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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25화 (125/528)

〈 125화 〉 [124화]행정부를 향하여

* * *

추락하던 비행선에서 도미닉 경은 저 멀리 커다란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일부를 통해 그 건물이 행정부의 건물임을 알아보았다.

"도미닉 경! 탈출 장치 같은 건 없어요?"

"와! 붕 뜬다!"

비행선의 낙하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중력과 낙하 속도가 상쇄되어 몸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도미닉 경은 조타륜을 잡고 있었다.

행정부까지 최대한 가까이 가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더 아낄 수 있지 않은가.

이제 비행선은 거의 45도 각도로 기운 채 불타오르며 추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도미닉 경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수직으로 처박혔으리라.

연기와 불길을 내뿜으며 비행선이 골목으로 떨어진다.

우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박살 나고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며 골목길에 들어선 비행선은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폭발하며 불기둥을 만들어냈다.

행정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불의 기둥을 볼 수 있었다.

...

"마스터, 지시하신대로 행정부로 향하는 이들을 막아 냈습니다만... 일부를 놓쳤다고 합니다."

검은 후드를 쓴 사람이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안락 의자에 앉아 마티니를 천천히 흔드는 사람에게 말했다.

"알고 있다. 보고 있었으니."

이상할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남자가 검은 후드의 말에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과도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었다.

행정부가 훤히 보이는 뷰가 인상적인 테라스에서 흔들던 마티니를 한 모금 마신 남자는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검은 후드를 바라보았다.

"후드."

"네?"

"벗으라고. 그 후드."

검은 후드가 쭈뼛거리며 망설이자, 이 아름다운 남자는 그저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방금 전과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큭."

후드를 쓴 자가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남자는 웃으며 후드를 쓴 자를 바라보았다.

강자의 여유일까?

남자는 얼마나 여유로운지 후드를 쓴 자를 바라보면서 마티니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

결국 숨이 막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후드를 쓴 자가 애원하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벗어."

남자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장착한 채,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남자에게 굴복하고 만 후드를 쓴 자는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후드를 벗었다.

"그래. 그편이 훨씬 낫군."

남자가 후드를 썼던 여자를 바라보며 방긋 웃고는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 다시 불타오르는 행정부 골목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뾰족뾰족한 머리카락과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비밀결사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조제프 준장처럼.

"그래서."

남자가 빈 마티니 잔을 옆에 내려놓은 채 간이 냉장고에서 새로운 양주를 꺼냈다.

이번엔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마실 생각인 모양인지 냉동실에 있던 동글동글한 얼음을 꺼내 잔에 놓고 위스키를 천천히 그 위로 부었다.

"변수라고 생각될 이가 있나?"

이 아름다운 남자가 조제프 준장을 닮은 이에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여성이 남성에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현재 행정부 내부에서 4성급 이상의 인원들이 소수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공업 지구에서 강화를 하던 5성급 인원이 하나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분명 오늘은 행정부 고위층이 쉬는 날 아니던가?"

남자는 자기가 알고 있던 정보를 내뱉었다.

"교대 근무제 때문에 오늘은 3성 이하만 출근하는 줄 알았는데."

"각 부서의 당번이라고 합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정말 그 혹시 모를 일이 일어나기는 했습니다만. 하고 덧붙인 여성.

"뭐, 그 정도는 예상된 변수 아닌가?"

남자가 위스키를 홀짝였다.

그는 지금 취하려고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음미하려고 마신다는 것을 광고라도 하는 것처럼 붉게 불타오르는 행정부 골목들을 바라보며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펑! 하고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하늘에 떠 있던 비행선 하나가 골목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남자는 그 강렬한 폭발의 빛에 눈을 찌푸리며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그 남자라고 하시면...?"

"도미닉 경."

남자는 여자의 눈을 응시했다.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여자는 차마 눈을 돌릴 생각도 못한 채 생각을 읽힐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눈빛 때문일까? 여자는 거짓말을 하거나 문장을 꾸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기 의견을 말했다.

"도미닉 경이 루키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마스터가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 그건 맞아."

기괴할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말이야, 꼭 가지고 싶은 남자란 말이지, 도미닉 경은."

남자는 품속에서 도미닉 경의 캐릭터 카드를 하나 꺼내 들었다.

홀로그램 코팅과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 보호 필름 안에 보관된 캐릭터 카드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도미닉 경의 카드를 소중히 여기는 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세상에서 단 10장만 풀렸다더군.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하지만­"

남자가 무서울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단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인형이나 데이터 따위가 아니라, 그 본체. 단 하나 있는 그 원본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양산박에 남아 있을 이유 따위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가 비열하게 웃었다.

"...설마."

뾰족한 이빨의 여성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황당함과 두려움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모든 것이 도미닉 경을 가지기 위한... 계획은 아니겠지요?"

"정답."

남자가 기특하다는 듯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역시 그때 '제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남자가 더욱 불타오르기 시작한 행정부 주변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위스키 온더락을 마지막 한 모금까지 쭉 들이켰다.

이제 컵에는 아직 덜 녹은 단단한 얼음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곧 때가 온다."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아직 컵에 남아 있던 얼음을 입에 물고 순식간에 깨물어 부숴 버렸다.

금속 수준의 단단함을 가진 돌얼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치악력!

잘게 부서진 얼음 조각을 아작아작 씹어 삼킨 남자는 그때를 상상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가 되면 도미닉 경도 선택해야겠지. 내게 복종할지, 혹은 내게 반항하다 죽을지.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군.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마스터."

남자는 뒤틀린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듯 끔찍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뒤 두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광소를 터뜨렸다.

여성은 그런 남자를 보며 눈을 바쁘게 굴리고 있었다.

여성은 남자가 한 말을 토대로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계획을 폐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때가 머지 않았다.

때가 머지 않았어.

두 남녀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

행정부 근처 골목, 비행정이 추락한 지점.

탓. 하는 소리와 함께 아직 멀쩡한 건물의 옥상에 닌자가 내려앉았다.

"괜찮아요?"

닌자는 아래 불길과 연기로 가득한 골목을 향해 소리쳤다.

"괜찮소!"

그리고 아래에서 연기에 콜록거리기는 했으나 나름 멀쩡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도미닉 경은 괜찮아. 이제 안심해도 돼."

"휴. 스승님이 이런 걸로 죽으실리가 없죠."

닌자가 뒤에 있던 종자를 안심시켰다.

시린 빛의 머리카락에 불길이 비쳐 마치 얼음 속의 불처럼 아름다운 종자가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셋은 바로 도미닉 경과 히메, 그리고 앨리스였다.

이들은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살아남았다.

사실, 가차랜드여서 살아남았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추락하기 직전, 도미닉 경은 어느 정도 땅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자마자 히메에게 외쳤다.

'지금 당장 탈출하시오! 이 정도 높이라면 충분할 거요!'

도미닉 경은 과거 언찬트에서의 히메의 신체 능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은 더 강해졌으리라 생각한 도미닉 경은 이 정도 높이라면 히메에게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실로 판명났다.

히메는 처음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도 차마 움직이지 못하다가, 도미닉 경의 외침에 마음을 굳히고 뛰어내릴 수 있었다.

'앨리스를 데려가시오! 지금 상태라면 추락 피해를 두 배로 받을지도 모르거든! 탱커라 한 몸은 간수할 수 있으니 빨리 탈출하시오!'

그렇다. 도미닉 경은 탱커. 현재 방패는 없지만, 특성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 활성화 되어있는 상태였다.

[[기수] : 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주변의 아군에게 버프를 주는 대신 배치 코스트가 1 늘어납니다.]

또한 특수 능력 [기수]는 깃발을 얻었을 때 생성된 능력이지, 깃발이 필요하다는 툴팁은 없었다.

[[탱커][기수] 시너지 : 주변의 아군이 받는 피해를 4% 만큼 감소시킵니다.]

게다가 [탱커][기수] 시너지의 설명 상 아직 효과는 유지되는 상태.

그렇다.

도미닉 경과 시스템은 모두 아직 이 특수 능력이 사용 가능하다고 판정했다.

그렇기에 버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반면, 앨리스가 남아 있다면 어떻까?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장비로 분류되어 앨리스에 대한 공격은 도미닉 경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도미닉 경과 앨리스가 동시에 피해를 입었을 때 그 피해가 2배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 사실을 실험하기엔 지금은 너무 급박한 상황.

그러나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될까? 싶은 것들은 다 된다는 사실을 몇 번의 경험으로도 알고 있었다.

분명히 여기서도 버그가 터지리라.

도미닉 경의 뜻을 깨달은 히메는 앨리스를 들쳐메고 비행선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쿠노이치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직 불타지 않은 건물 옥상에 소리 없이 떨어진 히메와 앨리스.

그 이후 도미닉 경의 비행선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먼 곳에 추락했고, 폭발했다.

죽더라도 페널티가 거의 없다시피 부활하는가차랜드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기분 좋을리는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도미닉 경은 최대한 살아남는 방향으로 나름의 도박 수를 던졌고, 그 도박수는 성공했다.

"그나저나­"

살아남은 기쁨도 잠시.

도미닉 경은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히메에게 외쳤다.

"행정부로 가는 길목이 어디인지 모르겠소! 연기가 너무 자욱해서 말이오!"

"알겠어요!"

히메가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아."

그리고 지금까지 비행선에만 집중한 나머지 보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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