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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26화 (126/528)

〈 126화 〉 [125화]킹 오브 로그라이크

* * *

행정부 주변은 엄청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불길이 얼마나 거센지 하늘이 평소와 다르게 붉고 검은 연기로 가득할 정도였다.

히메는 이 엄청난 대화재가 혹시 도미닉 경의 비행선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도미닉 경의 비행선이 일으켰다고 하기엔 화재가 너무 크고 방대하며 이미 전소된 건물도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 상 비행선 화재로 불탔다고 가정해도 저 멀리 튄 불똥으로는 30초 만에 건물을 저렇게 만들지는 못했다.

"히메 공? 무슨 일 있는 거요?"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에요! 세상이 불타고 있어서 그만..."

"세상이 불타고 있단 말이오?"

도미닉 경이 의아한 듯 소리를 질렀다.

"혹시 비행선 추락으로 인해 불이 옮겨붙은 거요?"

"아뇨! 그 이전부터 불타고 있던 것 같아요."

도미닉 경은 히메의 목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좁은 시야가 화재 연기로 인해 더욱 좁아진 상태.

도미닉 경이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히메의 목소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해요."

히메는 문득 행정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 화재, 행정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행정부를 중심으로?"

"네. 행정부를 중심으로. 정작 행정부는 멀쩡하네요."

히메는 쿠노이치다운 통찰력을 발휘했다.

연기를 꿰뚫고 그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한 히메는 빠르게 눈을 돌리며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거리.

화재 진압이 힘든 골목에서만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

심지어 하늘엔 비행정에 마법과 폭탄을 던지던 이들이 있어야 했으나 아무것도 없이 그저 검붉은 구름만 보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한 점은 행정부 주변의 건물들이 저렇게 불타오르고 있는데, 정작 행정부 건물은 멀쩡해 보였다는 점이다.

놀랍도록 기묘한 상황.

"히메 공?"

"아, 네! 도미닉 경."

"아무래도 이 아래에서는 시야가 제한되는 모양이오! 위에서 길을 안내해주어야 할 것 같소!"

히메가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도미닉 경도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시야에는 뿌연 연기만 가득했고,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보기가 힘든 상황.

분석은커녕 숨쉬기마저 힘든 상황에 부닥친 상태였다.

도미닉 경은 검을 뽑아 들며 히메에게 외쳤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위에 있는 히메가 더 시야가 넓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히메가 길을 안내해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감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

하지만 히메는 곤란한 듯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길과 도미닉 경의 위치를 동시에 파악하고 내려와 도미닉 경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도미닉 경의 비행선을 공격한 이들의 위치를 아직 알아내지 못한 상황.

하나의 일만 한다면 모르겠으나 이 혼란에서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은 히메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어쩌지."

"혹시 어려우시면 제가 안내할까요?"

그때,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앨리스는 히메가 닌자라서 은밀하지 않은 일에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사실과는 전혀 달랐으나, 어떻게 보면 맞는 말.

아이다운 엉뚱함으로 인한 착각이 히메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왔다.

히메는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앨리스는 사슬갑옷을 입고 있지만 도미닉 경의 '장비'로 등록된 상태.

사실상 그 무게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미닉 경이 잠시 이 인간형 장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허락만 한다면 충분히 데리고 움직일 수 있으리라 판단한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도미닉 경! 앨리스에 대해서 볼 수 있게 허락해주시겠어요?"

"...? 그러리다!"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의문을 품었으나 지금은 의문에 왜? 라고 묻기 전에 신뢰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골목길에 자욱한 연기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고, 도미닉 경의 시야도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숨이 막혀 오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기사다운 폐활량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상태.

무언가를 물어보기엔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던 탓이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앨리스를 둘러업었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부터 행정부로 갈 거예요. 높이 뛸테니까 도미닉 경에게 길을 안내해 줘요. 당신은 도미닉 경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작게 말하더라도 들릴 거예요. 아마도."

히메의 말에 셋은 역할을 나누었다.

길을 개척하며 위험을 제거하는 히메.

그 개척된 길을 안내하는 앨리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움직이는 도미닉 경.

마치 탑 뷰나 쿼터뷰로 게임을 하듯 도미닉 경이 조종당하는 상황.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최적의 분업이었다.

"도미닉 경! 준비됐어요?"

"언제든지 말만 하시오!"

히메는 마지막으로 움직이기 전에 도미닉 경에게 현재 상황을 다시 주지시켰다.

"앨리스가 도미닉 경에게 길을 알려줄 거예요! 그 안내를 따라 움직이세요!"

"알겠소!"

도미닉 경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알았다고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히메는 바로 고개를 들고 행정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는 골목길에서 눈을 멈춘 히메는 어째서인지 이 상황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

"스승님, 쭉 가다가 왼쪽으로 꺽으세요."

도미닉 경은 앨리스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검을 들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갈림길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은 도미닉 경.

지금까지는 굉장히 순조로운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가차랜드에서 순조로운 일은 곧 혼돈과 혼란의 전조.

도미닉 경은 문득 이 자욱한 연기 사이로 히메와 앨리스와는 다른 느낌의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인기척은 점점 걸음을 옮길수록 그 존재감이 커져간다.

"오른쪽, 왼쪽, 왼쪽이에요."

도미닉 경은 앨리스의 말에 따라 골목을 꺾었다.

그때였다.

도미닉 경의 왼쪽에서 앨리스와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다.

"왼쪽, 왼쪽, 오른쪽."

그리고 반대편에서도 똑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오른쪽, 왼쪽."

도미닉 경은 세 갈래로 들리는 앨리스의 목소리에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진짜 앨리스의 목소리와 달리 나머지 두 목소리는 목소리만 비슷할 뿐 어색하게 연기를 하는 것이 너무 티가 났기 때문이다.

"누구냐!"

"에?"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둘러보며 쩌렁쩌렁하게 포효했다.

앨리스의 반응으로 봐서는 여기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귓가에 대고 말한 듯 가까이서 들렸다.

"감이 좋네, 나으리."

"여기서 정답을 고를 줄이야."

안개에서 동양풍의 드레스를 입은 쌍둥이들이 나타났다.

아니, 쌍둥이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여성들은 옷과 머리 스타일만 조금 다를 뿐 얼굴이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고.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아."

"그 말은, 나리의 인생으 꿈처럼 덧없어지고, 심장이 고요하게 피을 흘리게 된다는 소리."

수십 명은 될 법한 여성들이 도미닉 경을 둘러싼 상태로 호호거리며 가식적으로 웃었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저 엉터리 문법을 들은 적이 있었다.

청문회 당시, 근접 딜러 연합의 수장격이었던 의원 트롬.

그가 양산박의 힘에 너무 취한 나머지 나타났던 부작용.

도미닉 경은 그 당시를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양산박의 사람들이오?"

도미닉 경의 말에 호호거리던 가식적인 웃음이 딱 멈췄다.

"나리, 나리는 참 현명하십니다."

"항상 정답을 고르시는다."

"그러나 정답은 가끔 오답."

"나리는 어째서 우리가 양산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각자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도미닉 경을 압박하는 동양풍의 여성들.

그녀들은 엉터리 문법과 어색한 연기톤의 말투가 합쳐져 불쾌한 골짜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기세를 보며 이곳을 편하게 지나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검을 들어 올리며 남아 있는 한눈을 굴려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모두 기세를 거두세요."

그러나 이 상황은 새롭게 나타난 한 여성으로 인해 정리되었다.

황후의 복장을 입은 여성의 등장으로 말이다.

...

"스승님? 스승님?"

앨리스는 어느 순간부터 도미닉 경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바로 히메에게 말했다.

"히메 씨... 히메...공? 아무튼 지금 스승님께서 사라지셨어요!"

히메는 그 말에 바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도미닉 경이?"

"네! 대답도 없으세요!"

앨리스는 울먹이듯 말했다.

히메는 눈을 굴리며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직 도미닉 경이 죽음을 겪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이 죽었다면 그의 장비로 취급되는 앨리스도 도미닉 경의 부활과 함께 재소환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직 앨리스가 여기 있다는 말은 도미닉 경이 죽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다만 거기까지만 알아냈을 뿐 더 이상의 정보가 없는 상황.

"아무래도..."

히메는 다시 자기가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도미닉 경을 다시 찾으러 가야겠는걸."

저기 어디 도미닉 경이 길을 헤매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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