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21화]장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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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32번 손님! 91732번 손님! 17번 창구! 17번 창구입니다!"
금속이 녹아내리며 치익거리는 소리, 철과 망치가 부딪치며 내는 소음, 더 싸게 재료와 장비를 얻으려고 흥정하는 소리, 그러다가 마침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안부를 물어보는 소리...
그 엄청난 소음 사이에서 온종일 소리를 질러대느라 목이 쉬어 버린 직원의 호명에도미닉 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먼저번호표를 뽑았던 히메는 먼저 강화를 하러 간 상태.
도미닉 경은 기다리느라 졸린 듯 눈을 부비는 앨리스와 함께 17번 창구로 향했다.
"어서 오쇼."
창구 너머에서 드워프가 퉁명스럽게 인사했다.
성별은 달랐으나 어째서인지 장비 슬롯 개방에서 본 드워프와 비슷해 보이는 분위기.
도미닉 경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드워프 여성에게 물었다.
"장비 슬롯 개방 창구의 드워프와는 어떤 사이요?"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압니까?"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린 여자 드워프는 갑자기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오늘 일하는 날인가 보구만. 늙은이가 정정하기도 하지. 이제 나도 일하니까 좀 쉬라고 말했건만."
투덜거리듯 다행이라는 듯 중얼거린 드워프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아무튼 장비 강화하러 온 것 아니오? 당장 슬롯이나 보여주시지?"
머쓱한지 두어 번 침음성을 내뱉은 드워프 여성이 도미닉 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이 손목을 내밀자, 슬롯을 읽은 드워프가 창구 옆에 작은 창을 열었다.
"방패와 깃발은 그렇다고 쳐도, 앨리스는 도대체 무슨 장비인지 알 수 없군. 혹시 보여 줄 수 있겠소?"
"그게... 흠."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배낭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앨리스를 불렀다.
"앨리스!"
"어? 네! 스승님! 부르셨어요?"
앨리스는 입가에 흐른 침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벌떡 일어나 도미닉 경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니, 장비를 보여달라니까 왜 사람을 부르... 잠깐, 내가 생각하는 그거요?"
드워프가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드워프는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세상에. 진짜 존재하긴 했군.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었네. 노망이 아니었어."
잠깐 멍하게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번갈아 보던 드워프.
그러나 곧 자기 일이 기억났는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도미닉 경을 응대하기 시작했다.
"방패와 깃발은 강화하는 데 문제가 될 것이 없소. 하지만 당신의... 음... 뭐라고 불러드리면 좋을까? 생명체에게 도구라고 하기엔 좀 그렇잖소."
"스승님의 종자입니다!"
앨리스가 잠을 깨려는 듯 활기차게 말했다.
"종자. 종자. 그래. 좋소. 당신의 종자는 강화 불가요."
"어째서요?"
도미닉 경이 되물었다.
"그야 장비지만 장비가 아니니까 그렇지. 예전엔 되었었지만 관련된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법률로 막았다고 들었소."
아버지에게. 라고 말한 여성 드워프가 거친 솜털이 자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방패와 깃발 정도가 되겠군."
드워프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앨리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드워프에게 물었다.
"그럼 전 강해질 수 없는 건가요?"
"그건 아니오."
드워프가 단언했다.
"사실, 강화만 불가능하다뿐이지 실제로 인간형 장비는... 성장과 어시스트가 묘미지."
"성장과 어시스트?"
도미닉 경과 앨리스가 드워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소. 성장과 어시스트."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드워프가 도미닉 경과 앨리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장비 설명을 보면 성장에 따른 보상이라는 문구가 있지 않소?"
"과연."
도미닉 경은 장비창의 앨리스 란을 바라보았다.
[앨리스 () : 꼬마 아가씨는 여자와 아이를 숨기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숨겨야하죠. 시대 착오적인가요? 아무튼 기사도가 충만해집니다! 앨리스의 성장에 따라 특별한 보상이 있습니다.]
드워프의 말대로 그런 문구가 있었다.
"그 문구대로, 저 아가씨가 얼마나 당신을 도와주느냐에 따라서 성능이 달라지는 법이오. 아가씨가 성장하면, 당신의 능력도 성장하는 법."
"음."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앨리스가 도미닉 경에게 직접적인 스탯이나 스킬을 주지는 않았지만 탈 것을 같이 움직여 준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형 장비를 얻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강점을 극대화하거나, 혹은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그 사람을 훈련시키지. 이게 바로 어시스트요."
드워프의 말에 도미닉 경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눈이 하나이기에 시야각이 매우 좁다.
그런 사각을 앨리스가 커버하고 경고해 줄 수 있다면?
직접적인 스탯이나 스킬보다 더 나은 무형의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앨리스를 훈련시키면 훈련시킬 수록 나에게 이득이 된다.
도미닉 경은 몰랐으나, 지금까지 그가 앨리스를 훈련시킨 일은 결국 도미닉 경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성장과 어시스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설명은 다 된 듯하니 강화나 하시겠소?"
드워프가 도미닉 경에게 넌지시 물었다.
도미닉 경은 자기가 원래 강화를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기다리시오. 강화표를 가져올 테니."
드워프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뒤에 있는 네모난 돌 상자의 뚜껑을 열더니 종이 하나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돌 상자의 틈새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더니 곧 종이 하나가 돌 상자의 옆 부분 틈새에서 튀어나왔다.
다시 뚜껑을 열어 원래 있던 종이를 꺼낸 드워프는 그 종이를 제자리에 가져다두고 새로운 종이를 가져와 도미닉 경에게 건넸다.
"이게 강화표요. 당신이 가진 장비를 기준으로 표가 뜰거요."
드워프가 마법은 사악한 거지만, 이런 편리한 마법은 언제나 환영이지. 라며 중얼거렸으나 도미닉 경은 종이에 온전히 시선을 집중하느라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낡은 방패(T1) ▶ 보급 방패(T2) : 잘게 쪼개진 참나무 목재 (1732/10)]
[낡은 깃발(T1)▶ 돌격 깃발(T2) : 가루가 된 아케인 크리스털(1232/10)]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설명을 통해 강화를 어떻게 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도미닉 경이 집중한 부분은 강화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가 집중한 부분은 수상할 정도로 수치가 높은 재료 아이템의 숫자였다.
도미닉 경은 그 엄청난 숫자를 보며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무언가를 수집한 기억이 없었고, 또한 수집했다고 해도 이런 종류의 물건을 주운 기억은 없었다.
"저기."
결국 이 아이템들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결론이 나지 않자, 도미닉 경은 드워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료가 쓸데없이 많은 것 같소."
"얼마나 있소?"
"천 단위."
"아, 별로 못 모으셨구만. 스토리 모드를 덜 미셨나 보오?"
그러나 도미닉 경의 생각과는 반대로 드워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오히려 예상보다 적다는 투로 도미닉 경의 말에 대답했다.
천에 달하는 물자가 적은 편이라고? 도미닉 경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의 혼란을 알아차린 드워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일단 강화해 보면 알 거요."
도미닉 경은 드워프의 말대로 강화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종이 아래에 적힌 '강화 시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약관을 따릅니다. 동의하십니까?'라는 란에 서명한 도미닉 경은 창구 앞에 갑자기 버튼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누르면 강화가 되오."
[강화 시작!]이라고 적힌 버튼.
도미닉 경은 드워프의 말 대로 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버튼이 사라지며 종이가 환하게 빛나더니, 이내 [강화 성공!]이라는 문구와 함께 새로운 종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보급 방패(T2) : 적어도 화살은 막히는군요! 기가 막히네요. 방패로 타격시 기절 확률 6% 증가]
[돌격 깃발(T2) : 전장에서 바라봐야 할 것은 적이 아닙니다. 가장 앞에 달려가는 깃발이죠. [기수] 효과 75% 증가.]
분명히 처음 존재했던 장비들보다 훨씬 강해진 장비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수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보급 방패(T2)▶ 사제 방패(T3) : 덜 뒤틀린 참나무 목재(233/20),잘게 쪼개진 참나무 목재 (1722/100)]
[돌격 깃발(T2)▶ 지휘 깃발(T3) : 잘게 쪼개진 아케인 크리스털(317/20), 가루가 된 아케인 크리스털(1222/100)]
도미닉 경이 바라보고 있던 것은 바로 다음 강화에 필요한 재화의 수였다.
순식간에 열 배가 필요해진 재화.
도미닉 경은 드워프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필요한 재화의 양이 많다.
혹시나 해 한 번 더 강화를 눌러 본 도미닉 경은 이제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 방패(T3)▶ 기사 방패(T4) : 멀쩡한 참나무 목재(57/30), 덜 뒤틀린 참나무 목재(213/200),잘게 쪼개진 참나무 목재 (1622/1000)]
[지휘 깃발(T3)▶ 사단 깃발(T4) : 균열이 간 아케인 크리스찰(44/30), 잘게 쪼개진 아케인 크리스털(297/200), 가루가 된 아케인 크리스털(1122/1000)]
이래서였군.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저기 크리스찰이란 것은 무엇일까? 라고 궁금증이 생긴 도미닉 경이 드워프에게 물었다.
"크리스찰은 무슨 재료요?"
"아, 그거 오타요. 만 이천 년 전부터 그랬는데 아직도 안 고쳤군."
그랬던 거였군. 도미닉 경은 새삼 여기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깃발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라며 투덜거린 드워프를 뒤로한 채 도미닉 경이 다시 종이를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또 한 번의 강화를 할 수 있는 재화가 남아 있었다.
도미닉 경은 강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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