 외쳤다.

그리고 조제프 준장은 그저 우아하게 선 채로 그런 도미닉 경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사로잡힌 공주 포지션이지?'

그런 생각 하면서 말이다.

벌써 일흔 세 명의 여인을 베었으나 가치만 있다면 부활하는가차랜드의 특성상 베어낸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그 말은 여전히 일흔 세 명 이상의 여인을 처리해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는다.

도미닉 경은 이런 상황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적의 기세가 올라 승냥이처럼 달려들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 당장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스스로 불리해질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은 이미 또 하나의 여인의 심장을 앗아갔다.

그때였다.

"스승님!"

하늘에서 동그랗게 연기가 회오리치더니, 이내 작게 뚫린 구멍에서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틈새로 한 쿠노이치와 시대착오적인 종자가 나타났다.

"아."

도미닉 경은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 도와주러 왔어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도미닉 경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뿐.

히메와 앨리스가 도미닉 경의 양옆으로 서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2라운드의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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