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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24화 (124/528)

〈 124화 〉 [123화]행정부를 향하여

* * *

히메는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지금 무슨 말을 들었냐는 듯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지금 장비 슬롯 2개가 '잠겼다는' 거죠?"

"오류로 인해 깨졌다고 하더군."

"장비 장착은 돼요?"

"글쎄..."

도미닉 경은 평소에 방패를 매어두던 자리를 매만졌다.

그저 등이 만져질 뿐이었다.

"장비도 사라진 것 같소."

"세상에."

히메는 이 느긋한 외눈박이 기사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여유로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도미닉 경이 이렇게 느긋한 이유는, 그가 이런 일을 너무 자주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

마족들의 공세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영악한 마족들은 인간의 심리적인 허점과 육체적인 피로를 분석해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찾아오기도 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악의가 가득한 상황에서 횃불 하나만 들고 싸운 적이 있을 정도로 경험이 많은 기사.

방패 하나 없다고 해서 큰 의미는 없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어서 행정부로 가서 복구 신청을 해야겠어요. 최대한 빨리. 도미닉 경처럼 단순한 스킬셋과 장비를 가진 사람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공업 지구에는 강화를 하러 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인들은 재료를 써서 장비와 설계도를 만들었고, 이를 행정부를 매개로 중앙 시스템에게 전달, 개척자들이 탐험할 맵 곳곳에 뿌렸다.

백업의 여파로 보아 분명히 개척자들에게도 문제가 생겼을 터.

약간의 문제도 참지 못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몇몇 개척자들은 자기 클랜을 이끌고 행정부로 쳐들어갈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행정부가 마비되고, 보상을 받는 일은 더 미뤄질 것이 틀림없다.

히메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이었다.

걱정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가차랜드에서 나름 고위층에 속한 운류 가문의 딸로서 그런 일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곧 행정부 업무가 끝나는 시간이군요. 그 전에 보상을 받으러 가야 해요."

히메는 팔에 달린 해시계를 바라보았다.

4시 12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행정부의 업무 종료 시각은 대부분 5시. 백업의 여파로 추가 근무가 있을 테니 아무리 길게 잡아도 5시 30분까지 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이 아무것도 모르는 도미닉 경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히메가 도미닉 경을 흘끗 바라보았다.

히메 혼자라면 순식간에 갈 수 있지만, 도미닉 경의 속도를 생각하면 아슬아슬할지도 몰랐다.

"혹시 탈 것 있나요? 고속 비행 특성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서요."

"있소."

히메는 차라리 탈것을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여겼다.

기본적으로 모든 탈 것은 최소 30%의 이동 속도 상승 효과가 있었으니까.

"다행이네요. 가까운 곳에 탈 것 소환소가 있어요. 하늘로 가면 더 빠르겠지만 땅으로도 충분히­"

"하늘로 갈 수 있소."

도미닉 경이 히메의 말을 끊었다.

히메가 말을 멈추고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렇다면 빨리 갈 수 있겠네요. 다행이에요. 당장 소환소로 가죠."

"안내하시오."

히메가 고개를 끄덕이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안내했다.

도미닉 경은 이곳의 지리를 몰랐기에 그저 히메의 뒤를 따라갔다.

"스승님, 드디어 저희 그거 타는 거예요?"

앨리스가 조용히 있다가 도미닉 경에게 작게 속삭였다.

앨리스의 양 볼은 기대감으로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 처음엔 어디다 쓸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써먹는구나."

가차랜드는 생각보다 포탈과 게이트 등 대중 교통이 발달한 곳이었기에 뜻밖에 탈 것을 탈 일이 많지 않았다.

스토리 모드나 개척단의 개척지에서라면 모르겠으나, 적어도 가차랜드 내에서는 탈 것을 탈 일이 거의 없었다.

도미닉 경도 사실 포탈로 행정부 입구로 바로 가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곧 스스로 그 답을 알아차렸다.

방금 히메는 행정부로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포탈에 과부하가 걸려 로딩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탈 것을 타는 것이 더 빠른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의 정보를 취합해 스스로 답을 도출한 몇 안 되는 사례였다.

"여기예요."

도미닉 경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히메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세 갈래의 표지판이 있었는데, 각각 육상, 해상, 공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미닉 경은 공중 탈 것을 탈 예정이었기에 공중이라고 적힌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히메가 그 뒤를 따랐다.

마침내 소환소에 도착하자, 그곳은 거대한 활주로가 있었다.

이 활주로에 탈 것을 소환해 날아가는 것이리라.

소환. 하고 작게 중얼거린 도미닉 경은 이내 활주로에 거대한 비행선이 소환되는 것을 보았다.

게이트에서 사람이 나오듯 격납고에서 천천히 소환된 비행선은 살짝 뜬 상태로 바로 날아갈 수 있게끔 방향을 틀어놓은 상태였다.

"이건... 대단하네요."

히메가 순수하게 감탄을 터뜨렸다.

무려 3개나 되는 활주로를 잡아먹는 크기의 비행선은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그 위압감 넘치는 모습을 바라본 히메는 본래의 일을 떠올리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탈 것은 기본적으로 1인승.

히메는 탈 것이 아직 없었기에 여기서 볼일이 없다.

"그럼 이제 전 뛰어서 가 볼게요. 조금 있다가 만­"

"그럴 필요 없소."

"네! 맞아요!"

도미닉 경이 히메를 불러세웠다.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수송선을 겸하거든요!"

그렇다.

이렇게 큰 비행선이 한 명만 태울리가 없었다.

애초에 거미전차와 페어를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이 비행선은 이벤트 인원에 맞춰 최대 4개의 거미전차를 수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비행정 조종사를 제외한 3~4명의 사람을 더 태울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스승님! 먼저 타있어도 돼요?"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발을 동동 구르더니 비행선을 향해 뛰어갔다.

"타시오, 히메 공."

도미닉 경이 히메를 향해 손짓했다.

히메가 머뭇거리자 도미닉 경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 도와주기로 했으니, 끝까지 도와주시오. 이왕이면 가까이서."

크리티컬!

히메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비행정의 압도적인 멋있음에 감화되어서인가?

아니다.

히메는 이미 도미닉 경에게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진 상태.

이미 눈에 콩깍지가 낀 상태에서 도미닉 경의 추가타가 들어가자 빈사 상태에서 겨우 회복된 그녀의 마음이 다시 묘한 감정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손을 뻗은 채로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서, 안 타실거요?"

히메는 문득 도미닉 경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메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

히메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숨어 있던 여우 귀와 꼬리가 뿅!하고 나타나 히메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했다.

"...네."

"좋소. 빨리 승선하시오.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도미닉 경과 히메를 태운 비행선은 곧 활주로에서 떠올라 행정부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도미닉 경과 히메보다 먼저 타 있었던 앨리스가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닌자가 이 배에 탄 상태에서 해적이 된다면, 그건 플라잉 닌자일까, 아니면 닌자­해적일까?

아이다운 생각이었다.

...

"좌현! 좌현­!"

"빨리 우측으로 꺾어요!"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도미닉 경이 탄 비행선은 지금 큰 위험에 부딪쳤다.

"스승님! 발사해 버리죠?"

"네? 이거 사격 무기도 있­ 꺄악!"

히메가 폭발로 인한 흔들림에 자리에 쓰러졌다.

닌자다운 균형 감각으로도 차마 버티지 못할 만큼 요동치는 비행선.

도대체 왜 이 비행선은 흔들리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방에서 터지는 폭탄과 마법.

연약한 비행선이 버티기에는 다소 거칠어보이는 공격들이 도미닉 경이 탄 비행선을 덮쳤다.

도미닉 경은 지금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항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나 비행선의 일부가 잘못된 것인지 자꾸 조타륜과 진행 방향이 어긋나고 있었다.

"도대체 저들은 뭐요?"

도미닉 경이 히메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나마 가차랜드에 가장 정통한 이가 히메였으니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네요!"

자리에서 겨우 일어난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히메가 이런저런 정보를 잘 아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모든 것을 알지는 못 하는 법.

지금 상황은 그녀도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고, 지금 공격하는 이들도 그녀가 모르는 이들이었다.

도미닉 경은 비행선 내부의 네비게이션에 표시된 항로를 보며 생각했다.

행정부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

그러나 탈 것의 내구도가 심각하게 닳아 있어 그 짧은 거리마저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상황.

"저, 스승님?"

그때였다.

"큰일 난 것 같아요!"

앨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도미닉 경에게 경고했다.

도미닉 경이 앨리스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앨리스는 어느 한쪽을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박살이 나 불타고 있는 엔진과, 그 엔진이 훤하게 보이는 구멍이 있었다.

"아."

도미닉 경은 순간 앨리스의 말대로 큰일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비행선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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